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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활성화 법안 통과되면 정말 민생이 살아날까?

등록|2016.03.09 15:26 수정|2016.03.09 15:26
대통령이 어제(8일)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과 노동개혁 5대 법안 처리 지연에 안타까움을 호소했습니다. 서비스산업 관련 기업인과 전문가, 단체장 등 30여 명을 청와대로 초청해 간담회를 가진 자리에서 관련 법안이 국회에 막혀 있는 상황을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에 비유하며 답답함을 토로한 것입니다. 그는 이날 "요즘 날씨가 조금씩 풀리면서 봄이 오는 것을 느끼지만, 우리 경제는 아직 온기가 차오르지 않아 마음이 안타깝다"고 말했습니다.

이어 "더 많은 일자리를 만들 수 있는 서비스산업 활성화와 노동개혁이 여전히 기득권과 정쟁의 볼모로 잡혀 있다"며 "꼭 필요한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은 오늘까지 무려 1천531일째 국회에서 발이 묶여 있다"고 말해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과 노동개혁 5대 법안을 반대하고 있는 야당을 정조준하기도 했습니다.

대통령의 말이 맞다면 야당은 지금 심각한 직무유기를 하고 있는 셈입니다. 경제활성화를 위한 절호의 기회가 야당 때문에 사라질 위기에 빠져있기 때문입니다. 경제와 민생이 살아나려면 관련 법안의 통과가 절실합니다. 그렇게 본다면 대통령이 학수고대하고 있는 경제활성화 법안은 신묘하기 그지없는 만병통치약이자 어떤 소원이든 들어주는 지니의 램프가 틀림이 없습니다.

그런데 대통령의 주장대로 경제활성화 법안이 통과되기만 하면 경제와 민생이 정말 살아나는 것일까요? 수많은 일자리가 생겨나고 청년문제가 획기적으로 해결될 수 있는 것일까요? 그렇다면 왜 관련 법안의 이해당사자들인 노동계와 청년세대들이 반대하고 있는 것일까요? 시간이 갈수록 노동개혁에 반대하는 여론이 높아져만 가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대통령의 확신에도 불구하고 의문은 좀처럼 가시지가 않습니다.

대통령의 절박함과 간절함과는 별개로 의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이유는 아주 간단합니다. 대통령이 자신의 주장을 관철시키기 위해 관련 사실을 호도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대통령의 말이 사실이라면 경제활성화 법안으로 인해 대규모 일자리가 창출되고 다수 서민의 삶이 개선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내용을 들여다 보면 경제살리기 법안은 대통령의 말과는 다르게 민생과는 별 관련이 없는 것들이 대부분입니다.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과 노동개혁 5대 법안은 다수 서민이 아닌 대기업과 기득권을 위해 설계된 법안들입니다. 표면적으로는 경제와 민생을 앞세우고 있지만 실상은 쉬운 해고, 시간제 일자리와 비정규직 양산, 기간제 사용 연장, 근로자 임금 삭감, 통상임금 제외 수당 법제화, 일반해고 신설, 공공부문 영리화, 재벌 대기업의 경영권과 지배구조 강화 등 온통 반노동자, 반서민적인 내용들로 가득합니다. 이 법안들이 민생법안이라는 것은 기만에 불과합니다.

이같은 사실들은 모두 대통령의 주장과는 정면으로 부딪히는 내용들입니다. 그러나 대통령은 경제활성화 법안의 통과가 절실하다고 강변하고는 있지만 정작 관련 법안의 구체적인 내용에 대해서는 철저히 함구하고 있습니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지는 걸까요? 두가지 중의 하나일 겁니다. 대통령이 관련 법안의 내용을 잘 모르고 있거나, 아니면 거짓말을 하고 있거나.

더불어민주당의 추미애 의원이 지난 2015년 9월 22일 내놓은 '30대 재벌의 총수들 배당금과 사내보유금 및 실물실태' 자료에 따르면 삼성·현대자동차·SK·LG·롯데 등 재계 30대 재벌의 2014년 사내보유금이 무려 500조2000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2010년의 330조1000억 원에 비해 무려 170조1000억 원이 증가한 것입니다. 반면 대기업들이 시설투자와 연구개발 등에 투자한 금액은 2조원 남짓에 불과한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30대 재벌들이 보유한 천문학적인 사내보유금에 비하면 투자비용은 지극히 미미한 수준입니다. 

이 자료는 이명박·박근혜 보수정권의 경제 운용의 실체와 재벌 대기업의 경제 철학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잘 알다시피 이명박 정부 이후 현 집권세력은 낙수효과이론을 내세워 줄푸세로 대표되는 대기업 우선정책을 고수해왔습니다. 법인세를 감면해 주는 것은 물론이고 각종 세금혜택까지 몰아주면서 대기업을 활성화시키기 위해 전력했던 것입니다. 그 결과 대기업들은 극심한 경기침체에도 불구하고 막대한 이윤을 창출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기대했던 낙수효과는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글로벌 경제 위기를 강조하며 노동자의 희생과 동참을 요구했던 대기업들이 벌어들인 이윤을 일자리 창출과 경제활성화을 위한 실물투자에 사용하지 않고 사내보유금으로 묶어두었기 때문입니다. 이런 상황에서도 정부와 재계는 여전히 경제 위기를 거론하며 노동자의 고통분담을 끊임없이 요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세상은 부자에게 주고 가난한 자에게서 뺏는다는 독일 속담이 떠오르는 순간입니다.

평생을 호의호식하며 살아온 대통령이 저임금에 시달리는 노동자의 고통과 심정을 이해할 수는 없는 일입니다. 만약 대통령이 우리나라의 열악한 노동현실에 주의를 기울이고 있었다면 경제활성화 법안이 아니라 재벌개혁의 빗장을 여는 경제민주화에 목을 매고 있었겠죠. 그러나 고강도 저임금에 노출된 노동자의 삶을 전혀 알 바 없는 대통령은 줄푸세의 업그레이드 버전인 경제활성화 법안을 부적처럼 붙들고 있을 뿐입니다.

대통령은 이날 간담회에서 '안타깝다'는 표현을 4차례나 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그가 관련 법안의 통과를 얼마나 간절히 원하고 있는지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아마도 대통령은 경제활성화 법안을 경제와 민생을 살리기 위한 마법으로 인식하고 있는 것이 확실합니다. 그러나 대통령이 인식하는 경제와 민생의 개념이 우리가 알고 있는 것과는 달라도 너무나 다릅니다. 문제는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대한민국이 처해있는 비극의 대부분이 바로 이 지점에서 시작되기 때문입니다.

대통령과 노동자 사이의 괴리는 이처럼 수십억 광년은 족히 떨어져 있습니다. 대통령을 바라보는 노동자의 마음이 새까맣게 타들어가고 있는 이유입니다. 이를 어찌하면 좋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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