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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수 용기공원은 협치의 성공사례

새들이 지저귀고 녹음이 우거진 용기공원을 찾아서

등록|2016.05.10 16:48 수정|2016.05.10 16:48

▲ 여인의 조각상 뒤편에 만월정이 보인다 ⓒ 오문수


'협치'란 민과 관이 함께 협력하여 문제를 해결하는 정책과정을 말한다. 시민의 입장에서는 각종 정책 결정과 실행과정에 직접 참여하는 것이고, 행정의 입장에서는 공공정책 과정에 시민의 참여를 촉진함으로써 공공정책의 효과를 높이는 일이다.

전남 여수시청 뒤편에는 협치의 성공사례를 보여주는 용기공원이 있다. 여수시청에 들렀다가 주차장 뒤편에 있는 용기공원에 올랐다. 높이 50여 미터의 야트막한 용기공원으로 올라가는 길에는 깔끔한 데크가 깔려 있고 신록의 나무들 사이에서는 새들이 지저귄다.

▲ 울창하게 우거진 나무들을 휘감고 올라가는 담쟁이 덩쿨들. 사진만 보면 깊은 산속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다. ⓒ 오문수


아름드리  소나무와 참나무를 칭칭 갈아 올라가는 담쟁이 넝쿨 때문인지 시가지 건물이 거의 안 보인다. 그러나 자세히 보면 높이 솟은 나무 사이로 이순신 장군이 거북선을 건조했던 선소가 보이고 장성마을도 보인다. 여기가 과연 여수 중심지가 맞나? 깊은  산속에 온 것 같은 청량감이 온몸을 휘감는다.

산책로를 따라 걷다보면 야외공연장 앞에 야생화단지가 조성되어 있다. 구절초, 꽃창포, 두메부추, 맥문동, 범부채, 부처꽃, 수선화, 원추리, 은방울 꽃 등의 야생화들이 사람들을 반긴다. 산책로를 따라 다리를 절며 열심히 운동하는 할머니(74) 한 분을 만나 용기공원에 자주 오는가와 산책로를 따라 운동하는 소감을 물었다.

▲ 야생화단지 뒤편에 야외공연장이 보이고 울창한 숲 사이에는 산책로가 마련되어 시민의 사랑을 받고 있는 용기공원 ⓒ 오문수


"좋지요. 우리 집은 거북공원 바로 옆에 있어요. 전에는 거북공원 주위를 돌며 운동했는데 요즘은 나이든 노인들이 모여 담배를 피우고 시끄러워서 잘 안가고 용기공원으로 와요. 조용하고 높지 않아 다리에 부담도 안 주고 울창한 숲속에서 우는 새소리도 들려 아주 좋아요. 아침과 낮에는 사람들이 많이 옵니다."

잔디마당을 지나 공원 정상에 가면 아담한 기와집 정자인 '만월정'이 있다. '달이 가득찬다'는 의미의 만월정에는 역사적 사실이 숨어있다. 용기공원 서쪽으로 1km쯤 떨어진 안심산 아래에는 고려가요 <동동>의 유래가 됐던 장성(당시 장생포) 마을이 있다.

고려 말, 왜구가 남해안을 자주 침범하면서 장생포마을을 유린할 때 유탁 장군이 왜구를 물리치고 '둥둥둥' 승전고를 울렸던 장성마을. '승전한 유탁 장군은 용기공원 정상에 남쪽바다를 바라보고 만월정을 지었다'는 옛 기록이 있다.

아름다운 용기공원, 하마터면 2300대가 주차하는 주차장이 될 뻔했다

▲ 건너편에 보이는 곳이 여수시청이고 뒤편에 주차장이 보인다. 이 아름다운 공원을 밀어버리고 2300대의 차가 주차했다면 얼마나 황량했을까? ⓒ 오문수


개를 데리고 산책하던 아주머니와 할머니한테 "아름다운 용기공원이 잘못했으면 2300대가 들어갈 주차장 될 뻔했어요" 하자, "말도 안 돼요"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두 분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하자 "정말 잘 했네"라며 반색하는 할머니가 "정치인들은 보이는 것만 하려고 하고 서민의 생각은 신경 안 써요"라고 덧붙였다.

지난 2010년 11월 중순. 여수시장은 여수시의회 본회의(129회)에 주차장 예산안 48억 원을 상정했다. 여수박람회를 대비해 용기공원을 없애고 주차장을 세우겠다는 것이었다. 구체적으로는 세계박람회를 앞두고 원활한 교통소통, 박람회장과 연계한 환승 주차장을 마련하고 여수시청 주변의 주차난을 해소한다는 목적이었다.

▲ 울창하게 우거진 숲 사이에 난 산책로를 따라 한 시민이 산책하고 있다 ⓒ 오문수


이에 여수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가 강력한 반대를 표명하고 성명을 발표했다. 대안 마련에 나선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는 "자가용 중심의 도로 정책보다는 극심한 불법 주정차와 2중 주차를 단속하고, 자전거 이용 활성화 대책을 마련할 것과 버스우선 통행을 위한 저탄소 중심의 도심 교통체계를 구축하라"고 주문했다.

여수시 집행부의 강력한 추진의지에 시민단체는 지역 국회의원에게 공개질의서 보내기, 1인시위, 나무에 이름표 달기, 보물찾기, 소나무 둘레 알아맞히기,  용기공원 보존 시민 봄소풍 대회 등을 열며 맞불을 놓고 반대 여론 조성을 위해 노력했다.

시민단체들은 여수시의회 본회의 통과와 추경예산안 통과 등에도 굴하지 않고, 15회에 걸친 성명 발표와 보도자료를 발표했다. 시민단체와 여수시 집행부와의 기나긴 싸움은 시장과 시민단체 대표와 면담(2011년 8월 24일)을 거치면서 중단되는 듯했다. 하지만, 여수시가 '용기공원 조성사업 전면 중단 아니다'라는 보도자료(2011년 8월 30일)를 발표해 시정에 대해 극심한 불신을 갖게 했다.

▲ 소나무가지 사이 건너편에는 이순신 장군이 거북선을 건조하고 정박했던 선소와 굴강이 보인다 ⓒ 오문수


설왕설래하던 용기공원 주차장 사업은 여수시가 '용기공원을 생태공원으로 조성한다'는 내용의 보도자료(2011년 9월 26일)를 내면서 최종적으로 결론을 지었다. 이후 2012년 5월 1일, 멋진 공원으로 다시 탄생했다.

시민의 사랑을 받고 있는 용기공원이 없어지고 2300대의 자동차가 들어찬 주차장이 됐다면 어찌됐을까를 생각하면 아찔하다. 3년에 걸친 시민단체와 시의회 및 집행부의 줄다리기는 상호간 의사소통을 통해 아름다운 결말을 맺었다.

용기공원은 협치가 얼마나 중요한가를 보여준 성공사례다. 
덧붙이는 글 여수넷통에도 송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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