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의 문학 카페, 사르트르와 보부아르도 단골
[인문학자와 함께하는 말랑말랑 파리여행 10] 카페 드 플로르(Cafe de Flore) ②
▲ 카페 드 플로르(Cafe de Flore) ⓒ 김윤주
"카페 드 플로르로 가는 길은 내게 있어 자유에 이르는 길이었다." - 장폴 사르트르
존재 자체가 예술이고 철학인 그런 사람과 그런 장소가 간혹 있다. 카페 드 플로르(Cafe de Flore)도 그런 곳이었다. 적어도 이곳에 앉아 음악 같은 낯선 언어의 바다에 빠져 있던 그 저녁만큼은 세상 누구보다 자유로운 느낌이었다.
카페 드 플로르는 1881년 문을 연 이래 이웃한 카페 레 되 마고(Les deux Magots)와 함께 파리의 문학 카페로 이름을 떨치고 있는 곳이다. 생제르맹데프레 지역 한복판에 길 하나를 사이에 두고 나란히 자리한 이 두 카페는 장폴 사르트르와 시몬 드 보부아르, 어니스트 헤밍웨이, 기욤 아폴리네르, 롱랑 바르트, 알베르 카뮈, 앙드레 지드, 랭보, 피카소 등 수많은 이들이 머물며 문학과 예술을 논하던 곳이다.
실존주의 사상가인 장폴 사르트르(Jean-Paul Sartre, 1905~1980)와 시몬 드 보부아르(Simone de Beauvoir, 1908~1986)는 소르본 대학에서 철학을 전공하고 교수자격시험을 각각 수석과 차석으로 합격하였다. 계약결혼이라는 당대로선 기이한 행보로 사람들의 이목을 끌기도 했다. 둘은 이곳 2층의 구석에 자리를 잡고 오전 9시부터 낮 1시까지, 그리고 오후 4시부터 8시까지 하루 여덟 시간을 꼬박 앉아 사색을 하고 글을 썼다 한다.
글을 쓰지 않는 시간엔 1층으로 내려와 문인, 예술가, 사상가 지인들을 만나 토론을 하며 시간을 보내곤 했다. 이들 부부가 처음부터 카페 드 플로르에 자리를 잡았던 것은 아니었다. 애초엔 바로 옆의 또 다른 전설적인 카페인 레 되 마고에서 글을 썼는데 그곳보다 이곳이 난방이 좀 더 잘 돼 옮기게 되었다 한다. 2차 세계대전으로 피폐한 상황이었던지라 난방에 필요한 충분한 연료 공급이 어려웠던 탓이다.
아침이면 거리의 신문 가판대에는 사르트르가 밤새 어떤 글을 써 냈는지를 읽기 위해 기다리는 손님들이 줄을 섰다 하니 당시 그의 철학과 사상의 영향력을 엿볼 수 있다. 보부아르 역시 실존주의 사상가이며 작가로서 많은 저작물을 남기고 사회참여에도 활발했으나 사르트르와의 계약결혼이 세간의 흥미를 끌며 사람들은 그녀의 철학이나 작품보다 독특한 삶에 대해 이야기하길 더 좋아하는 듯하다.
▲ 카페 드 플로르(Cafe de Flore) ⓒ 김윤주
한 시대를 풍미한 문인과 예술가 사상가들이 종일 앉아 문학과 예술과 철학을 논했다는 곳. 비좁을 정도로 빽빽하게 늘어놓은 짙은 갈색 마호가니 테이블들과 보부아르가 특히 좋아했다는 붉은색 가죽 의자, 벽면을 덮고 있는 커다란 거울은 1930년대 인테리어 그대로다. 작은 카페의 북적거리는 틈바구니에 작고 작은 테이블 하나를 겨우 차지하고 앉았다. 그다지 넓지도 않은 공간에 사람도 너무 많고 손님은 하나같이 너무나 수다스럽고, 사이사이로 오가는 웨이터들은 유난히 분주하다.
빳빳하게 다림질한 흰색 와이셔츠에 까만 리본 타이와 까만색 조끼, 종아리까지 내려오는 하얀색 기다란 앞치마, 반짝이는 은색 쟁반을 손끝에 올리고, 새하얀 냅킨을 팔뚝에 걸친 채, 허리와 턱을 꼿꼿이 세우고 자신만만한 걸음걸이로 분주히 움직이는 웨이터들의 모습은 파리 카페의 인상적인 풍경 중 하나이다.
웨이터를 파리에선 '갸르송(garçon)'이라 하는데 '갸르송'은 프랑스 말로 '소년'이라는 뜻이다. (사실 불어 발음은 '갹송'에 더 가까운 것 같기도 하다.) 그런데 이곳에서 만나는 '갸르송'들은 나이 지긋한 아저씨들이다. 간혹 배우처럼 멋진 젊은 남자를 만나기도 하지만 그렇다 해도 '소년'이라 부를 만한 남자아이들이 시중을 들고 있는 모습은 본 적이 없으니 재미난 표현이다.
플레인 오믈렛과 야채 스프를 주문했다. 커다란 바게트 빵과 생크림이 함께 나왔다. 옆자리에 음료 두 잔을 시켜 놓고 앉아 있는 할아버지가 이것저것 물어온다.
"여행 왔소? 어디서 왔소? 여기는 처음인가요? 옆에 카페도 유명한 건 알고 있겠지요? 거긴 여기만큼 맛있지는 않아요. 그래도 한 번쯤 먹어 볼 만은 하지. 웨이터들이 입고 있는 까만 옷이 재미있지 않나요? 나는 요기서 5분 거리에 살아 자주 오는 편이라우."
신문을 파는 흑인 청년이 할아버지에게 다가와 비닐 팩에 든 오늘 신문 <르 몽드(Le Monde)>를 들이민다. 가만 보니 이 청년과도 잘 아는 사이인 모양이다. 심술궂은 표정의 무뚝뚝한 카페 여주인이나 거만해 보이는 웨이터들과도 친밀해 보이는 것이 이 할아버지 단골은 단골인가 보다.
▲ 카페 드 플로르(Cafe de Flore) ⓒ 김윤주
화장실이 2층에 있다기에 겸사겸사 올라가 본다. 웬 여자가 화장실 입구를 지키고 앉아 동전을 받고 있다. 얼핏 보니 1유로, 2유로, 50센트짜리도 보인다. 파리는 예나 지금이나 화장실 인심이 정말 박하다. 공중화장실은 모두 돈을 내고 사용하도록 되어 있는데 지하철 역사엔 그나마도 아예 화장실이 없다. 화장실 없는 지하철이라니! 사용료를 받고라도 있기만 해 주면 다행인 것이다. 20년 전 첫 파리 여행 때는 꽤나 큰 문화 충격이었지만 이젠 그도 익숙해져 가고 있다.
마침 동전도 없고, 저녁도 주문해 먹었는데 꼭 화장실 사용료를 내야겠나 싶어 사정을 이야기하며 물었더니 "네 맘대로!(Up to you!)"라는 짧은 대답이 돌아온다. 쌀쌀맞은 표정과 무례한 응대는 불쾌했지만 화장실은 아주 깔끔했다.
이곳, 카페 드 플로르의 2층이 바로 사르트르와 보부아르가 종일토록 앉아 사색을 하고 글을 썼다는 곳이다. 계단 벽에는 문학 토론회와 공연 안내문들이 빼곡히 붙어 있다. 다락방 느낌의 2층은, 북적대고 어수선한 1층과 달리 아주 조용하고 아늑해서 원고를 쓸 만하게 생겼다. 자신만의 집필 공간을 오래도록 갖지 못해 이렇게 카페를 전전하다가 말년에서야 작은 아파트를 하나 얻어 글을 쓰게 된 보부아르의 방을 사진으로 본 적이 있다. 책꽂이에 가지런히 놓여 있는 사르트르의 사진이 인상적이었다.
이름난 작가들의 은밀한 작업 공간을 소개하는 책들이 최근 유행인 모양이다. 작가와 예술가의 가난은 후대에 더할 나위 없이 고상한 미학적 이미지로 포장되어 유통되곤 한다. 가난과 소외와 고독과 우울 속에 고통 받은 불행한 삶일수록 예술가 본연의 정신세계와 닿아 있는 것처럼 믿어지기도 한다. 성격마저 괴팍해서 당대 대중과는 도무지 소통 불능이었다면 오히려 후대엔 더욱 매력적으로 겹겹이 조각 이야기들이 더해 전해지기까지 한다.
그렇게도 가 보고 싶었던 카페 드 플로르도 어쩌면 매력적인 인물과 장면으로 포장된, 그냥 그렇게 오랜 이야기가 덧대어지고 덧대어지며 만들어진 공간 중 하나가 아닐까. 우리가 소모하고픈 스토리와 이미지가 알맞게 구색을 갖춘 오래된 공간. 그렇다면 파리는 정말 조직화되고 체계화된 마케팅의 선수들만 모여 사는 도시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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