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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집에 간 '서른아홉 어린이'

1일 교사를 체험했습니다

등록|2016.05.16 10:11 수정|2016.05.20 13:23
[기사 수정 : 19일 오후 2시 8분]

밥 먹던 혜미(가명)가 내게 말했다.

"선생님, 우리 집에 놀러오세요."

나는 39살 여운이 아빠. 혜미는 5살 여운이 친구다. 점심을 먹고 있던 혜미에게 다가가 말했다.

"아까 내가 늑대라고 해서 미안해. 많이 속상했어?"

가만히 있다가 고개를 끄덕인다.

"너도 좋아할 줄 알았어. 미안해. 나 늑대 많이 좋아하거든."

혜미가 나를 보며 말했다.

"선생님, 우리 집에 놀러오세요."

나는 행복했다. 그 날 내가 들은 최고의 말이었다.

지난 12일, 나는 우리집 꼬마들이 다니는 어린이집으로 1일 교사 체험을 하고 왔다. 카프라 막대기를 가방에 싸들고 과자도 몇 봉지 담았다. 주머니에는 카메라 기능이 있는 휴대전화 두 대를 넣었다. 그리고 떨리는, 아니 설레는 마음으로 문앞에 올라섰다. 원장님은 아직 시작도 안했는데 감사하다는 말씀으로 맞아주셨다.

"무엇을 준비하셨든, 결과가 어떻든, 아이들에겐 큰 하루로 채워질 것입니다."

이날 3시간 동안 나처럼 선생님을 할 엄마분들과도 마주하니 한결 마음이 가벼워졌다. 이게 시작이었다.

유독 기억에 남는 몇몇 장면들이 있었다.

점심 때였다. 배식을 해달라는 선생님 부탁에 많이 먹으라고 푸짐히 담아주고 나도 밥을 같이 먹었다. 세 그릇이나 먹었다. 배가 채워지고 나서야 아이들 먹는 걸 둘러봤다. 정신없이 시끄러울 줄 알았던 점심시간이 생각보다 조용했다. 숟가락은 들고 있지만 입은 놀고 있는 친구들을 보았다. 반찬과 비벼진 밥을 놓고 눈은 수박만 바라보는 친구가 있었다.

"왜 구경만해? 수박도 같이 먹어."
"선생님, 수박 먼저 먹어도 돼요?"

아뿔사, 밥먹기 전에 과자 먹지 말라고 했던 내 모습이 지나갔다. 나는 할 말을 찾았다.

"뭐…. 어차피 뱃속에 들어가면 똑같긴 한데 둘 다 맛있게 먹으려면 밥을 먼저 먹는 게 맞긴 하지."

몇몇 아이들이 수박을 한참 바라보다 밥을 한 숟갈 떠넘기기 시작했다. 난 숟가락을 모종삽처럼 쥔 지윤(가명)이에게 다가갔다. 아까 과자 요정 너무 좋았다고 말했다. 지윤이는 오전 시간에 카프라 쌓기 싫어하는 친구들에게 과자를 나눠줬다. 지윤이가 눈물 콧물 범벅이 된 얼굴로 나를 봤다. 황망히 휴지를 가져다 얼굴을 닦아주었다.

"김치가 먹기 싫데요. "

아, 많이 먹으라고 김치를 퍼담아 배식한 건 나였다.

"아이쿠, 지윤아. 선생님이 것도 모르고 김치를 너무 많이 담아줬구나. 내 잘못이다. 하얀 밥만 다 먹자 우리."

지윤이는 눈물이 찬 큰 눈망울로 나를 보며 조금 더 울었다. 나는 얼굴을 부비고 미안하다, 괜찮다고 했다. 지윤이는 결국 식판 위 반찬을 남김 없이 다 먹었다. 김치까지도.

아이들 양치 장면도 기억에 남는다. 재빠른 친구들은 벌써 이를 닦고 와서 놀고 있었다. 화장실로 가봤다. 옆반 엄마 선생님께서 아이들을 도와주고 있었다. 이 글을 쓰면서 생각해봐도 이닦기 준비하던 5살 친구들과 농담 따먹기 한 기억밖에 없다. 옆반 친구들까지 긴 줄로 기다리게 만들었던게 나였다.

5살. 배꼽 부위에 물은 가득 젖었지만 혼자서 치약도 짜고, 칫솔질도 했다. 난 대견함에 감탄만 날리고 서 있었다.

"어이쿠, 니들 왜 이렇게 잘하냐, 줄도 잘서고 혼자서 치카치카도 잘하네."

아이들이 줄줄이 줄을 서서 양치를 마치고, 교실에 걸린 자기 수건을 찾아가 손을 닦았다. 그리고 바로 자기 가방을 챙기러 갔다.

"가방은 왜?"
"갈 준비해야죠. 엄마 올 테니까요." 

나는 갑자기 슬퍼졌다.

교사 체험 전날, 나는 이 녀석들에게 어떤 선생님이 돼 볼까 고민했었다. 무서운 조교같은 선생님? 아니면 차분한 선생님? 그러나 막상 교실에 들어서자 마자, 카펫에 앉아 나를 쳐다보던 맑은 꼬마들의 눈빛에 난 무장해제 돼버렸다.

"얘들아 안녕! 난 서른 아홉살 강봉춘이라고 해. 반가워~. 나도 니들처럼 가방메고 왔어."

그리고 가방에서 카프라 막대기를 꺼내 두 개씩 나눠주며 주먹을 부딪혀 인사를 나누자고 호들갑 떨었다. 이름을 기억하는 게 먼저라고 생각했다. 난 이 꽃들을 그냥 지나쳐 버리는 어른이 되고 싶지 않았다. 선생님께서 아이들 이름표를 달아주지 않으셨다면 정말 힘들었을 것이다.

"얘들아, 우리 배고픈데 카프라 한 번 먹어볼까?" 
"아니요~! 먹으면 안 돼요."

두 개를 세워서 쌓아보자고 했다. 숟가락으로 밥 먹는 친구들은 누구나 할 수 있다고 했다. 그리고 힘주어 말했다.

"친구가 할 수 있으면 나도 할 수 있다. 절대 포기하지마. 잘 안 되면 쉬었다가 해."

모두가 이 순간을 위해 내가 준비한 말들이었다. 카프라를 쌓다가 화가 난 녀석에게 해줄 말, 친구가 무너뜨렸을 때 울음이 터진 녀석에게 해줄 말, 가만히 구경할 친구와 조용히 혼자서 할 친구. 잘하는 친구와 잘 따르는 친구들에게도 어떤 말이 최선일까 고심했다. 그 만들을 입에 올리고 기억했다. 대사를 외우는 배우처럼 말이다.

"혜림(가명)아, 선생님한테 네가 꼭 필요하다." "용식(가명)아, 네가 대장이다." "동훈(가명)아, 너밖에 없다."

"자기 맘대로 쌓아보자 어디든지."

이렇게 말하면 책상 위에도, 화장실 변기에도, 선반 위에도, 내 머리 위에도 쌓여질 카프라가 쌓여질 것이라 상상했다. 각오를 아주 단단히 했다. 준비된 말들도 떠올렸다. 그런데 아이들은 내 말이 떨어지자마자 교실 둥근 책상 앞으로 둘러모여 앉았다. 세상 물정 모르는 건 혼자 서 있는 서른 아홉살짜리 어른밖에 없었다. 이런 아빠 선생님을 꼬마들이 간파하기 시작했다.

"아빠 선생님, 저 카프라 없어요."
"어, 여기 많다. 맘껏 가져다 써."

그렇게 카프라 박스를 풀어놓자 교실이 시끄러워지기 시작했다. 오래지 않아 카프라 쌓기와 거리가 멀어지는 친구들을 찾아낼 수 있었다. 난 준비한 휴대전화를 꺼내 그 친구 앞에 갔다.

"그래, 선생님이 사진 찍을 친구를 찾고 있었다. 해볼래?"

서로 하겠다고 실갱이가 벌어졌다.

"동찬(가명)이 너부터 시작하고 다음 친구에게 넘겨."

5살 친구들의 사진대부분이 현대 미술 작품전에 내놔도 손색없을 것들이었다. ⓒ


천장까지 카프라를 쌓을 계획을 세워왔다. 한 개, 두 개, 네 개, 마음대로 쌓고 있었다. 두 개씩 교차하며 쌓는 법을 보여줬다. 계획대로 제법 돼가는 것 같았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아들 녀석이 앉아 있는 내 등에 달라붙기 시작했다. 내가 돌아서자 울음이 터져버렸다.

"여운아, 어제, 아빠... 친구들에게 빌려주기로 약속했잖어. 아빠 도와줘야지. 속상해?"

<엄마를 빌려줄게>라는 동화책을 읽어줄 때 배운 말을 여기 오기 전 아들에게 써 먹었다. 나름 알아들은거 같아 만족했었는데, 어째 약속하는 모양새가 신통치 않았다. 그런데 역시 나였다. 우는 아들을 보다 번뜩 내가 너무 호들갑 떨고 있어서 인지도 모른단 생각이 들었다. 순간 녀석을 안아줘야 하나 말아야 하나도 고민됐다. 여운인 서럽게 울기만 했다.

"더 크게 울어도 돼. 아빠 여기 있잖아. 울고 싶으면 울어. 다 울고 친구들 카프라 쌓는거 도와줘. 어제 약속했던 거 잊지마."

카프라를 쌓는 아이들나무막대를 쌓으며 여러가지 모양을 만드는 놀이가 카프라다. 협동심과 창의력, 집중력과 인내심을 기를 수 있는 놀이다. ⓒ 강봉춘


아들 녀석이 진정되자 이제 대망의 높은 탑을 쌓으려고 모두 불러 모았다. 그런데 높이 올라가기는 커녕 카프라가 바닥에 가득 깔리기 시작했다. 꼬마들 손이 차례대로 오질 못했기 때문이었다. 걷잡을 수 없이 난장판이 돼가고 있었다. 내 목소리가 커지고, 머리속에 무서운 아빠로 변해야 한다는 생각이 마구 떠오르기 시작했다.

"다들 이리 모여봐. 둥그렇게 앉아 한 사람이 두 개씩 쌓는 거다. 잘 보고 그대로 해보자."

아이들을 밀어제끼며 자리를 잡아주고 원을 만들었다. 내가 먼저 쌓았다. 제법 녀석들 키높이까지 쌓아 뿌듯해지고 있는데 아이들이 모여들며 소란스러워지기 시작했다.

"얘들아, 카프라를 지켜줘야 해. 누가 늑대로 변해서 카프라를 무너뜨릴지 몰라."

드디어 늑대가 나타났다. 내가 "얘들아, 혜미가 늑대로 변했어!"라고 외치자 혜미는 바로 울어버렸다.

"누구든지 늑대로 변할 수 있어. 조심해." 

그러고는 준비한 과자를 풀었다. 조용히 뒤에서 카프라를 손에 쥐고 있던 지윤이와 카메라만 쳐다보던 태훈(가명)이에게 과자를 쥐어줬다.

"친구들에게 과자 먹고 쉬었다가 하라고 말해줘."

과자 요정이 돌아다닐 필요는 없었다. 카프라 쌓던 친구들도 모두 과자로 몰려와줬다. 과자 요정 친구가 과자를 못 먹기에 요정이 더 많이 먹는 것이라고 크게 말해줬다.

이제 교실은 어지러워지고 생각보다 탑이 안 올라가자 되레 내가 바빠졌다. 선생님 말씀을 들어야 했다. 어제 반 선생님과 오늘을 이야기하다, 그룹을 나눠하는 게 좋을 거라고 말씀하셨다. 그러면 싸움이 더 많이 일어날거 같다고 일축했던 일이 떠올랐다. 오늘에와서야 비로소 이제야 내가 탑을 아주 높이 쌓겠다는 욕심이 문제를 만들고 있다는 게 보였다.

구세주를 기다리는 눈빛으로 선생님을 바라보았다. 선생님이 아이들이 너무 즐거워한다고 말씀해 주셨다. 마음이 녹아 내렸다. 교실에 홀로 어른이 돼 서 있다는 것은 참으로 두려운 일이다. 정신이 돌아오자 준비한 플랜B가 떠올랐다.

"얘들아, 너희들 혹시 '다음부터 그러지 마라' 이 노래 알아? 친구야, 친구야, 다음부터 그러지 마라~"

그리고 윤서(가명)이를 끄잡아와 노래를 부탁하고 손을 잡고 도와달라고 했다. 주영(가명)이도 오라고 하고 태민(가명)이도 불렀다. 도와줄 사람을 더 부르자 다른 아이들도 왔다. 저 멀리 카메라를 아직 찍고 있는 다른 아이도 불렀다.

"친구가 내곁을 지나가다가 내가 만든 탑을 무너뜨렸네."
"탑 아니에요."
"어 그래."

아이들이 같이 노래를 크게 불러줄 것이라 생각했지만, 내가 제일 크게 부르고 있었다. 그룹을 나누자 탑이 제법 올라갔다.

시계를 흘끔봤다. 선생님께서 "이제 정리하셔도 됩니다"라는 말을 세 번 정도 하신 것 같다. 다른 반 친구들이 옥상 텃밭에 나갔다 온다며 나갔다. 난 마구잡이로 도구들을 가방에 넣어 상황을 종료해버렸다. 아이들이 나를 둘러싸고 카프라를 마구 가져와줬다. 순식간에 카프라 가방에 들어왔다. 나도 배가 고파졌다. 내가 덩치 큰 다섯 살 어린이가 돼 가는 것 같아 선생님을 바라봤다.

"아빠 선생님 덕분에 아이들이 너무 재밌었어요. 이제 여기 앉아서 배식도 해주시면 돼요."
"선생님, 아무것도 안하고 구경만하게 해드리고 싶었어요. 근데 큰 어린이가 하나 더 생긴거 같네요. "

나는 늘 교육과 교화에 대해 생각해왔다. 사회보다 사람에게 바뀌길 바란다는 것. 그래서 저마다의 꽃으로 태어난 아이들이 커가고 있는 건 아닐까 걱정했다.

어디까지가 선이고 어디까지가 악인지 구분할 수 없었다. 다만 선생님이나 아이들 모두가 그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것만이 절대적인 사실이었다. 선생님께 미안하고 아이들에게 고마웠다. 여기에 엄마 아빠까지 우리 모두가 행복하길 바랐다.

반 친구들과 인사하고 내려와 엄마들과 원장님 앞에서 소감을 나눴다. 다들 그랬다. 선생님이 대단하게 느껴졌고 아이들에게 좀 더 잘할 수 있었다는 후회가 남고 이런 기회가 다시 오면 또 하겠노라고 했다. 원장님은 정말 행복한 얼굴로 감사하다고 고생하셨다고 깊이 화답했다.

나는 몹시 피곤했지만 아이들과 더 놀고 싶은 욕심이 났다. 꼬마들을 데리고 집으로 오는 길에 들 떠있는 나를, 내가 느끼며 더 즐거워졌다. 가보지 않은 곳 아무 데고 또 놀러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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