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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졸 월급 650만 원, 대학에 미련 없다

[캠퍼스 옵저버 ⑧] 독일 유학생들에게 묻다(2), '마이스터'가 무슨 뜻이죠?

등록|2016.04.12 10:38 수정|2016.04.12 1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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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학생들에게 묻다' 시리즈는, 한국 대신 외국의 교육을 선택하고 떠난 유학생들(미국, 유럽, 아시아)의 목소리를 들어보는 기획입니다. 지난 2회차 독일 편 독자 반응이 좋았습니다. 성원에 힘입어 독일 직업교육 이야기를 해봅니다. - 기자 말

한국 청년이 힘들다고 하면, 누군가는 '투표를 하라'고 말한다. 물론 투표는 하나의 대안이지만, 투표가 대안이라고 주장하려면 '구체적인 비전'이 대안 속에 포함되어야 한다. 제대로 된 비전을 내놓으려면 제대로 된 현실 파악부터 필요하다. 하지만 각 정당이 내놓은 공약을 보고 있노라면, 기성 정치권에 눈에 비친 청년 고통 대부분은 기껏해야 일자리 문제인 듯하다는 점이다.

일자리는 중요한 문제 중 하나지만 청년들의 '공통 관심사'는 아니다. 4년제 대졸자들은 '단군 이래 최고 스펙'을 갖춘들 능력에 걸맞은 일자리를 얻지 못해 고통 받는다. 하지만, 4년제 이하의 청년들은 오히려 '저질 노동'에 고통 받기 쉽다. 표가 아쉽다면 이 두 집단 모두의 '공통 비전'을 찾아야 한다.

▲ 청년은 '균일한' 집단이 아니다. ⓒ 하지율


'힘든 일은 하기 싫지? 눈 낮춰서 중소기업가면 일 많다'는 말은 '당신 자식이면 중소기업 보내겠느냐'는 반발만 살 뿐이다. 그래서 정부·여당은 기업에게 '일자리 쪼개기'와 '쉬운 해고'를 허용하자는 대안을 내놓았다(노동 유연화). 벌써 고학력 청년의 대기업 입사 기회가 늘고, 저학력 청년의 대기업 진입 장벽이 낮아져 이직 기회가 늘 것이라는 주장도 나온다.

노동 유연화는 덴마크처럼 탄탄한 실업수당과 사회보장 같은 안전장치가 없으면, 이직 기간에 생계가 위협받고 나락으로 떨어져 회생하지 못하기 십상이다. 안전장치를 갖추려면 덴마크처럼 높은 세금을 걷고 사회보장 정책을 펴야 한다. 하지만 잘 알려졌듯 정부·여당은 '증세없는 복지'를 고집한다. 한편 더불어민주당은 '청년고용할당제'와 '구직 수당'을 비전으로 제시했다. 이 역시 '공통 비전'이 되기에는 한계가 있다.

정의당은 여기에 '양질의 일자리 늘리기'를 추가했다. 기간제 고용과 파견 노동을 규제해 비정규직 비중을 절반으로 줄이겠다는 공약이다. 노동당은 아예 정규직/비정규직 구분없이 '재벌 증세' '최저임금 1만 원' '노동시간 단축'을 내걸었다. 각 당 공약의 현실성을 최종 판단하는 건 유권자의 몫이다. 다만 중소기업 일자리가 있기는 하지만, 처우가 낮고 미래가 어두워 청년의 등을 함부로 등 떠밀 수 없는 상황이라는 점은 짚고 넘어가자.

독일은 어떨까? 중소기업 노동자가 '선생님'소리 듣는다

▲ 2015 포드 워크숍(Ford workshop) ⓒ 카이


독일의 분위기는 한국과는 좀 다르다. '카이(Kai)'라는 현지 이름으로 자신을 소개한 한국인 독일 유학생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카이는 현재 독일 바이에른 주의 한 전문직업학교(Beruffachschule)에서 3D를 공부한다. 3D란 한국의 산업디자인과 비슷한 분야다.

독일의 직업교육은 초등교육과 중등교육 1과정을 마친 후, 중등교육 2과정부터 시작한다. 직업교육을 담당하는 학교들은 (카이가 다니는) 전문직업학교, 직업학교(Berufschule), 기술시험학교(Pruefstechnikschule) 등이 있다. 직업학교와 기술시험학교는 곧잘 취업과 연계되는 교육과정이고, 전문직업학교 학생들은 자주 전문학교(Fachschule)에 진학한다. 카이도 올해 9월 전문학교 진입을 목표로 하루 6~8시간씩 수업을 받는다.

전문학교에 진학한 학생들은 자주 '마이스터슐레'라는 교육과정을 밟는다. 이 마이스터슐레를 마치면 독일 사회에서 높은 인정을 받는 '마이스터(Meister, 장인)' 승급 시험을 볼 자격을 얻는다. 마이스터는 '선생님'이라는 뜻의 라틴어에서 유래했다. 직업교육이 아닌 일반대학 석사학위 '마기스터(Magister)'와도 어원이 같다. 단어 하나만 봐도 독일 블루 칼라에 대한 사회적 존경심의 수준을 알 수 있다.

물론 모든 전공이 마이스터 자격까지 연계되지는 않는다. 카이의 전공도 그렇다. 그러나 굳이 자격증을 받지 않아도, 자신의 분야에서 오래 일한 노동자들은 자연스레 마이스터로 대접받는다. 직업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마이스터는 4000~5000유로(약 519만~650만 원)의 월급을 받기도 한다. 카이는 "독일인들은 대학 교육에 미련이 없다. 블루 칼라가 더 대우를 받으니까. 노동자의 권위가 낮은 한국과는 많이 다르다"고 말했다.

▲ 이원화교육을 받는 독일 학생들. ⓒ 주한독일대사관 공식 홈페이지


또한 독일의 직업교육은 '아우스빌둥(Ausbildung)'이라는 이론과 현장의 '쌍둥이 교육'이다. 카이처럼 특정 회사에 소속되지 않고 학생견습생으로 이론과 실습을 익힐 수도 있지만, 기업에 아쭈비(Azubi)나 레어링(Lehrling)이라 불리는 견습공으로 소속돼 1000유로(약 130만 원) 정도의 월급을 받으며 일하고 주기적으로 학교에서 이론을 배우기도 한다. 두 경우 모두 마이스터슐레를 받을 수 있다.

카이는 "독일의 성장 동력은 중소기업이 탄탄하고 블루칼라 노동자를 천대하지 않는 태도다. 한국은 손기술을 무시하고 전부 자동화, 기계화 시켜 많은 직업들이 사라질 위기다. 독일은 직업을 없애기 보다 재교육을 시키고, 사회보장의 일환으로 재교육 기간 동안 일정 금액을 지원한다. 독일은 손기술을 중요시하는 풍토로 돌아가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서 "학교 수업 중 사회과목(SozialKunde)이 있는데 노동법과 기본법에서 배운다. 노동자들이 정당한 권리를 누리도록 교육받고, 정치적 가치관을 세울 수 있도록 수업시간마다 토론을 한다. 요즘 외국인 혐오에 대해서도 성숙한 독일인의 모습을 찾고자 외국인인 내 입장과 내가 겪는 차별에 대해서 많이 경청해준다"고 말했다.

하지만 카이는 화려함만 보고 섣불리 독일 직업교육의 문을 두드리지는 않았으면 좋겠다고 조언했다. 계획대로 상황이 흘러가는 건 아니라 여러 가지 경우의 수를 생각해놓아야 한다는 것이다. 학교정보도 유학생이 찾기는 쉽지 않고, 철저히 계획을 세우고 유학을 나와도 많이 외롭고 한국이 생각날 때도 있다고 했다.

카이 말이 맞다. 모든 청년이 독일로 유학을 떠날 수는 없다. 대부분 청년은 여전히 한국에서 살아가야 한다. 그래서 더더욱 한국 정치권의 청년 공약들이 독일처럼 '노동의 가치'를 진지하게 이해하고 반영했는지, 다시 한 번 생각해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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