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시민은 기자다

광주 유림 다 모였다, 세상서 유일한 '석전제례'

광주향교 600년 전통의 봄제사 현장

등록|2016.03.17 10:52 수정|2016.03.17 10:52

▲ 제사를 모시기 전에 각각의 제수물품을 목록에 따라 확인하고 있다. ⓒ 임무택


고려 말 정몽주가 유학을 부흥시키고자 전국에 향교를 세우도록 했다. 지금 모습의 향교는 조선 건국(1392년) 이후 숭유억불 정책의 일환으로 전국에 향교가 확대되면서 부흥기를 맞았으며, 현재는 전국적으로 234개 향교가 있다. 광주 향교는 1398년에 세워졌다.

▲ 제수를 목록에서 확인 후 초헌관에게 다시 확인시키는 절차 ⓒ 임무택


향교는 천민을 제외한 농민이나 양반 자제 모두 입학이 가능했으며 학생은 교생이라고 불렸다. 원칙적으로 기숙사에서 숙식을 하며 엄격한 학칙을 통해 학업에 매진했다. 교생은 군역(16살부터 60살까지 평민 남자는 군대에 갔다)이 면제되고 과거 1차 시험을 합격할 경우 성균관(유일한 국립대학)에 입학할 수 있었다.

▲ 제수 확인절차가 끝나고 대성전으로 이동하기 위한 절차 ⓒ 임무택


그러나 시간이 지남에 따라 이런 특권을 악용해 기부금 입학생이 부쩍 늘어나고 돈을 주고 학생의 신분을 사서 군역을 면제받는 일, 유급을 여러 번 당했지만 퇴학 조치를 당하지 않기 위해 시험관을 매수해 시험을 면제받는 등 폐단이 늘어나면서 원래 향교의 교육기능을 잃게 된다.

▲ 전체 제수물이 대성전으로 들어서고 있는 모습 ⓒ 임무택


향교가 교육의 기능을 상실한 후 초기에는 당대 유명한 학자들이나 지방의 양반들이 서원을 세워 과거 합격자를 교생으로 받아들여 교육과 제사를 올림으로써 본격적인 서원의 시대를 맞게 된다. 즉 최고의 엘리트 집단이 서원에서 공부하게 됐으며 엄격한 학칙과 학업분위기 등으로 인해 향교에서 미처 하지 못했던 참교육의 기능을 회복하게 된다.

▲ 대성전 안에 진설된 제수품 ⓒ 임무택


향교에 있어서 빼놓을 수 없는 한 가지는 바로 제사다. 비록 조선 중기 이후 향교가 교육의 기능을 상실해 서원에 그 역할을 넘겨주기는 했지만 향교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기능의 하나인 제향의 역할은 21세기인 지금까지도 계승 발전해 오면서 지구상에서 유일하게 우리나라에서만 드리는 유교 제사로 문화적 가치가 높다. 이는 중요무형문화제 제85호로 지정돼 있다.

▲ 초헌관 최영일씨께서 제사를 모시기 위해 손을 씻는 모습 ⓒ 임무택


석전이란 원래 산천이나 사당 그리고 학교에서 조상을 추모하기 위해 드리던 제사의식을 말한다. 석전대제는 매년 봄, 가을 음력 2월과 8월 상정일에 성균관을 위시한 전국 234개의 향교에서 일제히 경건하게 드리고 있으며 광주향교에서는 3월 16일(음력 2월 8일) 광주의 모든 유림들이 참석한 가운데 성대하게 거행됐다.

▲ 제사상에 술잔을 올리는 모습 ⓒ 임무택


석전의 의식절차는 홀기(笏記)에 의해 진행되며 <국조오례의>(國朝五禮儀)의 규격을 그 원형으로 하고 있다. 봉행절차는 초헌관이 폐백을 올리는 전폐례에 이어 초헌관이 신위전에 첫 술잔을 올리고 대축이 축문을 읽는 초헌례, 두 번째 술잔을 올리는 의식인 아헌례, 세 번째 술잔을 올리는 종헌례, 초헌관이 음복위에서 음복 잔을 마시고 수조하는 의식인 음복수조례, 대축이 변과 두를 거두는 의식인 철변두, 초헌관이 망요위에서 축문과 폐백을 태우는 것을 보는 의식인 망료례 등으로 진행된다.

▲ 초헌례를 마치고 초헌관이 지켜보는 가운데 대축 기원달씨가 축문을 독축하고 있는 모습 ⓒ 임무택


향교는 기본적으로 제사를 드리는 공간인 대성전과 동·서무, 교육을 위한 공간인 명륜당과 동·서재로 나뉘어져 있으며 이 두 공간의 사이에는 내삼문이라는 출입문이 있어 벽으로 공간을 구분하였다.

지붕 모양에 있어서는 크게 두 가지로 나뉘는데 가장 일반적인 형태로 지붕과 지붕이 서로 책을 펼쳐서 엎어놓은 듯한 모양을 하는 맞배지붕 형태와 위에서 내려다 볼 때 여덟 팔 자 모양을 한다는 팔작지붕 형태가 있으며 광주향교의 경우 대성전과 동·서무, 명륜당과 동·서재는 맞배지붕 형태이며, 문회재와 양사재 건물은 팔작지붕 형태를 하고 있다.

▲ 제사가 진행대는 중에 서립해 있는 제관 및 유생들 ⓒ 임무택


광주향교는 광주광역시 유형문화재 제9호로 지정돼 있으며, 대성전에는 5성(五聖), 송조2현(宋朝二賢) 및 우리나라 18현(十八賢)의 위패가 봉안돼 있다.

외삼문 밖에 있는 비각에는 흥학비(興學碑)와 중수비(重修碑) 위성묘비(衛聖廟碑) 등이 있는데 흥학비는 1563년에 세워진 것으로 기대승(奇大升)이 찬기(撰記)하고 박광옥(朴光玉)이 음기(陰記)를 찬하였다.

▲ 초헌례(최영일) 아헌례(정길회) 종언례(위계후)가 끝나고 초헌관이 음복례를 하고 있는 모습 ⓒ 임무택


▲ 초헌관이 축문을 태우는 망료례를 하는 모습 ⓒ 임무택


▲ 제사를 모두 마치고 퇴장하는 모습 ⓒ 임무택


▲ 제사에 참례한 모두의 기념사진 ⓒ 임무택


원문 기사 보기

주요기사

오마이뉴스를 다양한 채널로 만나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