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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빨래하러 갔다가... '미꾸라지'를 잡았다?

[시골노래] 마을 어귀 빨래터에서 만난 '거머리'

등록|2016.04.29 14:20 수정|2016.04.29 14:20
한겨울에도 마을 어귀 빨래터에서 물이끼를 걷습니다. 빨래터라는 이름은 그대로이지만, 이제 시골마을 할매는 빨래터로 빨랫감을 이고 와서 빨래를 하기 힘드시거든요. 집집마다 빨래 기계가 있으니 집에서 빨래를 합니다. 빨래하는 손길이 사라진 빨래터에는 물이끼가 생겨요.

▲ 물이끼가 잔뜩 생긴 마을 빨래터. ⓒ 최종규


따스한 볕이 내리쬐고 싱그러운 바람이 부는 봄에는 이 빨래터가 멋진 물놀이터가 됩니다. 다만, 물이끼를 먼저 걷어야 합니다.

아홉 살 큰아이는 아버지를 도와 작은 바가지로 큰 물이끼를 걷습니다. 큰 물이끼는 바가지를 써서 퍼낸 뒤에, 막대수세미를 써서 빨래터 바닥을 박박 문지릅니다.

▲ 아이들은 저마다 인형을 하나씩 갖고 와서 논다. ⓒ 최종규


▲ 아버지가 물이끼를 걷는 동안 작은아이는 얌전히 앉아서 해바라기를 하며 기다린다. ⓒ 최종규


그런데 큰아이가 물이끼를 걷다가 뭔가를 찾았습니다. 큰아이는 "미꾸라지야, 미꾸라지야, 어디 있니?" 하면서 빨래터에서 미꾸라지를 찾았는데, 미꾸라지는 안 나오고 새까맣고 길쭉한 아이가 나왔어요.

"아버지, 얘는 뭐야? 미꾸라지는 아니지?"
"어디 보자. 이 아이는 이름이 뭘까?"

나는 '거머리'라는 이름을 알지만 일부러 이름을 안 가르쳐 줍니다. 아이 스스로 이름을 '새로 붙여' 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마을회관에서 할머니 한 분이 나오셨어요. 제가 막대수세미로 물이끼를 긁어내는 소리를 들으시고는, "아따 수고들 하시는구만! 고마워서 으쩐당가!" 하시면서 아이들 먹으라고 뻥튀기를 가지고 오셨어요. 큰아이는 마을 할머니 한 분한테 바가지를 내밉니다.

아직 '검저리'를 만날 수 있구나

▲ 큰아이가 마을 빨래터에서 건진 검저리. 빨래터를 다 치운 뒤에는 빨래터 아닌 흙도랑으로, 논하고 떨어진 자리에 옮겨 주었습니다. ⓒ 최종규


"할머니, 보세요."
"뭔데? '검저리' 아닌가. 검저리가 물면 아프다."

마을 할머니가 들려준 말을 듣고 생각합니다. 서울말로는 '거머리'이지만, 이곳 고장말로는 '검저리'라 하는구나 하고. 나중에 살펴보니 경상도에서도 거머리를 '검저리'라 한다고 합니다.

▲ 몸이 길게 늘어난다. ⓒ 최종규


▲ 다시 몸이 통통하게 줄어든다. 설마 이 검저리가 빨래터 미꾸라지를 잡았나? ⓒ 최종규


"어머니한테도 보여주고 올게!"

큰아이는 검저리(거머리)를 담은 바가지를 들고 부리나케 집으로 달려갑니다. 물놀이도 재미있지만, 오늘 새롭게 마주한 검저리를 어머니한테도 보여주면서 즐거움을 누리고 싶습니다.

▲ 아이들은 물놀이, 아버지는 손빨래. ⓒ 최종규


▲ 물놀이를 시원하게 ⓒ 최종규


작은아이는 빨래터 가장자리에 앉아서 뻥과자를 먹습니다. 나는 신나게 막대수세미질을 합니다. 바야흐로 빨래터 물이끼를 모두 걷어냅니다. 이제부터 두 아이는 물놀이를 합니다. 두 아이가 벗은 겉옷은 빨랫돌에 얹어서 복복 비벼서 빱니다.

나는 마을 빨래터에서 빨래를 하고, 아이들은 마을 빨래터에서 물놀이를 합니다. 한 시간 남짓 실컷 물놀이를 하고서, 개구리 노래를 부르며 놀고서, 물을 하늘로 튀기고서, 온몸이 물로 흠뻑 젖고서, 이제 옷 갈아입고 샛밥을 먹으러 집으로 돌아갑니다.

▲ 빨래터 바닥에 엎드려 개구리 노래를 부른다. ⓒ 최종규


▲ 하늘로 물을 튀기며 놀기. ⓒ 최종규


▲ 빨래도 마쳤고, 물놀이도 잘했고, 빨래터도 깨끗이 치웠고, 즐겁게 집으로 돌아간다. ⓒ 최종규


덧붙이는 글 이 글은 글쓴이 누리사랑방(http://blog.naver.com/hbooklove)에도 함께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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