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로는 엄마도 혼자 있고 싶어
[육아칼럼] 밀당 없는 사랑 주는 아이들... 늘 찾아줘서 고마워
종일 쉴 새 없이 엄마를 찾는 아이들에게 지치다가도, 쉴 틈 없이 나를 부르는 소리에 다시 힘을 얻는다. 누군가 나를 필요로 한다는 것은 꽤나 무거운 책임감을 안게 하지만 꼭 그만큼의 행복도 주어진다. 그러나 몸도 마음도 무겁고 불편한 날은 다르다. 달콤한 행복보다 납덩이가 심장을 누르는 듯한 의무와 책임만이 가득 차 혼란에 빠지는 때가 부지기수인 것이다.
며칠간 몸이 좋지 않아 아이들 세 끼 겨우 해 먹이고, 간식 틈틈이 챙겨 주는 것 외엔 잘 놀아주지 못해 내심 불편한 날들이 지속됐다. 집안은 치우고 정돈하지 못해 난장판이 됐다. 이것은 도대체 마음의 문제인 건지 몸의 문제인 건지 분간이 가지 않을 정도로 몸과 마음이 병합돼 혹독하게 나를 괴롭혔다.
이전에도 느꼈지만 아이들은 엄마의 컨디션에 깊은 영향을 받는 듯 내가 한없이 침잠하면 아이들의 컨디션도 좋지가 않다. 천하장사로 다시 태어난 듯한 기분으로 매일 하루를 기운차게 시작하려 노력하지만, 그런 노력에 반하는 날들이 물론 있는 것이다. 배터리가 방전되듯 온몸과 정신에 기운이 빠져 잠시 내 전원을 끄고 있고 싶은 상태. 가끔 때때로 직장인들의 '월요병'과 비슷한 그 어떤 병을 엄마도 앓는다. 그런 날 있지 않은가 만사가 귀찮아지는 날. 그럼에도 일을 해야 하듯, 엄마도 움직여야 한다.
특히 힘든 몸을 웅크리고 있다가도 아이들의 "엄마!" 부르는 소리에 자동으로 몸을 일으켜 세워 팔 벌려 안아주는 일은 엄마가 된 후 생긴 자연스러운 습관이다. 꼭 그래야만 할 것 같은, 그리고 그렇게 안아주고 싶은 사랑스러운 생명체들을 바라보는 일은 지루하지 않다. 그러나 가끔, 아주 가끔 아이들과 온종일 부대끼며 지내는 게 버거워 아이들에게 이런 말을 한 적도 있다.
"엄마, 한 5분만 잠깐 방에 혼자 있고 싶은데 둘이 거실에서 조금만 놀고 있어."
"싫어. 엄마 옆에 있을래~."
"엄마가 그렇게 좋아?" 질문, 아이들의 답은...
장난감을 하나둘 손에 쥐고 엄마 곁으로 모이는 아이들. 엄마의 부탁은 전혀 신경 쓰지 않겠다는 의지를 풀풀 풍기며 모여든다. 보통 때처럼 애써 놀아주지 않아도 그저 엄마 곁이라는 사실에 안도하며 각자 또는 같이 노는 아이들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이 작은 아이들에게 나란 사람은 '있어주기만 해도 좋은 사람'이구나. 내가 어떤 사람이든 내가 엄마이기 때문에 이 아이들에게 꼭 필요한 존재이구나. 아이들이 있기에 무너지는 생활패턴을 이겨내야겠구나. 어떤 방법으로든 나를 충전하며 살아야 아이들을 돌보겠구나.
아빠랑 한참을 잘 놀다가도 깜깜한 밤이 돼 잠이 들 때엔 꼭 두 녀석 모두 엄마 품으로 파고든다. 어두운 밤을 무사히 잘 견뎌내기 위해 아이들은 엄마 가슴, 손, 팔, 얼굴 그 모든 언저리에 붙어 엄마가 있음을 확인하고 또 확인하다 잠이 든다. 자기 전, 양쪽 팔에 각기 매달려 온몸을 부벼대는 아이들에게 "그렇게 엄마가 좋아?"라고 가끔 묻는다.
내가 누군가에게 이렇게 사랑을 받아본 적이 있던가 싶을 정도로 아이들의 사랑은 절대적이다. 절대적인 사랑을 뿜어대는 이들은 사랑을 느끼고 표현하는 데에 두려움도 없고 망설임도 없다. 그런 사랑을 느끼며 행복해지지 않는 사람은 없을 것임이 분명하다. 행복에 도취돼 아이들에게 뽀뽀 세레를 퍼붓다 던진 질문에 아이들은 대답한다.
"엄마가 너무 좋아."
내 기억 속 엄마의 부재
우리 엄마가 가족들을 집에 두고 처음 여행을 떠났던 때의 기억이 이토록 생생한 건, 그 여행이 내게도 떨렸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토록 익숙한 집에 가장 편안한 존재인 엄마가 며칠 부재한다는 것은 낯선 떨림이었다.
엄마의 첫 여행 장소는 부산이었다. 정확한 시기는 기억나지 않지만 아마도 내가 초등학교 저학년 무렵이었던 것 같다. 아빠와 할머니가 계셨지만 엄마가 없는 집은 상상 그 이상으로 허전했었다. 그때는 휴대전화도 없었기에 엄마가 공중전화나 숙소전화로 집에 전화를 걸어줘야 여행 중인 엄마와 통화할 수 있었다. 엄마가 너무 보고 싶어서 "엄마, 언제 와?" 소리만 연신 해댔던 때의 나는 지금의 내 아이들과 같다.
학교 끝나고 집에 돌아왔을 때, 엄마가 계시지 않으면 온 집안을 돌아다니며 엄마를 부르며 찾다가 가까이 지내던 동네 아줌마 집에 전화까지 걸었던 내 모습이 그려진다. 온종일 같이 있다가도 내가 잠시라도 보이지 않으면 "엄마~ 어디 있어?"라고 외치며 발을 동동 구르며 날 찾아 뛰어다니는 아이들은, 기억하는 내 과거의 모습과 흡사하다.
엄마가 됐기 때문에 애타고 답답한 '밀당'이 존재하는 연애의 그 어떤 사랑과는 차원이 다른 절대적인 사랑을 받고 있는 중이다. 사랑의 유통기한을 걱정할 새 없이 들이대는 아이들의 사랑에 미안하고 고마운 감정이 교차한다. 턱없이 부족한 엄마라서 미안하고, 그럼에도 늘 찾아주니 고맙다. 아이들에겐 엄마만큼 좋은 게 없단다. 그렇다고들 한다.
며칠간 몸이 좋지 않아 아이들 세 끼 겨우 해 먹이고, 간식 틈틈이 챙겨 주는 것 외엔 잘 놀아주지 못해 내심 불편한 날들이 지속됐다. 집안은 치우고 정돈하지 못해 난장판이 됐다. 이것은 도대체 마음의 문제인 건지 몸의 문제인 건지 분간이 가지 않을 정도로 몸과 마음이 병합돼 혹독하게 나를 괴롭혔다.
이전에도 느꼈지만 아이들은 엄마의 컨디션에 깊은 영향을 받는 듯 내가 한없이 침잠하면 아이들의 컨디션도 좋지가 않다. 천하장사로 다시 태어난 듯한 기분으로 매일 하루를 기운차게 시작하려 노력하지만, 그런 노력에 반하는 날들이 물론 있는 것이다. 배터리가 방전되듯 온몸과 정신에 기운이 빠져 잠시 내 전원을 끄고 있고 싶은 상태. 가끔 때때로 직장인들의 '월요병'과 비슷한 그 어떤 병을 엄마도 앓는다. 그런 날 있지 않은가 만사가 귀찮아지는 날. 그럼에도 일을 해야 하듯, 엄마도 움직여야 한다.
특히 힘든 몸을 웅크리고 있다가도 아이들의 "엄마!" 부르는 소리에 자동으로 몸을 일으켜 세워 팔 벌려 안아주는 일은 엄마가 된 후 생긴 자연스러운 습관이다. 꼭 그래야만 할 것 같은, 그리고 그렇게 안아주고 싶은 사랑스러운 생명체들을 바라보는 일은 지루하지 않다. 그러나 가끔, 아주 가끔 아이들과 온종일 부대끼며 지내는 게 버거워 아이들에게 이런 말을 한 적도 있다.
"엄마, 한 5분만 잠깐 방에 혼자 있고 싶은데 둘이 거실에서 조금만 놀고 있어."
"싫어. 엄마 옆에 있을래~."
"엄마가 그렇게 좋아?" 질문, 아이들의 답은...
▲ 엄마품을 쫒는 병아리들, 아이들 ⓒ 권순지
장난감을 하나둘 손에 쥐고 엄마 곁으로 모이는 아이들. 엄마의 부탁은 전혀 신경 쓰지 않겠다는 의지를 풀풀 풍기며 모여든다. 보통 때처럼 애써 놀아주지 않아도 그저 엄마 곁이라는 사실에 안도하며 각자 또는 같이 노는 아이들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이 작은 아이들에게 나란 사람은 '있어주기만 해도 좋은 사람'이구나. 내가 어떤 사람이든 내가 엄마이기 때문에 이 아이들에게 꼭 필요한 존재이구나. 아이들이 있기에 무너지는 생활패턴을 이겨내야겠구나. 어떤 방법으로든 나를 충전하며 살아야 아이들을 돌보겠구나.
아빠랑 한참을 잘 놀다가도 깜깜한 밤이 돼 잠이 들 때엔 꼭 두 녀석 모두 엄마 품으로 파고든다. 어두운 밤을 무사히 잘 견뎌내기 위해 아이들은 엄마 가슴, 손, 팔, 얼굴 그 모든 언저리에 붙어 엄마가 있음을 확인하고 또 확인하다 잠이 든다. 자기 전, 양쪽 팔에 각기 매달려 온몸을 부벼대는 아이들에게 "그렇게 엄마가 좋아?"라고 가끔 묻는다.
내가 누군가에게 이렇게 사랑을 받아본 적이 있던가 싶을 정도로 아이들의 사랑은 절대적이다. 절대적인 사랑을 뿜어대는 이들은 사랑을 느끼고 표현하는 데에 두려움도 없고 망설임도 없다. 그런 사랑을 느끼며 행복해지지 않는 사람은 없을 것임이 분명하다. 행복에 도취돼 아이들에게 뽀뽀 세레를 퍼붓다 던진 질문에 아이들은 대답한다.
"엄마가 너무 좋아."
내 기억 속 엄마의 부재
우리 엄마가 가족들을 집에 두고 처음 여행을 떠났던 때의 기억이 이토록 생생한 건, 그 여행이 내게도 떨렸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토록 익숙한 집에 가장 편안한 존재인 엄마가 며칠 부재한다는 것은 낯선 떨림이었다.
엄마의 첫 여행 장소는 부산이었다. 정확한 시기는 기억나지 않지만 아마도 내가 초등학교 저학년 무렵이었던 것 같다. 아빠와 할머니가 계셨지만 엄마가 없는 집은 상상 그 이상으로 허전했었다. 그때는 휴대전화도 없었기에 엄마가 공중전화나 숙소전화로 집에 전화를 걸어줘야 여행 중인 엄마와 통화할 수 있었다. 엄마가 너무 보고 싶어서 "엄마, 언제 와?" 소리만 연신 해댔던 때의 나는 지금의 내 아이들과 같다.
학교 끝나고 집에 돌아왔을 때, 엄마가 계시지 않으면 온 집안을 돌아다니며 엄마를 부르며 찾다가 가까이 지내던 동네 아줌마 집에 전화까지 걸었던 내 모습이 그려진다. 온종일 같이 있다가도 내가 잠시라도 보이지 않으면 "엄마~ 어디 있어?"라고 외치며 발을 동동 구르며 날 찾아 뛰어다니는 아이들은, 기억하는 내 과거의 모습과 흡사하다.
엄마가 됐기 때문에 애타고 답답한 '밀당'이 존재하는 연애의 그 어떤 사랑과는 차원이 다른 절대적인 사랑을 받고 있는 중이다. 사랑의 유통기한을 걱정할 새 없이 들이대는 아이들의 사랑에 미안하고 고마운 감정이 교차한다. 턱없이 부족한 엄마라서 미안하고, 그럼에도 늘 찾아주니 고맙다. 아이들에겐 엄마만큼 좋은 게 없단다. 그렇다고들 한다.
덧붙이는 글
개인블로그 http://blog.naver.com/rnjstnswl3 중복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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