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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가진 몸, 월급은 쥐꼬리... 차라리 알바가 낫겠다

[작가, 방송을 말하다 ③] '꿈'을 걸고 시작한 방송작가, 열정이 전부는 아니더라

등록|2016.04.26 15:47 수정|2016.05.10 18:51
지난 3월 16일, 언론노조는 <방송작가 노동인권 실태조사>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예상대로 결과는 충격적이었습니다. 최저시급도 안 되는 임금, 최장시간 노동까지. 이후 방송작가들은 방송작가 유니온을 통해 뭉치기 시작했습니다.

언론노조는 방송작가 노동조합 설립을 통해 방송작가의 노동 환경과 법제도 개선에 나서고자 합니다. 방송작가들이 직접 경험한 방송계는 어땠을까요. 이들의 생생한 이야기를 전합니다. - 기자 말

▲ 아이는 틈날 때마다 방송국에서 일하는 법, PD, 작가 이런 것들을 열심히 검색했다. 그렇다. 이건 나의 어린 시절 이야기다. ⓒ pixabay


아이는 어렸을 때부터 TV를 참 많이 봤었다. 한때는 TV가 바보상자라 불렸고, 아이들이 많이 보면 안 좋다는 이야기가 들리기도 했지만 맞벌이 부모를 둔 자녀가 낮 시간을 보낼 방법은 많지 않았다.

다만 한 가지 원칙이 있었다. 아이의 TV를 지나치게 많이 보지 못하게 하겠다는 이유를 들어 케이블이나 위성 방송은 절대 신청하지 않았다. 한 손에 꼽을 수 있을 정도의 채널. 그러나 아이에게는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아이는 그 날의 편성표를 모두 외울 정도로 TV에 빠져들었다. 시간을 가늠하는 기준이 TV 프로그램일 정도였다. 매일 아침 신문이 도착하면 가장 먼저 하는 일이 신문 말미의 TV 편성표를 확인하고 그 날 보고 싶은 프로그램을 표시해두는 것이었다.

그런 아이가 '나도 저런 프로그램을 만들어보고 싶다'라고 생각하게 되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시간이 좀 더 지나고 인터넷이 보급되면서 아이는 틈날 때마다 방송국에서 일하는 법, PD, 작가 이런 것들을 열심히 검색했다. 그렇다. 이건 나의 어린 시절 이야기다.

처음 작가 일을 시작하게 된 계기를 묻는 사람이 많다. 그러면 나는 '어렸을 때부터 하고 싶었던 일이다'라고 대답한다. 거창한 이유 같은 건 없었다. 그냥 숨을 쉬듯 자연스럽게 가진 장래희망이었다. 나의 대답을 들은 사람은 그럼 지금이 참 행복하겠노라고 말한다. 어렸을 적의 꿈을 이룬 것 아니냐며. 그렇다. 행복하다. 행복해야만 했다.

사실 내가 방송작가에 발을 들인 계기는 전혀 특별하지 않다. 세상에는 나 같은 어린 시절을 보낸 사람이 수만 명, 수십만 명은 있을 것이고 여태까지 만난 다른 작가들을 보아도 실제로 어렸을 적부터 방송작가의 꿈을 키워왔다는 사람들이 많다.

어떤 분들은 그 꿈을 이루기 위해 조금 많은 나이에, 여태까지 하던 다른 일을 접어두고 시작하기도 했을 정도다. 그런 분들에 비하면 나는 아주 일반적인, 평범한 경우일 뿐이다.

그러나 나에게 있어 방송작가는 거의 유일무이한 목표였다. 그걸 이루기 위해 쉬지 않고 여기까지 달려왔고 앞으로도 달려갈 것이다. 지극히 평범한 계기와 과정, 그리고 목표일지 몰라도 당사자인 나에게는 큰 것이니까.

그런 내가, 꿈을 이뤘고 또 이뤄가는 과정에 있는 내가 왜 이런 글을 쓰고 있는 것일까. 그건 꿈이 전부가 아니기 때문이다.

유일한 꿈이었던 방송작가, 현실은 달랐다 

20여 년 전 처음으로 방송에 대한 꿈을 가졌던 나는 지금 이상과 현실의 괴리 사이에 덩그러니 놓여있다. 방송작가가 되고 싶다는 열정 하나를 가지고 여태까지 살아왔고 겨우 꿈을 이뤘나 싶었는데 정작 나에게 남은 건 끝이 보이지 않는 일과 쥐꼬리만 한 급여, 그리고 잔뜩 깎인 자존감뿐이다. 남들처럼 평범한 '9 to 6'의 근무시간을 바란 건 아니었다. 근무시간이 긴 건 어느 정도 예상했다. 하지만, 현실은 상상 이상이었다.

처음 일을 했던 곳은 메인 작가 1명, 서브 작가 1명, 막내 작가 2명이 한 팀이 되어 일주일에 한 편씩 휴먼다큐프로그램을 만드는 곳이었다. 휴먼다큐프로그램의 특성상 출연자의 일거수일투족을 따라다녀야 하기 때문에 촬영은 두 팀이 격주로 진행했지만, 작가는 오로지 한 팀뿐이었다.

당시 막내 작가가 하던 일은 이렇다. 아이템을 찾고 전화 취재를 진행한다. 때로는 당사자를 실제로 만나서 방송에 출연해 볼 의향이 없냐며 설득한 뒤 인터뷰를 진행한다. 출연자의 일정을 받아 정리하거나 혹은 먼저 촬영 거리를 제안하며 일정을 짜기도 한다.

이를 바탕으로 촬영구성안을 작성하고 제작팀에 전달하고, (조금 여유가 있다면) 촬영 현장에 나가기도 한다. 촬영 파일 프리뷰를 한 뒤 가편집본이 나오면 자막을 작성하고 오탈자를 하나하나 확인한다. 그리고 더빙 현장에 들어가 대기하고 있다가 종합편집(아래 종편)이 무사히 끝나는 것까지 확인한다.

그나마 막내 작가가 두 명이었기 때문에 자막 작성이나 더빙, 종편은 암묵적으로 한 명씩 번갈아가며 진행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를 제외하고서라도 업무 강도는 어마어마했다. 더군다나 당시 업무는 '여태까지 방송에 나오지 않았던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일의 양은 더욱 많았다.

당시 내가 살던 곳과 일하는 곳이 꽤 멀었기 때문에 막차가 끊기면 택시를 타고 집에 갈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종편에 들어가지 않아도 되는 주에는 (다른 분들의 관대한 배려 덕분에) 아슬아슬하게 막차라도 탈 수 있었지만 종편실에 들어가는 날 막차가 끊길 때까지 일이 끝나지 않는다면 꼼짝없이 편집실 소파에서 쪽잠을 청할 수밖에 없었다.

종편이 끝났다고 안심할 수도 없었다. 시사하다가 추가로 재편집을 해야 할 일이 생기면 그에 따라 자막을 다시 쓰고, CG실에 다시 맡기고, 수정 더빙을 위해 나레이터와 다시 일정을 조율하고 편집이 끝날 때까지 대기하는 것이 반복되었다.

그렇게 일을 하고 나면 한 달 단위로 통장에 급여가 들어온다. 주당 27만5000원씩 4주 치를 계산하고, 거기에 3.3% 원천징수를 제하고 나면 남는 돈은 106만3700원. 며칠을 제대로 씻지도 못하고 집에 들어가지도 못한 채 5분 대기조로 지내거나, 잠깐 눈을 붙일 때조차 노트북을 품에 안은 채 일한 결과물이었다. 그나마도 여러 가지 사정에 의해 방송이 나가지 않을 경우 전혀 받을 수 없는 돈이었다.

어느 날 파도처럼 밀려온 공허함

많은 돈을 벌겠다고 시작한 건 아니었다. 어쩌면 자아실현에 대한 욕구가 훨씬 컸을지 모른다. '방송작가, 그거 해서 뭐하게? 돈도 못 벌고 몸만 엄청 상할 텐데?'하는 우려 속에서도 내가 하고 싶은 일이라며 꿋꿋이 시작한 일이었다.

그러나 그 시간에 최저시급을 받고 아르바이트를 했었어도 이보다는 훨씬 많이 벌었을 것 같다는 생각이 절로 들 만큼 쥐꼬리 같은 월급을 받고, 개인 시간은커녕 밥 먹을 시간조차 없이 일하며, 그 과정에서 자연스레 목디스크와 허리디스크를 얻었지만 병원에 갈 틈이 없었다.

이렇게 망가져 가는 몸을 이끌고 일을 하다 보니 현실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한 주 한 주, 내가 그토록 원하던 '좋은 방송'을 만들었고 누군가는 재미있게 봤을 것이라는 보람으로는 채울 수 없는 공허한 현실이 나를 짓누르고 있었다.

누군가 말했다. 사람은 밥만 먹고 사는 존재가 아니라고. 그 말은 분명 '돈'으로는 충족할 수 없는, 그보다 중요한 무언가가 사람에겐 존재한다는 말이리라. 그러나 또한, 사람은 꿈만 꾸고 사는 존재가 아니다. 물질적인 것으로 채워질 수 없는 부분이 있지만, 좋은 방송을 만들고 있다는 보람만으로 물질적인 것을 대체할 수 있는 건 아니다.

특히 방송작가는 '꿈'을 꾸며 시작한 사람들이 더욱 많다. 내 이름을 걸고, 내가 할 수 있는 최고의 방송을 만들어보고 싶다는 생각으로 이 일에 뛰어든 사람이 대부분이다. 그러나 그렇게 의욕을 갖고 있다고 해서 출근도 퇴근도 없는 근무 환경이, 최저시급에도 미치지 못하는 쥐꼬리만 한 급여가 당연시되어서는 안 된다.

꿈은, 밥을 먹을 수 있는 원동력이 되지만 또한 밥은 꿈을 이루기 위한 자양분이다. 더는 꿈을, 열정을 팔기를 강요하지 말라. 작가들의, 방송에 대한 순수한 보람만을 앞세우지 말라. 우리가, 방송작가들이 계속해서 꿈을 꾸고 열정적으로 일할 수 있도록 최소한의 근무시간과 급여는 보장해야 하지 않을까.
덧붙이는 글 이 글은 <미디어스>에도 게재되었습니다. 오마이뉴스는 본인이 쓴 글에 한해 중복 송고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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