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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메라 잡은 1인미디어가 한국에서 살아남는 방법

[A-Z까지 다양한 노동 이야기] 영상 촬영기사 겸 기획·편집자, 이병국씨 이야기

등록|2016.03.18 11:05 수정|2016.03.18 11:05

▲ 카메라로 먹고 사는 남자 이병국 씨 ⓒ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매서운 바람이 불기 시작한 초겨울 어느 날 저녁이었다. 그날, 이병국씨는 삼각대에 카메라를 얹어놓고 길거리에 펼쳐진 집회 풍경을 영상으로 담고 있었다. 그런데 햇볕이 따사로운 가을에나 입을 법한 홑겹의 얇은 점퍼를 입고 있기에, '추운 날 밖에서 가뜩이나 오래 있어야 하는데, 왜 이렇게 춥게 입었나'라고 물었다.

"벌써부터 두꺼운 외투 입으면 겨울 못 나요. 야외에서 촬영할 때가 많은데, 이 정도 추위에 파카를 입기 시작하면 진짜 추울 때 입을 옷이 없거든요. 겨울을 나기 위한 제 나름의 적응법이지요."

군인도 아닌데 자체적으로 '혹한기 적응 훈련'을 하고 있던 그는 '1인 미디어' 활동을 하는 이병국씨다. 일명 '미디어 뻐국'으로 불리는 그는 기성 언론이 잘 조명해주지 않는 이 사회의 후미진 곳의 이야기를 찾아다닌다. 회사에 부당한 처우를 받고 외로운 싸움을 이어가고 있는 노동자들, 세월호 유가족이나 삼성 직업병 피해자들처럼 사회구조적인 이유로 억울한 일을 당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영상으로 제작해서 유튜브 같은 데 업로드해서 많은 사람들이 이런 일에 관심을 가질 수 있도록 하고 있다.

하지만 대부분 특별한 보수 없이, 병국씨가 관심있는 현장에 가서 자발적으로 하는 경우가 많다보니, 병국씨가 어떤 다른 어떤 일을 해서 '먹고 사는지' 궁금했다.

카메라로 하는 노동, 포인트를 잘 잡아야 한다

"몇 해 전까지는 사실, 한 구청 인터넷 방송팀에 들어가서 사진기사 일을 했었어요. 지자체마다 그런 홍보 방송팀이 있을 거예요. 주로 구 현안이나 정책홍보자료 같은 걸 다뤘었죠. 관련 사진을 찍어서 구청 홈페이지에 올리기도 하고, 각 언론사에서 요청하면 보내주기도 하고 그랬어요.

그렇게 한 5년 정도 일하다 돈 좀 모으고 그만뒀어요. 지금은 음…. 말하자면 프리랜서로 일하고 있죠. 제가 작업실로도 이용하고 있는 영상프로덕션의 사장님이 주는 '행사촬영' 일을 주로 하고요, 가끔 시민사회 단체에서 '영상 기획'을 통으로 맡기는 프로젝트가 들어오는데 이런 경우엔 처음 기획부터 촬영·편집까지 전 과정을 제가 다 맡아서 해요."

촬영만 하는 일은 말 그대로 '촬영'만 해주면 되는 일이다. 가령 단체나 기업에서 진행하는 내부 교육이나 워크숍에 따라가 행사 진행 전부를 찍어주는 일이다. 한두 시간이면 끝나는 일도 있지만, 어떨 때에는 몇박 몇일씩 길게 따라다녀야 할 때도 있다. 이렇게 길어지면 출장비 포함해서 촬영시간을 더해 인건비를 책정해준다고 했다.

"최근 OO카드 신입사원 연수에 따라갔었어요. 그때는 영상촬영은 아니고 스냅사진이랑 단체사진 찍어주는 일을 했어요. 초등학교 학생들 수학여행 따라가서 사진 찍어주는 일도 종종해요. 아이들 촬영할 때가 좀 힘들기는 해요. 일단 진~~짜 말을 안 듣잖아요. 선생님 말씀도 잘 안 듣는데, 처음 본 아저씨 말을 듣겠어요?

그래서 이동하는 버스에서부터 친하게 말도 걸고 그래요. 한 반에서 1~2명 하고만 일단 친해지면 되고, 물론 선생님들도 아이들 인솔하고 포즈를 잡고 그러는데, 많은 도움을 주시지요. 그리고 수학여행처럼 이렇게 하루동안 행선지가 다양한 촬영장에서는 각각의 장소에서마다 기념촬영을 잘해야 한답니다."

듣다 보니, 행사 촬영 일을 오랫동안 지속적으로 해왔던 병국씨의 노하우가 있었다. 그가 설명하기를, "촬영을 잘한다"는 건, 첫째 용도에 맞게 촬영한다! 둘째 다양한 각도로 지루하지 않게 찍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무엇보다 영상이건 사진이건 간에 찍은 기록물에 포인트 혹은 힘이 있어야 한다! 이렇게 정리된다. 인물이나 장소의 포인트를 놓치지 않고 적절하게 클로즈업을 해서 영상(혹은 사진)을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에너지를 느낄 수 있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결과물이 좋게 하기 위해서, 저는 일단 일을 부탁한 분께 어떤 걸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지 꼭 물어봐요. 아까 초등학교 졸업앨범 작업에서는 아이들 표정이 예쁘고 생동감 있게 잘 나오는게 제일 중요하죠. 단체사진 열 세우는 것부터 시작해서 포즈 취하는 것도 중요하고, 너무 멀지 않게 인물중심으로 가깝게 찍는 것도 중요해요. 성인들이 모이는 단체·기업 행사에서는 음…. 높은 사람들, 간부들 얼굴이 잘 나오게 찍어주는 게 아주 중요해요.(웃음)"

어떤 업종이든 프리랜서들이 그렇겠지만, 병국씨도 일이 고루고루 있지 않아서 힘들다고 했다. 야외활동하기 좋은 봄·가을, 즉 5월이나 10월에는 일이 몰리지만 여름에는 일이 없어서 완전히 쉬기도 한다. 가뜩이나 구청에서 고정적인 월급을 받을 때보다는 수입이 많이 줄어서 긴축재정으로 일상을 사는 중이다.

"저는 그래도 제게 일 나눠주시는 프로덕션 사장님이 일반 시장가보다 촬영 인건비를 많이 주시는 편이에요. 하지만 따박따박 월급 받을 때랑은 수입이 정말 한 1/5 정도로…. 많이 차이나긴 해요. 촬영 일이 많이 걸어 다녀야 하니 아마 다른 일반인보다 신발 밑창이 빨리 닳는 편이거든요. 예전 같으면 진즉 버리고 새로 살 텐데, 요즘엔 '좀만 더 신자' 하지요. 그래도 프리랜서 생활 약 2년 만에 입에 풀칠하면서 살 수 있으니 '성공적'이라고 자평하는 중이에요."

다분히 '시간' 집약적인 영상 편집의 노동

이처럼 다른 스튜디오나 프로덕션을 통해 받아 하는 촬영만 하는 일은 편한 일에 속한다. 급여는 조금 싼 편이긴 해도, 찍기만 하고 편집은 안 해도 되니 시간을 많이 잡아먹지도 않고 고심할 일도 없기 때문이다. 병국씨는 이런 단순 촬영기사 외에도, 영상 하나를 통째로 만들어주는 기획·편집 일도 가끔씩 하고 있다.

"영상 하나를 통으로 만들어주는 일이 촬영일 보다 뿌듯하고 재밌고, 돈도 물론 더 받아요. 근데 정말, 시간을 엄청 써야 하는 일이에요. 제가 자발적으로 하는 1인미디어 활동 영상의 경우에는 대부분 기자회견이나 인터뷰를 찍은 '보도용'이 많은데요, 6~7분, 긴 것은 12분 정도 짜리 만드는 데 하루 정도 걸려요. 근데 일정한 메시지를 담고 풀스토리로 짜여진 영상은 촬영기간도 훨씬 길고 그걸 편집하는 시간도 더 드는 게 당연하겠죠."

영상 하나를 만들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과정을 거치게 된다. 계약 주체와 기획 회의를 하면서 영상의 주제와 방향성, 포맷 등을 미리 정한다. 이 단계에서 어떤 그림을 촬영할지, 누구를 인터뷰 할지도 대략적으로 정하고 본격적인 촬영에 앞서 관련 자료를 모으고 인터뷰이나 장소를 섭외한다. 그리고 촬영과 편집을 하고 몇 차례 시사와 수정을 거쳐 최종작품(결과물)을 확정한다. 이 과정 중 아무래도 가장 시간을 많이 쓰는 게 '편집'이다.

"저는 촬영 전에 대본을 만들거나 메모를 치밀하게 하거나 하는 타입은 아니에요. 적은 걸 보면서 편집하기보다, 머릿속에서 생각한 주제를 바로바로 편집하는 편입니다. 편집할 때 제일 처음에는 촬영한 파일을 한번 쫙 봐요. 집단적으로 일하는 곳에서는 인터뷰 부분은 따로 녹취를 풀어주는 분도 있다고 하지만 저는 혼자서 다 해야 해요.

어쨌든 주제랑 잘 맞는 어떤 '포인트'가 되는 부분을 잘 따야 하는데, 제가 하는 작업에서는 '인터뷰' 부분이 주 포인트가 될 때가 많지요. 그래서 촬영 들어가기 전 인터뷰이에게 할 질문을 잘 준비하는 게 아주 중요하답니다."

찍은 영상 파일들을 기획회의에서 정한 방향성과 스토리 라인대로 오리고 붙이고를 반복한다. 그 다음에는 배경음악을 까는 등 사운드 작업을 하고, 자막 처리도 한다. 이후에는 장면 전환이나, 영상 주요지점에 볼거리 요소를 더하는 '그래픽 효과'를 집어넣는다.

"저희는 소위 '때깔을 좋게' 만든다고 표현해요. 장면전환이나 그래픽 효과 같은 걸 넣어주는 게 또 시간이 많이 드는데, 기본적인 효과 말고 보기에도 좋고 전달력 있는 그래픽을 넣으려면 이걸 만드는데도 공이 많이 들어요. 일반적인 컷 편집 외에 2D 그래픽 같은 걸 넣으면서 볼거리를 추가하지요. 그래픽을 얼마나 잘 쓰느냐에 따라 영상질이 많이 달라지니 신경을 쓰는 게 좋지요."

그래픽 작업이 끝나면 전체적으로 세부 수정을 하면서 마무리 작업을 하면 편집 완료, 결과물이 1차 완성된다. 최종판으로 확정하기 전까지 영상을 의뢰한 쪽의 만족도를 물어야 하기 때문에 2~3회 정도의 시사 과정을 밟고 난 후, 병국씨의 일은 그렇게 마무리된다.

다큐 감독을 꿈꾸는 그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지만, 아무래도 창작 노동의 특성상 순간순간 스트레스가 없을 순 없다고 한다. 하지만 만들고 싶은 다큐 작품을 찍을 그날까지, 프리랜서 노동자로 일 몰림 없이 보다 고루고루 안정적으로 촬영노동을 하길 바라는 그의 마지막 말을 들어보자.

"이쪽 일을 하는 분들이 대부분 그렇듯, 저도 어려서부터 영화감독이 되고 싶었어요. 처음에는 극 영화를 하고 싶었는데, 갈수록 '다큐'가 좋아지더라고요. 사실 한 10년 전에 촬영부 막내로 들어가 영화 일을 해본 적 있었는데, 그때 (극)영화판에 대한 환상이 깨진 것도 있어요. 한 달에 3일도 겨우 쉬고 한 40만 원 받고….

그렇게 말도 안 되는 악조건에서 일했는데, 과실은 위에서 다 따먹는 거 보면서 실망감이 커졌죠. 어쨌든, '이야기'를 만들어 내는 일에 재미를 느꼈고, 사람을 찾아다니고 만나는 일이 저는 갈수록 더 재미있어요. 50대 중반까지는 잘 버티면서 제 장편 다큐을 만드는 게 꿈이자 희망사항이에요. 유튜브에 올리고 있는 짧은 영상 말고, 장편으로요. 요즘에도 계속 준비하는 중입니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을 쓴 정하나 기자는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상임활동가입니다. 또한 이 글은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에서 발행하는 기관지 <일터>에도 연재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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