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본관 앞에 뿌려달라'... 유언 지키지 못해 미안해
[오렌지가 좋아 1주기] 마음속에 영원히 간직될 소중한 친구 오렌지야, 안녕
오렌지(고 엄명환)님은 반올림, 다산인권센터, 수원촛불, 비주류사진관에서 활동했습니다. 카메라를 들고 거리 곳곳을 다니며 자신보다 더 아픈 곳을 찾아 기록했습니다. 1년 전 갑자기 세상을 떠난 오렌지를 잊지 못하는 친구들이 모여 6월 4일부터 기일인 10일까지 오렌지 추모제와 사진전을 열 예정입니다. 오렌지처럼 열정적으로 현장을 찾아다니며 기록한 이에게 '오렌지 인권상'을 수여할 예정입니다. - 기자 말
오렌지, 잘 지내니?
요사이 여름이 온 것처럼 무더워서 힘들었는데, 어제 밤(5월 23일)사이 내린 비로 싸늘해졌다. 낮에 기온이 좀 내려갈 것 같아 다행이구나. 그래도 비오는 게 마냥 반갑지는 않아. 비닐 하나 간신히 덮어놓은 농성장에서 듣는 빗소리는 귀가 따가울 지경이거든. 농성장 밤지킴이 하신 황상기 아버님, 성호씨가 간밤에 잠을 설쳤을 게 분명하다. 그래도 메말랐던 초록에겐 반가운 비님이니 사람 욕심 채우는 것만 생각하면 안 되겠지.
우린 이렇게 하루하루 날씨 변화에 민감해진 채 삼성 본관 앞에서 노숙농성 중이야. 오늘로 벌써 231일째가 되는구나. 아직 삼성은 변하지 않았어. 아니 우리가 아직 삼성의 태도를 바꿔내지 못했다는 편이 더 맞는 말인 것 같네.
농성하면서 네 생각이 안날 수가 없단다. 행사가 있거나 농성장에 새로운 아이템이 들어올 때면 우리 중 누군가는 마치 습관처럼 '오렌지가 있었으면 사진기 들고 이리저리 뛰어다녔을 텐데…'라고 말하곤 한단다.
네가 없는 3월 고 황유미 추모제 때도 그랬고, 지난해 겨울 삼성직업병 피해자 숫자에 맞춰 삼성본관 둘레를 221명이 방진복을 입고 돌며 한목소리로 선언문을 읽을 때에도, 기자가 잘 오지 않는 기자회견 때에도 불쑥불쑥 네 생각이 나지 않을 수 없다. 하늘에서 반올림 싸움 다 지켜보고 있는 거지? 그곳에서 오렌지 너도 응원 많이 하고 있는 거지?
너와 함께한 순간들을 잊을 수 없을 거야
네가 갑작스러운 심정지로 중환자실에 있다는 소식을 들은 지난해 5월, 모두들 그동안 오렌지에게 미안한 마음들을 자책하며 네가 오렌지답게 벌떡 깨어나길 간절히 바랐는데, 그렇게 일찍 하늘로 가버리다니….
따뜻한 밥 한 끼 더 해주고 싶었다는 선희 언니도, 평소 네가 존경했지만 널 구박만 했다는 박진 활동가도, 오렌지가 사진 정리를 잘 못한다고 종종 혼냈다는 너의 스승 박김형준 사진작가도, 결혼을 앞두고 오렌지가 한결 전문가다운 솜씨로 싱그럽게 야외촬영을 해줬다는 영은씨도, 그리고 우리 누구도…. 너와 나눈 삶의 한 조각들을 떠올리며 네가 떠나는 아픔을 달랬다.
나 또한 오렌지 너랑 함께한 순간들을 잊을 수 없을 거야. 오랫동안 같이 반올림 활동을 하면서 보낸 소중한 시간들은 물론이고, 좀 심심한 나와 영화도 같이 봐줘서 고마웠단다. 하필 너와 함께 본 영화들이 시공간을 넘나들며 살아있는 순간의 소중함을, 결코 가볍지 않은 삶의 소중함을 조명했던 영화들이었네.
영화 <그래비티>를 보면서 우주로 빨려들어갈 것처럼 초집중한 너를, 시간여행을 다룬 영화 <어바웃 타임>을 보고는 충만한 표정으로 나오던 네 모습은 오래오래 간직하고 싶구나.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또 하나의 약속>이 처음 상영됐을 때 너는 상영일자보다 하룻밤 먼저 출발하면서 밤기차 타고 부산 밤바다를 보고 싶다고 했지.
그렇게 소중한 추억들이 떠올라 웃다가도 진작에 너의 아픔을 어루만지지 못한 미안함과 네가 영영 사라진 건 아닐까 하는 두려움에 힘들었단다.
내가 너였다면 매일 밤 울었을 거야... 하지만 넌 달랐지
네가 중환자실에 입원하기 한 달 전쯤인가? 안국역 사거리에서 새벽까지 이어진 세월호 집회 때 너는 경찰이 쏘아대는 캡사이신에 맞아 피부 발진이 나고 건강이 안 좋아졌다며, 그게 얼마나 몸에 해로운 약품인지 피해자들을 규합해 인권침해 진정을 해야겠다고 씩씩거리면서 이야기했었는데…. 그게 네 몸이 예전같이 않아 생긴 증상일 수도 있었는데 나는 그만 네 말만 믿고 너랑 같이 경찰 욕만 실컷 했지, 달리 살피지 못했다.
이틀에 한번 투석을 하는 몸으로는 남들처럼 오래 살진 못할 거라고, 이미 10대 때부터 투석을 해왔으니 이미 오래 살고 있는 편이라고 했던 너의 말을 네가 중환자실에 실려 가고서야 숨 막히는 답답함과 함께 떠올렸단다.
내가 너의 몸 같았으면 나는 어쩌면 매일 밤 울고 지냈을지 모른다. 너의 마지막이 언제 들이닥칠지 몰라 너도 실은 정말 두려웠을 텐데, 어쩌면 종종 눈물 흘렸을 텐데…. 그런 너의 힘들었던 시간들에 대해서 나는 알지 못했다. 늘 니가 밝았으니까. 내 기억에 니가 눈물을 보인 적은, 영화 <또 하나의 약속>을 봤을 때 밖에 없었으니까.
그런데 너는 누구보다 눈물을 소중히 생각했던 것 같다. 비가 내려 유미씨 영정 피켓의 코팅된 표면에 물방울이 맺히면 너는 쉴 새 없이 카메라 셔터를 눌렀다. "유미씨가 우는 것 같아 보이지 않아요?"라고 하면서.
네가 내게 프로필 사진 쓰라고 준 사진들도 대부분 눈물이 맺혀 있어 쓸 수가 없단다. 그래도 삼성직업병 피해자 가족들의 눈물을 담아낸 너의 사진들 덕분에 우리 사회의 보다 많은 이들에게 피해자들의 아픔을 생생히 전달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영화 <또 하나의 약속> 엔딩 장면으로, 황유미 추모제 때 슬픈 표정의 실제 아버님 사진은 네가 찍었고 무려 50만 명이나 봤잖아. 너도 많이 감격해했었지. 그 뒤 넌 또 세월호 유가족들의 아픔을 사진으로 담아내기 위해 뛰어다녔지.
미안하지만, 그래도 또 고마웠던 일
오렌지야. 이렇게 떠나고 난 뒤에 말하는 게 아직도 미안하지만 그래도 또 고마웠던 순간을 이야기해본다.
긴 시간동안 피해자 가족들의 일인시위 현장에 네가 함께해서 든든했단다. 피해자 가족들이 시위를 하며 삼성본관 경비보안들의 폭력에 노출됐을 때 너는 카메라를 바짝 들고 한순간의 폭력도 놓치지 않겠다고 함께 맞섰다. 그 덕에 더 큰 불상사가 나지 않았던 것 같다.
한번은 그 앞에 출동한 경찰이 너의 팔을 잡고 늘어졌을 때, 너는 "신장 투석하는 팔입니다, 저도 장애인이에요, 이 팔 잡아당기면 정말 큰일 나요"라고 분노하며 팔목에 차고 있던 보호대를 풀었지. 어린아이 손목만큼 커다란 혈관이 튀어나와 있는 모습을 난생처음 본 경찰은 흠칫 놀라 한걸음 물러났지.
그땐 나도 네가 너무 안쓰러웠지만 넌 그러고도 내색 없이 씩씩하니까, 돌아오는 길에는 그저 경찰과 삼성 경비와 폭력과 피해자 가족들 이야기만 하기에 바빴다. 진작에 그냥 오렌지 너에 대해, 너의 힘듦에 대해서 좀 물어보고 같이 아파해주고 표현했어야 하는데…. 그게 가장 미안하단다.
그렇게 삼성직업병 피해자 가족들 곁에서 함께 싸워왔던 너는 '죽으면 삼성본관 앞에 뿌려 달라'는 유언을 네 동생에게 남겼더랬지.
오렌지야, 그렇게 하지 못해 또 미안하다. 대신 우리 열심히 싸워서 삼성이 다시는 노동자들 목숨 쉬이여기지 못하도록 만들게.
우리 마음속에 영원히 간직될 소중한 동지이자 친구 오렌지야. 그곳에서 다시 만날 때까지 잘 지내길…. 안녕.
[관련 기사] 집회 뛰어다니던 오렌지, 이름 딴 인권상 제정
▲ 반올림 활동을 오랫동안 찍어온 오렌지. ⓒ 홍진훤
오렌지, 잘 지내니?
요사이 여름이 온 것처럼 무더워서 힘들었는데, 어제 밤(5월 23일)사이 내린 비로 싸늘해졌다. 낮에 기온이 좀 내려갈 것 같아 다행이구나. 그래도 비오는 게 마냥 반갑지는 않아. 비닐 하나 간신히 덮어놓은 농성장에서 듣는 빗소리는 귀가 따가울 지경이거든. 농성장 밤지킴이 하신 황상기 아버님, 성호씨가 간밤에 잠을 설쳤을 게 분명하다. 그래도 메말랐던 초록에겐 반가운 비님이니 사람 욕심 채우는 것만 생각하면 안 되겠지.
우린 이렇게 하루하루 날씨 변화에 민감해진 채 삼성 본관 앞에서 노숙농성 중이야. 오늘로 벌써 231일째가 되는구나. 아직 삼성은 변하지 않았어. 아니 우리가 아직 삼성의 태도를 바꿔내지 못했다는 편이 더 맞는 말인 것 같네.
농성하면서 네 생각이 안날 수가 없단다. 행사가 있거나 농성장에 새로운 아이템이 들어올 때면 우리 중 누군가는 마치 습관처럼 '오렌지가 있었으면 사진기 들고 이리저리 뛰어다녔을 텐데…'라고 말하곤 한단다.
네가 없는 3월 고 황유미 추모제 때도 그랬고, 지난해 겨울 삼성직업병 피해자 숫자에 맞춰 삼성본관 둘레를 221명이 방진복을 입고 돌며 한목소리로 선언문을 읽을 때에도, 기자가 잘 오지 않는 기자회견 때에도 불쑥불쑥 네 생각이 나지 않을 수 없다. 하늘에서 반올림 싸움 다 지켜보고 있는 거지? 그곳에서 오렌지 너도 응원 많이 하고 있는 거지?
너와 함께한 순간들을 잊을 수 없을 거야
▲ 반올림 사진을 찍으러 이리저리 뛰어다니던 오렌지의 모습. 제 몸이 아픈데도 더 아픈 현장에서 누구보다 열심이었습니다. ⓒ 홍진훤
네가 갑작스러운 심정지로 중환자실에 있다는 소식을 들은 지난해 5월, 모두들 그동안 오렌지에게 미안한 마음들을 자책하며 네가 오렌지답게 벌떡 깨어나길 간절히 바랐는데, 그렇게 일찍 하늘로 가버리다니….
따뜻한 밥 한 끼 더 해주고 싶었다는 선희 언니도, 평소 네가 존경했지만 널 구박만 했다는 박진 활동가도, 오렌지가 사진 정리를 잘 못한다고 종종 혼냈다는 너의 스승 박김형준 사진작가도, 결혼을 앞두고 오렌지가 한결 전문가다운 솜씨로 싱그럽게 야외촬영을 해줬다는 영은씨도, 그리고 우리 누구도…. 너와 나눈 삶의 한 조각들을 떠올리며 네가 떠나는 아픔을 달랬다.
나 또한 오렌지 너랑 함께한 순간들을 잊을 수 없을 거야. 오랫동안 같이 반올림 활동을 하면서 보낸 소중한 시간들은 물론이고, 좀 심심한 나와 영화도 같이 봐줘서 고마웠단다. 하필 너와 함께 본 영화들이 시공간을 넘나들며 살아있는 순간의 소중함을, 결코 가볍지 않은 삶의 소중함을 조명했던 영화들이었네.
영화 <그래비티>를 보면서 우주로 빨려들어갈 것처럼 초집중한 너를, 시간여행을 다룬 영화 <어바웃 타임>을 보고는 충만한 표정으로 나오던 네 모습은 오래오래 간직하고 싶구나.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또 하나의 약속>이 처음 상영됐을 때 너는 상영일자보다 하룻밤 먼저 출발하면서 밤기차 타고 부산 밤바다를 보고 싶다고 했지.
그렇게 소중한 추억들이 떠올라 웃다가도 진작에 너의 아픔을 어루만지지 못한 미안함과 네가 영영 사라진 건 아닐까 하는 두려움에 힘들었단다.
내가 너였다면 매일 밤 울었을 거야... 하지만 넌 달랐지
▲ 삼성전자에서 일하다 백혈병으로 사망한 고 황유미님의 7주기 추모제가 끝나고 활동가 단체 사진을 오렌지가 찍어줬습니다. 눈물바람인 활동가와 피해자에게 이 날만은 환하게 웃고 사진을 찍었습니다. 사진을 찍을 땐 늘 "오렌! 지~~"를 외쳤죠. ⓒ 오렌지
네가 중환자실에 입원하기 한 달 전쯤인가? 안국역 사거리에서 새벽까지 이어진 세월호 집회 때 너는 경찰이 쏘아대는 캡사이신에 맞아 피부 발진이 나고 건강이 안 좋아졌다며, 그게 얼마나 몸에 해로운 약품인지 피해자들을 규합해 인권침해 진정을 해야겠다고 씩씩거리면서 이야기했었는데…. 그게 네 몸이 예전같이 않아 생긴 증상일 수도 있었는데 나는 그만 네 말만 믿고 너랑 같이 경찰 욕만 실컷 했지, 달리 살피지 못했다.
이틀에 한번 투석을 하는 몸으로는 남들처럼 오래 살진 못할 거라고, 이미 10대 때부터 투석을 해왔으니 이미 오래 살고 있는 편이라고 했던 너의 말을 네가 중환자실에 실려 가고서야 숨 막히는 답답함과 함께 떠올렸단다.
내가 너의 몸 같았으면 나는 어쩌면 매일 밤 울고 지냈을지 모른다. 너의 마지막이 언제 들이닥칠지 몰라 너도 실은 정말 두려웠을 텐데, 어쩌면 종종 눈물 흘렸을 텐데…. 그런 너의 힘들었던 시간들에 대해서 나는 알지 못했다. 늘 니가 밝았으니까. 내 기억에 니가 눈물을 보인 적은, 영화 <또 하나의 약속>을 봤을 때 밖에 없었으니까.
그런데 너는 누구보다 눈물을 소중히 생각했던 것 같다. 비가 내려 유미씨 영정 피켓의 코팅된 표면에 물방울이 맺히면 너는 쉴 새 없이 카메라 셔터를 눌렀다. "유미씨가 우는 것 같아 보이지 않아요?"라고 하면서.
네가 내게 프로필 사진 쓰라고 준 사진들도 대부분 눈물이 맺혀 있어 쓸 수가 없단다. 그래도 삼성직업병 피해자 가족들의 눈물을 담아낸 너의 사진들 덕분에 우리 사회의 보다 많은 이들에게 피해자들의 아픔을 생생히 전달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영화 <또 하나의 약속> 엔딩 장면으로, 황유미 추모제 때 슬픈 표정의 실제 아버님 사진은 네가 찍었고 무려 50만 명이나 봤잖아. 너도 많이 감격해했었지. 그 뒤 넌 또 세월호 유가족들의 아픔을 사진으로 담아내기 위해 뛰어다녔지.
미안하지만, 그래도 또 고마웠던 일
오렌지야. 이렇게 떠나고 난 뒤에 말하는 게 아직도 미안하지만 그래도 또 고마웠던 순간을 이야기해본다.
긴 시간동안 피해자 가족들의 일인시위 현장에 네가 함께해서 든든했단다. 피해자 가족들이 시위를 하며 삼성본관 경비보안들의 폭력에 노출됐을 때 너는 카메라를 바짝 들고 한순간의 폭력도 놓치지 않겠다고 함께 맞섰다. 그 덕에 더 큰 불상사가 나지 않았던 것 같다.
한번은 그 앞에 출동한 경찰이 너의 팔을 잡고 늘어졌을 때, 너는 "신장 투석하는 팔입니다, 저도 장애인이에요, 이 팔 잡아당기면 정말 큰일 나요"라고 분노하며 팔목에 차고 있던 보호대를 풀었지. 어린아이 손목만큼 커다란 혈관이 튀어나와 있는 모습을 난생처음 본 경찰은 흠칫 놀라 한걸음 물러났지.
그땐 나도 네가 너무 안쓰러웠지만 넌 그러고도 내색 없이 씩씩하니까, 돌아오는 길에는 그저 경찰과 삼성 경비와 폭력과 피해자 가족들 이야기만 하기에 바빴다. 진작에 그냥 오렌지 너에 대해, 너의 힘듦에 대해서 좀 물어보고 같이 아파해주고 표현했어야 하는데…. 그게 가장 미안하단다.
그렇게 삼성직업병 피해자 가족들 곁에서 함께 싸워왔던 너는 '죽으면 삼성본관 앞에 뿌려 달라'는 유언을 네 동생에게 남겼더랬지.
오렌지야, 그렇게 하지 못해 또 미안하다. 대신 우리 열심히 싸워서 삼성이 다시는 노동자들 목숨 쉬이여기지 못하도록 만들게.
우리 마음속에 영원히 간직될 소중한 동지이자 친구 오렌지야. 그곳에서 다시 만날 때까지 잘 지내길…. 안녕.
[관련 기사] 집회 뛰어다니던 오렌지, 이름 딴 인권상 제정
덧붙이는 글
이 글은 '반올림' 이종란 노무사가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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