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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바라지골목 철거 중단, 이게 '박원순 리더십'

개발 논리에 짓눌린 약자에 대한 배려... 박원순은 '공존'의 방법 찾고 있다

등록|2016.05.18 11:32 수정|2016.05.18 11:32
어제 지인으로부터 SNS를 통해 한 편의 동영상을 건네받았다. 박원순 서울시장이 서울시 공무원을 강하게 질책하는 모습이 담긴 동영상이었다. 해당 동영상은 본 사람들이 10만을 훌쩍 넘었고, 댓글도 5천 개가 넘을 정도로 큰 화제를 불러 모았다.



가수 싸이의 <강남스타일>의 유튜브 조회수가 10억 뷰를 돌파했고, 웬만한 연예인의 일상이 담긴 인스타그램 뷰도 수십만은 족히 되는 시대에 고작 10만이 넘겼을 뿐인 박 시장의 동영상이 무슨 화젯거리가 되느냐고 반문할지도 모르겠다.

맞다. 박 시장이 등장하는 동영상엔 별다른 것이 없다. 박 시장을 제외하면 모두 일반인들뿐이고 그렇다고 동영상이 재미가 있느냐 하면 그런 것도 아니다.

험상궂은 사내들과 한켠에서 울고 있는 몇몇 사람들, 오래되고 낡아 보이는 좁디 좁은 공간에서 실랑이를 벌이는 사람들의 모습을 담은 동영상이 화제가 되는 것이 오히려 이상한 일일지도 모른다. 그런데 묘하다. 동영상을 보는 동안 가슴이 꿈틀거리고 괜시리 코끝이 찡해져 온다. 대체 뭘까, 이 감정은.

박원순 시장의 '한 방', 극적인 반전이 일어났다

▲ 박원순 서울시장이 지난 17일 오전 옥바라지골목 현장을 직접 방문해 담당 간부에게 공사 중단을 지시하고 있다. ⓒ 김경년


옥바라지골목. 서울시 종로구 무악동 46번지 일대의 다 쓰러져가는 낡은 골목 주변을 사람들은 이렇게 부른다. 이 골목은 서대문 형무소가 생기면서 자연스럽게 이루어졌다. 일제강점기 시절 김구 선생의 어머니를 비롯해 인혁당 유가족 등 군부독재 시절 민주화 인사 가족들이 이곳에 머물며 옥바라지를 하게 되면서 형성된 골목이다.

그런 이유로 이 골목은 근현대사의 아픔과 삶의 애환이 묻어있는 역사적 공간이자 장소로 그 보존 가치가 아주 높다. 그런데 이 골목이 지금 철거 중이다. 지난 2000년대 초반 서울시 전역에 불어닥친 재개발 광풍의 여파 때문이다. 이곳은 지난 1월부터 철거가 시작돼 현재 3~4채의 주택만이 남아 있는 상태다.

지역 주민들과 시민단체, 역사학계 등 재개발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이 지역의 역사적 가치를 생각해 보존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그들은 그동안 '골목 보존 문화제'를 여는 등 옥바라지골목을 보존하기 위한 다양한 노력을 강구해왔다.

그러나 지난해 6월 종로구청이 옥바라지골목 일대의 주택재개발정비사업 관리처분계획 인가를 하면서 상황이 급변했다. 지난 17일에도 현장에서는 철거가 한창이었다. 이 과정에서 용역직원들과 주민들 사이의 격렬한 몸싸움이 벌어지기도 했다.

▲ ⓒ 김경년


당초 이날 오후 5시 20분 시장실에서 옥바라지골목보전대책위 관계자들과의 면담이 예정되어 있었던 박 시장은 이 소식을 듣고 현장으로 달려갔다. 그는 현장에 있던 서울시 공무원을 질책하고 "지금 서울시가 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다 동원해 이 공사를 중단하겠다. 제가 손해배상을 당해도 좋다"고 전격 선언했다.

박 시장이 생각지도 못했던 강력한 한 방을 날리자 현장에 있던 사람들의 희비가 엇갈렸다. 용역직원들의 완력에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있던 주민들은 환호성을 지른 반면, 철거를 진두지휘하고 있던 현장의 공무원들과 재개발 조합 측 용역직원들은 일순간에 '꿀 먹은 벙어리'가 됐다. 상황을 일거에 전복 시키는 기막히고 극적인 반전이 일어난 것이다.

'공존에 대한 인식' 환기한 박 시장의 철거 중단 선언

개발이냐 보존이냐를 사이에 두고 벌어지는 갈등은 우리 사회의 오래된 논쟁 중의 하나다. 개발 논리를 주장하는 측은 막대한 자본 이득과 상품 가치를 내세우는 반면 보존 논리를 주장하는 측은 지역의 역사·문화적 가치와 주민들의 생존권이 먼저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결국 웃는 것은 언제나 개발논리를 앞세운 쪽이었다.

그들은 첨예한 대립과 갈등을 해결하는 가장 효과적이고 효율적인 수단이 힘을 동원한 물리적 방법이라는 것을 체득한 사람들이었다. 권력이 부여해 준 법적 명분과 물리적인 힘이 그들에게 있는 이상 보존 가치라든가 지역민의 생존권 등은 전혀 고려의 대상이 아니었다. 대화와 타협은 사라지고 그 자리를 야만적 폭력이 대신했다. 재개발 철거 현장에서 벌어지는 익숙한 풍경은 그렇게 만들어졌다.

옥바라지골목 역시 다른 철거 지역과 같은 길을 걷게 될 운명이었다. 서울시는 이번에도 개발 논리의 손을 들어 주었고 그에 따라 일제시대와 군부독재 시절의 애환과 질곡이 담겨 있고, 지역민들의 추억과 애증이 살아 숨 쉬는 삶의 터전이 순식간에 사라질 위기에 처하게 됐다. 박 시장의 제동에도 불구하고 옥바라지골목의 미래는 여전히 불투명하며, 이곳이 원형 그대로의 모습을 간직하기는 어려워졌다. 이미 철거가 상당 부분 진행됐기 때문이다.

그러나 박 시장의 철거 중단 선언이 갖는 의미는 결코 적지 않다. 그의 행동에는 자본과 개발 논리에 짓눌린 약자에 대한 배려가 녹아 있기 때문이며, 대립과 갈등을 중재하기 위한 절차적 과정의 중요성이 함의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중요한 점이 또 있다. 그가 공존에 대한 인식을 우리 사회에 환기해 주고 있다는 사실이다. 서로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함께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는 것, 그래서 서로 더불어 살아가는 환경을 만들어 가는 것. 이는 서울시장에 부임한 이후 그가 일관되게 보여주고 있는 공존에 대한 철학과 원칙이다.

▲ 박원순 서울시장이 지난 16일 오후 서울시청 시민청사 갤러리에서 열린 5.18민주화운동 36주년 기념 오월광주치유사진전 <기억의 회복> 개막식에서 축사를 하고 있다. ⓒ 이희훈


그가 보여주는 리더십은 기존의 정치 리더에게서 나타나던 리더십과는 확실히 다르다. 이명박·박근혜 정권을 거치며 불통의 리더십에 익숙했던 시민들에게 박 시장은 권위를 덜어낸 소통의 리더십, 민주적인 리더십의 진가를 보여주고 있다.

옥바라지골목의 철거 중단을 선언한 박 시장에게 격하게 공감하는 시민들의 반응은 그래서 참 반갑고 또 반갑다. 21세기 민주주의 시대에 걸맞은 정치 지도자의 덕목을 시민들이 성찰하고 있다는 방증이기 때문이다. 약자에 대한 배려와 함께 공존의 의미를 되새겨주고 있는 박 시장의 리더십과 그에 담긴 의미를 정확하게 읽어낼 줄 아는 시민들 속에서 나는 작은 희망을 발견한다. 희망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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