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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비꽃 향기로 남은 최초의 여성 인상주의 화가

[인문학자와 함께하는 말랑말랑 파리여행 13] 베르트 모리조

등록|2016.04.05 13:42 수정|2016.04.05 13:42
날씨도 고약하고 사람들도 거만하고 말도 안 통하는 파리에서 그나마 마음 편한 딱 하나는 복장에 신경을 쓰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세계 최고의 패션 도시에서 옷차림에 신경을 쓰지 않아도 되어 마음이 편하다니 대체 무슨 소리인가 싶겠다. 건물도 도로도 하늘도 강도 죄다 회색빛인 이 도시에선 그저 검정 계열로 적당히 걸치면 기본은 된다는 의미이다.

멋을 낸답시고 알록달록 어설프게 치장이라도 했다간 도시의 어디를 가도 나만 둥둥 떠다니는 기분이 들어 영 불편하다. 파리엔 남자도 여자도 온통 영화 <매트릭스>나 귀스타브 카유보트의 그림 <파리, 비 오는 날>에서 방금 나온 사람들처럼 까만색 외투를 걸친 이들이 가득하기 때문이다. 90년 전 파리를 여행한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 서양화가 나혜석(羅蕙錫, 1896-1948)에게 파리의 첫 느낌이 그랬는가 보다.

"파리라면 누구든지 화려한 곳으로 연상하게 된다. 그러나 파리에 처음 도착할 때는 누구든지 예상 밖인 것에 놀라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우선 공기가 어두침침한 것과 여자의 의복이 흑색을 많이 사용한 것을 볼 때, 첫 인상은 화려하지 않았다." - <삼천리(三千里)> 1933년

▲ <제비꽃 장식을 한 베르트 모리조(Berthe Morisot au bouquet de violettes)>, 에드아르 마네(1872), 오르세 미술관. ⓒ 김윤주


'흑색 의복'이 유난히 잘 어울렸던 파리지엔느로 인상파 최초의 여성화가, 베르트 모리조(Berthe Morisot, 1841-1895)를 꼽을 수 있겠다. <제비꽃 장식을 한 베르트 모리조>, <부채를 들고 있는 베르트 모리조>, <부채를 든 모리조의 초상> 등 1870년대 초반 에두아르 마네(Édouard Manet, 1832-1883)가 그린 여러 그림에서 모리조는 까만색 드레스를 입은 모습으로 등장한다.

<제비꽃 장식을 한 베르트 모리조>는 부친상을 당해 검은 드레스를 입고 있는 모리조의 모습을 그린 것이다. 이 매혹적인 여인의 모습을 고스란히 담아낸 최고의 작품이다. 사교계의 유명인사로 온갖 구설수를 몰고 다니며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고, '인상주의의 아버지'라 추앙받으며 미술사에 굵은 획을 그은 마네의 그 많은 작품 중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게 바로 이 그림이다.

오르세 미술관 5층 인상주의 갤러리에서 까만 드레스의 모리조를 처음 만난 순간의 설렘을 잊을 수 없다. 세련되고 멋진 까만 모자와 제비꽃 장식을 한 옷차림은 말할 것도 없고 정면을 응시하는 눈동자며 앙다문 입술이 어찌나 생동감이 넘치던지 발걸음을 옮길 수가 없었다.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자니, 앞에 앉은 이 아름다운 여인을 바라보며 분주히 붓을 놀리고 있을 화가 마네의 열정적인 모습이 그녀의 눈동자 속에 비쳐 보일 것만 같았다.

"파리에서 모델이라 하면 한 미술품과 같이 존경을 받고 (...) 모두 그림에 상식이 풍부하여 화가에게 동정과 이해를 가지고 있다. 자기 마음에 드는 화가가 있고 또 전도가 보이는 화가가 있다면 자기 힘껏 그 화가를 도울 뿐 아니라, 모델은 자연 아는 사람이 많아서 사교계에 한 판을 잡는 고로 자기 좋아하는 화가의 그림을 여기저기 소개하여 팔게 한다." - <삼천리> 1932년

나혜석이 묘사한 파리의 화가와 모델에 대한 몇 개의 단상 중 이 글은 특히 베르트 모리조와 에두아르 마네를 떠올리게 한다. 하나 다른 점이 있다면 모리조는 아름답고 이해심 깊은 모델이기 이전에 뛰어난 재능을 인정받은 화가였다는 점이다.

모리조는 마네를 만나기 전 이미 살롱전에 풍경화 두 점을 출품해 호평을 받은 바 있고, 1874년 인상주의 화가들의 첫 전시회에 피사로, 드가, 시슬레, 세잔, 모네, 르누아르 등과 함께 당당히 자신의 그림을 걸었던 유일한 여성 화가였다.

이후 1886년까지 여덟 차례 이어진 인상주의 전시회에 딱 한 차례를 제외하고는 매번 작품을 전시했을 만큼 창작과 활동에 열정적이었다.

▲ <화장하는 젊은 여인(Femme a sa toilette)>, 베르트 모리조(1877), 오르세 미술관. ⓒ 김윤주


<요람> <숨바꼭질> <독서-화가의 어머니와 언니> 등 그녀의 작품은 따뜻하고 온화한 여성의 시각과 감성을 담아내며 여타 인상주의 화가들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를 보여 준다. 특히 <화장하는 젊은 여인> <침대에서 일어나> 등에 구현된 흰색과 진주 빛의 풍부한 느낌, 붉은색, 푸른색, 초록색 등이 절묘하게 섞이며 은은하고 평화로운 분위기를 자아내는 색채의 조화, 자유롭고 힘찬 붓놀림 등은 섬세함과 진취적인 의지를 동시에 보여준다.

모리조는 1841년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났다. 로코코 미술의 거장 프라고나르(Jean-Honoré Fragonard, 1732-1806)가 그녀의 외증조할아버지뻘이다. 일찍부터 그림에 흥미와 재능을 보였지만 모리조가 살았던 19세기는 여성이 학교에 입학해 정식으로 그림을 배운다거나 모델을 세우고 연습을 할 수 있는 시대가 아니었다. 그나마 다행이었던 건 부모의 식견이 시대를 앞서 딸에게도 재능을 펼 기회를 허용했다는 점이다.

모리조는 루브르에서 루벤스 등 거장들의 작품을 모사하고, 인상파 탄생에 영향을 끼친 풍경화가 카미유 코로(Jean-Baptiste-Camille Corot, 1796-1875)를 사사하며 그림을 배운다. 1868년 마네를 만난 뒤로는 그의 모델로 제자로 서로 영감을 주고받으며 인생을 함께 하게 된다. 이 무렵 마네는 그녀를 모델로 한 첫 작품 <발코니>를 제작해 살롱전에 출품하기도 한다.

모리조는 마네에게 당대 최첨단 작가 그룹이었던 인상주의 화가들을 소개해 주고 야외에서 그림 작업을 하도록 권하기도 한다. 모델로서 제자로서 그의 작업실에서 함께하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모리조의 마네에 대한 존경은 이내 사랑으로 변한다. 하지만 마네에겐 이미 아내가 있지 않았던가. 1874년 모리조는 마네의 동생 외젠 마네(Eugene Manet)와 결혼을 하고 4년 후 딸 쥘리를 낳는다.

부유한 상류층 출신으로 당대 최고의 지성과 미모를 자랑하며 화가로서도 성공한 그녀가 어떤 이유로 이런 선택을 하였는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흔히 상상할 만한 자기 파괴적인 비극으로 치닫는 통속소설 같은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가족이 된 후로는 더욱 가까이서 마네의 작업을 지켜보며, 병으로 쇠약해져 가는 그의 고통스런 최후를 지킨다. 그가 죽은 후에는 그의 그림을 사들이고 전시회를 열며 마네를 세상에 알리는 일에 혼신의 힘을 기울인다.

▲ 베르트 모리조는 1874년 열린 최초의 인상주의 전시회에 작품을 전시한 유일한 여성화가이다. 오르세 미술관. ⓒ 김윤주


그러고 보니 '모델' 모리조가 지금 응시하고 있는 것은 '화가' 마네가 아니라, 이미 아내와 아들도 있는 이루어질 수 없는 마음 속 '연인' 마네였는지 모르겠다. 까만색은 어둡고 칙칙하고 불길하고 음산한 이미지라 당시에는 꺼려지던 색이었다는데 오히려 이토록 아름답게 느껴지는 것도 어쩌면 화가와 모델 사이의 애틋한 교감 탓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마네는 <제비꽃 장식을 한 베르트 모리조>를 완성한 뒤 감사의 뜻으로 작은 정물화 <제비꽃 다발>을 그녀에게 선물한다. 그림 속 보랏빛 작은 꽃다발 뒤엔 무심하게 접혀진 하얀 편지가 놓여 있는데 희미한 글귀의 내용이 자못 궁금하다. 그림을 보고 있는 우리가 이럴 진데 그것을 선물 받은 모리조의 마음은 어땠을까.

까만 옷과 대비되는 화사한 얼굴빛, 발그레한 뺨과 도톰한 입술, 호기심 가득한 이 여인의 도발적인 눈빛이 아름답고도 안타깝다. 인상주의의 선두주자로 미술사에 길이 남을 고유의 작품 영역을 구축한 앞선 화가였음에도 '마네의 뮤즈'로 더 기억되고, 여자라는 이유로 죽을 때까지 아마추어 취급을 받아야 했던 베르트 모리조.

'조선 최초의 여성 서양화가' 나혜석은 자신이 태어나기 한 해 전 세상을 떠난 '최초의 여성 인상주의 화가' 베르트 모리조의 삶을 보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 그녀의 사망진단서에 기록되어 있다는 '무직'이 기가 막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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