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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로틱 시티' 카주라호 사원의 조각들, 놀랐다

[북인도 라자 문화기행 16] 카주라호 서부사원군, 성을 예술로 승화시킨 사원의 조각들

등록|2016.03.29 14:57 수정|2016.03.29 14:57

▲ 카주라호 사원군 지도 ⓒ 이상기


건기에 기온이 낮아서 그런지 아침에 안개가 자욱하다. 우리는 호텔 정원을 잠깐 산책한다. 나무에까지 꽃 치장을 해 놓았다. 인도인들은 정말 꽃을 사랑하는 모양이다. 아침을 먹고 난 우리는 카주라호 서쪽사원군으로 향한다. 카주라호는 찬델라 왕조의 수도로 9세기에서 11세기 사이 번성했다. 이때 모두 85개 정도의 사원이 지어졌고, 현재 그중 25개 사원이 남아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중 서쪽사원군에 12개가 남아있다. 이들은 시바와 비쉬누 등에게 바쳐진 힌두사원이다. 우리는 매표소에서 표를 끊은 다음 1㎢ 정도 크기의 사원 영역 안으로 들어간다. 입구가 동쪽에 있는데, 그것은 사원의 출입구가 동쪽으로 나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시계 방향으로 10개의 사원을 둘러본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사원이 락슈미 성소, 바라하 성소, 락슈마나 사원, 마탕게스바라 사원이다.

▲ 락슈마나 사원 ⓒ 이상기


이 넷 중 락슈마나 사원이 가장 크고 높으며, 많은 조각으로 장식되어 있다. 락슈마나 사원은 앞에서 보면 4개의 탑으로 되어 있다. 가장 높은 탑을 시카라(Sikhara)라고 부르며, 그 아래 지성소인 가르바 그리하(Garba griha)가 있다. 이 지성소에 들어가려면 입구 홀인 아르다 만다파(Ardha mandapa), 두 번째 홀인 만다파(Mandapa), 세 번째 홀인 마하 만다파(Maha madapa), 지성소 입구인 안타랄라(Antarala)를 지나가야 한다.

아르다 만다파에서부터 가장 안쪽 지성소에 있는 비쉬누가 보인다. 지성소로 들어가는 좌우에는 기둥과 장식이 가득하다. 기둥은 기본 팔각형에, 원형 또는 줄무늬 형식의 것도 있다. 기둥의 상단부 그리고 벽에는 수많은 조각품이 있다. 대표적인 것이 천상의 무희인 압사라(Apsara)와 섹시함의 극치를 보여주는 천상의 미녀 수라순다리(Surasundari)다. 

▲ 지성소의 비쉬누상 ⓒ 이상기


이곳에는 또한 비쉬누의 화신들이 표현되어 있다고 하는데, 그중 몇몇을 확인할 수 있었다. 비쉬누의 화신은 10가지 또는 22가지로 나타난다. 그중 10가지는 물고기, 거북이, 멧돼지, 반은 인간이고 반은 사자인 나라심하(Narasimha), 난장이인 바마나(Vamana), 도끼를 든 라마인 파라슈라마(Parashrama), <라마야나>의 주인공으로 미덕(Virtue)의 화신인 라마, <마하바라타>의 주인공으로 사랑의 화신인 크리슈나, 불교에서 해탈에 이른 성자 부처, 영원성(Eternity) 또는 어둠의 파괴자로 불리는 칼키(Kalki)를 말한다.

사원 밖에 표현된 기기묘묘한 조각들

▲ 락슈마나 사원의 성애 장면 ⓒ 이상기


▲ 락슈마나 사원의 성애 장면 ⓒ 이상기


사원을 나온 우리는 이제 사원을 한 바퀴 돌며 밖에 표현된 조각들을 살펴본다. 이들 조각은 힌두교 신상, 압사라, 수라순다리, 남녀의 사랑 장면을 표현한 미투나(mithuna), 악기를 연주하는 악사들, 코끼리, 낙타, 말 등 동물을 표현하고 있다. 그중 가장 인상적인 조각이 다양한 형태의 미투나상이다. 유혹, 키스, 애무 같은 단순한 장면부터 요가를 배운 사람만이 할 수 있는 고도의 체위까지 사랑의 모든 것을 보여주고 있다.

나는 이들 조각을 남쪽, 서쪽, 북쪽의 순으로 살펴본다. 동쪽은 사원의 입구여서 조각이 별로 없다. 그중에서도 남쪽과 북쪽의 중간 높이 정도에 3단으로 표현된 조각이 던져주는 메시지가 가장 큰 것 같다. 아래 단 가운데 인간적인 사랑을 표현한 미투나상이 있다. 이것은 가장 에로틱하고 노골적이다. 체위도 다양한 모습으로 표현된다.

▲ 이상한 체위에 눈을 가리는 사람들 ⓒ 이상기


이것이 중간 단으로 올라가면 팔짱을 낀 정도로 완화되어 나타난다. 이들은 비쉬누와 락슈미 부부로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가장 위단에 성적 에너지를 승화시킨 판치 아그니(Panch Agni)가 나타난다. 그 외 외벽 곳곳에서 다양한 체위의 성행위, 동물과 인간의 성행위 등 민망한 장면을 볼 수 있다. 이들을 보고 사원을 내려오면, 기단부 벽을 따라 전쟁을 하러 나가는 전사들의 모습도 볼 수 있다. 락슈마나 사원에는 인간과 신들의 희로애락이 생생하게 표현되어 있다.

이처럼 대단한 종교성과 예술성을 지닌 락슈마나 사원은 찬델라 왕조의 야소바르만(Yasovarman) 왕에 의해 930~950년 사이에 만들어졌다. 사원 내외부를 자세히 보고난 우리는 계단을 내려가 건너편 락슈미 성소와 바라하 성소로 향한다. 락슈미는 비쉬누의 부인으로 부(Wealth)를 가져다주는 여신이다. 그런데 락슈미 성소는 볼 게 별로 없다.

멧돼지 바라하는 어떤 모습일까?

▲ 멧돼지 바라하 ⓒ 이상기


그렇지만 바라하 성소에는 비쉬누의 세 번째 화신인 멧돼지 조각이 있어 이를 자세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바라하 성소의 입구는 서쪽에 있다. 계단을 따라 올라가면 사각형의 홀 한 가운데 길이 2.7m, 높이 1.8m의 멧돼지가 서쪽 락슈마나 사원을 향하고 있다. 주둥이와 코를 크게 표현했고, 네 다리도 상당히 굵게 만들었다. 그런데 멧돼지의 온 몸에 조각이 가득하다. 672개나 되는 신의 형상이 조각되어 있다고 한다.

그중 다리 부분에는 신상을 상대적으로 크게 표현했다. 몸뚱이 부분에는 줄을 그어 그 안에 신들을 나란히 조각해 넣었다. 다리 아래 바닥에는 코브라 세샤나가(Seshanaga)가 바라하를 지키고 있다. 그리고 바라하의 왼발 앞에는 지상의 어머니신인 프리트비(Prthvī Mātā)가 서 있었다고 하는데, 현재는 발만 남아 있다. 바라하 위로는 천장이 있으며, 그곳에는 커다란 연꽃장식이 있다. 바라하 성소는 900년에서 925년 사이 만들어졌다.

칸다리야 마하데바 사원 이야기

▲ 쉬바의 상징 링가 ⓒ 이상기


우리는 이제 락슈마나 사원 서쪽에 있는 칸다리야 마하데브(Kandariya Mahadeva) 사원을 보러간다. 여기서 칸다리야는 동굴을 뜻하고, 마하데바는 위대한 신을 뜻한다. 그러므로 칸다리야 마하데바 사원은 시바신에게 바쳐진 사원이다. 왜냐하면 시바가 카일라스산의 동굴에서 명상을 통해 깨달음을 얻은 위대한 신이기 때문이다. 계단을 통해 이 사원엘 올라가면 우리는 사르둘라(Sardula)를 만나게 된다. 사르둘라는 큰 사자와 작은 인간이 끌어안고 있는 모습의 조각으로 찬델라 왕조의 상징이다.

이것을 보고 사원 안으로 들어가면 지성소에서 시바의 상징인 링가를 볼 수 있다. 지성소 위로 산처럼 솟은 시카라의 높이가 31m나 된다. 이 사원은 길이도 31m, 폭이 20m에 이르며, 사원 내부가 입구에서 지성소까지 다섯 단계로 이루어졌다. 그리고 1025~1050년 사이 찬델라 왕조의 비디야다라(Vidhyadhara) 왕에 의해 만들어졌다고 한다. 그러므로 칸다리야 마하데바 사원은 서부사원군에서 가장 크고 웅장하며, 가장 늦게 세워진 사원이다.

▲ 에로틱 미투나 ⓒ 이상기


사원 밖으로 나온 우리는 남쪽부터 서쪽을 거쳐 북쪽으로 외벽의 조각들을 살펴본다. 이곳에서도 에로틱한 성애장면이 두드러진다. 락슈마나 사원과는 달리 상중하 삼단에 모두 4명이 만들어가는 에로틱 탄트라 장면이 표현되어 있다. 두 명이 관계를 갖고, 여성 두 명이 좌우에서 도와주는 모습이다. 여성 상위의 체위를 보여주는 고난도 미투나상은 요가를 배우지 않고는 불가능해 보인다. 성애의 하이라이트다.

에로틱하다기보다 오히려 인간적인 모습들

서쪽 방향에는 칸다리야 마하데바 사원 옆으로 데비 자가담비(Devi Jagadambi) 사원, 치트라굽타(Chitragupta) 사원이 나란히 서 있다. 이들 사원은 11세기 초에 만들어졌다. 그렇지만 데비 자가담비는 비쉬누에게, 치트라굽타는 태양신 수리야에게 봉헌되었다. 데비 자가담비 사원은 성애장면에서 앞에서 본 두 사원에 비해 예술성과 노골성이 떨어진다. 치트라굽타 사원은 에로틱한 장면보다는 일곱 마리 말이 끄는 마차를 탄 태양신 수리야의 모습이 눈에 띈다.

▲ 사원 입구의 두 마리 코끼리 ⓒ 이상기


치트라굽타를 보고 난 우리는 서부사원군의 입구 쪽으로 나가면서 비슈바나타(Vishvanatha) 사원을 보러간다. 사원 앞에 두 마리 코끼리가 지키고 있고, 그 사이로 난 계단을 오르면 왼쪽에 비슈바나타 사원이, 오른쪽에 황소 난디 성소가 있다. 나는 황소 난디를 먼저 살펴본다. 난디는 시바신이 타고 다니는 동물로, 사원 앞에서는 사원을 지키는 문지기 역할도 한다. 난디는 길이가 2.2m, 높이가 1.8m나 된다. 등과 목에 띠장식을 하고 있어 길들여진 소임을 알 수 있다.  

난디 성소 맞은 편에 있는 비슈바나타 사원은 1002년 당가데바(Dhangadeva) 왕에 의해 완성되었다고 한다. 이 사원에는 시바신이 모셔져 있다. 그래서 지성소에는 에메랄드로 만든 링가와 돌로 만든 링가 두 개가 놓여 있다. 그러나 안과 밖이 공사중이어서 사원의 조각물들을 제대로 볼 수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골적인 성애장면을 곳곳에서 확인할 수 있다. 거꾸로 선 체위, 배위 체위, 여성을 들어 올린 체위 등이 눈에 띈다.

▲ 황소 난디 ⓒ 이상기


비슈바나타 사원 주위에는 빠르바티 사원과 프라타페스와르(Pratapeswar) 사원이 있다. 빠르바티 사원은 이름과 달리 비쉬누에게 헌정되었다고 한다. 프라타페스와르 사원은 직사각형의 흰색 벽으로 이루어진 특이한 사원이다. 200년 전에 세워진 사원으로 시바에게 헌정되었다고 한다. 이들 사원을 다 보고 나오다 보면, 입구에서 카주라호 사원군이 유네스코 세계유산임을 알리는 표지판을 볼 수 있다.

카주라호 사원의 건축과 조각은 1000년 전후 힌두교와 자이나교의 색다른 모습을 보여주는 위대한 유산이다. 카주라호 사원군은 이처럼 인간의 창조적 천재성을 보여주는 문화유산일 뿐 아니라, 10세기에서 13세기까지 번성했던 찬델라 왕조의 문화와 종교적인 전통을 보여주기 때문에 유네스코 세계유산이 되었다. 그런데 이러한 사원군이 카주라호 동쪽과 남쪽에도 남아 있다. 우리는 그중 동쪽 사원군을 보러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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