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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멋에 취해 사는 사람들, 보기 좋다

호주 시골 생활 이야기: 도리고 국립공원(3)

등록|2016.04.15 17:21 수정|2016.04.15 17:23

▲ 카페가 유난히 많은 산골 마을 벨린겐(Bellingen) ⓒ 이강진


도리고 국립공원(Dorrigo National Park)을 구경하고 민박집으로 돌아왔다. 많이 걸었다. 적당한 피곤함이 좋다. 문화유산으로 등록된 이곳을 제대로 구경하려면 몇 주 정도는 지내야 할 것이다. 아니 일 년 정도는 이곳에 살면서 계절의 바뀜과 함께 보아야 할 만큼 규모가 크고 매력적인 국립공원이다. 저녁을 끝내고 어제와 마찬가지로 민박집 주인과 함께 포도주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눈다.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실천에 옮기는, 생각과 행동이 조화를 이룬 삶이 보기 좋다.

별이 쏟아지는 산골에서 두 번째 밤을 지내고 아침을 맞는다. 집으로 돌아가는 날이다. 탁 트인 들판과 앞산을 바라보며 심호흡을 한다. 산속의 물맛이 좋다는 이야기를 많이 하지만, 물맛 못지않게 산속의 공기 또한 맛이 좋다. 다시 찾아오겠다는 말을 남기고 주인 내외와 인사를 나눈다. 다시 한 번 더 찾아오고 싶은 민박집이다.  

가는 길에 벨린겐(Bellingen)이라는 동네에 들린다. 첫날 오면서 지나쳤던, 인상에 남았던 작은 동네다. 조금은 히피풍이 돌기도 하는 마을에는 카페와 식당 그리고 선물 가게가 많다. 관광객이 많이 찾는 동네라는 것을 직감으로 알 수 있다. 거리에 있는 휴지통도 마을 초기에 찍은 사진으로 장식되어 있다. 동네 한복판에는 1963년에 세운 기념비도 있다. 유럽인이 1863년에 정착한 후 100년이 된 것을 자랑하는 기념비다. 동네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하다는 것을 엿볼 수 있다.

카페가 즐비한 거리를 걷는다. 커피를 마시는 사람, 아침 겸 점심을 하는 사람으로 카페는 적당히 붐빈다. 그룹 혹은 파트너가 차지한 테이블도 있지만 혼자 앉아 있는 사람도 많다. 예전에 한국에서 혼자 여행하며 식당에서 식사하던 때가 생각난다. 혼자 앉아 음식을 먹는 사람이 없어 쑥스러웠던 생각이, 특히 저녁 시간에는...

도로변에는 고풍의 석조 건물이 유난히 많다. 거리를 끝까지 걸어가니 꽤 큰 건물이 보인다. 허름한 숙소와 소박한 카페가 있는 건물이다. 건물에 설치된 게시판에는 관광 팸플릿을 비롯해 잡다한 광고가 어수선하게 붙어 있다. 카페에는 개성 있는 의상과 독특한 헤어스타일을 한 젊은이들이 커피를 마시며 한가한 아침을 보내고 있다. 젊은이들 틈에서 주위와 어울리지 않게 커피 마시는 노부부의 모습이 인상적이다. 주위 시선에 크게 신경 쓰지 않는 호주인의 삶을 다시 본다. 

골목길로 들어서니 기독교단체에서 운영하는 중고품 가게가 있다. 이 동네에서는 어떠한 물건을 파는지 궁금해 들어가 본다. 예상대로 나이 많은 자원봉사자 서너 명이 일하고 있다. 사람들이 기증한 옷가지를 비롯해 가구, 식기, 책 등을 정리하는 직원이 있는가 하면 손님과 잡담을 나누는 직원도 있다. 시골 동네에서만 볼 수 있는 자유스러운 모습이다.

동네 화가가 그린 풍경화 혹은 독특한 마을의 중고품을 찾고 있는데 할머니가 말을 걸어온다. 우리가 한국에서 왔다는 것을 확인한 후 말이 많아진다. 딸이 한국 남자와 결혼해서 대전에 살고 있다고 한다. 'hello'와 'thank you'를 한국말로 어떻게 하느냐고 묻는 등 한국에 대해 관심이 많다. 조금은 외롭게 사는 할머니 같다. 처음 만난 우리와 떨어지는 것을 섭섭해 한다.

민박집 주인이 가볼 만하다고 소개한 특산품 가게로 향한다. 걸어가기에는 약간 먼 곳에 있다. 특산품을 파는 전시장 겸 가게에 도착하니 건물 앞에 있는 규모 있는 식당이 먼저 보인다. 가게에 들어선다. 벌목으로 먹고살던 동네답게 목재로 만든 식탁, 침대 등 탐나는 가구가 많다. 이곳에서 나오는 참죽나무(Cedar Tree)로 만든 가구라고 한다. 통나무로 묵직하게 만든 가구들이다. 가격표를 보니 큰맘 먹지 않으면 사기 어려운 가격이 붙어 있다.

몸은 호주에 마음은 인도에 있는 사진 작가

▲ 고풍의 건물이 유난히 많은 동네, 1910년에 지은 건물이지만 어제 지은 것 같이 잘 보전되어 있다. ⓒ 이강진


전시장 뒤에는 자그마한 선물 가게 서너 개가 있다. 히피풍의 요란한 의상과 소품을 전시한 가게를 둘러본다. 고급스러운 목공예로 가득한 가게도 둘러본다. 다음 가게를 들리니 인도 냄새가 물씬 나는 사진과 소품으로 가득하다. 인도 사람의 웃는 모습만 찍은 사진첩이 인상적이다. 어려운 환경을 운명으로 받아들이는 인도인 특유의 웃음으로 가득한 사진첩이다. 사진첩의 제목도 '웃음'이다.

내가 사진에 관심을 보이니 나이 지긋한 주인이 다가온다. 자신이 직접 인도에서 찍은 것이란다. 호주 사람이지만 인도에 관심이 많아 청년 시절 대부분을 인도에서 지냈다고 한다. 나도 인도에서 한 달 정도 지낸 적이 있다고 하니 말이 더 많아진다. 종교 축제를 찍은 사진을 보여주며 축제의 배경과 규모에 관해 설명을 해주기도 한다. 몸은 호주에 있지만, 마음은 아직도 인도에 있는 것 같다. 

인도를 방문한 사람 중에는 두 종류의 사람밖에 없다고 한다. 한 번 더 가보고 싶어 하는 사람과 다시는 인도에 대해 알려고도 하지 않는 사람, 하여간 인도는 불가사의한 나라, 혼돈의 나라로 나에게는 각인되어 있다. 주인의 친절함을 생각하며 마음에 드는 작품 하나를 사 들고 나온다. 주인이 찍은 사진이 아니라 조금은 미안한 마음이 있긴 하지만...

늦은 점심시간이다. 배가 촐촐하다. 특산품 가게 앞, 분위기 있는 야외 식당에 앉아 점심을 먹는다. 통나무로 만든 식탁이 분위기를 돋운다. 여행을 다니는 것으로 보이는 노부부, 주말을 맞아 함께 외식하는 가족, 머리카락 한 부분을 보라색으로 물들인 개성 있는 중년의 여자 등 다양한 사람이 앉아 함께 식사한다.

인구 3천여 명의 작은 산골 마을에서 나름의 삶을 구가하며 지내는 호주 사람의 여유를 본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호주 시드니 동포 신문 한호일보에도 연재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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