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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시장님, 많이 외로우시지요?

[BIFF를 지지하는 젊은 목소리 ⑨] 이광국 감독의 진심 편지

등록|2016.03.31 12:09 수정|2016.04.12 19:31
지난 20년간 아시아를 대표하는 영화제로 성장해온 부산국제영화제가 부산시의 압력으로 인해 운명의 기로에 서있습니다. 영화계는 독립성과 자율성을 외치며 결사항전 분위기입니다. 당장 올해 영화제 개최조차 점점 불투명해지는 상황입니다. 백척간두의 위기에 서 있는 부산국제영화제, <오마이스타>는 누구보다 이 사태를 애가 타며 지켜보고 있는 젊은 영화인들의 목소리를 전달합니다. 그 아홉 번째로 <꿈보다 해몽>의 이광국 감독입니다. [편집자말]

▲ 제16회 부산국제영화제 당시 <로맨스 조>를 보고 저를 찾아와 악수를 청하시며 "너무 즐거운 시간이었다. 이런 시간을 선물 해줘서 감사하다" 라고 인사를 해주셨던 아르헨티나 할아버지입니다. ⓒ 이광국 제공


20년 전, 나는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떠올려본다.
어느 황량한 비무장지대 안에서
제대를 하면 꼭 영화를 시작해야겠다고 다짐하며,
1년여 남은 그날을 손꼽아 기다리던 22살의 육군 상병이었다.
그 해(1996년) 부산국제영화제가 태어났다.
20년의 시간이 지난 지금 나는 영화를 만들고 있고,
스무 살을 넘긴 부산국제영화제는 많이 아프다.

2011년 <로맨스 조> 라는 첫 장편영화를 들고 부산을 찾았다.
온갖 고생 끝에 영화를 만들게 되었다는 감상은 굳이 표현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쉽게 제작되는 영화는 한 편도 없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기 때문이다.

부산에서 처음 내 영화를 상영하던 날.
관객들 틈에서 열심히 반응을 살피던 기억과 무사히 상영이 끝나던 순간의 아쉬움. 
긴 시간동안 당신 자식의 앞길에 행운이 깃들길 바라시던 부모님 앞에서
부끄러움과 어색함을 숨기며 나누었던 관객들과의 대화.
몇 년이 지났어도 그 순간의 감흥은 쉽게 사라지지, 아니 조금도 사라지지 않았다.
만드는 즐거움과는 또 다른 즐거움을 경험하며
영화를 만든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를 깨달았다.

내 영화는 독립영화라고 불린다.
좋은 영화와 그렇지 못한 영화의 구분 말고 왜 다른 구분이 필요한지 모르겠다.
투박하고 모자라지만,
내 영화가 천 만 영화보다 못하다고 생각지 않으며
내 배우들이 천 만 배우들보다 못하다고 생각지 않는다.
내 영화가 세상을 자유롭게 날아다닐 수 있기를 꿈꾼다.

부산국제영화제는
지난 20년이라는 긴 시간동안
국내외의 이런 감독들에게, 좋은 영화를 찾는 관객들에게
더 없이 행복한 시간과 공간을 마련해 주었다.
자본의 논리로는 갈 곳 없는 영화들을 발굴하고 응원하며,
그 영화들이 국적도 언어도 다른 세상으로 날아다닐 수 있게 도와주었다.
지구 정반대편 아르헨티나의 할아버지에게
즐거운 시간을 경험하게 해줘서 감사하다는 인사를 받게 해주었다.
나와는 다른 시간의 축 위에 있는 그 할아버지를
다시 만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그의 기억 안에 내 영화가, 내 기억 안에 그 인사는 영원할 수 있다.
부산국제영화제는 한 번도 이런 역할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그런데 왜?
몇몇 개인의 정치적인 이해타산으로 영화제를 흔들고 있는지 답답할 뿐이다.
그들이 왜 그런 행동을 하는지는 그들 스스로 너무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이 자리를 빌어 감히 그들에게 부탁의 메시지를 남긴다.

▲ 지난해 10월 5일 부산시청에서 열린 국회 안전행정위원회의의 부산시 국정감사에서 서병수 시장이 의원들의 질문을 듣고 있다. ⓒ 정민규


" 많이 불안하시지요?
  그렇게 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렇게까지 하지 않으셔도 당신들은 계속 잘 살 겁니다.
  지금도 충분히 그렇게 보입니다.

  우리는 그저 영화를 만들고, 보는 사람들입니다.
  뭐가 그렇게 무서우신가요.
  잘 살고 계시잖아요.

  굳이 설명 드리지 않아도
  창작의 자유가 왜 중요한지 잘 아시잖아요.
  부산시민들, 아니 국민들은 바보가 아닙니다.
  부산국제영화제는 부산시의 소유물이 아닙니다.
  대한민국을 대표합니다.
  세계화 좋아하시잖아요. 그런 세계가 우리를 보고 있습니다.
  이런 상투적인 말들 잘 아시잖아요.
  창피해 죽겠습니다.

  다시 한 번 말씀드리지만
  우리는 그저 영화를 만들고, 보는 사람들입니다.
  차라리 많이 외롭다고, 그래서 관심 받고 싶어서 이러시는 거라고
  해주시면 좋겠습니다.

  부탁드릴게요.
  이러지 마시고 부산국제영화제에 오셔서 좋은 영화 한 편 같이 봅시다.
  그 깊은 외로움을 다 덜어드리진 못하겠지만
  그래도 도움이 될 겁니다."

마지막으로 부산국제영화제를 지키기 위해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는
많은 분들께 감사의 메시지를 남긴다.

" 보잘 것 없지만 진심으로 응원하고 있습니다.
   아프지 마세요."

이광국 올림

1975년생인 이광국 감독은 장편 <로맨스 조>로 데뷔했다. 그전까지 홍상수 감독의 조감독으로 영화계에 존재감을 알려왔다.

<로맨스 조>로 그는 제16회 부산국제영화제 시민 평론가 상을 받았다. 또한 2014년에 발표한 <꿈보다 해몽>으로 역시 제19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CGV 무비꼴라쥬 상을 받았다.


[BIFF를 지지하는 젊은 목소리]
[① 백재호] 부산시민 여러분, 부디 부산국제영화제 지켜주세요
[② 이승원] 누가 BIFF라는 오아시스를 소유하려 하는가
[③ 이근우] "저는 이 영화 부산국제영화제에 낼 거예요"
[④ 조창호] 서병수 시장에게 꼭 보여주고 싶은 한 장의 사진
[⑤ 박석영] 저는 믿습니다, BIFF 키워온 부산 시민들을
[⑥ 이돈구] 부산국제영화제는 내게 기적이다
[⑦ 박홍민] 영화제 제1명제: 초청되는 영화에는 성역이 없다
[⑧ 지하진] 영화 속 유령들까지 부산영화제를 지킬 것이다

* 우리는 부산국제영화제를 지지합니다. '부산국제영화제지키기 백만서명운동 사이트' (http://isupportbiff.com)에서 관련 소식을 접할 수 있습니다. #isupportbif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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