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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하고인>의 지아장커, 변화인가 변심인가

[리뷰] 리얼리티는 줄이고 상상력 더해... 극단적으로 갈리는 평론가들

등록|2016.03.16 16:50 수정|2016.03.16 16:50

▲ 지아장커 영화 <산하고인> 한 장면 ⓒ 에스와이코마드


지난해 열린 제68회 칸영화제 경쟁부문에 공개된 지아장커의 <산하고인>은 세가지 이야기로 구성된다. 타오(자오 타오 분)을 놓고 진셩(장역 분)과 리앙즈(양경동 분)의 삼각관계로 포문을 연 영화는 이어 2014년 그들의 이야기, 그리고 2025년 머나먼 호주에서 엄마 타오를 그리워하는 아들 달러(동자건 분)의 이야기로 끝을 맺는다.

<스틸라이프>(2006)으로 제63회 베니스 영화제에서 황금사자상을 수상하고 2013년 <천주정>으로 제66회 칸영화제에서 각본상을 수상한 지아장커의 새로운 영화, 그리고 칸영화제 경쟁부문에 초청된 작품인 만큼, <산하고인>은 국내 개봉 전부터 영화팬들 사이에서 화제일 수밖에 없었다. <산하고인>을 국내 처음으로 상영한 부산국제영화제는 허우 샤오시엔의 <자객 섭은낭>, 고레에다 히로카즈 <바닷마을 다이어리> 등과 함께 <산하고인>을 동시대 거장감독들의 신작을 소개하는 '갈라 프레젠테이션'에 초청하여, 지아장커 신작에 대한 기대감을 높이기도 했다.

하지만 부산국제영화제에 이어 지난 10일 국내 정식 개봉한 <산하고인>은 지아장커 신작에 칸영화제 경쟁부문 초청이라는 타이틀에도 불구, 영화에 대한 반응은 미지근하기 짝이 없다. 2014년 국내에 개봉해 최종 6229명 관객수(영화진흥위원회 영화관입장권통합전산망 기준)를 기록한 <천주정>이 그랬듯이, 원래 지아장커 영화가 특정 영화팬들만 찾는 작품이라고 해도, 지난 14일까지 총 881명 관객을 동원한 이 영화의 성적표는 초라하기 그지없다.

극단적으로 갈리는 평론가들

그래도 평론가들과 영화 기자들의 극찬 세례가 이어졌던 <스틸라이프>, <24시티>(2008), <천주정>과 달리 <산하고인>에게 내리는 전문가들의 반응은 '냉정'이다. 특히 <24시티>에 '저개발의 기억, 근대화의 영광과 상처, 초현대의 열망을 관통하는 위대한 카메라(별 9점)', '당신도 잘한 건 없지 않냐고, 영화는 묻는다(<천주정>, 별 8점)' 등 지아장커 전작들에 후한 평가를 아끼지 않았던 이용철 평론가의 평이 가장 눈에 띈다. '영화는 저열한 야심을 위한 도구가 아니다.' 그리고 이와 함께 별 2점을 부여한다.

<스틸라이프>, <24시티>, <상해전기>(2010), <천주정> 등에 그의 기준으로 다소 후하다는 별 7~8점을 부여한 박평식 평론가도 '미래는 선무당 수준(별 6점)'이라는 다소 박한 평가를 내린다. '서쪽으로 미래로. 중국의 어지러운 고속 장정에 동승한 지아장커(별 7점)'을 매긴 <씨네21> 김혜리 기자의 평은 그나마 후한 축이다.

이와 반대로 영화 <카페 느와르>, <천당의 밤과 안개>를 만들기도 했던 정성일 평론가는 <산하고인>을 두고 "올해 볼 가장 중요한 작품 중 하나 될 것"이라는 극찬과 함께 추천 영상을 남기기도 했다. "지아장커 감독이 새로운 경지에 올랐다"는 호평까지 아끼지 않는다.

이처럼 국내 저명한 영화 평론가들 사이에서도 극단적으로 반응이 엇갈리는 <산하고인>은 그들 각각이 느끼는 온도차만큼 오랫동안 지아장커의 작품을 보아왔던 영화팬들에게도 상당히 이질적으로 다가온다. 우선 <산하고인>은 <스틸라이프>, <천주정> 특유의 리얼리티 대신, 픽션의 요소를 대폭 강화한다. 영화의 첫 번째 에피소드에서 등장하는 타오, 진셩, 리앙즈는 지아장커의 초기작 <소무>(1997), <플랫폼>(2000), <세계>(2004)에도 등장했던 지아장커의 젊은 시절을 상징한다. 우혜경 평론가가 <산하고인>을 두고 '<소무>-<스틸 라이프>-<세계>의 종합증보판'으로 보는 것은 이와 같은 이유다. 1999년 산업화가 급속도로 이뤄지던 중국 펜양에서 타오는 가난한 광부 리앙즈 대신 돈많은 사업가 진셩을 택한다. 그리고 미국을 동경해오던 진셩은 타오와의 사이에서 낳은 아들을 '달러'로 이름 짓는다.

그리고 15년 뒤, 진셩과 이혼한 후 펜양에서 아버지를 모시고 홀로 살아가던 타오는 아버지의 갑작스러운 죽음을 접하고, 상하이에서 국제학교를 다니고 있던 아들 달러가 펜양에 온다. 철저히 서구식 교육을 받고있는 달러는 중국어가 서툴고, 타오는 그런 아들이 답답하기만 하다. 그 사이 타오와 헤어진 후 여기저기 떠돌다가 진폐증을 얻은 리앙즈가 쓸쓸히 고향 펜양으로 돌아온다.

문제의 세 번째 에피소드

▲ 지아장커 영화 <산하고인> 한 장면 ⓒ 에스와이코마드


여기까지는 지아장커가 영화를 통해 줄곧 이야기 해오던 중국의 현실이다. 그런데 세 번째 에피소드, 즉 2025년으로 시대적 배경이 넘어가는 순간, 영화는 전혀 예상치 못했던 새로운 국면을 맞는다. 아버지 진셩을 따라 호주로 이민 간 달러는 중국을 그리워하면서도 정작 중국어를 하지 못하는 극심한 정체성 혼란을 겪게 된다. 그런 달러에게 가장 의지가 되는 사람은 친엄마 타오보다 한참 나이가 많은 중국어 선생 미아(장애가 분)다. 그토록 아메리카를 울부짖었고 결국 호주 이민에 성공한 진셩은 정작 영어를 못하니 아들과 원활한 커뮤니케이션도 안되고 외국 생활도 잘 적응하지 못하는 국제미아로 남게된다.

다소 황당하게 다가오는 2025년 에피소드가 그래도 설득력있게 다가오는 것은 나날이 증가하고 있는 중국인들의 이민 소식 때문이다. 평균 자산 160만 달러 이상인 중국 상류층 가운데 64%가 해외로 이미 이주했거나 이주 계획을 세우고 있다는 2014년 후룬 연구소의 조사결과는 더 이상 중국 내에서 새삼스러운 일도 아니다. 지아장커가 구태여 2025년 호주로 이민 간 부자의 미래를 넣은 것에서, 어쩌면 이 이야기가 지아장커가 <산하고인>을 통해 진짜 하고 싶은 메시지가 담겨있다는 의도로 해석되기도 한다.

자꾸만 중국을 떠나는 부유층과 떠날 기회만 엿보고 있는 사람들. 그들을 통해 지아장커가 동시대 중국에 하고 싶은 이야기는 무엇일까? 산업화 과정에서 소외된 사람들, 극심한 빈부격차로 인해 벌어진 내홍 등을 심도 있게 다루던 전작들과는 달리, <산하고인>은 중국 현실에 대한 날센 비판도 없고, 왜 중국의 부자들이 연이어 중국을 떠나려고 하는지에 관한 이유를 명확히 보여주지도 않는다. 진폐증 걸린 옛 친구를 안쓰럽게 바라보는 타오의 애처로운 눈빛, 중국에 있는 엄마를 그리워하는 달러의 반항, 지난날을 그리워하며 'GO WEST'에 맞춰 춤추는 타오의 모습 등 감성적인 면모를 드러낸다. 그래서 <산하고인>은 지아장커의 그 어떤 영화보다도 한층 세련되고 부드러운 완성도를 선보인다.

중국 내 상영금지 <천주정>, 흥행대박 <산하고인>

▲ 영화 <산하고인> 포스터 ⓒ 에스와이코마드


하지만 중국 내 개봉 금지 처분을 각오하고, 현대 중국을 향한 강도 높은 리얼리티를 구사한 지아장커의 세계를 사랑했던 수많은 이들에게 말랑말랑해진 <산하고인>은 지아장커의 변심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까지 자아내게 한다. 특히 중국을 떠나고 나서야 중국을 그리워하는 진셩과 달러, 그리고 여전히 펜양에 남아 마치 그들의 귀환을 기원하는 듯한(?) 타오의 독무는 "산이 사라지고 강이 말라도 너에 대한 내 사랑은 절대 변하지 않는다"는 포스터 카피와 함께 아무리 조국이 싫다고 뛰쳐나가도 결국은 다시 고향을 그리워하고 돌아오게 되어있다는 의도로 해석될 여지가 높아보인다.

어찌되었던 중국에 대한 강도 높은 비판 대신 2025년 미래까지 끌어모아 중국 부자들의 연이은 외국행을 다룬 <산하고인>은 여전히 중국에서 상영 금지 조치를 받은 <천주정>과 달리 중국 개봉에 성공하였고, '예술영화 거장의 상업적 반란'이라는 극찬과 함께 3200만 위안 (한화 약 60억 원)이 넘는 흥행 수익을 거두기도 했다. 아무리 <천주정>이 칸영화제에서 각본상을 받고 해외 유수 영화제에 연이어 초청되었다고 한들 중국 내에서는 개봉을 할 수 없었던 전례를 생각할 때, <산하고인>은 중국에서 계속 영화를 찍어야하고 자국 내 관객들에게 공식적인 루트로 자신의 영화를 보여주고픈 감독이 취한 새로운 선택이었다.

이와 같은 지아장커의 변화를 두고 그 역시 장예모처럼 중국 당국에 협조적인 자세를 취하는 것이 아니냐는 불안의 눈초리를 보낼 법도 하지만, 그래도 여전히 중국의 현실을 카메라로 담고자하고, 리얼리티를 부각시키는 대신 극적인 요소를 살리는 방식으로 중국사회의 모습을 보여주고자 하는 지아장커의 본심은 변하지 않아 보인다. 다만 국가 승인을 받은 영화만 정식으로 상영될 수 있는 나라에서 계속 영화를 찍기 위한 새로운 방식을 택했을 뿐이다. 그래서 예술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가치인 표현의 자유가 위협받는 요즘, 중국 내 상영을 위해 변할 수밖에 없었던 <산하고인>의 엔딩이 더욱 구슬프게 다가오는지 모르겠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권진경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neodol.tistory.com), 미디어스에 게재되었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게재를 허용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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