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러나는 정의화 "중도세력의 '빅 텐트' 펼치겠다"
'청문회 활성화법' 반대 당정에 일침, "박 대통령 소통 면에서 아쉽다"
▲ 퇴임기자회견 하는 정의화 의장퇴임을 앞둔 정의화 국회의장이 25일 오전 국회 접견실에서 퇴임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 이희훈
[기사 대체 : 25일 낮 12시 37분 ]
"국회는 떠나지만 정치는 떠나지 않을 것이다. 다시 본업으로 돌아가야 하지만 지난 20년 간 국민의 여망 속에서 국가의 녹을 받아온 사람으로서 이런 정치의 모습을 보고 그냥 떠난다는 데 죄책감이 생겨서 당분간 정치는 어떤 방법으로든 계속해서 하려고 한다."
이 행로는 전임 국회의장단이 걸었던 '원로의 길'도 아니었다. 정 의장은 이날 "낡은질서를 타파하고 새로운 정치질서를 열어가는 길에 작은 밀알이 되고자 한다"라면서 "협치와 연대의 정치개혁, 국민중심의 정치혁신에 동의하는 우리 사회의 훌륭한 분들과 손을 잡고, 우리나라 정치에 새로운 희망을 만들 수 있는 '빅 텐트'를 펼치겠다"라고 공언했다.
또 "국회의장으로서 여야 어느 쪽에도 치우침 없이 초당적으로 국회를 운영해왔듯 퇴임 후에도 정파를 넘어서는 중도세력의 '빅 텐트'를 펼쳐 새로운 정치질서를 이끌어내는 마중물이 되겠다"라고 강조했다.
즉, 오는 26일 자신의 주도로 출범할 싱크탱크 '새 한국의 비전'을 통해 새 판을 짜겠다는 얘기였다. 실제로 '새 한국의 비전'은 여야를 막론하고 중도·개혁 성향의 정치권 인사들이 대거 참여하면서 20대 총선 참패 후 정치권 안팎에서 나돌고 있는 '여당발 정계개편 시나리오'의 진원지로 주목받고 있는 상황이다.
정 의장 본인도 지난 19일 기자들과 만나, "후배들이 나라를 잘 끌고 갈 것으로 판단되면 조언하는 수준에 남아 있을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내가 그런 결단을 할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는다"라며 신당 창당 가능성을 밝힌 바 있다.
▲ 퇴임을 앞둔 정의화 국회의장이 25일 오전 국회 접견실에서 퇴임 기자회견을 열고 기자들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 이희훈
퇴임 자리에서 '새로운 정치' 선언, "신당 창당 10월까지 고민하겠다"
이와 관련, 정 의장은 이날 "더 이상 국민이 정치를 걱정하게 해서는 안 된다, 앞으로 저는 국민들의 민의가 정치에 직접적으로 전달되고 국민의 뜻이 제대로 반영될 수 있는 또 다른 차원의 정치개혁을 고민하려 한다"라면서 "국민과 정치와의 거리를 최대한 좁힐 수 있도록 정당 시스템의 창조적 혁신이 필요하다는 것이 제 생각"이라고 밝혔다.
아울러, "이를 통해 분열과 갈등의 시대를 넘어 통합과 화합의 새 시대로 나아가는데 앞장서겠다"라며 "이것이 20년간 국가의 녹을 받아온 제가 국가와 국민에게 보답하는 길이라고 생각한다"라고 덧붙였다.
새로운 정치의 방향으론 '협치의 플랫폼'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정 의장은 이를 "낡은 이념과 진영논리를 벗어던져 국민 화합과 통합을 이룰 수 있고 국민과 국가를 위해 언제든 초당적 협력을 이끌어낼 수 있으며 국민들의 목소리를 더욱 폭넓게 수용하여 갈등을 녹여낼 수 있는 새로운 정치질서"라고 설명했다.
구체적인 정치개혁 과제로는 ▲ 새로운 정치체제를 위한 헌법 개정 ▲ 지역패권주의와 승자독식으로 이어지는 소선거구제 혁파를 꼽았다.
정 의장은 다만, 이것이 꼭 신당 창당으로 이어지는 건 아니라고 말했다. 그는 '중도세력의 빅 텐트'에 대한 구체적인 구상을 묻는 질문에 "외곽에서 정치가 건강하게 되기 위해서 조언을 하는 정치원로집단도 정치결사체라 할 수 있고 새 정당으로 태어날 수 있는 것도 정치결사체"라며 "그 점도 10월 정도까지 고민하겠다고 말한 적 있는데 지금도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이 같은 행보가 자신의 대권행보로 해석되고 있다는 지적에 대해서는 공자의 '지불가만(志不可滿)'을 거론하며 "자기 뜻을 가득 채우려다 패가망신할 수 있다는 의미로 생각한다, 저는 국회의장으로서 주어진 직에 최선을 다하는 자세는 갖고 있지만 여러 가지로 부족하다"라고 답했다.
그러나 국회의장 퇴임 후 새누리당으로 돌아간다는 생각은 뚜렷하지 않았다. 그는 "새누리당이 정말 대오각성해서 진정 국민을 위한 당으로 거듭난다면 (복당할 수 있다)"라면서 "무능한 보수, 나태한 보수, 권위주의적 보수로 계속 인식된다면 자동 입당하더라도 탈당할 수 있다"라고 말했다.
▲ 퇴임을 앞둔 정의화 국회의장이 25일 오전 국회 접견실에서 퇴임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 이희훈
"박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 국회 운영에 관계된 일은 국회에 맡겨야"
한편, 정 의장은 '청문회 활성화' 국회법 개정안 논란과 청와대의 직권상정 등으로 불거진 '여당 거수기론'에 대해선 쓴소리를 아끼지 않았다.
우선, 청와대에서 '청문회 활성화' 국회법 개정안을 두고 '행정부 마비법'이라고 비판한 것에 대해선 "민주주의의 원칙을 훼손하는 일"이라고 비판했다. 정 의장은 "국회운영제도 개선 내용을 담은 국회법 개정안 중 상임위 청문회 활성화 부분을 두고 일부에서 '행정부 마비법'이라는 비판이 있다고 들었다, 그것이 사실이 아니길 바란다"고 말했다.
그는 "국민을 대신해 국정을 감사하고 특정한 국정사안을 조사하는 것은 헌법 61조에 규정돼 있는 국회의 당연한 책무"라며 "정책적으로 현안조사가 필요한 사회적 문제가 발생할 경우 그 내용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대책과 대안을 마련하여 국민들의 걱정을 하루 속히 풀어드려야 할 의무가 국회에 있다"라고 강조했다.
이어, "그런 문제에 정치가 제때 응답하지 못했고 원 책임소재는 제대로 가려지지 않았다, 지금 우리 국민들은 일 잘하는 국회, 정부를 제대로 감독하고 견제하는 국회를 원하고 계신다"라면서 "행정부가 국민의 편에 서서 올바르게 일하라고 만든 법을 '귀찮다', '바쁘다'는 이유로 반발하는 것이야말로 민주주의의 원칙을 훼손하는 일"이라고 주장했다.
또한, "과거의 일부 청문회에서 나타났던 부정적 측면만 강조하며 정책 청문회 활성화 자체에 반대하는 것 또한 '구더기 무서워 장 못 담그겠다'는 식의 회피성 주장일 뿐"이라며 "상임위 청문회 활성화를 비롯해 연중 상시국회 운영 등의 내용을 담은 개정 국회법이 이번 정부가 임기 끝까지 국정을 원만히 운영하는 데 오히려 적지 않은 도움이 될 것이라 믿고 있다"라고 말했다.
박근혜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 가능성에 대해선 "행사하지 않을 것으로 생각한다, 대통령께서는 국회 운영에 관계된 일은 국회에 맡겨두는 일이 좋지 않겠나 생각한다"라고 지적했다. 아울러, "인사청문회나 국정감사를 통해 드러난 여러 부정적인 행태들로 우려하는 건 이해한다"라면서도 "이건 어디까지나 국민을 위해서 현안을 조사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다만, "(상임위별 청문회가 활성화되면) 20대 국회에선 (기존의) 국정감사를 폐지하는 법안을 제출해도 되지 않겠나"라면서 "상임위에서 했던 얘기를 재탕삼탕하거나 시의적절성도 떨어지는 등 여러 폐해가 있는 국감을 없애고 청문회를 활성화하는 게 국익에 훨씬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라고 덧붙였다.
박 대통령에 대한 평가를 부탁받는 질문엔 "인사권은 (대통령의) 고유권한이지만 탕평인사가 됐으면 좋지 않겠나 생각하고, 소통 면에서 미흡하지 않았나 생각한다"라면서 "그 외엔 정말 대통령으로서 정말 국민과 조국을 위해 최선을 다한다고 생각한다"라고 평했다.
그러나 차기 대통령의 자질을 묻는 질문을 받고선 "상당히 소박하고 남의 말을 잘 듣고 그 말이 옳으면 고칠 수 있는 자세가 진정한 소통인데 그것을 잘할 사람, 그리고 그 주변 장·차관이나 청와대를 구성하는 분들이 신뢰를 가질 수 있는 분들이어야 한다"라고 재차 '소통'을 강조했다.
그는 기자회견 중에는 국회를 '거수기'로 여기는 청와대의 행태에 대해서도 비판했다. 정 의장은 "의회주의를 그렇게 강조하던 의원들이 행정부로 가면 국회를 필요에 따라 거수기나 통법부로 여기곤 한다는 점이 초선의원 때부터 의아했다"라며 "삼권이 서로를 존중하고 예를 갖추는 가운데 국민의 삶과 국가의 미래를 위해 함께 노력하라는 것이 자유민주주의의 기본 구조"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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