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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부러워서 하는 '찌질한' 변명?

[아이들은 나의 스승 63] '흙수저'가 '금수저'를 두둔하는 현실

등록|2016.03.27 11:23 수정|2016.03.27 11:23

▲ 서울대 ⓒ 하지율


서울대 못 가는 아이들이 괜히 부러워서 하는 말?

아이들이 착하다고 해야 하나, 아니면 바보 같다고 해야 하나. 올해 서울대학교 입시에서 특목고와 자사고, 강남 소재 고교 출신 학생이 합격자의 절반을 차지했다는 소식에 아이들은 다들 대수롭지 않다는 반응을 보였다. 그들이 공부를 잘 하니까, 자신들은 꿈도 못 꿀 스펙을 가졌으니까, 심지어 '능력자들'이니까 합격한 것 아니겠냐며 되레 반문하기까지 했다.

언뜻 '자학' 같기도 한 아이들의 한결같은 반응에 순간 어안이 벙벙했다. 누구 하나 서울대를 탓하지 않았다. 입시제도가 특목고나 자사고 아이들에게 유리하도록 만들어져 있거나 활용되고 있다는 문제 제기를 기대했다고 말했더니, 외려 서울대 못 가는 아이들이 괜히 부러워서 하는 말이라며 단박에 무질러버렸다. '찌질한' 변명이라는 거다. '흙수저'가 되레 '금수저'를 두둔하는 꼴이다.

아이들은 그러한 인식이 서울대를 '권력화'시키고 온존한 학벌구조를 더욱 공고하게 만드는 주범이라는 걸 미처 깨닫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자발적으로' 서울대 합격 경축 현수막을 앞다퉈 내거는 전국의 학교와 사설 학원들은 사실상 서울대의 홍보 모델을 자처하는 '충복'이나 다름없다. 결국 이는 아이들의 맹목적인 학습 노동의 강도를 배가하는 것으로 귀결된다.

재미있는 건, 자신은 아무리 노력해도 서울대에 갈 수 없다고 잘라 말하는 아이들조차 서울대의 '자기장'에서 단 한 치도 벗어나질 못한다는 점이다. 개인의 적성과 흥미는 물론, 성적에 상관없이 전국의 모든 아이들의 눈은 서울대를 향하고, 그들의 일상은 서울대를 정점으로 한 입시제도에 맞춰 돌아간다. 이젠 중학교와 심지어 초등학교까지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있다.

극소수 특목고와 자사고 출신이 명문대를 독식하는 현실은 이젠 새삼스럽지도 않다. 반면, 대부분 아이들은 일반고를 거쳐 지방대를 전전하고, 나중 그의 자녀들 또한 그들이 거쳐 온 이력을 반복하게 된다. 더 이상 교육을 통한 두 '사이클' 사이의 이동 가능성은 없다. 서울대 냄새도 맡아보지 못한 지방의 일반고에 '떡고물'처럼 던져준 지역균형선발제도조차 유명무실화한 지 이미 오래다.

'응팔'의 가난한 서울대생 보고 고개 끄덕이는 어른들

그렇다면, 현실을 직시하지 못하고 존재와 의식이 분리된 아이들의 맹목적인 '서울대 앓이'는 어디서 비롯된 것일까. 우선, 기성세대의 낡고 뒤틀린 편견을 그대로 답습한 탓이다. '가난한 서울대생'이란 요즘엔 떠올리기 쉽지 않은 전설과도 같은 이야기가 되었지만, 그 현실을 인정하고 싶지 않은 것이다. 아니면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내 자녀만큼은' 하며 착각하고 있거나.

예컨대, 얼마 전 인기를 끈 <응답하라 1988>에 등장하는 가난한 서울대생(류혜영 분)은 현실과는 사뭇 동떨어진 '판타지'일 뿐인데도, '그땐 그랬지'라며 추억하는 어른들 옆에서 아이들 역시 고개를 끄덕이며 선망한다. 어른들에겐 어릴 적 흔히 봐온 있음직한 이야기일지 모르나, 아이들에겐 그저 드라마 속 이야기일 뿐인데도 말이다. '로망'은 세대를 초월해 '마약'이 된다.

학교 또한 아이들을 '착하게 만든' 주역이다. 서울대는 전국 모든 학교의 교육 목표이자 실질적인 건학이념이다. 특목고와 자사고가 독식하는 서울대 입시를 문제 삼기는커녕 그들을 흉내 내며 따라하는 데 여념이 없다. 모든 교사를 대상으로 그들의 교육 방식을 벤치마킹하기 위해 별도의 연수를 진행할 정도다. 일반고를 특목고와 자사고처럼 보이려는 처절한 '분칠'이다.

일례로, 수시모집이 대세로 자리 잡은 요즘, 학교생활기록부(학생부)는 수능보다 훨씬 더 중요한 전형자료다. 내신 성적을 바탕으로 한 학생부 기록의 '풍성함'과 '화려함'이 명문대 합격을 좌우하는 열쇠가 됐다. 학생부가 마무리되는 학년말이면 교무실은 '청탁'을 하러온 아이들로 북적이는데, 학생부 기록에 입시의 성패가 달려있다는 걸 그들 역시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학생부에 기록되는 최고의 스펙 '소논문 쓰기'

요즘 들어 학생부에 기록되는 최고의 스펙은 단연 '소논문 쓰기'다. 일선 학교에서는 서울대 합격자 학생부의 공통된 스펙이라는 이야기가 회자된다. 사실 이는 일반고에 비해 특목고나 자사고가 절대적으로 유리한 항목 중의 하나다. 듣자니까 강남 등지에서는 일찍이 이를 책임져주는 사설 학원까지 성업 중이라는데, 지방에서는 이제야 하나둘씩 생겨나고 있다고 한다.

'스펙에도 품질이 있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은 지방의 일반고에서는 소논문 쓰기에 대비한 수업을 개설하고, 아이들은 관련 동아리를 새로 만드는 등 분주한 모습이다. 이태 전에는 논술과 토론 동아리가 우후죽순 생기더니, 이제는 소논문 쓰기 동아리가 그 바통을 이어받았다. 동아리 활동조차 철저히 입시에 종속되어, 서울대를 '감동시킬 만한' 스펙을 제공하는 동아리는 설령 한해살이일지언정 문전성시를 이룬다.

가히 눈물겨운 노력이지만, 그래봐야 일반고는 결코 '1등'이 될 순 없다. 특목고와 자사고가 온존하는 한, 일반고는 그들이 차지하고 남은 몇 자리를 꿰차기 위해 서로 피 터지게 싸우거나 서울대가 마지못해 던져주는 '떡고물'에 기댈 수밖에 없는 처지다. 어쩌면 이미 승패가 갈린 싸움에 아이들을 몰아넣고 '하면 된다'는 뻔뻔한 거짓말로 그들을 우롱하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미래세대 아이들 앞에서 솔직해져야 한다. 아이들에게는 아무런 죄가 없다. 이제 서울대를 정점으로 한 '눈먼' 학벌 따기 경쟁을 멈출 때도 됐다. 가당치도 않은 이 싸움에 전국 수백 만 아이들의 애먼 시간과 정열을 낭비하고 있다. 다짜고짜 이름 앞에 주눅이 들어 굽실거리기 전에, 서울대가 우리에게 미친 심각한 폐해에 대해 우선 따져 물어야 한다.

인정하긴 싫지만, 이 땅의 고등학생들은 서울대의 '노예'이며, 교사들은 그들을 채찍질하는 '마름'같은 존재다. 그들은 서울대가 요구하는 대로 생각하고, 판단하고, 행동한다. 서울대에 진학한 아이들의 숫자가 곧, 학교의 명성을 결정하는 기준이라는 점은 예나 지금이나 별반 달라진 게 없다. 서울대가 우리 사회의 '보물'인지 '괴물'인지 냉정하게 생각해봐야할 시점이다.

학벌 체제 혁파가 더 쉬운 일일지도

아이들 각자가 지닌 수많은 꿈들을 서울대가 다 담아낼 순 없다. 모두가 해바라기마냥 서울대를 쳐다볼 하등의 이유가 없으며, 학교가 모든 아이들을 그 틀에 맞춰 줄 세우려는 건 폭력이다. 서울대에 갈 몇 명을 위해 나머지 아이들 모두를 들러리 세울 게 아니라면, 정규수업과 보충수업, 심화수업, 야자로 이어지는 획일적인 교육 방식을 거부해야 옳다. 저녁 식사조차 가족과 함께하지 못하는 현실이라면, 그것이야말로 '학교 폭력' 아니겠는가.

요컨대, 밑도 끝도 없는 입시 공부 대신, 아이들 각자 나름의 삶을 준비할 수 있도록 여유를 주자. 수백 만 아이들에게는 수백 만 개의 '우주'가 존재한다. 아이들의 잠재력과 무한한 가능성을 발현시키기 위해서는, 공부를 어떻게 하면 잘 할 수 있는가보다 왜 해야 하는가의 문제로 발상이 전환되어야 한다. 그러자면, 단언컨대, 서울대는 장애물일 뿐이다.

공부에 찌든 가엾은 아이들의 퀭한 눈을 쳐다보라. 아직도 '하면 된다'며 그들을 다그칠 심산인가. 어쩌면 우리, 자녀에게 자신의 욕망을 투사해 자녀를 서울대에 진학시키기 위해 온갖 노력을 다하는 것보다, 서울대를 정점으로 하는 학벌 체제와 승자독식의 구조를 혁파하는 데 이웃들과 힘을 모으는 게 훨씬 더 효과적일 뿐만 아니라, 더 쉬운 일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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