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곱 권으로 이야기를 마무리를 짓는다. ⓒ 세미콜론
마치 마법사와 같았다고 할까요? 어쩜 이렇게 깨끗하면서 환히 빛나도록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런데 어느새 하루하루 흐르더니 내가 우리 어머니처럼 방바닥을 훔치고 걸레를 빨며 집안일을 건사하는 어버이 자리에 섭니다.
'시간은 흐르고 있어. 천천히 확실히. 나도 멈춰 서 있지는 않았을 거다.' (9쪽)
"소타 씨와 다른 분들을 믿고 다녀올게요. 아버지가 본 풍경이 어떤 것이었는지 저는 보고 싶어요." (45쪽)
이와오카 히사에 님 만화책 <토성 맨션>(세미콜론,2015) 일곱째 권을 읽고 나서 오래도록 이 책을 책상맡에 두면서 '닦는 일'을 돌아보았습니다. 모두 일곱 권으로 마무리짓는 이야기 <토성 맨션>입니다. 지구라는 별이 너무 더러워지고 망가진 탓에 아무도 지구에서 숨을 못 쉬고 못 살고 말아서, 그만 지구를 떠나 지구 바깥에 '고리' 같은 건물을 올려서 산다고 하는 줄거리를 들려주는 만화예요.
▲ 속그림 ⓒ 세미콜론
이른바 '우주 창문닦이'인 셈이니 '여느 창문닦이'하고는 퍽 다를 만합니다. 크기가 다르다고 할까요. 그러나 우주 창문닦이로 일하든, 높은 건물에서 창문을 닦는 일을 하든, 두 자리 모두 아슬아슬해요. 줄을 놓친다든지 줄이 끊어지면 목숨을 잃어요. 아찔한 일이라 할 수 있습니다.
'누군가를 구하기 전에, 스스로를 구하려고 하지 않았다.' (83쪽)
'마사에의 꿈을 뺏은 건 누구지? 내 꿈은 뭐였지? 단 한 사람의 죽음으로 내 세계는 변했다.' (95쪽)
'내가 아무리 작다고 해도, 작으면 좁은 곳도 빠져나갈 수 있어. 그러니까 괜찮아.' (105쪽)
만화책 <토성 맨션>에 나오는 창문닦이는 모두 '하층 주민'입니다. 하층 주민인 창문닦이는 '상층 주민'이 사는 곳에 있는 창문을 닦습니다. 하층 주민은 하층 창문을 닦지 못합니다. 하층 주민이 사는 곳에 있는 창문을 닦기에는 너무 위험하기에 아무도 하층 창문을 닦지 못한다고도 해요. 더군다나, 상층 주민은 저희 건물 창문을 스스로 닦지도 못한다고 하는군요.
그러니까, 지구를 떠나 우주에서 살아야 하는 사람들은 우주에서도 계급과 신분으로 갈린 채 서로 다른 자리에서 사는 셈입니다. 상층 주민은 우주에서 '별을 보며' 사는데, 하층 주민은 우주에서 살지만 막상 '별조차 못 보고' 살아요. 우주에서도 전깃불을 밝혀서 살아요. 하층 주민은 햇볕하고는 동떨어진 데에서 어두움에 갇힌 채 산다고 할 수 있습니다.
▲ 속그림 ⓒ 세미콜론
'아버지, 저는 다른 방법으로 같은 장소에 설 거예요. 좇고 뛰어넘어서 설명 목표가 없어지더라도, 저의 미래는 계속됩니다. (191쪽)
하층에서 늘 어둠에 갇혀 지내는 사람들은 장비를 단단히 챙겨서 상층으로 가서 창문닦이 일을 합니다. 상층 주민은 남(하층 주민)이 닦아 주는 창문을 올려다보면서 별바라기를 합니다. 상층 주민으로서는 하층 주민이 없으면 창문이 지저분해지다가 꽉 막히겠지요. 이뿐 아니라 상층 사회를 버티는 온갖 시설이나 문화도 하층 주민이 여러 가지 밑바닥 일을 맡아 주기 때문에 누릴 수 있어요.
더 생각해 본다면, 돈이나 권력이 있어서 '손에 흙이나 물을 안 묻히'고도 깨끗한 옷과 집과 밥을 얻는 사람이 제법 많습니다. 만화책 이야기뿐 아니라 우리 사회에서도 그래요. 부자나 권력자 자리에 있는 사람은 쌀이나 고기나 푸성귀가 어떻게 나는지조차 몰라도 맛나거나 기름진 밥을 먹어요.
"왜 저렇게 링(우주 건물)이 아름다운지 아세요?" "응? 왜지?" "링이 아름다운 건 창문닦이가 창을 닦기 때문이죠." (238∼239쪽)
▲ 속그림 ⓒ 세미콜론
일곱 권에 이르는 만화책을 마무리짓는 자리에서 주인공 아이는 '우주 건물'에서 비행선에 몸을 싣고 '붉은닥세리(불모지) 지구'로 날아갑니다. 붉은닥세리 지구에 닿은 주인공 아이는 먼 옛날에 사람들이 살았다고 하는 지구라는 곳에 처음으로 두 발을 디디면서 '우주 건물'을 바라보았고, 이 우주 건물이 아름답게 빛나는 모습을 올려다보면서 "창문닦이가 창을 닦기 때문"에 저렇게 아름답게 빛나는구나 하고 깨닫습니다.
나는 이 대목을 읽다가 아주 조용히 책을 덮고 아스라히 먼 옛날 모습을 떠올렸어요. 그리고 바로 오늘 이곳에서 내가 손수 걸레를 빨아 집안을 훔치는 모습을 새삼스레 돌아봅니다. 작은 걸레를 아이한테 맡기면서 함께 먼지를 훔치는 집일을 되새깁니다. 방바닥에 내려앉은 먼지는 걸레로 훔치고, 마음에 끼는 먼지는 사랑으로 닦습니다. 마당에 떨어지는 가랑잎은 빗자루로 쓸고, 마음에 도사리는 응어리나 미움이나 생채기나 아픔은 언제나 사랑으로 다스립니다.
나는 내 마음에 끼는 먼지를 씩씩하게 닦아 낼 줄 아는 '창문닦이'가 되어야겠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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