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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당 구조로 어려운 선거 될 듯, 진정성으로 승부"

[인터뷰①] 정희시 군포 경기도의원 더불어민주당 후보

등록|2016.03.14 09:49 수정|2016.03.14 10:49

▲ 정희시 군포 경기도의원 더불어민주당 후보 ⓒ 유혜준


19대 총선에 이어 20대 총선에서도 <군포제1선거구>는 국회의원 선거와 경기도의원 재·보궐선거를 같이 실시한다. 19대 총선은 최경신 경기도의원이, 20대 총선에서는 김도헌 의원이 총선 출마를 위해 의원직을 사퇴했기 때문이다. 참고로 밝히자면 최경신, 김도헌 의원은 공천을 받지 못했다.

현재 <군포제1선거구>는 이길호 새누리당 후보, 정희시 더불어민주당 후보, 김용철 국민의당 후보가 출마,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군포는 야당세가 강한 지역으로 꼽히지만 국회의원 선거와 경기도의원 재·보궐선거에 국민의당 후보가 출마해 3파전이 될 것으로 예상되면서 여당인 새누리당 후보의 당선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전망이 우세하다.

이번 경기도의원 재·보궐선거에 출마한 정희시 더불어민주당 후보는 3당 구조로 가면 쉽지 않을 것으로 전망하면서도 겸손한 마음과 진정성을 갖고 선거를 치러 승리를 이끌어내겠다는 입장이다.

지난 11일 오전, 정 후보를 선거사무실에서 만났다. 정 후보는 연세대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했지만 정치와 거리를 두고 살아왔다. 형인 정상시 목사가 민주화 운동과 활발한 사회참여로 거듭 옥고를 치르자, 가족은 그가 정치와 거리를 두고 평범한 소시민으로 살아가기를 원했기 때문이다. 정 후보는 "두 사람이 감옥에 가는 일이 없기를 바라는 가족의 결정을 받아들였다"고 설명한다.

20여 년 전에 군포로 이사한 정 후보는 아내 심은주씨의 시민단체 활동을 적극적으로 지원하면서 시민사회활동에 직·간접적으로 참여해 왔으며, 군포환경자치시민회 공동대표로 활동하기도 했다.

정 후보는 선거 출마에 대해 "2008년, 엔론 사태로 빚어진 경제위기를 겪으면서 그것이 개인의 문제가 아닌 사회와 국가의 문제로 인식, 정치 참여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굳혔다"며 "더 늦기 전에 정치 참여해야 할 것 같아 경기도의원 재·보궐선거에 도전하게 됐다"고 말했다.

특히 정 후보는 시민단체 활동 경험을 바탕으로 "시민과 정치의 영역을 연결하는 역할을 하는 게 도리라는 생각을 했다"며 지역이 필요로 하는 지역정치인이 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다음은 정 후보와 한 인터뷰를 정리한 내용이다.

▲ 정희시 군포 경기도의원 더불어민주당 후보 ⓒ 유혜준


- 아침에 몇 시에 일어나나?
"오전 5시 50분경에 일어나지만 실제로 명함을 돌리러 역에는 7시 반경에 나간다. 일찍 나가 봤는데 사람들의 표정이 너무 여유가 없어 보여 미안한 생각이 들어 시간을 늦췄다. 7시 반 정도 되니 사람들의 얼굴 표정이 달라졌다."

- 이전에 후보들이 명함을 나눠주는 것을 보는 것과 출마해 직접 하는 것의 차이가 있다면?
"그 때는 정책 등을 통해 후보를 알리면 되지 왜 저렇게까지 하나 했는데, 해보니 나를 알리는 게 절박했다. 명함에 나를 다 담을 수 없지만 명함을 주면서 나를 조금이라도 더 알리려는 절박함을 갖게 된다."

- 하루에 몇 장정도 명함을 돌리나?
"세보지 않았지만 대략 200장정도?"

- 유권자들의 반응은 어떤가?
"확실히 청년들의 반응이 좋다. 중장년층은 자기 철학이 정해져 있어 편견을 갖고 있는 분들도 있었다."

- 초짜 정치인으로 냉담한 반응을 보이는 유권자들을 보면 상처를 받을 것 같은데?
"정치를 하면서 좋은 소리만 들을 수는 없다. 정치선배들이 만들어놓은 정치 지형에 대해서는 당연히 평가를 받아야한다고 생각한다. 정치는 통합이다. 반대하는 사람들도 통합하려고 노력하겠다."

- 연세대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했다. 선택한 이유는?
"전두환 정권이 들어선 81년에 대학에 갔다. 형(정상시 목사)이 광주 5.18 때문에 옥살이를 하고 있는 상황에서 정치가 세상을 변화시키는 중요한 요소라는 생각을 갖고 선택했다."

- 정외과를 졸업했지만 정치에 입문하지 않았는데?
"제가 기본적으로 세간에서 말하는 정치인 기질이 없다. 앞에 나서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든지 언변이 좋다든지 하는 기질이 없고, 집안에서 반대했다. 두 사람(정희시 후보와 정상시 목사)이 같이 감옥에 가는 일이 없기를 바랐기 때문이다. 조용히 대학생활을 하고 평범한 소시민으로 살기를 원해 생각을 접었다."

정상시 목사는 한신대를 졸업, 목회활동과 함께 민주화운동을 하면서 박정희 정권 때와 전두환 정권 때 두 차례 옥고를 치렀다. 그 때문에 가족은 정 후보가 정 목사와 같은 길을 걷기를 바라지 않았고, 정 후보는 그런 가족의 요청을 받아들였다는 것이다.

정 후보의 고향은 경남 합천. 그가 9살 되던 해에 세상을 떠난 아버지는 정의감이 강하고 야당기질이 있는 분이었다고 정 후보는 기억한다. 그는 그런 아버지와 형들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털어놓았다.

▲ 정희시 군포 경기도의원 더불어민주당 후보 ⓒ 유혜준


- 50이 넘은 나이에 늦깎이로 정치에 도전했다. 어떤 계기로 현실정치에 참여할 결심을 했나?
"아픔을 겪었기 때문이다. 아픔을 아는 사람이 남의 아픔을 안다. 2007년부터 개인 사업을 시작했다. 그 전에는 좋은 직장에서 높은 연봉을 받으면서 남부럽지 않게 살았다. 외국계 회사에서 열정을 다해 일하면서 회사를 키웠고, 10년이 되던 해에 회사를 그만두고 창업을 했다.

그런데 2008년에 엔론 사태로 빚어진 미국 경제위기가 오면서 바로 직격탄을 맞게 됐다. 중국과 비즈니스를 시작했는데 첫 해는 엄청나게 잘 됐다. 하지만 700원 대 환율이 1400원 대가 되면서 환차손이 생겼다. 그걸 회복하는데 몇 년이나 걸렸다.

과거에는 어렵게 사는 사람들을 보면서 열심히 일하지 않는구나, 능력이 없구나 하는 생각을 해왔는데 직접 어려움을 겪어보니 이것이 개인의 문제가 아닐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이게 나만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와 국가의 문제라는 생각을 하면서 숨어있던 정치의 모세혈관이 되살아나는 것을 느꼈다. 그러면서 정치를 통해 공공의 이익이나 선을 추구해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됐다."

그렇다고 정 후보가 곧바로 정치에 뛰어든 것은 아니었다. 언젠가는 정치를 하겠다는 생각을 굳히고 그 기반을 마련하기 위해 사업 성공을 위해 전력 질주했다고 한다.

"사업을 계속 하겠지만 거기에만 집중하면 나중에 후회할 것 같았다. 적당한 기회가 왔다고 생각하고 출마를 결심했다."

☞ [정희시 후보 인터뷰②] 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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