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시민은 기자다

칠순 어르신의 고집... "스마트폰 살 거예요"

백세 인생을 꿈꾸는 칠순의 집사님 이야기

등록|2016.04.08 22:29 수정|2016.05.02 09:00
우리 교회 Y집사님 이야기이다. 그는 금년에 칠순잔치를 한 어르신이다. 대도회지에선 노인 대우를 받고도 남을 테지만 농촌에선 그 반열에 들어가지 못하는 연차다. 그런 중에도 Y집사님은 늘 젊게 살려고 애쓴다. 힘이 부치면 도와 달라 하고, 모르면 가르쳐 달라고 매달린다. 집사님 때문에 며칠 내가 좀 바빴다.

지난 주 초의 일이다. 아무리 전화를 해도 받지를 않아 무슨 일이 생긴 게 아닌가 궁금해서 댁을 방문했다. 비 오는 날 밭에서 일을 하다가 휴대전화를 물에 빠뜨려 통화가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혹 말리면 다시 쓸 수 있지 않을까 싶어 방에 보일러를 넣고 따뜻한 바닥을 찾아다니며 말렸는데도 전원이 켜지지 않는다고 했다.

그러면서 내게 언제 시간 날 때 휴대전화 가게에 같이 갈 수 있겠느냐고 물어왔다. 노인이 휴대전화를 다시 구입한다는 건 대단한 위험이 따른다. 어떤 조건으로 계약되는지, 젊은 사람도 혼동돼 불리한 조건으로 계약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배울 만큼 배우고 또 세상 물정에 어둡지 않은 나도 몇 번 당한 적이 있어서, Y집사님과 함께 가줘야 할 것 같았다.

그저께 Y집사님을 승용차에 태우고 시내 휴대전화 가게에 갔다. 가면서 나는 집사님이 사용했던 폴더폰, 그러니까 번호를 눌러 쓰는 구형폰을 구입할 것으로 당연히 생각했다. 그리고 그에게 지금은 스마트폰 시대라 구형 폴더폰이 있을지 모르겠다고 말을 건넸다. 그는 폴더폰이 아니라 스마트폰을 구입할 거라는 의외의 답을 해왔다.

평소 휴대폰을 쓰면서 집 전화가 아니라 다니면서 아무데서나 전화를 받을 수 있는 것이 얼마나 편리하냐며, 휴대전화를 전화 통화 이외의 용도로는 사용하지 않는 집사님이다. 아니 사용할 줄 모르는 분이다. 그는 문자메시지를 보낼 줄도, 열어 볼 줄도 모르고, 오직 송수신용 전화 용도로만 휴대전화를 써왔는데 스마트폰을 사겠다는 말에 잠시 혼란이 일었다.

Y 집사님이 새로 구입한 스마트폰칠순(七旬)의 Y 집사님은 누르는 폴더폰을 마다 하고 최신의 스마트폰으로 새로운 도전을 시작하려 한다. ⓒ 이명재


스마트폰을 구입해서 사용하지 못할 바에게 사지 않는 것이 더 낫다. 마음이 조여 오는 것은 Y 집사님보다 오히려 내가 더 했다. 나는 한참 뜸을 들이다가 기분 나쁘지 않게 집사님에게 말했다.

"집사님, 스마트폰은 요즘 젊은 사람들이 쓰는 거예요. 사용 방법이 무척 복잡해서 괜히 구입했다가 다시 물리는 일이 생길 것 같아 말씀 드리는 건데…. 지금까지 쓰시던 폴더폰으로 사시는 게 어떨까요? 그것이 집사님에게 더 맞을 듯한데…."

집사님은 가타부타 말이 없었다. 아마 두 기기를 놓고 고민을 하는 것으로 나는 짐작했다. 시내 역전 휴대전화 가게에 다 와갈 때 집사님은 말을 꺼냈다. 그의 확고한 말투가 나를 적지 않게 놀라게 했다.

"아닙니더, 저 스마트폰으로 하려고 진즉부터 생각하고 있었습니더. 처음부터 아는 사람이 어디 있습니꺼. 배워가면서 하면 되지요. 목사님이 스마트폰 적당한 걸로 하나 골라 주이소."

난감했다. 벌어질 일이 뻔한데…, 칠순 노인이 스마트폰을 고집하다니! 가게에 들어가서 저가 폰에 저렴한 가격으로 하나 계약해드렸다. 종업원이 사용 방법과 계약 조건을 길게 설명했지만 집사님에겐 마이동풍(馬耳東風)이었다. 됐다면서 몇 번이나 손사래를 쳤지만 종업원은 설명해 드리는 건 의무라면서 설명을 이어갔다.

돌아오는 길에 Y집사님은 무슨 요술 방망이라도 하나 얻은 듯, 스마트폰을 잡고 계속 작동 시험을 했다. 막히는 것을 운전에 방해될 만큼 내게 물어봤다. 나도 스마트폰 사용에 밝은 것도 아니지만, 최선을 다해 천천히 알려드렸다. 집사님은 글자를 깨우쳐 가는 학동마냥 기쁨에 젖어 있었다.

오늘(4월 8일) 아는 목사님이 입원해 있는 대구병원에 병문안을 갔다. 지방회 몇몇 목사님들과 함께 갔는데, 수술이 잘 돼 다행이라고 했다. 입원한 목사님은 문병 간 우리에게 건강 잘 챙기라고 신신당부를 했다. 돌아오는 길, 왜관쯤에서 점심식사를 하고 있는데 Y집사님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스마트폰으로 전화 거는 방법을 몰라 이웃 사람에게 물어서 전화를 넣었다는 것이다.

나의 도움으로 사온 염소 사료염소 네 마리를 키우는 Y 집사님이 자신의 경운기를 이용할 수 없어 나의 승용차로 염소 사료 두 포를 사왔다. ⓒ 이명재


그는 염소 사료를 사러 가야 하는데, 지금 내가 어디 있느냐고 물었다. 병문안을 마치고 점심 식사 중이라고 했더니 교회 도착하시는 대로 전화를 좀 달라고 했다. 지금 경운기가 밭에 있어 목사님 승용차 신세를 좀 져야할 것 같다는 게다. 로타리(논밭을 탄탄하게 고르는 일)를 치다가 젖은 밭 가운데 둔 경운기를 도저히 끌고 내려올 수 없었단다. 미안한 줄 알지만 내게 도움 전화를 넣었다는 것.

전에 10리도 더 되는 거리를 걸어서 집에 오느라고 2시간이 넘게 걸렸다는 말을 내게 한 적이 있다. 나는 그때, 연락하면 내가 차를 몰고 갔을 텐데 왜 그런 고생을 사서 하시느냐고 일갈했다. 그런 상황에 처할 땐 언제든지 전화하면 내가 가겠다고 했었다. 우리끼리 약속을 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그 말을 마음에 담고 있던 집사님이 오늘 사료 구입 문제로 내게 전화를 해온 것이다. 처음엔 한 포를 사려다가 준비하는 김에 두 포를 사두면 좋겠다면서 돈을 냈다. 돌아오는 길에 농사에 대해 이것저것 물어봤다. 감자·고추 농사를 준비하는 것까지는 이해를 할 수 있었다. 작년에 대중없이 많이 심은 탓으로 관리가 안 되어 수확이 적었을 뿐만 아니라 고추는 다 따지 못해 삶겨(서리를 맞은 것) 버리기까지 했다. 작년의 실패를 거울삼아 보다 적게 심는다니 잘했다 싶었다.

이어 나온 말에 나는 의아함을 감출 수 없었다. 더덕을 심겠다는 것이다. 나는 더덕에 대해 잘 모른다. 일년생인지 아니면 다년생인지, 재배 방법이 어떤지, 또 판로와 값은 어떻게 되는지 등등에 대해 아는 것이 전혀 없다. 그런 내게 Y집사님은 재배할 예정에 있는 더덕에 대해 비교적 상세한 설명을 해줬다.

"지금 제가 심으려고 하는 더덕은 20년생입니더, 즉 20년 뒤에 수확해서 팔 생각으로 재배를 시작하려는 겁니더. 더덕은 20년생이 몸에 가장 좋고 값도 비싸다 카데예."

Y 집사님이 꿈꾸는 20년생 더덕지금 칠순이신 Y 집사님이 20년 후에 수확할 생각으로 심으려고 하는 더덕. 20년생 더덕은 값도 많아 나간다고 했다. ⓒ 이명재


나는 집사님의 말을 듣고 좀 당황스러웠다. 왜냐하면 20년생 더덕을 재배해서 그 수확을 집사님이 볼 수 있겠느냐는 문제에 봉착했기 때문이다. 나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 분의 나이 지금 칠순, 20년 후라면 구순(九旬)이 된다는 얘기인데…. 그렇다고 직설적인 말로 그의 의지를 꺾어 놓아서는 안 됐다. 나는 조심스럽게 그에게 물었다.

"집사님, 20년 생 더덕을 심는다면 20년 후에 수확을 하게 된다는 얘기인데, 그때 집사님 연세가 어떻게 되지요?"

그는 조금 뜸을 들이더니 목사님이 그런 질문을 할 줄 알았다는 듯이 말을 이어갔다.

"목사님, 지금 TV만 틀면 '100세 인생'이라는 말이 튀어 나오데요. 전 100살까지 살 겁니더. 자신이 있습니더. 더덕 수확하고 10년의 세월이 더 있는 거 아닙니꺼. 하하하!"

Y집사님의 논리는 명쾌했다. 그러나 객관적 조건을 볼 때 그의 생각은 이상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나는 잘 안다. 그는 작년 교통사고를 당해 걸음도 불편하다. 또 농사일도 하나 쉬다를 반복해서 하는 입장이다. 나는 그가 교회와 한 마을에 있으면서 경운기를 타고 예배 나오는 것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는 20m쯤 가다가 쉬어야 하는 체력의 소유자다. 그런 그가 100세 인생을 이야기하다니!

나는 그의 말에 반론을 펴지 않았다. 아니, 펼 수가 없었다. 단순한 생각과 삶은 가끔 사람들에게 희망을 안겨 주기도 한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염소 사료를 집 마당에 내려놓고 차를 돌려 오는 길에 그는 몇 번이나 고맙다며 머리를 숙였다. 내가 필요해서 부르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좋은 일이다. 나는 이런 성도들의 부름에 최선을 다해 응할 생각이다. 연약한 사람들은 만나는 것 자체가 힘이 된다고 하지 않는가.
원문 기사 보기

주요기사

오마이뉴스를 다양한 채널로 만나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