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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BIFF라는 오아시스를 소유하려 하는가

[BIFF를 지지하는 젊은 목소리 ②] 이승원 감독의 자격론

등록|2016.03.22 14:06 수정|2016.04.12 19:29
지난 20년간 아시아를 대표하는 영화제로 성장해온 부산국제영화제가 부산시의 압력으로 인해 운명의 기로에 서있습니다. 영화계는 독립성과 자율성을 외치며 결사항전 분위기입니다. 당장 올해 영화제 개최조차 점점 불투명해지는 상황입니다. 백척간두의 위기에 서 있는 부산국제영화제, <오마이스타>는 누구보다 이 사태를 애가 타며 지켜보고 있는 젊은 영화인들의 목소리를 전달합니다. 이 글은 그 두번째로, <소통과 거짓말>의 이승원 감독의 글입니다. [편집자말]
지금 이글을 쓰는 순간에도 '자격' 이란 단어가 날 자꾸 망설이게 만든다. 부산영화제사태에서 최고 화제로 떠올랐던 '자격논란'(서병수 부산시장이 올해 새롭게 선임된 부산영화제 자문위원들을 '자격도 없는 사람들'로 규정하고 비난해 물의를 빚었다-편집자 주)은 그렇다 치자. 나야말로 진심 부산영화제를 위해 뭔가 나서서 혹은 대표해서 작은 소회라도 밝힐 자격이 있는가에 대한 소심한 물음이다.

나야말로 뒤늦게, 아주 뒤늦게, 그것도 깜짝하고 지나갈 시간에 영화 한 편을 만들어놓고, 마치 오래전부터 준비된 영화인인 마냥 수많은 영화인들 사이에 껴서 제20회 부산영화제를 즐겼었다. 그래서 평생 책이라곤 유일하게 지금까지 읽고 있는 <씨네21>에 내 이름도 올려보고, 유명한 감독님들 배우님들 손도 한번 잡아보고, 앞으로 대성할 감독인 마냥 으스대며 그 가을밤 10일간의 잔치를 부산에 짭조름한 바닷바람과 함께 했더랬다.

부산은 유난히도 맑았으며, 뜨거웠고, 소주가 맛있었다. 또한 관객은 솔직했으며, 영화의 전당은 거대하고 엄숙하며 경이로웠다. 이 모든 것이 지난 20년 동안 내가 전혀 가보지 않았던 부산국제영화제의 저력이었다. 그리고 관대함이었다. 부산영화제는 영화를 꿈꾸는 모든 이에게 목이 말라 달려드는 오아시스와 같은 곳이었다.

오아시스

▲ 제20회 부산국제영화제(BIFF) 개막일인 지난해 10월 1일 오후 부산 해운대구 영화의전당에 설치된 형형색색의 조명이 영화제 시작을 알리고 있다. 부산영화제는 영화를 꿈꾸는 모든 이에게 목이 말라 달려드는 오아시스와 같은 곳이었다. 그런데 그 오아시스에 울타리가 쳐지고, 물 값이 매겨지고 있다. ⓒ 유성호


난 사실 꿈조차 꾸지 않았었다. 그게 20년 동안 한 번도 부산에 놀러와 보지 않은 이유기도 하다. 부산영화제는 나 같은 사람에겐 절대로 허락되지 않는 저 멀리 있는 오아시스의 물 한 모금이라 생각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아니 오히려 재미삼아, 상처받고 싶지 않아서 비장한 마음 없이 영화를 부산에 보냈고, 우린 일주일 만에 그 답을 들을 수가 있었다. 나와 PD는 펑펑 울었다. "(영화제 출품이) 말도 안 되는 일"이라고 계속 입 밖으로 중얼거렸다.

그 문턱은 내 피해의식만큼 높지 않았으며, 거창하거나 세련된 답을 원하지도 않았다. 부산영화제는 영화에 담긴 진심을 따뜻하게 바라봐주고 응원을 해줄 뿐이었다. 정말 이 영화제는 누구에게나 갈망하는 모든 이들이 마음껏 마시고 쉬어갈수 있는 오아시스가 분명했다.

하지만 요즘 들려오는 여러 소리에 우려의 마음이 들기 시작한다. 우리가 맘껏 나누고 즐기던 오아시스에 울타리가 쳐지고, 물 값이 매겨지고, 심지어 생각이 다르면 입장조차 못하는 그런 곳이 돼버리는 건 아닌지…. 오아시스에 주인이 없듯이 예술에도 주인은 없다. 오아시스의 주인은 지나가는 목마른 모든 사람들일 것이며, 예술의 주인도 그것을 즐기기 위해 오는 다양한 사람들일 것이다.

자격

▲ 지난해 10월 제20회 부산국제영화제 당시 해운대 해변가에 세워진 영화 <소통과 거짓말> 포스터 앞에 스태프와 배우들이 한데 모였다. 맨 오른쪽이 이승원 감독이다. ⓒ 이승원 제공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속 존 키팅(로빈 윌리암스 분) 선생이 말했다. "돈, 집, 공장, 옷, 자동차와 같은 물품들이 내 삶에 필요한 것들이라면 예술에서 느끼는 모든 감정, 즉 사랑과 기쁨, 증오, 외로움, 환희 등은 내 삶의 이유"라고 말이다. 부산국제영화제에 모이는 모든 삶의 이유들을 통제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이 영화제는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어야 할 것이다.

다시 한 번 자격 이야기를 해야 할 것 같다. 우리 영화가 끝나고 "심장이 뛴다"며 "어떻게 이런 저질 영화를 만들 수 있냐"고 손을 바르르 떨며 감독과의 대화에 참여해주신 50대 동창 모임 아주머님들. 지하 주차장에서 매일 먼지를 마시며 그날 나갈 일간지들을 정리하고 있던 자원봉사자님들. 자신도 꼭 자기 영화를 들고 이곳에 오고 싶다던 대학생들. "내 동료들의 꿈은 이곳 부산영화제에 오는 것"이라 말했던 중동 지방 출신의 한 감독님까지.

부산영화제를 이끌 그 '자격'이란 것이 정말 존재한다면, 바로 이러한 사람들, 우리보다 더 힘들고 열악한 환경에서 영화를 찍고 있을 아시아의 영화인들에게 주어져야 할 것이다.

부산영화제의 진정한 오아시스를 꿈꾸며… 감독 이승원.

이승원 감독은 올해로 마흔인 신진 영화인이다.

2004년 영화 <모순>의 연출을 맡으며 데뷔했고, 지난해 영화 <소통과 거짓말>로 제20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넷팩상을 받았다.

tvN 드라마 <응답하라1988>에서 선우(고경표 분) 엄마 역을 맡은 배우 김선영의 남편이기도 하다.


[BIFF를 지지하는 젊은 목소리]
[① 백재호] 부산시민 여러분, 부디 부산국제영화제 지켜주세요

추신 : 우리는 부산국제영화제를 지지합니다. '부산국제영화제지키기 백만서명운동 사이트' (http://isupportbiff.com)에서 관련 소식을 접할 수 있습니다. #isupportbif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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