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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히 다녀가는 삶

"지렁이처럼 살자!"

등록|2016.03.22 17:28 수정|2016.03.22 17:28

▲ 남용되고 오염된 토양의 복원에 지렁이는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 이안수


#1
 
저는 농사꾼의 아들로, 제 기억 속에는 아직도 절기에 맞추어 부지런히 땅을 일구는 삶을 사셨던 아버지와 할아버지의 모습이 고스란히 남아있습니다.
 
가장 선명한 기억은 탈곡을 마친 마당에서 벼 낱알 하나하나씩을 손바닥에 주워 담고 계신 할아버지의 모습입니다. 굽은 등이 마당에 닿을 듯한 모습으로 한참을 주어도 한 줌이 채 안 되는 벼였습니다.
 
청소년이 되어서 반추된 생각은 벼 낟알 하나의 귀함과 그 낟알 하나를 손에 넣기 위해서도 4계절이 필요하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때부터 저는 밥알 하나도 남기지 않는 식습관을 갖게 되었습니다.
 
어른이 되어 사람과 자연의 관계에 눈뜨고부터는 이 행성에 가장 유익한 삶은 여러 치적으로 개발의 흔적을 남기거나 유명인으로 이름을 남기는 것이 아니라 이 지구 상에 자신의 족적을 남기지 않는, '조용히 다녀가는 삶'임을 알았습니다.
 
밥도 찬도 남기지 않는 최소한의 식생활이라고 하더라도 내가 배출하는 어쩔 수 없는 쓰레기들은 어찌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의 결과가 '지렁이'였습니다.
 
1970년대 초 우리나라에 지렁이 사육농장이 시작되고 80년대 초에는 높은 수익률에 주목한 사람들의 지렁이 붐이 일었습니다.

그때쯤 지렁이의 여러 역할에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지렁이가 인분과 축분, 음식물 쓰레기와 유기성 오니 등을 먹고 배출한 분변토가 각종 채소의 탁월한 영양분이 된다는 사실은 제게 경이로운 사실이었습니다.
 
사람들의 과욕의 오니들을 온전하게 되돌리는 자연의 쟁기, 지렁이...  그때부터 우리집 가훈은 '지렁이처럼 살자!'가 되었습니다.

#2
 
1960년대 후반, 여자는 간호사, 남자는 광부로 서독으로 진출했던 분들의 태반이 계약이 만료되고도 고국으로 돌아오는 대신 제3국행을 택했습니다. 그때 적지 않은 분들이 캐나다로 가셨습니다. 그분들이 한인의 캐나다 이민 개척자들이지요. 그 분들이 돈 없이도 할 수 있었던 일이 밤의 지렁이 잡이였습니다.

지미 카터는 사촌동생이 운영하는 지렁이 농장에서 생산된 분변토를 거름으로 사용해 땅콩 수확을 크게 늘렸다는 뉴스위크지의 기사도 있습니다. '지렁이가 대통령을 만들었다'는 내용입니다.
 
진화론자 찰스 다윈은 1882년 사망 전까지 45년 동안이나 지렁이를 연구했습니다. 그가 지렁이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1836년 2월까지 영국의 탐험선 비글호를 타고 5년간의 세계탐사여행에서 돌아온 후 건강이 나빠져 요양을 위해 외삼촌집에 내려간 1837년부터입니다.

그는 외삼촌의 소개로 목초지에서 분변토에 관심을 갖게 됐습니다. 그의 일생을 관통했던 주제가 '종의 기원'으로 집대성된 진화론뿐만 아니라 '지렁이의 활동과 분변토의 형성(찰스 로버트 다윈 저, 최훈근 역, 지식을만드는지식 간)'으로 정리된 지렁이였습니다.

"쟁기는 인류의 발명품 가운데 가장 오래되고 가치 있는 것 중의 하나다. 그러나 사실을 말하자면 인류가 출현하기 훨씬 이전부터 토질를 경작해 온 생물이 있으니 바로 지렁이다. 지렁이라는 이 단순한 구조의 생물만큼 세계 역사 속에서 큰 역할을 했던 동물이 있었는지는 의심스럽다."- 찰스 다윈

다윈의 말처럼 지렁이는 심플한 구조입니다. 다리도, 눈도, 코도, 귀도 없습니다. 하지만 땅속에 수많은 굴을 뚫고 피부로 빛을 느끼며 천적이 다가오는 소리를 감지하고 냄새도 맡을 수 있습니다. 암수동체이긴 하지만 다른 지렁이와의 교미를 통해 수정을 합니다.
 
지렁이 한 마리는 하루에 자기 체중만큼 먹습니다. 그러므로 10톤의 지렁이는 10톤의 환경오염원들을 정화할 수 있습니다.

필리핀에서 30년 동안 척추교정을 통한 의료선교를 해오신 신성균 선교사는 그곳에서 지렁이 농장을 만나고 땅을 치료하는 일에 큰 관심을 두게 되었습니다.

"치유선교학의 개척자이신 일보 이명수 박사님이 이렇게 강조했지요. 육신만 고치는 의사는 소의(小醫), 정신까지 고치면 중의(中醫), 영(靈)까지 고쳐야 대의(大醫)다, 라고... 돌아가시기 전에는 사람뿐만 아니라 사회와 자연에도 주목하셨어요. 개인의 건강만으로는 온전할 수 없다는 것이지요. 약물중독이나 폭력, 자살 등 사회의 다양한 병리현상으로 비롯된 문제를 해결하기위해서는 사회를 고쳐야하고 남용으로 비롯된 자연의 문제 즉 공기, 물, 땅을 회복하는 일에 앞장서야한다고 말씀하셨지요. 사회와 자연의 치유문제에 대한 스승님의 이 말씀을 늘 마음에 담아두고 있었습니다."
덧붙이는 글 모티프원의 브로그 www.travelog.co.kr 에도 함께 포스팅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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