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시민은 기자다

덕이 앞에 서면 '셜록 홈즈'가 된다

[말없는 약속 20년 60] 지금 덕이의 감정조절 능력으로 자립할 수 있을까

등록|2016.03.21 09:50 수정|2016.03.25 15:09
"자네는 보긴 봐, 하지만 관찰하지는 않아."
- 탐정 셜록 홈즈가 파트너인 왓슨 박사에게 지적한 말.

일주일에 한번 덕이 회사에 가서 퇴근하는 덕이와 함께 집으로 오는 차 안. 내가 먼저 말을 한다.

고모: "오늘 나는 점심식사로 냉이된장국을 먹었는데 그 향이 좋았어. 덕이는?"
덕: "난 무국하고 김치."

나는 덕이뿐만 아니라 누구와 이야기를 나누더라도 상대에게 묻고 싶은 상황이나 내용을 나의 상황과 내용을 먼저 말한 후에 질문하곤 한다. 그럴 경우에 상대는 부담감이나 불편함 없이 얘기하고 싶으면 하고 그렇지 않으면 안하는 쪽을 스스로 선택하기 때문이다. 특히 덕이같이 말수가 적은 사람들과 이야기할 때 가장 효과적이다.

고모: "오늘 사실 나는 힘들었어. 신경써야 할 사람과 일이 있었거든. 그래서 약간 머리가 아파, 덕이는 오늘 어땠어?"
덕: "나는 괜찮았는데, 고모 머리 아파?"
고모: "응~ 지난 토요일에 고모 상담소에서 본 아가씨 있지, 그 아가씨가 부모님과 대화가 안 된다고 아직은 집에 안 가겠다고 해서~ 이제 더 이상은 고모 사무실에서 지낼 수 없거든."

가끔 부모와 자녀간에 갈등이 격해져서 본인이나 가족에게 해를 끼칠 위험이 있는 경우에는 본인과 가족의 동의를 얻어 일주일 동안 사무실 숙소에 머물 수 있게 하고 있다. 지난주 토요일에 덕이와 함께 몇 명이 점심 식사를 함께 하면서 그 아가씨를 덕이와 마주 본 적이 있었다.

덕: "왜?"
고모: "일주일이 되었고, 고모와 약속한 3회 상담은 약속한 시간에 받았지만 낮에 하기로 한 생활 체험 현장에 가지 않고 전철 타고 3일간 서울을 갔다 왔단다. 내가 그 점을 놓쳤나봐."
덕: "속상하겠다~"
고모: "응. 속상해."
덕: "그 사람한테 물어봤어? 집에 왜 안 간다고 하는지?"
고모: "응"(이렇게 대답하자 궁금한지 나에게 더 묻는다)
덕: "왜 안 간데?" (내가 계속 말할 수 있도록 이끈다)

덕이는 토요일이면 오전 봉사 후에 나의 상담실에 와서 함께 점심식사와 오후 프로그램인 '비폭력대화'에 함께 수강생으로 참여하면서 2인 1조, 또는 5인 1조로 집단게임도 하고 묻고 답하는 프로그램에 계속 참여했다. 그 덕분일까. 어느덧 제법 덕이가 나와 대화가 잘 되고 있다. 더 놀라운 것은 나를 공감해 주기까지 한다는 점이다. 이런 덕이의 모습을 통해 덕이의 정서가 왜곡되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다행이다.

가끔 이런 말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요즘은 드러난 장애인이 문제가 아니라 겉은 멀쩡해 보이는데 정신이 문제인 사람들이 문제"라고. 나 또한 그 말을 인정하지만 사실은 멀쩡해 보이는 것처럼 봤기 때문이지 멀쩡하지 않은 면을 잘 관찰만 한다면 틀림없이 무엇인가가 드러난다. 대부분 사람들은 관찰(사람이나 사물의 현상을 보는 이의 생각과 판단을 넣지 않고 있는 그대로 집중하여 살펴봄으로써 나와 너가 알 수 있는 구체적인 사실)하지 않고 그냥 본다. 그래서 모른다.

행동심리학자인 조 내버로는 "미래 예언에 대한 최고의 예언자는 현재 행동에 있다"라고 말했다. 이처럼 보이지 않는 정서는 행동으로 드러난다. 이제 덕이의 정서 반응이 나이와 잘 균형을 이루고 있는지 보다 구체적으로 확인해 볼 차례다. 많은 사람들은 가장 가까울 수 있는 가족이나 지인에게 보이는 반응으로 그 사람의 정서적 상태를 드러내곤 한다.

어떤 사람들은 몸은 성인이지만 청소년기까지의 충격적인 상황에 고착된 채 정서가 그대로 머물러 있는 경우가 있다. 예를 들어 부모가 애정결핍인 경우에는 자기에게 잘 해주는 사람에게는 본인이 의식하기도 전에 고착된 그 어린아이의 말과 행동이 나오기도 한다. 이런 경우에는 드러난 언행을 잘 관찰한 후 그 원인을 분석하면 도움이 된다. 

사실 누구나 이런 부면을 표출하고 있다. 단 주위 사람들이 주의 깊이 관찰하지 않고 그냥 보기 때문에 발견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우리가 건강하게 살려면 무엇보다도 정서적 균형감이 꼭 필요하다'고. 즉, 덕이가 자립하기 위해서는 여유롭고 당당한 건강한 정서가 필요하다.

그 날 퇴근하는 덕이를 태우고 집으로 향하는 중에 그동안 생각해 둔 말을 해보기로 했다. 말하기 전에 일단 덕이의 오늘 직장 생활은 어떠했는지를 살펴보았다. 만약에 힘들었다면 굳이 오늘 말하지 않는 쪽이 낫기 때문이다. 평소처럼 그날도 내가 준비해간 음식을 차 안에서 음료와 함께 먹고 있는 덕이의 표정이 부드럽다. 직장생활이 괜찮았나 보다. 

고모: "덕아~ 고모가 건강을 위해서 좋아하는 게 뭔지 혹시 알까?"
덕: "사우나, 왜?"
고모: "맞어, 요즘엔 내가 늙는지 여기저기가 아파서 사우나를 일주일에 한 번 더 가고 싶은데."
덕: "가."

대답 참 간단하다.

고모: "언제 가면 좋을까?"
덕: "고모가 알아서 해~"

그걸 왜 나한테 묻냐는 식으로 대답한다.

고모: "이러면 어떨까, 덕이 퇴근 차가 제일호텔 주차장까지 오니까 다른 날처럼 덕이가 그곳까지 퇴근차 타고 오고 거기서 만나서 집으로 함께 가면 좋을 것 같은데~"

아무런 말이 없다. 눈동자에 힘이 들어간 채로 나를 바라보며 마시던 음료를 왼손에 든 채 미간을 찌푸리는 것을 보니까 예상치 못한 일이었나 보다. 덕이 표정이 복잡해 보인다.

고모: "사실 덕이가 제일호텔주차장까지 와 준다면 내가 1시간 30분 정도 여유가 있어서 그 시간에 할까 하고~  덕이를 태우러 가고 오는 시간 왕복 1시간에 덕이가 일이 많아 늦게 끝나면 그곳에서 기다리는 시간 평균 40분~1시간 정도니까 그 시간에 고모가 사우나 하면 아주 좋을 것 같은데."

나는 다시 말 없이 행동을 멈춘 덕이의 표정과 몸짓을 살폈다.

덕이는 쉽게 대답하지 않는다.
원문 기사 보기

주요기사

오마이뉴스를 다양한 채널로 만나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