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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라도 잘살겠다 했다가 '끼어버린' 당신께

[서평] 1인 가구를 위한 마을사용설명서 <독립하고 싶지만 고립되긴 싫어>

등록|2016.05.09 16:11 수정|2016.05.09 16:11

▲ "아플 때, 위험할 때, 어려움에 처했을 때 옆집 문을 두드리고 도움을 청하는 일마저도 이젠 어색한 시대. 혼자 잘 살아보려고 시도하다가 어딘가에 '끼어버린' 듯한 느낌이 드는 경험, 아마 이 글을 읽는 당신도 해보지 않았을까. 그런 이들에게 권하고 싶은 책이 있다." ⓒ flickr.com


한국에서도 많은 사람에게 '내 집 마련'은 삶을 영위하기 위한 꿈이다.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씁쓸하게도 소시민에게는 현실에서 점점 더 멀어져만 가는 꿈이다.

최근 유엔은 '세계적으로 10억 명이 슬럼에 산다, 각국의 슬럼화가 심각해지고 있다'고 발표했다. 국제 기준에 따르면 국내 도심에서 흔한 주거 형태인 고시원과 옥탑방·반지하 방도 슬럼에 해당한다. 더 나은 공간을 선택할 수 있는 데도 고시원과 반지하 방에 굳이 입주한 사람은 아마 많지 않을 것이다. 결국 문제의 많은 부분은 '가난'으로 수렴된다. 그렇다면 오늘날 한국에는 도대체 얼마나 많은 '난민'이 살아가고 있단 말인가.

물론 이 사회에서의 '독립'이 고단한 것은 단지 경제적 어려움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이웃끼리 서로 정겹게 도우며 살던 '마을'의 개념은 2000년대로 접어들면서 이미 크게 해체됐다. 빼곡한 건물 틈에서 수많은 사람이 밀집해 살아가면서도 우리는 좀처럼 '혼자'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미처 깨닫기도 전에, 정서적으로도 많은 사람은 각자 자신만의 울타리 안에 '단절'된 상태로 접어든 셈이다.

아플 때, 위험할 때, 어려움에 처했을 때 옆집 문을 두드리고 도움을 청하는 일마저도 이젠 어색한 시대. 혼자 잘살아 보려고 시도하다가 어딘가에 '끼어버린' 듯한 느낌이 드는 경험, 아마 이 글을 읽는 당신도 해보지 않았을까. 그런 이들에게 권하고 싶은 책이 있다.

1인 가구를 위한 마을, 어디 없나요

▲ <독립하고 싶지만 고립되긴 싫어>겉표지. ⓒ 오마이북

홍현진 기자와 강민수 기자가 공동으로 취재하며 쓴 책 <독립하고 싶지만 고립되긴 싫어>(오마이북)는 1인 가구 마을공동체를 실험한 14가지 사례를 소개한다.

귀촌과 자급자족 생활을 시도한 '우리동네 사람들'은 인천의 빌라촌에 둥지를 틀었다. 대부분 1인 가구인 30대 청년들이 빌라의 302호·401호·402호에 옹기종기 모여서 산다. 이들은 스스로 가꾸는 닭장과 휴경지를 활용한 텃밭에서 먹거리를 직접 거둬들인다. 본문에 실린 사진과 글에서 함께하는 이들의 '여유로움'이 물씬 풍긴다.

'집밥'이 그리울 때 만나서 같이 밥을 먹는 모임으로 시작한 '아현동 쓰리룸'도 있다. 마치 비슷한 관심사를 주제로 만나는 '소셜다이닝'의 소통 방식과도 비슷하다. 쓰리룸 집밥 모임에 친근한 뮤지션의 공연을 곁들이며 사람들이 더 찾아들었고, 그러면서 '동네 문화예술공간'으로 거듭났다.

'두꺼비하우징'의 사례는 더 흥미롭다. 이는 마을의 빈집을 빌려 인테리어를 새로 한 뒤 셰어하우스로 만들어 입주자를 받는 '공가 프로젝트'다. 현대 도시의 주거 개념이 단절된 공간과 폐쇄적인 생활 방식으로 변하는 와중에 공동 주거의 '부활'을 시도했다는 점에서 그야말로 '도발적인 실험'이다.

"사회주택이라는 말 들어보셨어요? 사회주택은 비영리 공공주택을 말해요. 사회적 가치, 공공의 가치를 지닙니다. 두꺼비하우징의 주요 사업 가운데 하나가 바로 이러한 사회주택의 공급이죠. (중략) 상태가 크게 나쁘지 않은데도 집주인이 방치하고 있는 집들이 많았어요. 그 버려진 집들이 마을의 흉물이 되어가는 것 같아서 그걸 어떻게 활용할 방법이 없을까 고민하기 시작했죠." (본문 56쪽 중에서)

여성 1인 가구를 위한 '그리다 협동조합', 텃밭을 가꾸는 자연 친화적 모임 '에코 랄랄라', 담보 없이 청년에 대출해주는 청년연대은행 '토닥'의 사례도 엿볼 수 있다. 또한 엄연히 사회의 일원이지만 배척되기 쉬운 현실에서, 편견 어린 시선에 굴하지 않고 성소수자의 목소리를 자신 있게 내는 '우야식당'도 있다. '우리만의 마을'보다 '다름을 아우르는 공동체'를 추구하는 모습을 보면, 진짜 마을의 의미란 이런 게 아닐까 싶어진다.

홀로 살아가며 겪어야 하는 일들

▲ "우리 사회의 돌봄 시스템은 아직 무척 열악하다. 기본적으로 가족 간병을 전제하고 있다. 가족들이 돌볼 형편이 안 되면 비싼 간병인을 써야 한다. 수술을 할 때도 꼭 혈연가족이 와서 사인을 해야 한다. 병원에 혼자 가면 의사의 걱정과 잔소리까지 들어야 한다." ⓒ pixabay


혼자 살면 상대적으로 더 자유롭게 지낼 수도 있겠지만, 그만큼 힘든 점도 뒤따른다. 가장 먼저 거론할 수 있는 예가 '아플 때'다. 당장 응급실에 갈 일이 생기더라도 '보호자'가 필요하지 않은가. 여성 1인 가구 공동체 '그리다 협동조합'이 '건강 두레'를 언급한 부분은 그런 점에서 상당히 의미 있는 논의로 보인다.

"우리 사회의 돌봄 시스템은 아직 무척 열악하다. 기본적으로 가족 간병을 전제하고 있다. 가족들이 돌볼 형편이 안 되면 비싼 간병인을 써야 한다. 수술을 할 때도 꼭 혈연가족이 와서 사인을 해야 한다. 병원에 혼자 가면 의사의 걱정과 잔소리까지 들어야 한다. (중략)

'건강 두레' 같은 것도 생각해봤다. 사회적 돌봄 시스템은 없고, 우리는 아프니까. 병원 동행도 해주고, 목돈이 들어가는 의료비도 함께 나누는 식으로. 텔레비전을 보면 온통 보험 광고다. 다들 불안해하니까 가능한 일이다. 그런 식 말고 우리끼리 보험을 만들면 좋겠다. 정서적으로도 서로 보살펴주고." (본문 76쪽 중에서)

금전적인 문제도 빼놓을 수 없다. 청년 '금융 두레' 격인 '토닥'은 보증이나 담보, 채권 추심 없이 돈을 대출해준다. 여기까지 들으면 '그런데도 과연 시스템이 유지될까?' 싶은 의문이 든다. 협동조합 형태로 조합원을 받으며 '토닥학개론' 수업을 이수하고, 신용 등급이 아닌 '신뢰'를 바탕으로 돌아가는 대출 체계는 상당히 매력적으로 들린다. 우려와는 달리 조합원 150명, 출자금 1165만 원으로 시작한 토닥은 2015년 10월 기준으로 조합원 494명에 출자금 8241만 원 규모로 빠르게 성장했다고 한다.

무엇보다도 혼자 살면 외롭기 마련이다. 앞서 말한 모임들은 '기능적' 측면 외에도 같이 모인 사람들끼리 도우며 삶을 이어갈 재미와 의미를 준다는 점에서도 뜻깊다. 본문에 나오는 모임 중 고독사한 사람의 장례를 돕고, 장보기를 도와주거나 말동무가 되어주는 생활예술 커뮤니티 '명랑마주꾼'은 듣기만 해도 흐뭇하다.

사회 '언저리'에서 살아가는 청년들이 모여 독거 노인에게 반찬을 만들어 제공하는 2030 청년 모임 '우리동네 청년회'도 마찬가지다. 이들은 사회문제를 함께 고민하며 세월호 참사 이후에 홍대입구역에서 세월호 특별법 제정 서명운동을 벌이기도 했다. 또한 기금 마련 콘서트를 열어 지진 피해를 입은 네팔 NGO에 기부한 바 있다.

문화적 요소를 공유하고, 경제적 어려움을 같이 나누고, 밥을 같이 먹거나 고민거리를 주고받는 사람들. 귀농의 축소판을 경험하면서 조금 더 건강한 삶을 위한 방법을 찾는 모습 등은 많은 사람이 그려보던 장면 아닐까.

한국 사회에서 혼자 살아간다는 것

▲ 'KEEP CALM AND STAY SINGLE' 침착하고, 1인 가구를 유지하라. ⓒ flikr.com


"사전을 찾아보면 자취란 '손수 밥을 지어 먹으면서 생활한다'는 뜻인데, 이상하게도 한국 사회에서는 결혼의 전 단계라고 인식한다. 혼자 살든 둘이 살든 살림이라는 걸 해야 하는데, 1인 가구에는 살림이 생략된 것처럼 취급하는 경향이 있다.

1인 가구라고 하면 집안에 온통 라면과 일회용품이 가득하거나 그게 아니면 정반대로 화려하고 고급스러운 골드미스이거나. 텔레비전에서 흔히 보여주는 1인 가구에 대한 양극단의 이미지가 있다. 사실 대부분의 1인 가구는 양극단이기보다는 그 사이 어딘가에 있는데... 그런 점들은 잘 그려지지 않는다. 소수자에 대한 시선이 대부분 그런 것 같다. 장애인, 성소수자도 마찬가지다." (본문 73쪽 중에서)

한국 사회에서 1인 가구는 이제 보편적인 '사회 현상'이다. 책에서 거론한 것처럼, 통계청 자료에도 나오듯이 2000년 15%였던 1인 가구 비율은 2015년에 27%까지 늘어났다. 2035년에는 자그마치 34%에 달할 전망이다.

하지만 미디어가 다루는 1인 가구의 이미지와 사회적 인식은 여전히 '불완전한' 상태에 가깝다. '1인 가구'라고 말하면 결혼을 '못 한' 사람이나 '일시적인 주거 상황'을 떠올리는 경우가 많다. "결혼은 언제 할 것인가"라는 물음이 자주 이어지기도 한다.

이 책은 다양한 공동체의 모습을 통해, 1인 가구의 모습이 다양하듯 삶의 형태도 다양하다고 보여주는 듯하다. 마음먹고 실행하기에 따라 함께 살아가는 가구가 탄생할 수도 있고 공동으로 작업하는 공동체가 만들어질 수도 있다. 관계가 어떤 형식으로 확장되고 이뤄질 수 있는지, 본문은 '편견을 벗겨낸 시선'을 독자에게 선사한다.

외로워지고 싶진 않지만 집단 속에서 지나치게 얽매이고 싶지도 않은 사람이 늘어가는 오늘날. <독립하고 싶지만 고립되고 싶진 않아>가 보여주는 사례들은 균형 잡힌 삶을 향한 가능성을 제시한다. 쉽지는 않겠지만, 외줄 타기 같은 홀로살이가 타인의 삶과 만나는 접점이 '이런 방식으로도 가능하구나' 하고 보여주는 듯하다.

이 책이 현대 사회 속 1인 가구의 급증, 혹은 개인을 위한 삶의 방향 등 여러 문제를 풀 열쇠를 당장 쥐여주진 않는다. 하지만 본문에서 인용한 공동체 실험을 통해 많은 청년이 찾아가야 할 해답의 실마리는 충분히 드러나지 않을까 싶다. 적어도 막막하게 홀로 살아가는 젊은 세대에 던지는 작은 다독임은 충분히 되어줄 것 같다. '침착하고, 1인 가구를 유지해도 된다'고 말이다.
덧붙이는 글 <독립하고 싶지만 고립되긴 싫어>(홍현진·강민수 지음/ 오마이북/ 1만5000원/ 2016.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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