'정직한' 박 대통령에 신이 난 국정원
[게릴라칼럼] '사이버테러방지법', 대통령-국정원-새누리당의 삼각동맹
▲ 7일 오전, 청와대 수석비서관 회의를 주재한 박근혜 대통령 ⓒ 청와대
"사이버테러가 발생한다면 경제적으로 큰 피해뿐만 아니라 사회 혼란과 국가 안보를 위협하는 심각한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 당·정·청이 잘 협력해서 현재 국회에 계류 중인 사이버테러방지법이 통과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나서주길 바란다."
지난 7일 오전, 청와대 수석비서관 회의를 주재한 박근혜 대통령의 발언 중 일부다. 필리버스터가 끝난 직후, SNS상에서는 "테러방지법 다음은 개헌이다"라는 말이 나돌았다. 그만큼 과반의석을 차지한 여당과 이를 움직이는 청와대의 강력한 드라이브에 대한 공포로 읽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예상이 빗나갔다. '테러방지법' 다음은 '사이버테러방지법'이었다. 대통령은 이번에도 너무나 정직(?)했다.
'사이버테러방지법' 종용하는 대통령, 신난 국정원
테러방지법이 15년 만에 국회를 통과한 것과 관련해 "만시지탄"이란 에두른 표현을 쓴 박근혜 대통령은 개인정보 수집에 대해서는 "사회 분열을 조장하는 이야기"라고 못 박았다.
박근혜 대통령은 "그동안 테러방지법과 함께 사이버테러방지법이 같이 처리되도록 노력해 왔지만 사이버테러방지법은 여전히 국회에서 처리되지 못해 아쉬움이 많다"며 속내를 드러내는데 주저함이 없었다. 필리버스터가 중단된 지 딱 5일 만이다.
그리고 아니나 다를까, 국정원이 나섰다. 그것도 박근혜 대통령이 수석비서관 회의를 주재한 지 몇 시간 지나지도 않은 7일 오후였다. 국정원은 "북한 사이버테러 가능성, 실제 현실화되고 있다"며 언론플레이에 나섰다. 8일 14개 부처가 참석하는 '국가 사이버안전 긴급대책회의'를 소집한다는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선발로 등판하고, 국정원이 중간계투를 잇고, 새누리당이 마무리 투수로 나서는 이 익숙한 패턴. 영화 <타짜>의 아귀라면 아마 이렇게 내질렀을 것이다. "국민들이 무슨 빙다리 핫바지로 보이냐"라고. 사이버테러방지법 통과를 두고 어제오늘 벌어지는 일련의 작태가 딱 그 꼴이다.
"지난 2월 국정원은 미래부·한국인터넷진흥원과 협조, 북한 해킹조직이 우리 국민 2천만 명 이상이 인터넷뱅킹·인터넷 카드 결제 때 사용하는 보안소프트웨어 제작업체 내부 전산망에 침투, 전산망을 장악한 것을 확인했다. 국정원은 즉시 업체와 협조해 보안조치에 들어갔으며, 점검 결과 업체 서버 외에 일반 국민의 피해는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
정보기관이 이리도 자주 '보도자료'를 내는지 의아할 따름이다. 하여튼 국정원은 7일과 8일 양일간 '국가 사이버안전'에 관한 발표를 쏟아냈다. 그런데 진짜로 의문스러운 것은 국정원의 발표 내용이다. 무려 우리 국민 2천만 명 이상이 북한 해킹 조직의 침투에 노출됐는데, 일반 국민의 피해는 '하나도' 없단다.
2천만 명 이상이 가입된 보안소프트웨어 제작 업체 내부 전산망에 침투할 만한 실력의 '북한 해킹 조직은 도대체 뭐하는 조직일까' 심히 궁금해지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숫자만 보면 국민이 겁을 먹기에 충분해 보인다. 그 숫자 놀음은 여기서 끝이 아니다. 국정원은 또 "주요 인사" 20%의 스마트폰이 북한으로부터 공격당했다고 밝혔다.
"국정원은 북한이 주요 인사 스마트폰으로 유인 문자메시지를 보내 악성코드를 심는 방식으로 스마트폰을 공격한 것을 확인하고, 정부 합동으로 감염 스마트폰에 대한 악성코드 분석·차단, 해킹 경로 추적 등 긴급대응에 나섰다. 조사결과 공격대상 스마트폰 중 20% 가까이 감염됐으며, 감염된 스마트폰에 담겨 있던 주요 인사들의 전화번호가 추가로 유출된 것이 확인됐다."
이리도 모호한 정보기관의 발표라니. 아니, 국가비상사태에 관련된 정보이기에 모호해야 마땅하다고 우길 셈인가. 국정원은 또 "지난 1~2월 2개 지방의 철도운영기관 직원들을 대상으로 피싱 메일을 유포, 직원들의 메일 계정과 패스워드 탈취를 시도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이 모든 것이 "2013년 언론·금융사 전산장비를 파괴한 '3.20 사이버테러'와 같은 금융 전산망 대량파괴를 노린 사이버테러의 준비단계로 분석"된다고 덧붙였다. 국정원이 파악했다는 북한의 좀비 PC는 6만여 대. 북한이 올해 1월에만 세계 120여 개 국가에 1만여 대의 좀비 PC를 만들어 관리하고 있다는 것이다.
만약 이 정보가 사실이라면 '댓글이나 달던 국정원 직원들이 이제야 일 같은 일을 열심히 하고 있다'며 칭찬해줘야 마땅할지 모른다. 그런데도 석연치 않은 부분은 한둘이 아니다. 왜 하필 지금인가. 그렇게 긴급한 사안이었다면 왜 테러방지법이 통과되고 필리버스터가 중단된 지금 발표했어야 하는가. 의심은 끊이지 않는다.
2천만 명이나 '털린' 해킹의 규모라면, 걸릴 시간과 피해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신속한 대응은 불가능했나. 정말 한국의 보안소프트웨어 업체나 정보기관의 대응은 그리도 무력한가. 역으로 북한의 해킹 조직은 세계 최강인가. 국내 유력 인사의 범위는 어디까지이며, 20%라는 근거는 또 무엇인가. 그래서 '사이버테러방지법'이 꼭 필요하다고 우길 셈인가. 사실 그 답은 새누리당의 행보에 있다.
테러방지법과 사이버테러방지법은 '쌍둥이'?
▲ 이야기 나누는 원유철-조원진더불어민주당이 이종걸 원내대표의 발언을 끝으로 무제한 토론(필리버스터) 종결한다고 밝힌 가운데, 지난 2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새누리당 의원총회에 원유철 원내대표와 조원진 원내수석부대표가 참석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 유성호
"사이버테러방지법은 더불어민주당에서 안건조정 신청을 해놓은 상황이어서 국회의장의 직권상정 외에는 길이 없다. 오늘 오후 국회의장을 찾아가 직권상정을 건의할 예정이다." (새누리당 원유철 원내대표)
"국민은 야당의 억지주장과 같이 국정원의 도청이 아니라 북한의 도청을 걱정할 상황이 됐다." (김정훈 정책위의장)
"테러방지법과 사이버테러방지법은 쌍둥이법으로 국회의장이 함께 직권상정을 했어야 했다." (조원진 원내수석부대표)
SBS의 보도에 따르면, 8일 오전 새누리당 주요 인사들이 원내대책회의 이후 이런 '말·말·말'을 쏟아냈다고 한다. 대통령이 선두에 등판하자, 국정원이 '사건'을 풀고, 새누리당이 해결에 나서는 모양새다. 그리고 이 말들에 몇 가지 핵심 키워드가 담겨 있다. 새누리당의 저의를 해석해 보면 이 정도쯤 되지 않을까.
자, '날치기'를 대체할 수 있는 강력한 수단은 '직권상정'이다. 테러방지법을 통해 밝혀졌다. 야당이 필리버스터를 또 할 수는 없는 없을 것이다. 국정원이 강력한 '북한 카드'를 풀었다. '테러방지법'이 진짜 '테러를 방지하는 법'이라고 알고 있는 콘크리트 지지층을 동요시키기에 충분하다. 다시 한 번 국회의장의 직권상정으로 밀어붙이면 끝이다.
한데, "테러방지법과 사이버테러방지법은 쌍둥이법"이라는 조원진 부대표의 말은 거의 '자백'과도 같아 보인다. 사이버테러방지법은 이미 '악법도 법이다'라는 명제를 새삼 일깨워준 테러방지법에 맞먹는 독소조항과 국정원의 권한 강화에 일조한다는 비판이 제기돼 왔던 바다. 그런데도, 테러방지법과 사이버테러방지법이 쌍둥이라니.
이 정도면 '거의 순수하고 순백에 가까운 자기 고백'이라고 볼 수 있다. 더욱이 필리버스터 기간 내내 국회 본회의장에서 야당 의원들의 발언을 방해하며 "그가 반대하는 법이라면 무조건 찬성하는 게 옳다"라는 비아냥을 들었던 조원진 부대표의 말인 만큼, 되새겨 볼 가치(?)가 충분하지 않은가.
테러방지법에 이은 '최악의 법'이 탄생하는가
"이 법안은 테러 방지법만큼이나, 국민들의 전자통신 환경에 있어서 막대한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다. 먼저 국정원장 소속으로 설립되는 '국가사이버안전센터'는 민간 부분 인터넷의 사이버안전 관리 권한까지를 모두 포괄한다.
이는 기존에 미래부와 방통위를 비롯한 관련 기관과 '정보통신망법'에 의해서 관리되고 있던 부분이 별다른 이유 없이 모두 국정원장에게 넘어가게 되며, 인터넷을 이용해 사용하는 모든 서비스와 관련된 정보가 국정원의 '합법적'인 수집대상에 들어가게 된다."
지난달 24일, 테러방지법을 막기 위한 필리버스터가 시작되던 시기 정의당 언론개혁기획단이 내놓은 논평 중 일부다. 이미 시민사회와 야당은 테러방지법과 함께 새누리당 서상기 의원이 대표 발의한 '국가 사이버테러 방지 등에 관한 법률안'에 대한 반대를 분명히 해왔다.
이에 앞선 23일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과 참여연대 등 6개 시민사회단체 역시 이 법안을 두고 "사이버테러 방지를 명목으로 비밀정보기관에 막대한 권한을 부여하는 것은 최악의 법이다"라고 목소리를 높인 바 있다.
▲ "맥락은 비슷하다. 기존 관이나 민간에서 관리하고 감시하던 영역을 '국정원'이 직접 지휘하게 된다는 점이나 '사이버 테러'의 정의가 모호하고 광범위해 누가 테러리스트로 지목될지 모른다는 점도 테러방지법의 독소조항들과 유사하다." ⓒ 오마이뉴스
맥락은 비슷하다. 기존 관이나 민간에서 관리하고 감시하던 영역을 '국정원'이 직접 지휘하게 된다는 점이나 '사이버 테러'의 정의가 모호하고 광범위해 누가 테러리스트로 지목될지 모른다는 점도 테러방지법의 독소조항들과 유사하다.
테러방지법과 사이버테러방지법이 쌍둥이라면, 국민의 실생활과 훨씬 밀접하게 관련된 감시와 사찰이 가능해지는 법안 중 뒤늦게 태어날 수도 있는 사이버테러방지법이 바로 '동생'에 해당하는 셈이다.
미 주간지 <더 네이션>(The Nation)의 팀 셔록 기자는 "한국은 테러를 겪은 적이 없다. 남북한이 휴전 중인 전시상태에 있지만, 이는 국가 간 분쟁이지 테러가 아니다"라며 테러방지법의 무용성을 명쾌하게 지적한 바 있다.
자, 다시 물어야 한다. 과연 '누구를 위한' 사이버테러방지법인가. 정권을 위한, 국정원을 위한 이 '최악의 법'이 직권상정을 통해 처리되는 광경을 우리는 또 목도해야 하는가. 여소야대 국회를 만드는 것밖에 막을 방법이 없는 '빅 브라더' 완성법의 출현이 목전에 다가온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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