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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장] 20대 국회, 선거제도 개편 적기다

천하삼분지계, 국민의 경고와 기대

등록|2016.05.12 10:51 수정|2016.05.12 10:51
모든 경쟁에는 룰이 있다. 정해진 규칙에 따라 참가자들이 경쟁하고 승패가 결정된다. 가끔 규칙이 승패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치기도 한다. 또 가끔 규칙으로 인해 보편적인 상식과 다른 결과가 나오기도 한다.

정치경쟁의 장인 선거도 마찬가지다. 대표적인 경우가 2000년 미국 대선이다. 민주당 엘 고어 후보는 조지 부시 공화당 후보보다 50여만 표를 더 얻었지만 낙선했다. 득표수보다 승자독식제도에 의한 주별로 배정된 선거인단을 더 많이 확보해야 하는 미국 대통령 선거제도 때문이다.

뒤베르제의 법칙과 기울어진 운동장

한 달 전 20대 총선의 결과도 그렇다. 우리 유권자의 33.5%는 새누리당, 26.74%는 국민의당, 25.54%는 더불어민주당(이하 더민주), 7.23%는 정의당을 지지했다. 이 수치대로라면 새누리당-국민의당-더민주 순으로 비슷하게 성적을 얻어야 했다. 또 전체 야당 의석은 반 정도만 얻어야 했다. 그러나 결과는 우리가 알다시피 3등 더민주가 한 끗 차이로 새누리당을 이겼다. 새누리당도 예상외 참패를 당했지만 득표에 비해 많은 의석을 얻었다. 국민의당은 더민주보다 1% 이상 더 득표했지만 의석수는 3분의 1에 불과하다. 정의당도 지지만큼 의석을 얻지 못했다.

우리의 선거제도는 득표수와 무관하게 1등이면 당선되는 253개 선거구의 승패가 전체 결과와 직결된다. 지역구에서 지지정당 후보의 당선 가능성이 적으면 당선 가능성이 높은 후보를 지지하는 경향 때문이다. 현 제도에서 유권자의 소신은 단 비례대표 47석을 배분할 때만 반영된다. 프랑스 정치학자 뒤베르제는 "단순다수대표제는 양당제에 이르게 하고, 비례대표제는 다당제에 이르게 하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선거의 규칙이 1, 2, 3등의 순위표가 바뀌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한 것이다.

그렇다면 '룰'은 누가 만드는가. 바로 선거경쟁의 당사자 집단인 국회에서 여야 간 합의로 결정한다. 뒤베르제의 말처럼 소선거구 단순다수대표제를 통해 새누리당과 더민주가 국회 절대다수의석을 장악하고 있다. 이들의 합의가 선거제도를 결정한다. 지난해 논의가 있었다. 논의는 2014년 헌법재판소의 '선거구 획정의 인구 기준에 관한 위헌 판결'로부터 시작되었다. 선거구의 인구기준 변동으로 대폭 조정이 불가피한 상황이었다. 이에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지역주의 완화 및 정당 득표율과 의석 간 비례성 강화 목적으로 '독일식 권역별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국회에 제안했다.

여당은 새로운 인구 기준에 맞춘 선거구만 조정하려 했다. 새누리당 입장에서는 현행 선거제도가 유리했다. 호남에 비해 두 배 이상 많은 영남의 인구와 선거구 수는 지역구도 하에서 영남을 텃밭으로 삼는 새누리당에게 유리하다. 선거경쟁의 출발부터 새누리당에게 '기울어진 운동장'이라고 부를 정도다. 1990년 삼당합당으로 공룡 민자당이 창당한 이후 역대 총선에서 단 한 차례만 1당을 놓쳤다. 그 한 차례도 노무현 대통령 탄핵이라는 특수한 상황에서 치른 2004년 17대 총선뿐이다.

제1야당도 결과적으로 지금 제도가 더 이득이다. 과정은 복잡하다. 박빙의 수도권 선거에서 지역구의 진보정당 고정 지지층까지 결집하는 과정을 거쳐야 여당과 승부할 수 있다. 이 과정 자체가 지난하고 복잡하다. 선거연대 파트너인 진보정당을 대변할 필요도 있었다. 야당이 선관위 제안에 찬성한 배경이다. 여야 간 줄다리기가 이어졌다. 선거제도 개편을 논의한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 이병석 위원장(새누리당)이 정당득표율의 50%까지 의석을 보장하는 절충안을 제안했으나 여당은 반대했다. 결국 비례대표 의석만 7석 줄어든 개악이 나왔다.

역사상 비례대표제는 집권보수당이 제안

카를레스 보익스(Carles Boix) 프린스턴대학교 교수에 따르면 "현 정부는 자신이 선거제도에 대한 독점적 지위를 향유하고 있을 경우 자신에게 최대한 유리한 방향으로 선거제도를 변화시킨다"고 한다. 현행 선거제도로 인해 정부여당이 된 마당에 자신에게 더 유리해지지 않는 이상 바꿀 이유가 없다. 정부여당이 현재 선거제도가 불리하다고 생각할 때 바꿀 수 있다.

민주주의 역사에서 비례대표제도는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 유럽국가들에서 등장했다. 아직 소수의 고액 남성 납세자들만 참정권을 행사하던 유럽의 선진민주주의 국가들은 노동계급을 중심으로 일어난 참정권 확대운동의 도전을 받았다. 수많은 희생에도 보통선거제도 요구는 줄어들지 않았다. 거스를 수 없는 대세였다. 전체 국민 중 소수만 대변해도 집권할 수 있던 보수정당들은 고민이 커졌다. 단순다수대표제 하에서 보통선거제도를 실시하면 머릿수에서 노동계급에 자신들이 밀려 소수파로 전락할 가능성이 컸다.

보수정당은 보통선거제도와 함께 타협책으로 비례대표제를 제안했다. 오히려 노동계급정당들이 반대했다. 스웨덴 사민당은 귀족들로 구성된 상원권한을 축소하는 것을 조건으로 합의했다. 신구교와 자유주의, 사회주의 이념을 기반으로 다섯 개의 주요정당이 있던 네덜란드에서는 모든 정당이 지역구 선거를 기피했다. 반면 영국은 노동당이 자유당을 대체하여 소선거구 양당제를 유지했다. 보익스 교수는 "새로 진입한 유권자들이 기존 정당을 위협하지 않을 정도로 약하거나, 강하더라도 집권당이 비사회당 진영에서 우월적 지위로 진영 내부를 결집시킨다면 선거제도는 바뀌지 않는다"고 말했다.

새누리당은 이번 총선 직전까지 우월한 지위의 집권당이었다. 자신들에게 유리한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반대편 축을 담당하던 제1야당이 분열했다. 선거직전까지 실정을 거듭한 정부 여당임에도, 그들이 얼마나 압승할지가 관심사였다. 결과는 알다시피 분열된 야당이 과반의석을 넘겼다. 단순한 여소야대도 아니다. 한국 정치사에서 다신 못 볼 줄 알던 삼당체제다. 새롭게 유입된 유권자들은 없지만 지난 10여 년간 지속된 양당제를 심판하고자 한 유권자들이 있었다.

유권자의 역습, 삼당체제

1987년 민주화 이후 한국의 정당체제는 다당제에서 양당제로 수렴되어갔다. 1990년 삼당합당이 새누리당의 시초인 민주자유당을 탄생시켰다. 지역 기반 4당 체제를 비호남 다수연합과 호남 소수파 구도의 양당체제로 전환시켰다. 오래 가지 않았다. 1992년 총선과 대선을 앞두고 정주영 현대 회장이 창당한 통일국민당이, 1995년 전국동시지방선거와 다음해 총선을 앞두고 충청 기반의 자민련이 등장해 돌풍을 일으켰다. 돌풍은 오래가지 않았다. 다음 총선 전 지지층이 겹치는 제1보수정당에 흡수·소멸되거나 원내교섭단체에 실패했다.

2000년 16대 총선 이후 국회 원내교섭단체는 양당만의 몫이 되었다. 그럼에도 양당체제를 무너뜨리려는 도전은 계속됐다. 2004년 처음 원내 진출한 민주노동당이 10석을 얻어 3당이 되었다. 2008년에는 자유선진당이 충청 기반 정당으로 부활했다. 하지만 힘 있는 양당에게 유리한 선거제도는 그들에게 기회를 주지 않았다. 여당이 의회 과반을 점한 상황에서 3당이 쥘 수 있는 캐스팅보트는 없었다. 민주노동당은 내부 분열의 후유증을 겪었고, 자유선진당은 2012년 총선패배 후 새누리당에 흡수되었다.

20대 국회는 다시 삼당체제다. 이번 총선에서 국민의당이 판을 흔들었다. 여소야대 정국과 더불어 20년 만에 원내교섭단체 3당이면서 캐스팅보트도 쥔 강력한 3당이 되었다. 이전의 3당은 제1보수정당과 이념적으로 지지층이 겹치거나 민주계 정당보다 왼쪽에 있었다. 지지층 확장의 한계가 분명했다. 국민의당은 양당 가운데 위치해 있다. 이번 총선에서 양당 모두의 지지층을 흡수했다. 민주노동당처럼 전국적으로 고른 지지를 얻으면서도 자유선진당처럼 확고한 지역기반이 있는 정당이다.

삼당체제로 변화는 기존 선거제도에서 양당의 상황에서 낯선 모습을 만들었다. 양당 모두 민주화 이후 최초의 전국정당이 되었다. 전통적 지역구도에 따라 전국을 6개 권역(수도권·강원·충청·호남과 제주·대구경북·부울경)으로 나눴을 때, 양당 모두 권역 당 한 명 이상의 당선자를 배출했다. 지역주의의 균열 가능성이 커졌다. 소선거구제에서 큰 혜택을 본 새누리당에게는 불길한 징조다. 호남에서 두 석을 얻었지만 야당에게 10석 이상을 빼앗겼다. 영남 인구도 줄어들어 그나마 안정적으로 당선될 선거구도 줄고 있다.

반면 반세기 넘게 지속된 수도권 집중화로 인해 수도권 유권자는 늘었다. 선거구의 절반이 몰린 수도권에서 새누리당은 최근 6년간 대선을 제외하고 4연패했다. 특히 인구가 급증한 수도권 신도시가 중심이 된 신설 선거구를 더민주에게 빼앗겼다. 1여 다야의 총선에서 벌어진 사상 최악의 수도권 패배는 새누리당의 수도권 경쟁력이 약해졌음을 보여줬다. (2010년 이후 새누리당의 수도권 선거결과에 관해서는 '독일식 비례대표제 도입이 시급한 새누리당' 참조)2004년 총선 이후 탄핵역풍, MB정부 심판, 세월호 참사의 책임론 등 고비 때마다 꺼내든 새누리당의 유일한 필승 전략, '선거의 여왕 박근혜'도 약발이 떨어졌다.

더민주는 수도권 압승을 바탕으로 원내 제1당이 되었지만 역시 지역주의에 기댈 수 있던 온실에서 쫓겨났다. 이번 총선은 2010년 이후 야권 단일화 없이 승리한 유일한 선거다. 같은 뿌리에서 나온 국민의당이 수도권에서 새누리당 지지층을 많이 뺏어왔기에 더민주가 승리할 수 있었다. 국민의당이 존재하는 다음 선거에서 같은 결과가 나오리라는 보장은 없다. 호남을 잃은 상태에서 압도적 지지를 주었던 수도권 유권자가 돌아선다면 3당으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

수도권 유권자들은 야당에 힘을 실어주었다. 영호남은 지역주의의 온실에서 양당을 버렸다. 전국적으로는 세 개의 정당에 균등한 지지를 보내주었다. 양당에겐 깃발만 꽂아도 당선되던 텃밭은 사라지고 양쪽 어디서든 표를 흡수할 수 있는 새로운 선택지가 등장했다. 본인의 재선이 지상과제인 국회의원들은 같은 당내에서도 지역구별로 정치적 이해관계가 완전히 달라졌다. 모든 정당들에게 다음 선거가 불확실해졌다.

국민은 선거제도 개혁을 원한다

국민들이 원하는 것은 분명하다. 과거와 같은 극단적 대립의 양당제가 아닌 국민의 다양한 의견을 반영하고 합의가 가능한 국회를 만들어 달라는 것이다. 민주화 이후 첫 국회인 13대 국회의 전반기는 시민사회의 다양한 요구에 반응한 것으로 기록되어져 있다. 비록 지역기반이긴 했으나 절대 다수를 점하지 못한 4개의 원내교섭단체가 협력하고 공존했기에 가능했다.

20대 국회는 국민이 원하는 다당제로 완전히 이행할 수 있도록 지난해 흐지부지하다만 선거제도 전면 개편 논의를 이어가야 한다. 이미 지난 총선을 앞두고 국민의당은 득표율과 비례성 높은 선거제도 개편을 주장했다. 더민주와 정의당 역시 지난해 여야 협상 때부터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을 주장했다. 새누리당은 이번 총선 결과로만 봤을 때 지난해와 완전히 상황이 다르다. 전체 지역구의 절반이 몰린 수도권에서 연패를 거듭하고 텃밭은 쪼그라들고 있다. 삼당체제에서 국민의당에게 표를 잠식당했다.

20세기 초 보통선거제 시행은 유럽의 사회주의 정당 황금기를 낳았다. 보수정당들은 비례대표제도로 인해 힘 있는 소수정당으로 살아남았다. 여러 정당 간 합의를 통해 다시 집권하기도 했다. 양차대전 이후 성숙해진 유럽 국가들은 사회의 다양성과 합의를 존중하며 발전해나갔다. 새누리당과 더민주의 차이보다 더 넓은 스펙트럼의 정당들이 사회의 다양한 요구를 국정에 반영해나갔다. 정부여당이나 보수언론도 칭찬하는 독일과 스웨덴이 대표적이다. 우리 국민들은 양당정치에 대한 경고와 유럽국가와 같은 다당제의 염원을 함께 던졌다. 20대 국회는 응답해야 한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을 쓰기 위해 다음과 같은 논문들을 참고했습니다.
박동천, 「비례대표 선거제도의 간추린 역사」, 『人文社會科學硏究』 49권, 호남대학교 인문사회과학연구소, 2015
심지연·김민전, 「선거제도 변화의 전략적 의도와 결과」, 『한국정치학회보』 36권 1호, 한국정치학회, 2012
장선화, 「한국 국회의원 선거제도 개혁의 조건과 과제: 뉴질랜드 및 영국 사례와 비교적 관점에서」, 『비교민주주의연구』 제9집 2호, 비교민주주의센터, 201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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