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시민은 기자다

공항이 들어섰을 뿐인데 벌어진 살인 사건

[리뷰] 가노 료이치 <창백한 잠>

등록|2016.03.16 16:09 수정|2016.03.16 16:12

<창백한 잠>겉표지 ⓒ 황금가지

작은 도시 또는 마을에서 거대한 토목공사가 시작된다면 어떨까. 지역의 주민들은 분명히 찬성파와 반대파로 나뉘어서 언쟁을 시작할 것이다.

찬성하는 쪽은 지역개발의 논리를 내세운다. 공사가 시작되고 완성되면 이곳을 찾아오는 사람들도 많아지고 그러면 상권과 경제가 활성화 된다. 공사 과정에서는 지역주민들을 고용해서 실업난과 고용문제도 어느 정도 해결할 수 있다.

반대하는 쪽은 환경의 문제를 들고 나온다. 대형 공사가 시작되는 곳은 이전에 숲이나 논, 밭이었을 가능성이 많다. 그곳을 전부 밀어버리고 공사를 진행하면 당연히 자연과 환경파괴로 인한 반발이 나올 것이다.

공사 때문에 생기는 소음도 무시하지 못한다. 항상 먼지 풀풀 날리는 공사현장을 보는 것도 좋지는 않을 것이다. 한마디로 이런 공사가 시작되면 한 지역의 모습이 완전히 바뀌게 된다. 좋은 쪽으로 든 나쁜 쪽으로 든.

작은 도시에 생기는 대형 건설공사

동시에 다른 문제도 생긴다. 공사가 시작되는 지역의 토지 소유주가 땅을 매각하지 않겠다고 버티는 경우도 있을 수 있다. 아무리 많은 돈을 주어도 땅을 팔지 않겠다고 하면 공사를 진행하는 업체 측은 난감해질 것이다.

이럴 경우 어떤 상황이 생길까. 업체 측은 나름의 방식대로 토지 소유주를 설득 또는 압박할 것이고, 지역 주민들은 찬반 양론파 대로 그에게 다가갈 것이다. 팔아라, 팔지 말아라, 니가 알아서 해라 등.

토지 소유주도 난감할 것이다. 일반 시세보다 비싼 값으로 땅을 팔고 다른 곳으로 떠날지. 아니면 자신이 살던 고향에서 끝까지 버틸지 고민된다. 일본 작가 가노 료이치의 2012년 작품 <창백한 잠>에서는 작은 도시에서 벌어지는 대형 공사를 소재로 하고 있다.

작품의 무대는 바닷가에 면한 작은 도시 다카하마. 어업에 의존하며 살아왔던 이곳에 공항이 들어선다고 한다. 그렇게 되면 많은 것들이 바뀔 것이다. 사진집을 준비하고 있는 주인공 카메라맨 다쓰미 쇼이치는 폐허가 된 다카하마 호텔을 촬영하러 갔다가 그곳에서 한 여성의 시체를 발견한다.

시신의 신원은 한 저널리스트로 그동안 공항건설계획에 대해서 적극적으로 반대해 왔던 인물이다. 그러니 이 사건 또는 사고는 공항건설과 어떤 식으로든 연결되어 있을 가능성이 있다. 호기심을 느낀 다쓰미 쇼이치는 사진작업을 하면서 동시에 이 사건에 뛰어들어서 진상을 알아내려고 한다.

살인사건을 추적하는 카메라맨

작가 가노 료이치는 환경이나 자연관련 문제에 관심을 많이 갖고 있는 것 같다. 이전 작품인 <환상의 여자>에서도 환경을 파괴하는 건설회사의 비리를 추적하는 인물을 주인공으로 하고 있었다.

<창백한 잠>에서도 마찬가지다. 작은 도시에 공항이 들어서고 그에 따른 여러 도로들이 만들어지면 생태계가 파괴되고 야생동물들도 사라져간다. 작품 속에서 공항건설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내세우는 것도 이런 이유가 크다.

개발과 자연파괴, 누가 이용할지 알 수 없는 공항과 도로, 거기에 들어가는 막대한 정부 보조금 등. <창백한 잠>에서는 이런 내용들을 모두 뒤섞고 있다. 작품을 읽다보면 살인사건보다는 대형 건설과 그에 따른 부작용에 더욱 관심을 갖게 된다.
덧붙이는 글 <창백한 잠> 가노 료이치 지음 / 엄정윤 옮김. 황금가지 펴냄.
원문 기사 보기

주요기사

오마이뉴스를 다양한 채널로 만나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