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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년간 '연예인급' 일정표, 이게 최선인가요

[70점 엄마] 아이들의 시간이 엄마 손에 달려있다는 현실

등록|2016.05.22 13:38 수정|2016.05.22 13:38

▲ 학교가 끝나면 돌봄교실로, 학원으로... 아이들은 바쁘다. ⓒ pexels


"3시 스케줄이 캔슬(취소)됐습니다. 어떻게 할까요?"
"그럼 4시나 5시 스케줄을 당길 수 있는지 확인해보겠습니다."
"여보세요? 3시 스케줄이 캔슬됐는데, 지금 바로 픽업 가능한가요?"
"3시 스케줄이 취소됐으니 5시 스케줄을 지금 당겨서 진행해주시고요. 4시 스케줄은 그대로 진행해주세요."
"그러면 오늘 일정이 일찍 마무리되니까 또 다른 스케줄을 확인해서 연락드릴게요."


연예인의 스케줄 관리에 관한 내용이 아닙니다. 저와 같이 근무하는 워킹맘인 동료 두 명이 4~5학년 아이들 관리를 위해 오후에 통화하는 이야기를 약간 변형해서 적어본 겁니다.
아이들이 학교에 다니면서 아이들의 하루 일정을 관리하는 일은 엄마의 역할 중 가장 중요한 것이 됩니다. 유치원과 크게 달라지지 않은 학원 일정인데도 이상하게 초등학교에 들어가고 나서 스케줄 관리가 점점 더 힘겨워집니다.

무엇보다도 유치원보다 일찍 끝나는 학교 수업시간 때문인데요. 기본적으로 점심을 먹고 오후 3시께 끝나거나 혹은 그 이후에도 쭉 같은 교실에서 추가 수업을 받는 유치원과 달리 초등학교는 3월 한 달 동안 점심을 먹고 나서도 낮 12시 반이면 학교 일정이 끝납니다. 4월이 돼서야 일주일에 2회 밥을 먹고 5교시 수업을 하고 1시 반에 끝나죠.

학년에 관계없이 요즘 대부분의 아이들이 학교의 정규 수업이 끝나면 학교 안에서 방과 후 수업을 듣고 학원에 가거나, 바로 학원으로 이동합니다. 저희 집 쌍둥이 남매도 돌봄교실을 하면서도 방과 후 수업과 학원을 거의 매일 하나씩 다니고 있습니다.

어긋나는 스케줄, 전화 돌리기 바쁜 워킹맘

▲ 스케줄이 꼬이면 전화통엔 불이 난다. ⓒ pexels


문제는 이런저런 학사 일정이나 다른 사정으로 방과 후 수업이나 학원 수업의 일정이 변경됐을 때입니다. 갑자기 스케줄이 변경될 경우 저학년 아이들은 매우 당황합니다. 고학년이더라도 스케줄이 변경되면 아이들이 정해진 코스를 벗어날까봐 엄마들은 늘 노심초사하게 됩니다.

한번이라도 수업을 빠지면 방과 후 수업이든, 학원이든 보강을 해줍니다. 그러면 그것에 대한 보강 스케줄을 잡느라 골치가 아픕니다. 방과 후 수업은 단체의 일정이라 일방적으로 학교에서 시간을 정해 통보하고, 학원은 선생님과 개별적으로 시간을 조정해서 보강하게 되죠.

거의 모든 요일에 학원을 한 개 이상 다니고 있는 아이들은 보강으로 하루에 두 개 이상의 수업을 들어야 할 때 무척 힘들어합니다. 또 틀어진 스케줄 때문에 돌봄 교실에서의 하원 시간이 변동되니까 돌봄 이모님, 돌봄교실 선생님과 수시로 아이의 하교 시간을 소통해야 합니다. 소통이 어긋나 아이가 길에서 방황하는 경우도 빈번합니다.

주변 지인들을 보니 4학년, 5학년이 돼도 엄마의 스케줄 관리 아래 학원에서 학원으로 이동합니다. 갑작스레 학원 스케줄이 어긋날 때 아이는 밖에서 셔틀버스를 기다리고 회사에서 일하는 엄마들은 여기저기 전화를 돌리기 바쁩니다. 아이의 동선이 학원에서 학원으로의 연결되지 않으면, 아이의 나이가 어릴수록 엄마는 속이 탑니다. 집에 있는 엄마라면 아이가 놀이터에서라도 시간을 보내도록 함께할 수 있지만, 워킹맘은 그럴 수 없기 때문이죠.

옛날 학교가 끝난 뒤 풍경, 지금은...

▲ 요새 놀이터엔 아이들이 없다. ⓒ pixabay


지난 4~5월 사이 소풍·연휴 등으로 3주간 변경된 방과 후 수업과 학원 일정 때문에 3주 동안 여러 차례 보강수업을 경험한 쌍둥이 남매도 '보강'이라는 이야기만 들어도 짜증을 냅니다. 어린이날이라 휴관한 수업을 주말에 보강한다고 알려주니까 "우리 사정으로 빠진 것도 아닌데 왜 보강을 하느냐"며 따지기까지 하더군요.

매일 빡빡하게 방과 후 수업이나 학원 스케줄이 있으면 앞으로도 빈번하게 발생하는 보강수업을 하다가 지쳐버리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차라리 돌봄교실에서 오랜 시간을 보내는 게 낫겠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그래서 한글 학습지를 그만두기로 했습니다. 그랬더니 학습지 선생님은 "요즘 아이들 대부분이 하루에 두 개 이상의 학원을 다니며 학습지를 하는데 그만두면 어떡하냐"라고 아쉬워하시더군요.

요즘 아이들, 정말로 그렇게 빡빡하게 생활하나요? 이제 겨우 8세밖에 안된 아이들이 일일이 그 스케줄을 다 관리하는 걸까요?

옛날에는 학교가 끝나면 집에 와서 가방을 내려놓기가 무섭게 동네 친구들과 모여 놀았던 기억이 납니다. 하루종일 놀다가 날이 어둑어둑해지는 저녁때 "밥 먹어라!"는 엄마의 목소리를 듣고 집에 들어가곤 했습니다.

그런데 요즈음 놀이터에는 아이들이 없습니다. 가끔 나오는 아이들은 항상 엄마나 할머니 할아버지와 함께 나오죠. 미취학 아동의 경우 동반하는 어른 없이 놀이터에 나오면 동네에서 그 부모를 흉보는 분위기가 조성돼 있기도 합니다.

1~2학년이 돼서야 드물게 친구와 함께 놀이터에 나오는 아이들을 볼 수 있었는데, 그것도 학원과 학원 사이에 잠깐 놀고 가는 것이더군요. 매일 방과 후 수업을 듣고 나서 연달아 학원을 2개 이상 다니는 아이들을 주변에서 쉽게 만날 수 있습니다. 모든 학원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면 오후 6~7시가 넘는다고 하는데 언제 숙제를 하고, 언제 노는 걸까요.

아이의 하교와 부모의 퇴근 사이 공백... 대안은 학원뿐?

바쁘게 방과 후 학습을 하는 아이들의 뒤엔 스케줄을 관리하는 엄마가 있습니다. 요즘 엄마들은 유치원부터 고등학교 졸업까지 아이들의 스케줄을 관리하는 매니저가 됩니다. 장장 15년이라는 기간 동안 말입니다(유치원 3년, 초등학교 6년, 중학교 3년, 고등학교 3년, 총 15년).

어릴 때부터 엄마의 관리에 익숙해진 아이들은 스스로 학습을 하거나 계획을 짜기보다 엄마의 스케줄 관리에 따라, 학원에서 시키는 대로 학습을 하고 시간을 사용하면서 자기 주도력을 얻을 기회를 상실하겠죠.

학교에 들어가면서부터 엄마라는 이름에 추가된 스케줄 매니저의 역할이 낯설지 않은 건 다들 그렇게 하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놀이터에 가도 같이 놀 친구가 없고, 학교가 끝나면 친구와 함께 학원에 가는 것을 부럽게 바라보니까 학원을 안 보낼 수도 없더군요. 매일 예체능 학원 한 군데를 다니고 겨우 30분을 학습하는 쌍둥이 남매는 나머지 시간은 놀이로 채웁니다. 그렇게 놀아도 놀 시간이 부족하다고 아쉬워하는데, 한편으로 돌봐주시는 분은 아주 힘들어하십니다.

아이들은 놀면서 커야 하는데 초등학교 때부터 이렇게 학원 스케줄에 따라 생활하던 아이들이 갑작스럽게 중학교 이후에 학습 분량이 많아지는 시기를 어떻게 극복할지 걱정스럽습니다. 또 빡빡한 스케줄로 늘 놀 시간이 부족한 아이들의 욕구는 어떻게 충족시켜줘야 할까요.

저는 아이들에게 스케줄 매니저가 아닌 엄마이고 싶습니다. 맞벌이를 유지해야 하는 상황, 하교와 엄마의 퇴근 사이의 공백을 채워줄 대안이 진정 학원 이외에는 없는 걸까요?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네이버 개인블로그(http://blog.naver.com/nyyii)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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