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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자는 왜 있고, 파라솔은 왜 있지?

[북인도 라자 문화기행 19] 사르나트 고고학 박물관

등록|2016.04.06 10:05 수정|2016.04.06 10:05

▲ 발굴 당시 아쇼카 석주 4사자상 ⓒ 사르나트 박물관 책자


사르나트 고고학 박물관은 사르나트 유적지에서 지난 200년 동안 발굴된 불교 유물을 전시하고 있다. 우리는 이들을 보기 위해 전시관으로 간다. 전시관은 ㄷ자형으로 되어 있고, 건물의 가운데 출입구가 있다. 건물로 들어서면 중정이 있고 좌우로 전시공간이 펼쳐진다. 좌측으로 가면 불교 문화유산을 볼 수 있고, 우측으로 가면 힌두교 문화유산을 볼 수 있다. 그러므로 사르나트 고고학 박물관은 불교와 힌두교 전문박물관으로 볼 수 있다.

중정에는 그 유명한 아쇼카 석주 기둥머리에 있던 4사자상이 전시되어 있다. 이것은 사르나트 박물관의 상징일 뿐 아니라, 인도의 상징이기도 하다. 그것은 4사자상이 인도 국가 문장으로 국기에도 들어가 있기 때문이다. 4사자상 아래 원통에는 네 마리 동물이 새겨져 있고, 그 동물 사이에 4개의 법륜이 있다. 여기서 네 마리 사자, 네 마리 동물, 네 바퀴는 4가지 성스런 진리 즉 4성제를 의미한다.

이곳에 새겨진 네 마리 동물은 코끼리, 말, 황소, 사자다. 이들은 불교와 힌두교에서 신성시하는 동물로 법륜을 굴리는 모습이다. 이들 조각 아래에는 아래쪽을 향한 연꽃 받침이 있다. 불교 용어로는 이를 복련(覆蓮)이라고 한다. 기단부를 포함한 사자상의 높이는 2.15m이다. 이것은 기원전 250년 경 아쇼카왕에 의해 만들어졌고, 현장법사의 <대당서역기>에서도 그 존재를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그 후 이것이 땅에 묻혔다가 1904년 말 외르텔에 의해 발굴되어 박물관에까지 오게 된 것이다.    

불교 전시관에서 만난 문화유산들

▲ 보살상 덮개 파라솔 ⓒ 사르나트 박물관 책자


아쇼카 석주를 보고 왼쪽으로 가면, 두 개의 전시실에 불교 문화유산이 전시되어 있다. 전시물 중 가장 먼저 내 눈에 들어오는 것이 기원 후 1세기 쿠샨왕조 때 붉은 사암으로 만든 파라솔(Chhatra)이다. 이것은 기둥에 고정시켜 보살상의 머리 부분을 덮는 일종의 양산으로, 광배처럼 보살상을 신성하게 만드는 기능을 한다. 지름이 3m나 되고, 가운데 고정시키기 위한 구멍이 있다.

평면을 크게 스물네 부분으로 나누고, 동식물과 연꽃 문양을 새겨 넣었다. 그중에서도 쌍어문, 화문, 당초문 등이 눈에 띈다. 파라솔 옆에는 같은 시대 만들어진 보살상이 있다. 소위 마투라 불상으로 불리는 것으로, 간다라 불상에 비해 인도적이다. 불상의 높이는 2.5m인데, 얼굴과 오른팔이 상당히 훼손되었다. 다음 전시실로 들어가면 5세기 굽타시대 석불입상이 보인다. 굽타 시대 불상은 쿠샨시대의 것에 비해 예술성이 훨씬 높아졌음을 알 수 있다.

▲ 부처의 일생을 묘사한 조각 ⓒ 사르나트 박물관 책자


특히 얼굴 부분의 조각이 뚜렷하다. 동그란 얼굴, 반달처럼 치켜 올린 눈썹, 거의 감은 듯 실눈을 뜬 도톰한 눈꺼풀, 적당하게 높은 코, 도톰한 입술에서 깨달음에 이른 부처의 평정을 느낄 수 있다. 얼굴 뒤로 광배가 있는데, 1/4 정도만 붙어 있다. 광배의 조각은 당초문 같은 식물 문양이 주를 이루고 있다. 다음에는 부처의 일생을 묘사한 조각이 있다. 여덟 부분으로 나눠 탄생, 깨달음, 설법, 열반을 표현하고 있다. 이 역시 5~6세기 굽타시대 작품이다.

▲ 5세기 굽타시대 초전법륜상 ⓒ 사르나트 박물관 책자


전시관 가장 끝 한가운데서 우리는 굽타시대 가장 유명한 석불좌상을 볼 수 있다. 이 불상은 높이가 155㎝, 폭이 87㎝이며, 473년 경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법륜 대좌 위에 가부좌를 튼 부처가 5명의 제자, 여인, 아이에게 불교의 법을 가르치는 모습이다. 부처의 뒤로 좌우에는 두 마리 사자가 호위하고, 머리 뒤로는 둥근 광배가 신성함과 예술성을 더해주고 있다. 광배 좌우에는 천녀 압사라가 축복하고 있다.   

힌두교 전시관에서 만난 문화유산들

▲ 11세기에 만들어진 타라(Tara) ⓒ 사르나트 박물관 책자


인도에 와서 힌두교에 대해 좀 공부했음에도 불구하고 힌두교 전시관의 신상은 불상만큼 친근하지 않다. 그나마 10~11세기 경 힌두교 여신상인 타라(Tara)가 눈에 들어온다. 타라는 시바의 부인인 빠르바티의 화신으로 별 또는 지혜의 여신으로 여겨진다. 이게 타라라는 사실도 옆에 설명을 통해 알게 되었다. 중정을 지나 오른쪽으로 가면 제4전시실이 나오는데, 이곳에는 수리야, 사라스와티 같은 힌두신상 외에 티르탕카라 같은 자이나 신상도 여럿 보인다.
 
또 비둘기, 양, 코끼리, 말 같은 동물 조각도 있다. 그리고 도자기, 장식 석판 등도 보인다. 그런데 이들은 단품이거나 훼손된 경우가 많아 예술성은 떨어진다. 이곳에는 또한 패널 형태로 된 조각도 여럿 있다. 이것도 역시 비쉬누, 락슈미, 사라스와티, 가네샤 같은 신들의 이야기다. 그렇지만 그 내용을 제대로 이해하기는 어렵다.

▲ 악마 안타카를 죽이는 시바 ⓒ 사르나트 박물관 책자


이곳 전시관에서도 가장 안쪽 벽에 있는 시바상이 가장 두드러진다. 그것은 이 조각이 높이 320㎝, 폭 125㎝로 상당히 큰 편이고, 완벽한 형태로 남아있기 때문이다. 이 작품의 이름은 '악마 안다카(Andhaka)를 죽이는 시바'다. 안다카는 천 개의 머리와 눈, 천 개의 팔과 다리를 가진 악마다. 그리고 그는 죽으면 또 다시 살아나는 능력이 있다. 그것은 재생능력이 있는 그의 피 때문이다.

이에 시바는 삼지창으로 그를 공격한다. 그의 몸에서 피가 흘러 그는 죽게 된다. 그러나 안다카의 피가 땅에 닿자마자 그는 되살아난다. 이에 시바는 안다카의 피가 땅에 떨어지지 못하도록 사발로 그 피를 받는다. 여기 조각이 그 장면을 표현하고 있다. 그러나 나중에 자신의 잘못을 깨달은 안다카가 시바에게 용서를 구하고 그의 양아들이 되었뿐 아니라 가나족의 왕이 되었다고 한다. 

건물 밖 베란다에서 만난 문화유산들

▲ 유희좌의 보살좌상 ⓒ 이상기


사르나트 고고학 박물관은 건물 내부에만 전시물이 있는 게 아니다. 건물 밖 베란다에도 전시물이 있다. 그렇지만 이들은 내부 전시물에 비해 가치와 예술성이 떨어진다. 또 전체의 일부이거나 깨진 물건 그리고 소품이 많은 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불교와 힌두교 등 인도의 종교와 건축 그리고 조각을 이해하는 데 아주 중요하다.

먼저 북쪽 베란다를 살펴본다. 내 눈에 띄는 것이 역시 불상이다. 벽에 새겨 넣은 것으로, 초전법륜상이다. 머리에 보관을 쓴 모습이 특이하고, 예술성은 좀 떨어지는 편이다. 12세기에 만들었다고 한다. 남쪽 베란다에는 상대적으로 힌두교 예술품이 많다. 5세기에서 7세기 굽타시대 문화유산이 대부분이다. 보살좌상도 보이는데, 왼쪽 다리는 가부좌 자세를, 오른쪽 다리는 대좌 아래로 내려 놓은 유희좌를 취하고 있다. 7세기 굽타시대 작품이다.

▲ 물건을 파는 상인들 ⓒ 이상기


이들을 보고 나서 박물관 정문을 나가는데 물건을 팔려는 상인들이 달라붙는다. 아쇼카 4사자상 등 불교 관련 기념품과 책자다. 사람들이 4사자상에 관심을 가진다. 처음엔 10달러이던 게 나중에 2달러까지 내려간다. 나는 사자상을 하나 산다. 그러자 불교 관련 책을 사라고 난리다. 그래서 나는 바라나시와 사르나트를 소개하는 그림엽서 책과 부처의 자취를 소개하는 그림엽서 책을 하나 산다. 책의 인쇄상태가 조잡하지만 글을 쓰는 데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이제 우리는 버스를 타고 바라나시로 돌아간다. 그런데 차창 밖으로 초칸디(Chaukhandi) 스투파가 스쳐 지나간다. 버스를 내려 잠시 보고 싶지만, 시간 여유가 없다. 이 스투파는 굽타시대 만들어진 것으로, 3단의 테라스가 있는 사원 형식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 스투파 위에는 팔각형의 탑이 또 세워져 있다. 이 탑은 무굴왕조 악바르 통치시기인 1588년 이곳의 통치자 고베르단(Goverdhan)에 의해 세워졌다. 세운 목적은 악바르의 아버지 후마윤 황제가 이곳을 방문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 스투파를 처음 발굴한 사람은 커닝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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