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문운주
5월 8일, 고향을 찾았다. 고향이라고 해봐야 이곳 광주에서 15분 거리다. 아직도 500년 느티나무는 그대로인데 냇가 아이들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건너 밭에는 어머니가 쭈그리고 앉아 김을 매셨다. 옥수수며 고구마를 바리바리 싸 주셨다. 어머니는 그렇게 사셨다. 그렇게 사시는 것이 당연한 줄 알았다.
그리고 거동을 못 하실 때는 느티나무 밑에 앉아서 마냥 기다리셨다. 못난 아들을.
왜 이렇게 멀기만 할까. 내 고향이... 나무는 싱그럽고 날씨도 화창한데...
숙모님 연세가 아흔이 다 되셨다. 다정하고 다감하고 어머니 같으신 분이다. 아버지는 5남매시다. 이제 숙모님 한 분만 살아계신다.
아버지와 어머니의 생전의 모습을 말씀해 주실 수 있는 유일한 분, 우리 집안의 제일 어른이시다. 그런데 자주 찾아뵙지 못했다.
"운주야~~!"
불러주시는 숙모님 허리가 너무 휘었다. 얼굴에 주름이 가득하다. 그 곱던 얼굴이... 골목길 담장도 무너진 채로다. '능주아줌, 봉황 아줌'은 어디로 가셨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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