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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서 좋은 냄새가" 편의점 진상손님도 가지가지

[일하는 청춘, 꿈꾸는 노동②] '24시간 내 곁에', 편의점 알바노동자를 만나다

등록|2016.03.14 15:16 수정|2016.03.14 15:16
사람들이 알바하는 20대를 보는 관점은 보통 두 가지다. 무시하거나, 무시당한다는 이유로 불쌍하게 생각하거나. 어차피 잠깐 하다 마는 것이니 그 정도 대우도 괜찮다거나, 아니면 불쌍한 알바들이 이토록 힘든 상황에 처해 있다는 식.

그동안, 그 누구도 아르바이트 노동 그 자체에 주목하지 않았다. 어떤 영화가 천만 관객을 넘었고, 어떤 프랜차이즈 매장의 수가 몇천 개에 달하고, 편의점이 몇십m 단위로 줄지어 있다는 보도 뒤에는, 아르바이트 노동자가 있었다. 만약 아르바이트 노동자가 없었다면, 그 모든 게 가능하기나 했을까.

<일하는 청춘, 꿈꾸는 노동>이라는 연재를 통해 우리는, 아르바이트 노동과 그 노동을 하는 사람들에 대해 보다 더 깊이 다뤄보고자 한다. 그들을 무시하거나, 불쌍히 여기지 않으면서. 또 자극을 위한 소재 삼지 않으면서. - 기자 말

[이전 기사 : 안경 쓰고 출근했더니 "미쳤냐", 이게 20대 '꿀알바'?]

"로또만 100만 원어치 팔았다"

▲ 편의점(사진은 기사와 관계 없음) ⓒ flickr.com


주말을 낀 기나긴 설 명절 연휴에도 편의점 불빛은 꺼지지 않는다. 지난달 9일, 서울 시내 한 편의점에서 만난 김수연(22, 가명)씨는 정산에 한창이었다. "예전엔 오래 걸렸는데 이젠 가뿐해요." 수연씨는 자신을 '정산의 달인'이라고 칭했다. 날마다 이렇게 정산한 내용을 사진으로 찍어 사장에게 '인증'한다. 종종 장부에 구멍이 생기자 지난달부터 도입된 조치라고 한다. 

- 오늘 장사는 잘 됐나?
"로또만 100만 원어치 팔았다. 오늘은 그래도 손님 별로 없는 편이다. 평소에는 손님들이 뭉쳐서 '훅' 와서 정신이 하나도 없다."

- 편의점 알바는 언제부터 시작했나?
"석 달 정도 됐다. 주말에 주 2일로 오전 7시부터 오후 3시까지 일한다. 원래는 총 세 명의 알바가 돌아가며 일한다."

- 설 연휴인데 어떻게 알바를 하게 됐나?
"이번 연휴에 6일, 7일, 9일, 10일 이렇게 설 연휴 당일 빼고 모두 출근 중이다. 9, 10일은 '땜빵'이다. 최근에 알바를 빠진 적이 있어서 연휴에 출근해달라는 사장님 부탁을 안 들어줄 수 없었다."

중간 진열장 2개로 꽉 들어찬 좁은 매장이지만, 역 바로 맞은편에 있는 편의점으로 사람들은 끊임없이 밀려들어왔다. 십여 분 동안에만 20여 명의 손님이 왔다 갔다. 주로 복권이나 소주, 담배를 사는 손님들이다.

- 로또 사는 사람이 정말 많은 것 같다.
"일요일은 로또 바꾸러 오는 사람들만 많다. 근데 왜 이렇게 다들 당첨이 안 되는지… 내가 죄송하다고 하고 싶을 정도다. 정말 불쌍하다(안타까운 표정)."

- 연휴 말고 평소 주말에 알바를 할 때는 어떤가?
"자주 앉아있을 수 있긴 한데, 알바 하면서 책을 읽다가 걸린 이후로는 할 게 없어서 심심하다. 사장님한테 엄청나게 혼났다. 주로 SNS를 한다. 생산적인 걸 할 수가 없다."

- 책 읽는 건 어쩌다 걸린 건가?
"CCTV로 내가 책 읽고 있는 걸 보고서 오신 것 같다. 사장님 집이 근처라서 마음만 먹으면 쉽게 올 수 있다."

혹여 딴짓을 할까 불안한 사장님의 염려와는 달리 수연씨는 쉼 없이 움직였다. 정산표를 작성하고, 계산하고, 냉장고에 있는 음료를 보온기로 옮겨놓기도 하고, 단골손님들과 대화도 주고받았다. 손님들이 오가는 편의점 안을 구경하다 보니 한 시간이 훌쩍 지났다. 일일이 손님을 맞는 알바에게는 더 짧은 시간이리라.

"정시퇴근을 한 적이 없다"

한 시간여를 계속 서 있던 끝에 교대해줄 야간 알바 노동자 A가 왔다. 근무시간 시작도 전이지만, 그는 잔뜩 쌓인 쓰레기통을 비우고 냉장고 뒤쪽에서 음료를 능숙하게 채워 넣는다. "초콜릿이 왔구나!" 2월 14일 밸런타인데이를 앞두고 초콜릿 판매대를 설치해야 한다. "안 돼!" 수연씨가 절규한다. 결국, 수연씨는 내일도 출근해 초콜릿 매대 설치를 돕기로 했다. A의 배려 덕분에 일을 조금 일찍 마치고 인근 카페에서 인터뷰를 시작했다.

- 아까는 정말 바빠 보였다. 손님들이 그렇게 한 번에 쏟아져 들어올 땐 어떻게 하나?
"다 요령이 있다. 예를 들어 토토, 로또, 담배 계산이 한 번에 들어오면 우선 토토를 기계에 넣고, 토토가 나오는 시간 동안 로또를 넣고, 담배를 계산한다. 그럼 3가지를 할 수 있다. 재촉하는 분이 계시면 "잠시만요"라고 말을 한다. 일부러. '네가 너무 급했어'라는 내 소심한 반항이다. "잠시만요"라고 하면 손님들이 '내가 알바를 힘들게 했구나!' 이런 생각을 하지 않을까?(웃음)"

- 손님들이 재촉을 많이 하나 보다.
"가끔 밀릴 때면 그런 분들이 있다. 그래서 난 알바랑 싸우는 사람이 정말 싫다. 알바가 통제할 수 없는 상황이 있는 건데, 그걸 이해 못 하는 게 안타깝다. 내가 아는 분은 식당에 가서도 절대 알바를 재촉하지 않는다. 그런데 어느 날은 30분이 지나도 음식이 안 나오기에 조심스럽게 물어봤는데 주문이 안 들어가 있었다(웃음)."

- 알바비는 얼마나 받나?
"최저 시급이다. 야간수당, 주휴수당은 해당되지 않는다. 첫 달은 40만 원 정도 벌었는데, 지난달은 빠질 일이 생겨서 27만 원밖에 못 벌었다. 이번 달에 세뱃돈을 받아서 정말 다행이다."

- 밥은 언제 먹나?
"오전 7시부터 일을 하는데 대부분 아침은 못 먹고 나간다. 보통 빵을 싸가서 알바하면서 먹는다. 오전 11시에 '폐기'가 나오면 삼각김밥 같은 걸 먹기도 하는데, 개인적으로 지금 일하는 편의점 음식을 별로 안 좋아해서 배고파도 그냥 참는다. 폐기는 지**(다른 편의점 상표)가 제일 맛있는 것 같다."

- 아침 일찍부터 일하려면 피곤하지 않은가?
"늦게 자면 죽을 것 같다. (웃음) 아침에 일어나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심해서 새벽에 두세 번은 깬다. 그게 고통스럽다. 오전 1시 반에 잠든 날이 있었는데, 조금밖에 못 잔다고 생각하니 힘들었다."

- 그럼 퇴근은 제때 할 수 있는 건가?
"알바하면서 정시퇴근한 적이 없다. 20분씩 더 일한다. 사람들 빼먹은 음료를 냉장고에 다시 채워 넣어야 하는데, 시간이 오래 걸린다. 혼자서 일하는 도중에 냉장고 뒤로 들어가 버릴 수는 없지 않나. 근무시간이 끝나고 다음 알바가 오면 그때 들어가서 채운다. 손님이 계속 오는 데다가, 냉장고에 들어가 있는 동안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르기 때문에 자리를 비울 수는 없다. 정시에 가서 20분 늦게 퇴근한다. 그러려니 한다. 편의점이 집에서 가까워서 다행이다." 

성희롱부터 인생 상담까지, 편의점 '진상' 손님들

▲ 편의점(사진은 기사와 관계 없음) ⓒ flickr.com


- 아까 보니까 단골손님이 많은 것 같다.
"동네에 있는 편의점이다 보니 자주 오는 사람이 정해져 있다. 한 택시 기사님은 오전 7시에 늘 딱 맞춰 들르신다. 종종 천 원씩 팁을 주시곤 한다. 폐지 모으는 할아버지도 자주 오시는데, 편의점에서 모은 폐지를 가져가시고 늘 '라일락' 담배를 사 가신다. 라일락 담배는 어르신들이 자주 피우는 담배다. 가격은 4천 원 정도 한다. 그 할아버지가 폐지 다 파셔도 4천 원이 안 될 텐데… 빨리 끊으셨으면 좋겠다. 라일락 담배는 정부에서 가격을 올리면 안 됐다."

- 특히 기억에 남는 손님이 있나?
"사실 화나게 하는 단골도 많다. 계산 중인데도 끊임없이 말을 거는 분이 있다. 처음에는 '어디 산다, 학교는 어디 다니고, 나이가 몇 살이다' 등 웃으며 얘기를 나눴는데 점점 받아치기 힘든 말을 해서 곤란했다. 성희롱적인 말들. 예를 들어 가까이 다가와 '머리에서 좋은 냄새가 난다'고 한다든가, 인생에 대해 '이렇게 살아야 한다'며 간섭하는 말을 할 때 짜증 났다."

- 손님들 대하는 일이 쉽지 않을 것 같다.
"머리가 짧은 편인데, 대놓고 '네가 남자냐, 여자냐' 물어보는 분도 계시고. '총각, 담배 좀 줘!'라거나, 술 취한 분께는 '아줌마, 담배 줘요'라는 말까지 들어봤다."

- 내일도 편의점 일을 하게 되는 건가?
"내일은 연휴라서 다른 알바들이 다 쉬니까, 내가 안 나오면 A 혼자 일을 해야 한다. 내일 선약이 있었지만 좀 일찍 마치고, 출근해서 A를 도와줄 생각이다. 아마 내일 일을 하더라도 A가 야외 판매대를 맡고 나는 안쪽에 있게 될 것 같다. 추운데 좀 미안할 것 같다."

- 앞으로도 편의점 알바를 계속할 생각인가?
"당분간은 그럴 것 같다."

며칠 뒤 수연씨는 페이스북에 연휴 동안 했던 편의점 알바에 대한 글을 남겼다. "알바만 했던 연휴였던 것 같다"며 '연휴에 끝나서 정말 다행'이라는 소감으로 시작하는 글이다. 평소처럼 냉장고 정리를 하고, 편의점 물품 정리를 하다가 40분 늦은 퇴근을 하는 길. 수연씨는 "뒷타임 알바를 위한 '배려'"로 포장되는 편의점의 '교묘한' 체계에 대해 깨달았다. 이로써 수연씨의 연휴는 비로소 끝이 났다.

<페이스북 글 인용>
연휴가 끝나간다. 정말 다행이다. 알바밖에 안 한 연휴였던 것 같다. 정말 죽을 만큼 바빴다. 너무 많은 사람들이 와서 술 담배 복권을 사 갔다. 퇴근 10분 전에 도착한 물류를 정리하다가 시재를 맞추고, 복권을 팔다가 손님 물건을 계산해줬다.

편의점의 체계는 항상 교묘하다. 교육을 시킬 때 냉장고에 물류를 채워 넣는 것, 물품 정리를 깔끔하게 하는 것, 뒤처리를 하는 것, 청소하는 것들은 모두 업무의 일종이 아닌 "뒷타임 알바가 고생하지 않도록 하는 배려"로 포장된다. 실제로 일을 하다 보면 그게 맞는 것 같아 시간을 넘겨서 일하게 된다.

배달된 물류를 정리하고 냉장고를 정리하다가 40분 오버해서 퇴근을 하게 됐다. 그러나 그 돈은 못 받는다. 그건 내가 한 업무가 아니라 뒷타임 알바를 위한 "배려"에 불과한 것으로 취급받기 때문이다. 알바들은 자신보다 나이 어린 알바가 안타까워서, 아이 아버지인 알바가 고생하는 게 마음에 쓰여서, 야간에 잠도 못 자고 일하는 사람이 힘들까 봐 업무 시간을 오버해서 일한다. 알바들의 인간성을 자극해서 누구는 돈을 번다.

손님들은 새치기를 하고, 조금이라도 늦게 계산을 해주면 소리를 지른다. 그들이 사는 물품들은 언제나 담배나 술, 복권이다. 편의점 문에 "답은 로또뿐이다"라고 크게 걸려있는 것과 달리 복권이 당첨되는 경우는 몇 못 봤다. 편의점에서 희망을 사기엔 너무 현실이 버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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