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부 판정 이후 거리로 나앉은 101명 노동자
부당해고에 맞서 투쟁하는 동양시멘트 노동조합 인터뷰
2014년 5월 강원도 삼척에 있는 동양시멘트 사내하청업체 '동일'에서 일하던 노동자들이 민주노조를 만들었다. 노동조합은 고용노동부에 동양시멘트 회사의 위장 도급 문제와 관련해서 진정서를 제출했다.
2015년 2월 고용노동부 태백지청은 동양시멘트 사내하청업체 '동일' 노동자들은 입사 때부터 동양시멘트 노동자들로 인정하여 위장 도급 판정을 내렸다.
한편, 동양시멘트는 고용노동부 판정서 잉크가 마르기도 전에 '동일'에 도급계약 해지를 통보했다. 법을 지키라는 지극히 상식적인 노동부의 판정으로 인해 101명의 노동자들이 하루 아침에 거리를 쫓겨나게 된 것이다.
이후 동양시멘트가 삼표시멘트로 매각되면서 노동조합은 삼표시멘트 본사가 있는 서울로 상경, 200일 넘도록 농성 투쟁을 전개하고 있다. 지난 4월 22일 뻔뻔하기 이를 데 없는 자본에 맞서 싸우고 있는 조합원들을 만나 자세한 투쟁 상황을 들어보기로 했다.
- 각자 본인 소개 부탁드린다.
이인용 : 저는 민주노총 강원영동지역 노동조합 동양시멘트지부 부지부장 이인용입니다. 저희 노동조합은 아직 산별이 없는 민주노총 직가입 사업장입니다.
최창수 : 저는 동양시멘트에서 20년 가까이 일하다 해고된 최장수라고 합니다.
김세진 : 저는 조합에서 막내인 김세진이라고 합니다. 원청이랑 비교했을 때 40%정도 임금 받고, 장시간 일해도 참고 살다가 불만들이 터져 나와서 노동조합 만들고 지금까지 함께 하고 있습니다.
- 시멘트 사업장이 아무래도 익숙하지 않은 독자들께 동양시멘트는 어떤 회사인지 그리고 어떤 일을 하는지 간단한 설명 부탁드린다.
이인용 : 동양시멘트는 업계에서 세 손가락 안에 꼽힌다. 현장엔 20여개 협력업체가 있는데 이중 대표적인 협력업체가 동일, 두성이다. 지금 노동조합에 가입한 조합원은 모두 동일 소속 노동자들인데 110여명이 일했다.
동양시멘트 노동자들은 작업장을 45광구, 46광구, 49광구, 55광구 이렇게 부르는데 조합원들은 주로 46광구에서 일했다.
이인용 : 저희는 시멘트 회사에서 가장 기초적인 업무인 광산에서 석회석 원석을 채취하는 일을 했다. 차감 (발파 전 돌에 구멍 뚫는 작업)부터 발파한 석회석을 중장비인 덤프, 굴삭기로 싣고 돌 파쇄기에 부으면 작업이 끝난다.
최창수 : 저희 일은 쉽게 말해서 탄광이랑 비슷하다고 보면 된다. 탄광과 다른 건 거기는 밀폐된 갱에서 작업을 하는 거고, 우리는 갱이 실외에 있는 것 그 차이가 있다. 차감해서 발파하고 운반하는 것도 같다.
- 노동조합은 어떤 이유로 만들게 되었나?
이인용 : 회사가 곧 법정관리에 들어가고 매각한다는 얘기가 돌면서 고용보장 여부가 문제가 되었다. 이전부터 관리자에게 차별적으로 대우 받고 저임금에 장시간 노동해도 참고 일했는데 더는 그럴 수 없었다.
- 노동조합이 고용노동부 태백지청에 위장도급 관련해서 진정을 넣었고, 노동조합의 손을 들어줬다. 어떤 과정들이 있었는지 판정 이후에 현장에 변화가 있었는지 자세하게 듣고 싶다.
이인용 : 노동부가 기한을 넘기면서 발표를 미루는 바람에 2015년 2월 5일 노동조합이 항의 면담을 가졌습니다. 그 결과 13일 위장 도급 판정이 내려졌다. 그런데 회사가 노동부 판정을 이행하는 게 아니라 도급 계약을 해지하고 해고하겠다고 했다. 사무실에 찾아가서 항의도 했는데 결국 설 명절 전날 문자로 2월 28일부로 해고하겠다는 통지를 받았다.
최창수 : 그 당시엔 정말 멘붕이었다. 그러다 시간이 조금 지나니까 억울하더라. 내가 뭘 잘못해서 해고가 됐는지 납득하기 어려웠다. 죄가 있다면 딱 하나 회사를 싫어하고 민주노총 노동조합을 만든 거 밖에 없는데 서럽기도 하고 악이 받쳤다.
- 김세진 조합원분의 경우 아직 나이도 젊고 다른 일자리를 찾으면 그만이지 생각할 수도 있었을 텐데 어떻게 싸움을 결심하게 되었나?
김세진 : 5년만 더 젊었으면 때려치지 않았을까. 농담이고, 다른데 갈 생각은 안했다. 싸우면 될 것 같았다. 법에서도 우리를 원청노동자로 인정하니까 유리한 상황이라고 생각했다.
노동조합은 회사에 고용노동부 판정 이행과 관련해서 줄곧 교섭을 요구했으나 성사되지 못했다. 결국 노동조합은 동일 회사 사무실이 있는 49광구 정문 앞에 무기한 천막농성에 돌입하고, 각종 법적 투쟁도 함께 전개했다.
- 천막농성 하면서 우여곡절이 많았다고 들었다.
이인용 : 회사에서 조합원 20여명이 회유당해서 현장으로 출근한 사건이 있었다. 공장이 멈춰야 회사가 압박을 받을텐데, 조합원들이 힘들어서 투쟁을 포기할 수는 있지만 회사에 들어가서 일을 한다는 것에 배신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회사는 회유한 조합원들이 출근할 수 있게 철저하게 보호했고, 우리는 그걸 저지하느라 몸싸움이 있었다. 또 한번은 회사가 삼표로 매각되는 과정에서 실사단이 삼척으로 내려온 적이 있는데 이때 노동조합이 교섭을 요구하는 공문을 들고 차 앞을 막아섰는데 업무방해라고 현행범으로 체포되기도 했다.
여러 차례 계속된 물리적 충돌로 인해 올해 1월 13일 조합원 7명이 형사 사건에 연루되어 법정구속되었다.(현재는 4월15일 항소심에서 집행유예로 풀려났다) 한편, 노동조합을 탈퇴한 사람들은 같은 집행유예를 받거나 벌금형만 선고 받았다.
-투쟁 거점을 삼척에서 서울로 옮기게 된 건 동양시멘트 매각과 관련이 있는 건가?
이인용 : 작년 9월 삼표가 잔금을 다 치르면서 회사가 완전히 넘어갔다. 삼표 본사 앞 농성은 매각설이 본격화 되었던 작년 8월 19일부터 시작했다. 당시 조합원 7명이 비닐 하나 덮으면서 자리를 잡았다.
-현안에 대해 삼표시멘트의 입장은 뭔가?
이인용 : 처음엔 동양시멘트에서 있었던 일이니 동양하고 해결보라는 입장이었는데 농성이 계속되자 삼표 사장이 서로 대화로 풀면서 상생하자고 해서 10여 차례 교섭이 있었다.
우리는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노동부에서 위장 도급이라고 하니 그것을 이행하라고 요구했다. 회사는 정규직은 어렵다는 입장만 반복했다. 그런데 위장 도급 관련해서 중노위 판정을 앞두고 자신에게 상황이 불리하다고 판단한 삼표시멘트는 자회사를 만들테니 노동조합을 탈퇴하고, 근로자지위확인소송을 취하하면 받아주겠다는 안을 던졌다.
회사는 불법적인 안을 중노위 중재안으로 던지는 뻔뻔함을 보였다. 노동조합은 당연히 그 안을 받지 않았다. 이후 11월 17일 중노위는 부당해고 및 부당노동행위 판정을 내렸고, 삼표시멘트는 지금까지도 교섭에 나오지 않고 있다.
어느덧 서울 농성 투쟁만 250일을 넘기면서 생계가 어려워서 투쟁을 포기하거나, 삼표시멘트 회유에 넘어 간 사람들 제외하고 현재 23명의 조합원들이 남아있다. 이분들 중에서도 몇몇은 생계투쟁으로, 7명은 수감생활을 했기 때문에 최소한의 인원이 면회 투쟁도 해야 했고, 서울/삼척 두 곳에서 투쟁을 전개했다.
-마지막으로 같이 싸우는 동료들에게, 연대해주시는 동지들께 한마디 부탁드린다.
이인용 : 삼척에서 우물 안 개구리로 살다보니 처음 서울로 상경 투쟁을 왔을 때, '연대'라는 글자가 우리 것만 하기 바쁜데 왜 해야 하나 마음이 앞섰던 게 사실이었다.
그런데 연대 투쟁하면서 재정적으로나 심정적으로 서로 상황을 알고 힘든 걸 같이 겪으면서 조합원이 떠나간 자리 이상을 채워주고 있어서 너무나 감사하다.
또 우리 노동조합이 삼척에서는 물론 동양시멘트 내에서 처음 만들어진 노동조합이다. 그래서 우리가 꺾이면 이후에도 동양시멘트 노동자들, 삼척에 사는 노동자들이 노동조합을 만들기 더 힘들어질 거라는 생각이 들어서 책임감을 갖고 열심히 투쟁할거다.
최창수 : 조금 힘들더라도 지금까지 싸워왔던 것처럼 손잡고 끝가지 힘내서 웃는 모습으로 현장으로 돌아가서 일하고 싶다.
김세진 : 연대하는 동지들에게 도움 받았다, 고맙다 말씀드리면 같이 싸우는 거니까 고맙다는 말 하지 말라고 하는데 그래도 고맙다. 그리고 갚는다는 말이 웃기지만 연대하면서 열심히 함께 싸우겠다.
2015년 2월 고용노동부 태백지청은 동양시멘트 사내하청업체 '동일' 노동자들은 입사 때부터 동양시멘트 노동자들로 인정하여 위장 도급 판정을 내렸다.
한편, 동양시멘트는 고용노동부 판정서 잉크가 마르기도 전에 '동일'에 도급계약 해지를 통보했다. 법을 지키라는 지극히 상식적인 노동부의 판정으로 인해 101명의 노동자들이 하루 아침에 거리를 쫓겨나게 된 것이다.
이후 동양시멘트가 삼표시멘트로 매각되면서 노동조합은 삼표시멘트 본사가 있는 서울로 상경, 200일 넘도록 농성 투쟁을 전개하고 있다. 지난 4월 22일 뻔뻔하기 이를 데 없는 자본에 맞서 싸우고 있는 조합원들을 만나 자세한 투쟁 상황을 들어보기로 했다.
- 각자 본인 소개 부탁드린다.
이인용 : 저는 민주노총 강원영동지역 노동조합 동양시멘트지부 부지부장 이인용입니다. 저희 노동조합은 아직 산별이 없는 민주노총 직가입 사업장입니다.
최창수 : 저는 동양시멘트에서 20년 가까이 일하다 해고된 최장수라고 합니다.
김세진 : 저는 조합에서 막내인 김세진이라고 합니다. 원청이랑 비교했을 때 40%정도 임금 받고, 장시간 일해도 참고 살다가 불만들이 터져 나와서 노동조합 만들고 지금까지 함께 하고 있습니다.
- 시멘트 사업장이 아무래도 익숙하지 않은 독자들께 동양시멘트는 어떤 회사인지 그리고 어떤 일을 하는지 간단한 설명 부탁드린다.
이인용 : 동양시멘트는 업계에서 세 손가락 안에 꼽힌다. 현장엔 20여개 협력업체가 있는데 이중 대표적인 협력업체가 동일, 두성이다. 지금 노동조합에 가입한 조합원은 모두 동일 소속 노동자들인데 110여명이 일했다.
동양시멘트 노동자들은 작업장을 45광구, 46광구, 49광구, 55광구 이렇게 부르는데 조합원들은 주로 46광구에서 일했다.
이인용 : 저희는 시멘트 회사에서 가장 기초적인 업무인 광산에서 석회석 원석을 채취하는 일을 했다. 차감 (발파 전 돌에 구멍 뚫는 작업)부터 발파한 석회석을 중장비인 덤프, 굴삭기로 싣고 돌 파쇄기에 부으면 작업이 끝난다.
최창수 : 저희 일은 쉽게 말해서 탄광이랑 비슷하다고 보면 된다. 탄광과 다른 건 거기는 밀폐된 갱에서 작업을 하는 거고, 우리는 갱이 실외에 있는 것 그 차이가 있다. 차감해서 발파하고 운반하는 것도 같다.
- 노동조합은 어떤 이유로 만들게 되었나?
이인용 : 회사가 곧 법정관리에 들어가고 매각한다는 얘기가 돌면서 고용보장 여부가 문제가 되었다. 이전부터 관리자에게 차별적으로 대우 받고 저임금에 장시간 노동해도 참고 일했는데 더는 그럴 수 없었다.
- 노동조합이 고용노동부 태백지청에 위장도급 관련해서 진정을 넣었고, 노동조합의 손을 들어줬다. 어떤 과정들이 있었는지 판정 이후에 현장에 변화가 있었는지 자세하게 듣고 싶다.
이인용 : 노동부가 기한을 넘기면서 발표를 미루는 바람에 2015년 2월 5일 노동조합이 항의 면담을 가졌습니다. 그 결과 13일 위장 도급 판정이 내려졌다. 그런데 회사가 노동부 판정을 이행하는 게 아니라 도급 계약을 해지하고 해고하겠다고 했다. 사무실에 찾아가서 항의도 했는데 결국 설 명절 전날 문자로 2월 28일부로 해고하겠다는 통지를 받았다.
최창수 : 그 당시엔 정말 멘붕이었다. 그러다 시간이 조금 지나니까 억울하더라. 내가 뭘 잘못해서 해고가 됐는지 납득하기 어려웠다. 죄가 있다면 딱 하나 회사를 싫어하고 민주노총 노동조합을 만든 거 밖에 없는데 서럽기도 하고 악이 받쳤다.
- 김세진 조합원분의 경우 아직 나이도 젊고 다른 일자리를 찾으면 그만이지 생각할 수도 있었을 텐데 어떻게 싸움을 결심하게 되었나?
김세진 : 5년만 더 젊었으면 때려치지 않았을까. 농담이고, 다른데 갈 생각은 안했다. 싸우면 될 것 같았다. 법에서도 우리를 원청노동자로 인정하니까 유리한 상황이라고 생각했다.
노동조합은 회사에 고용노동부 판정 이행과 관련해서 줄곧 교섭을 요구했으나 성사되지 못했다. 결국 노동조합은 동일 회사 사무실이 있는 49광구 정문 앞에 무기한 천막농성에 돌입하고, 각종 법적 투쟁도 함께 전개했다.
- 천막농성 하면서 우여곡절이 많았다고 들었다.
이인용 : 회사에서 조합원 20여명이 회유당해서 현장으로 출근한 사건이 있었다. 공장이 멈춰야 회사가 압박을 받을텐데, 조합원들이 힘들어서 투쟁을 포기할 수는 있지만 회사에 들어가서 일을 한다는 것에 배신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회사는 회유한 조합원들이 출근할 수 있게 철저하게 보호했고, 우리는 그걸 저지하느라 몸싸움이 있었다. 또 한번은 회사가 삼표로 매각되는 과정에서 실사단이 삼척으로 내려온 적이 있는데 이때 노동조합이 교섭을 요구하는 공문을 들고 차 앞을 막아섰는데 업무방해라고 현행범으로 체포되기도 했다.
여러 차례 계속된 물리적 충돌로 인해 올해 1월 13일 조합원 7명이 형사 사건에 연루되어 법정구속되었다.(현재는 4월15일 항소심에서 집행유예로 풀려났다) 한편, 노동조합을 탈퇴한 사람들은 같은 집행유예를 받거나 벌금형만 선고 받았다.
-투쟁 거점을 삼척에서 서울로 옮기게 된 건 동양시멘트 매각과 관련이 있는 건가?
이인용 : 작년 9월 삼표가 잔금을 다 치르면서 회사가 완전히 넘어갔다. 삼표 본사 앞 농성은 매각설이 본격화 되었던 작년 8월 19일부터 시작했다. 당시 조합원 7명이 비닐 하나 덮으면서 자리를 잡았다.
-현안에 대해 삼표시멘트의 입장은 뭔가?
이인용 : 처음엔 동양시멘트에서 있었던 일이니 동양하고 해결보라는 입장이었는데 농성이 계속되자 삼표 사장이 서로 대화로 풀면서 상생하자고 해서 10여 차례 교섭이 있었다.
우리는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노동부에서 위장 도급이라고 하니 그것을 이행하라고 요구했다. 회사는 정규직은 어렵다는 입장만 반복했다. 그런데 위장 도급 관련해서 중노위 판정을 앞두고 자신에게 상황이 불리하다고 판단한 삼표시멘트는 자회사를 만들테니 노동조합을 탈퇴하고, 근로자지위확인소송을 취하하면 받아주겠다는 안을 던졌다.
회사는 불법적인 안을 중노위 중재안으로 던지는 뻔뻔함을 보였다. 노동조합은 당연히 그 안을 받지 않았다. 이후 11월 17일 중노위는 부당해고 및 부당노동행위 판정을 내렸고, 삼표시멘트는 지금까지도 교섭에 나오지 않고 있다.
어느덧 서울 농성 투쟁만 250일을 넘기면서 생계가 어려워서 투쟁을 포기하거나, 삼표시멘트 회유에 넘어 간 사람들 제외하고 현재 23명의 조합원들이 남아있다. 이분들 중에서도 몇몇은 생계투쟁으로, 7명은 수감생활을 했기 때문에 최소한의 인원이 면회 투쟁도 해야 했고, 서울/삼척 두 곳에서 투쟁을 전개했다.
-마지막으로 같이 싸우는 동료들에게, 연대해주시는 동지들께 한마디 부탁드린다.
이인용 : 삼척에서 우물 안 개구리로 살다보니 처음 서울로 상경 투쟁을 왔을 때, '연대'라는 글자가 우리 것만 하기 바쁜데 왜 해야 하나 마음이 앞섰던 게 사실이었다.
그런데 연대 투쟁하면서 재정적으로나 심정적으로 서로 상황을 알고 힘든 걸 같이 겪으면서 조합원이 떠나간 자리 이상을 채워주고 있어서 너무나 감사하다.
또 우리 노동조합이 삼척에서는 물론 동양시멘트 내에서 처음 만들어진 노동조합이다. 그래서 우리가 꺾이면 이후에도 동양시멘트 노동자들, 삼척에 사는 노동자들이 노동조합을 만들기 더 힘들어질 거라는 생각이 들어서 책임감을 갖고 열심히 투쟁할거다.
최창수 : 조금 힘들더라도 지금까지 싸워왔던 것처럼 손잡고 끝가지 힘내서 웃는 모습으로 현장으로 돌아가서 일하고 싶다.
김세진 : 연대하는 동지들에게 도움 받았다, 고맙다 말씀드리면 같이 싸우는 거니까 고맙다는 말 하지 말라고 하는데 그래도 고맙다. 그리고 갚는다는 말이 웃기지만 연대하면서 열심히 함께 싸우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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