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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잊은 페루? '독자재의 딸' 대선 지지율 선두

의회 강제 해산 및 신헌법 공포했던 알베르토 후지모지의 장녀... 투표는 오는 10일

등록|2016.04.09 09:21 수정|2016.04.09 09:21

▲ 페루 대선후보 케이코 후지모리 후보의 트위터 갈무리. ⓒ 트위터


페루 독재자 알베르토 후지모리의 딸이 대를 이어 대권에 도전한다.

오는 10일(현지시각) 치러지는 페루 대선에서 우파 민중권력당의 게이코 후지모리(40) 후보가 지지율 선두로 당선이 유력하다. 좌파에서는 광역전선의 베로니카 멘도사(35) 후보가 추격하고 있다.

여성 후보끼리 지지율 1, 2위를 달리고 있는 이번 대선에서 후지모리는 지난해 7월부터 줄곧 선두를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과반을 획득하지 못하면 오는 6월 상위 2명의 후보가 맞붙는 결선 투표를 치르므로 당선을 장담하기 이르다.

'후지모리 독재'의 그늘, 또다시 페루를 덮다

페루 대선에 세계적인 관심이 쏠리는 것은 후지모리가 알베르토 후지모리 전 페루 대통령의 장녀이기 때문이다. 일본계 이민 2세인 후지모리 전 대통령은 1990년 대선에서 승리하며 남미 역사상 최초의 아시아계 대통령에 올랐다.

취임 초기 페루의 경제 재건을 과감히 추진하다가 개혁 방향을 놓고 의회와 갈등을 겪은 그는 1992년 군부 친위 쿠데타를 일으켜 의회를 강제 해산하고 신헌법을 공포하며 연임의 발판을 마련했다.

1995년 재선에 성공한 그는 활발한 외자 유치와 인플레이션 억제, 그리고 수십 년간 활동해온 게릴라 반군을 완전히 진압하며 경제와 정치적 안정을 동시에 이뤘다는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권력에 집착한 나머지 헌법 해석까지 바꿔 3선에 성공하며 독재의 길로 들어서고 말았다.

▲ 알베르토 후지모리 전 페루 대통령 ⓒ 위키피디아


장기 집권에 피로감을 느낀 페루 국민의 불만은 커졌고, 결국 2010년 11월 자신의 심복이었던 당시 국가정보부장이 야당 의원을 돈으로 매수하는 비디오 테이프가 폭로되면서 실각, 일본으로 도주했다.

이후 부정 축재, 선거명부 조작, 야당 의원 불법도청 등 집권 10년 동안 저지른 수많은 비리가 세상에 드러났다. 페루는 이 같은 근거로 일본에 후지모리 전 대통령의 송환을 요구했으나, 일본 정부가 그의 일본 국적 보유를 내세워 연거푸 거부하면서 외교적 마찰을 빚기도 했다.

5년간의 도피 생활 끝에 페루에서 정치적 부활을 모색하려던 후지모리 전 대통령은 2005년 칠레를 통해 우회 입국을 시도했다. 하지만 칠레 경찰에 체포된 그는 페루로 송환됐고, 결국 2010년 재판에서 25년형을 선고받고 복역 중이다.

'독재자의 딸'... 고민하는 페루의 선택은?

▲ 게이코 후지모리 후보를 반대하는 페루 시민들의 시위를 보도하는 영국 <가디언> 갈무리. ⓒ 가디언


독재자의 딸인 후지모리가 지지율 선두를 달릴 수 있는 것은 숱한 비리에도 후지모리 전 대통령 시절을 그리워하는 보수층의 향수가 남아있기 때문이다. 2006년 총선 승리로 정계에 입문한 뒤 10년 만에 유력한 대권 주자로 떠오른 것도 아버지의 후광 덕분이다.

하지만 독재자의 딸이 대권을 잡게 할 수 없다는 정서가 확산되면서 대규모 시위가 벌어졌고, 반대급부로 좌파의 젊은 여성 후보 멘도사의 지지율도 상승하고 있다. 위기감을 느낀 후지모리는 마지막 승부수를 꺼냈다. 최근 대선 후보 TV 토론회에서 대통령이 되더라도 아버지의 사면을 위해 권력을 남용하지 않겠다는 '명예 서약서'를 펼쳐 든 것이다.

후지모리 후보는 "조국의 역사를 어떻게 돌아봐야 하는지, 또다시 반복되지 말아야 할 사건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고 있다"라며 독재와 비리로 얼룩진 아버지의 정치적 유산과 선을 그었다.

지난 6일 수도 리마에서 열린 후지모리 반대 시위에 참가한 한 시민은 영국 <가디언>과의 인터뷰에서 "후지모리 전 대통령은 페루 역사상 최악의 지도자"라며 "후지모리 가문의 유산이 이어지는 것을 두고 볼수 없다"라고 강조했다.

반면 후지모리 부녀를 지지하는 시민은 "후지모리 전 대통령은 경제를 살리고, 게릴라 반군의 테러를 진압한 용기있는 지도자였다"라며 "그가 실수를 했지만, 페루 국민에게 피해보다 혜택을 더 많이 줬다"라고 주장했다.

과연 후지모리가 아버지의 오점을 극복하고 '부녀 대통령'의 꿈을 이룰 것인지, 아니면 독재자의 딸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반대 여론이 짜릿한 막판 역전승을 거둘 것인지 곧 판가름 난다. 페루는 독재를 잊었을까, 아니면 기억하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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