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임진왜란 당시 옥포대첩이 벌어졌던 옥포만에는 조선소가 들어서있다. 이순신휘하의 조선수군이 최초로 대승을 거둔 곳으로 옥포만 입구를 틀어막고 독안에 든 쥐 신세가 된 일본수군을 물리쳤다. ⓒ 오문수
13일 투표를 마치고 가족과 함께 거제여행에 나섰다. 여수에서 남해고속도로를 따라 거제까지 가는 도로변에는 새싹이 돋아나고 산벚꽂들이 하얗게 꽃을 피워 아름다웠지만 추적추적 내리는 비와 안개가 시야를 가렸다.
휴양지에 왔기 때문에 쉬고 싶었지만 개표방송을 보느라 밤늦게까지 TV를 본 식구들은 다음날 아침 늦게 일어났다. 임진왜란에 관심이 많은 나는 옥포해전과 칠천량해전지를 보고 싶었다. 도중에 김영삼 대통령 생가를 방문하는 것은 덤. 숙소를 떠나 거제대로를 따라 옥포대첩기념공원으로 가는 도중 바라본 하늘은 맑기만 했다.
바다를 끼고 도는 도로변에는 대우조선에 근무하는 외국 직원 부인들과 시민들이 산책을 하고 있었다. 망망대해를 품에 안은 옥포만은 눈부시게 빛나고 있었다. 하지만 요즈음 조선업 경기가 나빠져 거제경기가 형편없다는 뉴스 때문인지 우울한 느낌을 준다.
강성하던 왜적의 기세를 한순간에 제압한 옥포대첩
▲ 옥포해전을 그린 그림 ⓒ 오문수
▲ 임진왜란 당시 조선수군의 무기와 군용품들 ⓒ 오문수
이제 막 벚꽃이 지고 예쁜 꽃들이 피어난 도로를 따라 옥포대첩기념공원에 들러 기념관에 들르니 옥포대첩 당시의 여러 자료들이 전시돼 있다. 임진년 4월 13일 전쟁이 발발하고 4월 14일 부산포에 침입한 왜적은 상주, 충주를 거쳐 5월 2일에는 서울을 점거하고, 6월 13일에는 평양까지 점령 후 전국 곳곳에서 살인과 방화 약탈을 자행했다.
이때 경상우수사 원균은 율포 만호 이영남을 전라좌수사 이순신에게 보내 구원을 요청했다. 요청을 받은 이순신은 5월 4일 축시(丑時)에 판옥선 24척, 협선 15척, 포작선 46척을 거느리고 전라좌수영인 여수를 떠나 경상도로 향했다.
원균을 만나 자세한 전황을 들은 이순신은 7일 오시(午時)경 옥포 앞바다에 이르러 "가볍게 움직이지 말라. 태산같이 침착하게 행동하라"는 주의와 함께 공격개시 명령을 내렸다. 이 공격으로 옥포선창에 정박해 노략질하던 적선 50여 척 중 26척이 격파되어 강성하던 적의 기세가 한순간에 꺾였다.
옥포는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여 외해에서 몰아치는 파도를 피해 정박할 수 있는 천혜의 항구다. 반대로 생각해보면, 외해로 나갈 수 있는 통로를 틀어막고 막강한 공격을 당할 때 꼼짝없이 당할 수밖에 없는 '독안에 든 쥐'가 되는 형세다.
임진왜란 당시 왜적으로부터 노략질을 당했던 아양마을은 아주마을로 개명했고 지금은 대우조선해양의 거대한 크레인들이 차지하고 있다. 조선경기가 한창일 때는 '개도 만원짜리를 물고 다녔다고 할 정도로 번창했다'던 거제는 요즘 조선경기부진으로 힘들다고 한다. 해설사에게 거제시 경기를 묻자 쓴웃음을 지으며 "아유! 말도 마세요"라고 말하며 고개를 외면한다.
김영삼대통령 기록전시관에서 만난 할머니들..."누가 되든 말짱 도둑놈들이에요"
▲ 김영삼대통령기록물 전시관 ⓒ 오문수
옥포대첩기념공원을 나와 5분 여를 달리니 김영삼대통령 기록전시관이 나왔다. 기와집으로 된 생가 옆 전시관에는 관광버스를 타고 찾아온 사람들이 전시실을 돌아보며 사진촬영을 하고 있었다.
거제에서 출생해 민주화를 위해 투쟁하고 최연소 및 최다선 국회의원으로 문민정부를 탄생시킨 김영삼대통령 전시실에는 출생에서 퇴임하기까지 김 전 대통령의 역사적 기록물과 소장품 등 각종 관련 자료가 전시되어 있다.
전시관을 둘러본 후 밖으로 나와 관광객들에게 해산물을 팔던 할머니(83)에게 "김영삼 전 대통령을 잘 아느냐?"고 묻자 "아주 잘 알지요"라고 대답한 할머니와 대화가 시작됐다.
▲ 김영삼대통령 생가에는 두 부부의 사진과 부모님의 사진이 걸려있다 ⓒ 오문수
"이 마을에서 태어나 여태껏 살았으니 잘 알지요. 김대통령 집안은 할아버지 때부터 멸치와 갈치를 잡아 자식들 공부시켰어요. 부모님이 이웃사람들한테 좋은 일 많이 했어요. 특히 김 대통령 어머니가 남한테 베풀며 살았어요. 어제 선거결과를 보니 더민주당이 제일 많이 당선됐네요. 하지만 새누리당이든 더민주당이든 우리 사는 거랑은 상관없어요."
옆에 있던 할머니가 독설을 내뱉었다.
"새누리당이 되어도 같고 더민주당이 되어도 같아요. 누가 되든 말짱 도둑놈들이에요. 힘있는 사람들이 정치하면서 국민을 위한다고 하지만 다 똑같은 도둑놈들이에요."
정치 불신이 심각했다. 80넘은 시골노인이라 모를 줄 알았는데 이미 다 알고 있었다. 이전투구만 하는 정치인들에 대해 국민은 냉소를 퍼붓고 있는데 정치인들만 모른다. 언제나 국민을 위한 정치가 이루어지려는지 한숨만 나온다.
13척 배만 남긴 통곡의 바다 칠천량
▲ 거제도와 칠천도를 잇는 칠천연륙교 모습. 역사가들은 이 근방에서 일본수군과 주선수군이 접전이 있었던걸로 추정하고 있다 ⓒ 오문수
▲ 칠천연륙교에서 내려다본 바다 모습으로 바닷물이 맑아 해초들이 다 보였다. 역사가들에 의하면 이 근방에서 일본수군의 기습을 받은 조선수군이 대패했을 걸로 추정하고 있다. ⓒ 오문수
칠천량 해전은 칠천도와 거제도 사이의 칠천량에서 조선수군이 일본군과 맞서 싸웠던 해전이다. 아니! 철저하게 패배한 해전이다. 삼도수군통제사 원균이 지휘하던 조선수군은 7월 14일 가덕도와 영등포 등지에서 일본군의 습격으로 큰 손실을 입고 후퇴해 7월 15일 밤 칠천량에 정박했다.
이튿날 새벽 일본군 600여 척의 기습공격으로 조선수군은 160여 척을 잃었고 전라좌수사 이억기, 충청수사 최호 등 조선장수들이 장렬히 전사했다. 원균 또한 고성으로 퇴각하다 육지에서 전사했다.
이 해전의 패배로 남해안의 제해권을 일본에 빼앗기자 조선조정은 이순신을 다시 삼도수군통제사로 임명해 제해권을 회복하도록 했다. 격전지의 위치는 정확하지는 않지만 칠천연륙교 인근으로 추정하고 있다.
▲ 13척만 남은 통곡의 칠천량해전을 그린 영화 <명량>의 그림이 보인다. ⓒ 오문수
▲ 역사가들이 추정하는 칠천량 해전 추정지 모습과 조선수군의 탈출로 ⓒ 오문수
임진왜란 당시 벌어진 옥포해전과 칠천량해전을 회상해본다. 옥포해전에서는 조선수군이 일본수군의 탈출로를 차단해 '독안에 든 쥐'처럼 포위해 승전했고, 칠천량해전에서는 오히려 조선수군이 '독안에 든 쥐'처럼 포위당해 패배했다.
하지만 독안에 든 쥐를 역으로 이용해 대승을 거둔 해전이 명량해전이다. 13척의 배로 배수진을 치고 죽음을 무릅쓴 채 일본수군을 물리친 이순신 장군의 지략에 다시 한 번 고개 숙이며 수중고혼이 된 영령들의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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