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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격 없는 사람이 권력을 쥐면, 이 꼴 난다

[한국 소설이 건네는 이야기 17] 이동원의 <살고 싶다>

등록|2016.03.30 11:39 수정|2016.03.30 11:39
군대 가는 친구들을 따라 논산 훈련소도 몇 번 가본 적 있고, 휴가 나온 선배, 동기, 후배들 술자리에 불려가 제가 듣기엔 다 거기서 거기인 군대 이야기를 참 많이도 들었던 것 같습니다. 군대라는 곳은 눈에 보이지 않는 커다란 이야기보따리 한 자루씩을 남자들의 가슴에 심어주는 것 같아요.

이야기보따리는 평생 그 크기가 줄어들지도 않는가 봅니다. 아빠 역시 아직까지 군대 이야기를 하는 거 보면. 틈이 생겼다 하면 어떻게든 치고 들어와 기어코 군대 이야기를 하고야 마는 아빠를 보면 그 이야기보따리는 가슴이 아닌 뇌에 심어져 있는 것도 같습니다. 장기기억을 관장하는 부분에요.

가끔은 끔찍한 이야기도 들었습니다. 엄청 맞았다고 했습니다. 이유불문 이랬습니다. 때리면 맞고, 또 때리면 맞고, 하는 게 군대랬습니다. 아빠는 자기를 때린 선임의 얼굴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고 했어요. 군대건, 군대가 아니건, 그런 일은 벌어지면 안 된다고 아빠는 말했지만, 우리도 다 알다시피 지금도 그런 일은 군대에서건, 군대가 아닌 곳에서건, 벌어지고 있습니다.

군대에서 벌어진 자살 사건 

▲ 책 표지 ⓒ 나무옆의자

군대에서 사람이 죽었습니다. 자살이라 판명됐습니다. 군은 최대한 이 사건에서 발을 빼려 합니다. 개인의 부적응 문제였다고 발표하면 그만입니다. 하지만 이번 사건은 예외적입니다. 군 내부의 높은 누군가가 자살 동기를 알길 원합니다. 아무도 모르게 동기를 파헤칠 사람이 필요합니다. 이필립이 소환됩니다. 죽은 선한이와 가장 친했던 친구 필립이는 그렇게 다시 '광통'으로 돌아오게 됩니다.

'광통'이란 국군 광주 통합병원을 말합니다. 필립은 일병을 달고 유격 훈련 중 무릎 오른쪽 인대와 연골이 파열됐습니다. '광통'에서 치료를 받은 후 다시 복귀했지만, 군생활은 그의 무릎을 다시 망가뜨렸죠.

'광통'에 두 번째 온 그는 선한이와 가깝게 지냈습니다. 선한이는 시인이자 화가였습니다. 메모장을 들고 다니며 남몰래 시를 적고 그림을 그렸습니다. 선한이가 가장 좋아하는 시는 천상병 시인의 <귀천>.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나는 날
가서, 아름다웠다고 말하리라.

착하고 삶을 긍정하던 선한이와 참 잘 어울리는 시였습니다. 그래서 필립은 더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삶은 아름다운 것이라 여기던 선한이가 자살이라니요. 필립은 조용히 선한이 자살 사건에 다가갑니다. 그런데 필립이 움직이면 움직일수록 주위 공기가 사뭇 달라지더니 연이어 연쇄 자살 사건이 터집니다. 이곳에선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요.

이동원의 <살고 싶다>는 삶을 사랑했던 한 청년의 자살, 그 배후를 파헤치는 과정을 차분한 목소리로 그리고 있습니다. 사건이 벌어지고, 그 사건을 파헤치는 과정을 다루고 있다는 면에서 이 소설의 구조는 여느 추리 소설과 다를 바 없습니다. 그러나 그 구조를 튼튼히 받쳐주는 건 논리의 힘이 아닌 성찰의 힘이었습니다.

자격 없이 힘을 쥔 사람들

군대 문화는 계급장 문화입니다. 계급이 다입니다. 계급이 권력을 나타내는 거죠. 권력은 힘입니다. 힘을 쥔 자는 힘없는 자에게 폭력을 휘두를 수 있습니다. 육체적 폭력뿐만 아니라 정신적 폭력도요. 그런데 바로 여기에서 문제가 발생하지요. 책에선 말합니다.

군대의 온갖 불합리는 힘을 가질 자격이 없는 자들에게 힘이 주어지는 데서 나온다. -<살고 싶다> 중에서

힘을 가질 자격이 없는 자들이 힘을 가지고 그 힘을 휘둘렀을 때, 필립은 왜라고 묻는 사람입니다. 무릎이 다쳐 광통에서 치료를 하고 복귀한 필립을 사수는 때립니다. 필립은 때리는 이유를 묻습니다. 반항하려는 건 아니었습니다. 이유를 알아야 다음부터 잘못을 하지 않을 테니까요. 하지만 사수는 이유는 대지 않고 때리기만 합니다. 때리는 이유는 사실 분명합니다. 본인에게 힘이 있기 때문에 그걸 휘두른 것뿐이죠.

소설에서 필립의 '왜'는 매우 중요합니다. 소설은 누가 범인이냐 보다, 범인이 '왜' 그랬는지를 더 중요하게 다루거든요. 사건의 전모가 하나씩 밝혀지고, 사건에 연루된 인물이 한 명씩 드러날 때마다, 필립은 인물에게 다가가 '왜'라고 묻습니다. 필립의 질문에 한 인물은 이렇게 대답합니다.

"(…) 사람이 자기 위해 살지, 누구 위해 살아? 넌 너 위해서 안 살아? 쉽고 편안하고 좋은 길이 있는데 왜 마다해? 갈 수 있으면 가야지."
"누굴 밟고서라도?"
"넌 그렇게 안 배웠어? 너도 네 친구처럼 순진한가 보구나. (…)" - <살고 싶다> 중에서.

간단합니다. 자신의 편의를 위해서라면 그 누구라도 밟고 올라갈 수 있다고 믿는 사람. 이 사람이 아주 작은 힘이라고 손에 쥐게 된다면 어떻게 행동할까요. 그 힘을 이용해 가차 없이 타인을 향해 폭력을 휘두르겠지요.

결국 사건은 해결됩니다. 범인들은 죗값을 치르지요. 하지만 필립의 진짜 고민은 여기에서 시작됩니다. 만약 필립에게도 힘이 쥐어졌더라면, 자신은 어떻게 행동했을까 하는 것이지요. 필립은 군대에서 많이 봐왔습니다. 착하고 합리적이던 사람들이 힘을 갖자 갑자기 돌변하던 모습을요. 권력이 사람을 변화시키는 과정을요.

필립은 이러한 모습을 군대 밖에서도 역시 보게 됩니다. "조그마한 권력에 취해 횡포를 부리고, 그 권력에 빌붙어" 살아가는 사람들은 어디에나 있으니까요.

책은 생각하게 합니다. 그렇다면 나는 어떤 사람인가. 혹 내게도 권력이 쥐어지면, 그게 아무리 작은 권력일지라도, 나는 그걸 휘두를 사람인가. 책에서 필립은 이러한 질문에 확답하지 못했습니다. 대신 끊임없이 생각했습니다. 인간에 대해, 자기 자신에 대해서요.
덧붙이는 글 <살고싶다>(이동원 /나무옆의자/2014년 05월 23일/1만3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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