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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팔에서 날 속인 남자... 그가 고마워졌다

지명조차 알 수 없는 낯선 네팔 도시에서 만난 자비의 손길

등록|2016.03.30 15:10 수정|2016.03.30 15:06

▲ 낯선 마을에 내동댕이쳐져 지칠대로 지쳐 있는 내게 환한 웃음을 안겨주었던 네팔 아이. ⓒ 송성영


네팔 바르디아 국립공원에서 이틀을 보내고 버스 시간에 맞춰 배낭을 꾸렸다. 리조트 매니저는 마을 앞에서 출발하는 버스를 타고 암바사라는 곳에서 내려 오전 11시에 출발하는 포카라행 버스로 다시 갈아타야 한다고 상세히 알려줬다.

"버스 정류장까지 얼마나 걸어야 합니까?"
"1킬로미터 정도요."

아픈 무릎을 짓누르는 무거운 배낭을 걸쳐 메고 걸어야 할 생각을 하니 난감했다. 때마침 리조트에서 일하는 청년이 마을버스 정류장으로 나갈 일이 있다며 오토바이를 태워줬다.

마을버스 정류장에 도착하자 암바사로 출발하는 버스가 더위에 축 늘어져 있다. 아직 출발할 시간이 남아 있다. 정류장 주변에 식당이 보인다. 장거리 버스를 대비해 생수를 한 통 사고 밀가루를 둥그렇게 반죽해 기름에 튀긴 도너츠 두 개로 간단하게 끼니를 때울 무렵 버스가 출발했다.

암바사에서 내리라는 직원과 아니라는 버스 차장

버스 차장에게 포카라행 버스를 타야 한다며 암바사라는 곳에 내려 달라고 당부했다. 하지만 차장은 암바사에서는 포카라 가는 버스를 탈 수 없다며 자신이 내리라고 하는 곳에서 내리면 된다고 말한다. 울퉁불퉁한 시골길을 40분쯤 달리던 버스가 암바사에 도착했다. 차장 말을 들을 것인지 리조트 매니저 말을 들을 것인지 잠시 갈등하다가 배낭을 걸쳐 메고 출입구로 나서는데 차장이 단호하게 말했다.

"여기서 포카라 가는 버스를 탈 수 없습니다."

잠시 머뭇거리다가 차장 말을 믿어보자는 심정으로 다시 배낭을 내려놓고 자리에 앉았다. 버스는 암바사라는 마을에서 40분 가량 더 달려 그 이름을 알 수 없는 작은 도시에 나를 내려놓고 사라졌다.

버스 스탠드에서 영어를 할 줄 하는 사람을 겨우 만났다.

"포카라 가는 버스를 타려고 합니다. 어떤 버스를 타야 합니까?"
"어디서 왔나요?"
"바르디아 국립공원에서요."
"바르디아 국립공원요? 그 마을 앞에서도 포카라 가는 버스가 있습니다. 당신은 잘못 왔군요."

버스 차장에게 속았다. 매니저 말대로 암바사에서 11시 버스를 타야 했다. 포카라 가는 길에서 40분 넘는 거리를 거꾸로 온 셈이었다.

"여기서도 포카라 가는 버스가 있습니까?"
"포카라 가는 버스는 두 시 쯤에 출발할 것입니다."

시계를 보니 이제 11시를 넘어서고 있다. 지금쯤 포카라 행 버스 안에 있어야 했는데 세 시간을 더 기다려야 한다. 푹푹 찌는 땡볕이 온몸으로 후덥지근하게 휘감아 온다. 바람 한 점 없다. 주변에 그늘진 나무 한 그루 보이지 않는다. 갑자기 화가 치밀어 오른다. 자동차가 지나갈 때마다 먼지가 숨막히게 날아드는 이 삭막한 도시에서 더위와 싸워가며 세 시간을 버텨야 한다.

버스 차장 녀석을 다시 만나면 길바닥에 쳐 박아 버리고 싶은 분노가 솟아오른다. 분노의 화신은 굶주린 맹수나 다름없다. 누군가를 물어뜯고 싶어 한다. 결국에 가서는 제 몸까지 먹어 치우려 한다. 나는 긴 호흡으로 분노를 가라앉힌다. 피할 수 없는 운명은 껴안아야 한다. 하지만 분노는 쉽게 가라앉지 않는다.

포카라 행 버스가 출발한다는 정류장에서 출발 시간을 재차 확인해 놓고 그늘진 나무를 찾아 헤맸다. 하지만 적당히 쉴 만한 곳이 보이지 않는다. 무릎 통증을 감내해 가며 무거운 배낭을 짊어지고 헤맨 끝에 병원을 찾아들어갔다. 한국으로 치자면 면 단위의 보건소 정도라 할 수 있는 작은 병원이다. 점심 무렵이라 그런지 환자나 의사들이 보이지 않는다.

"당신은 잘못 왔군요" 분노가 솟아올랐다

▲ 분노심과 후덥지근한 더위에 짓눌려 모든 것을 내동댕이치고 싶었다. ⓒ 송성영


나무 그늘이 드리워진 병원 입구에 그나마 미세한 바람이 감지된다. 열기가 덜한 난간 위에 배낭을 베개 삼아 지친 몸을 뉘였다. 멀쩡한 배낭만 없으면 아무데나 자빠져 있는 거지나 다름없다. 문득 심줄이 툭 튀어 나온 내 손등을 본다. 모든 감각이 예민하게 일어나고 있다. 하지만 나는 지칠대로 지쳐 꼼짝도 할 수 없다. 콘크리트 난간은 내 몸의 열기로 금새 달궈져 등줄기에서 땀이 배어 나온다.

이리저리 몸을 뒤척이다가 반가부좌 자세로 앉아 지그시 눈을 감아 본다. 여전히 분노를 떨쳐내지 못한 내 자신을 바라보다가 눈을 뜨고 자꾸만 시간을 확인한다. 버스 시간에 맞춰 몸을 움직여야 한다. 무거운 배낭을 다시 짊어질 생각을 하니 끔직하다. 업보처럼 무겁게 짓누르는 노트북과 사진기 따위를 다 내던져 버리고 싶어진다.

하지만 나는 그런 생각조차 메모하고 있었다. 분노심 가득한 의식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발버둥 치면서 그 단상들을 끊임없이 메모하고 있다. 내 유일한 밥벌이인 글쓰기가 내 자유로운 영혼을 탈탈 털어가고 있었다. 그렇게 어리석은 내 자신을 직시하자 불처럼 뜨겁게 솟아 올랐던 마음이 조금씩 진정된다.

흐트러진 자세를 바로 하고 다시 눈을 감았다. 얼마나 지났을까. 미세한 바람이 코끝을 스친다. 사람들 인기척에 눈을 떠 시계를 보니 오후 1시를 넘어서고 있다. 저만치 대각선으로 흰 가운을 입은 여의사 앞에 어린 아이를 데리고 온 젊은 아낙네가 보인다.

이대로 다친 무릎을 이끌고 다녀도 상관없을까라는 생각 끝에 이참에 무릎 진찰을 받아 볼까 싶다. 버스 정류장까지는 20여 분 거리, 아직 버스 출발 시간은 충분하다. 하지만 이 병원에도 나름대로 절차가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자 갑자기 머릿속이 복잡해진다. 주사 바늘에 아이가 울음을 터뜨린다.

▲ 낯선 도시에서 만난 네팔 고등학교 학생들이 낯선 이방인을 보자 다들 신기해 하고 있다. ⓒ 송성영


▲ 사진 찍는 것이 부끄러운지 학생들이 우르르 교실로 몰려 들어간다. ⓒ 송성영


복잡해지는 머릿속을 털어내듯 병원을 빠져 나왔다. 포카라행 버스의 출발 시간이 두 시 정각이라고 하지만 언제 출발할지 알 수 없다. 병원에 오기 전에 지나쳤을 작은 학교 마당에 학생들이 보인다.

학교 입구로 들어서자 학생들이 낯선 이방인의 출연에 와르르 웃어댄다. 아무런 관광 자원도 없는 이 낯선 도시에서 외국인 여행객을 처음 접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여학생들은 사진기 앞에 서는 것이 부끄러운지 까르르 웃어가며 교실로 몸을 숨긴다.

학생들의 환한 웃음에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학교에서 빠져나와 허름한 집 옆에서 우두커니 서 있는 아이와 웃음을 나누고 다시 버스 정류장을 향해 발걸음을 옮기는데 저만치 길 건너 구멍가게 앞에 몇몇 사람들과 앉아 있던 중년의 여인이 손짓한다. 분명 나를 향한 손짓이었다. 때마침 목이 말라 생수를 사야 했기에 길을 건너 구멍가게 앞으로 걸음을 옮겼다. 여인은 환하게 웃으며 손으로 뭔가 마시는 시늉을 한다. 여인의 웃는 모습에 누군가의 미소가 겹친다.

그랬다. 북인도 다람살라에서 만난 티베트 여인의 미소였다. 잘못 탄 버스 안에서 티베트 여인은 내게 보살의 미소를 선사했었다. 그 자애로운 보살의 미소로 낯설고 어두운 밤길을 두려움 없이 걸어왔던 기억을 생생하게 떠올리며 나는 그 어떤 알 수 없는 기운에 이끌리듯 네팔 여인의 환한 웃음에 가까이 다가갔다.

물 한 잔으로 날 깨닫게 한 사람들... "돈은 필요없습니다"

▲ 구멍가게 앞에 서 있는 네팔 사람들. 이들 중 한 중년 여인이 내게 물 한 잔을 권했다. 환하게 웃던 사람들이 사진기를 꺼내자 사진관에서 사진을 찍듯이 갑자기 무표정해졌다. ⓒ 송성영


여인은 내게 물 한 잔을 건네주며 앉을 자리를 권한다. 무거운 배낭을 짊어지고 절룩거리며 걷는 내 모습을 안타깝게 바라보고 있었던 모양이다. 어쩌면 내가 기진맥진한 모습으로 병원으로 향하고 있을 때부터 쭉 지켜보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나는 '나마스테' 인사와 함께 그녀가 건넨 물잔을 받아들고 망설이다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 나는 한국 사람입니다. 네팔의 물은 한국인의 몸에 맞지 않습니다."
"......"

그녀는 영어를 알아듣지 못했다. 옆에 서 있던 젊은 여자로부터 현지어로 내 말뜻을 전해들은 여인은 이해한다는 미소를 보낸다. 나는 어느 정도 영어를 할 줄 아는 젊은 여자에게 물잔을 건네주며 말했다.

"고맙지만 생수를 마시겠습니다. 이 가게에서도 생수를 팝니까?"
"이 가게에서는 생수를 팔지 않습니다."

젊은 여자가 내게 물을 권했던 중년 여인에게 다시 말을 전했다. 여인은 옆에 있던 앞니가 다 빠진 노인에게 현지어로 뭔가를 당부하듯 말했다. 잠시 후 노인이 저만치 떨어져 있는 가게에서 생수를 사왔다. 내가 여인에게 돈을 건네자 한사코 거절한다. 젊은 여자가 말했다.

"나의 어머니께서 그것은 당신을 위한 물이라고 합니다."
"아, 고맙습니다."

나는 그녀의 말을 알아듣고 돈을 내밀고 있는 부끄러운 손을 거둬 드렸다. 지팡이를 짚고 말없이 앉아 있던 검은 안경을 쓴 노인이 중년 여인의 딸에게 내가 알아들을 수 없는 현지어로 뭐라고 말하자 그녀가 다시 내게 묻는다.

"한국의 요기이십니까?"
"아니오. 나는 단지 길을 잃은 여행자일 뿐입니다."

검은 안경 사이로 노인의 눈빛이 언뜻 보인다. 부드러우면서도 강렬한 눈빛이다. 그녀 말로는 노인은 이 마을에서 큰 스승으로 모시는 구루라고 한다. 중년 여인과 노인은 남루한 옷차림에 수염발 허연 나를 고행자로 바라봤던 것이다. 길을 잃고 맥이 빠져 있는 고행자에게 시원한 물 한 잔의 보시를 베풀었던 것이다.

그럼에도 나는 이들이 내민 감로수와 같은 물 한 잔을 받아들고 배탈이 날지도 모른다는 의심과 두려움을 가졌던 것이다. 마음을 마음으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단지 물로 받아들였던 것이다. 나는 수행자도 고행자도 아닌 물 한 잔에 두려워했던 단지 어리석은 중생이었다.

분노가 자리했던 가슴에 자비심을 가득 채워준 사람들, 이들과 헤어져 버스 정류장으로 향하는 내 발걸음은 여전히 절룩거리고 있었지만 마음은 한결 가벼워 졌다. 깊은 산속 계곡물 한 방울이 바다에 닿아 있듯이 지친 내게 웃음을 내보였던 골목길 아이와 학생들, 그리고 보살의 환한 미소가 담긴 물 한 잔의 자비는 바다처럼 너른 부처님의 자비나 다름없었다.

나를 속여 생각지도 못했던 도시에 내동댕이친 버스 차장이 떠올랐다. 엉뚱한 버스를 타게 하여 티베트 보살의 미소를 만나게 해줬던 다람살라의 버스차장처럼 그가 자비심을 일깨워 주기 위해 나를 이곳으로 인도해준 메신저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가 아니었으면 길잃은 여행자에게 건네는 물 한 잔의 자비심을 어떻게 깨달을 수 있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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