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22일 강남역 여성 살인사건 피해 여성을 애도하기 위해 강남역 10번 출구에 마련한 추모 장소 모습. ⓒ 김예지
번화가의 화장실에서 한 사람이 목숨을 잃었다. 망인은 여성을 상대로 고른 범죄자에게 희생되었다. 범인은 흉기를 준비해 화장실에서 1시간 가량 기다리며 6명의 남성을 거르고 여성을 살해했다고 한다. 체포된 용의자가 초기 진술에서 자신을 "여성이 무시해서" 범행을 저질렀다고 말하며 이 사건이 불특정한 여성을 노린 범죄였음이 알려졌다.
타고난 성별로 인해 목숨을 잃을 수도 있다는 현실을 직면한 많은 이들이 경악하고 불안해했으며 불합리를 바로잡아야 함을 인식하게 되었다. 강남역 10번 출구에서 진행된 고인에 대한 추모가 열기를 더해가는 가운데 사회에 만연한 여성혐오 풍조에 대한 비판이 제기되었다. 경찰은 범행 동기가 조현병으로 인한 것이라 발표했으나 이것이 사건의 본질을 왜곡한 것이라는 항의를 받기도 했다. e신경정신의학회는 "아직 피의자의 충분한 정신감정이 이뤄지지 않았다"며 "여성혐오나 조현병을 성급하게 원인으로 지목해서는 안 된다"는 성명서를 발표했다.
앞으로 진행될 조사나 재판 과정에서 피의자의 범행 동기가 무엇으로 규정될 것인지는 아직 알 수 없다. 벌써부터 인터넷 곳곳엔 이 사건이 정신이상에 의한 개인적 일탈임을 강조하는 의견이 나돌기도 한다. 그러나 잘 살펴야 할 것은 용의자가 범행 장소에서 오랜 시간 기다리며 남성을 제외한 채 어떤 한 여성을 표적으로 삼았다는 사실이다.
고인은 단지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희생되었다. 많은 여성들이 이 일을 불운한 한 사건으로 지나치지 못하고 망인을 추모하기 위해 나섰다. 여성들은 극에 달한 위기감을 토로한다. 여성들에게 축적되어온 불안이 이 사건을 계기로 터져 나온 것이란 진단이 나오기도 한다.
어쩌면 용의자의 범행 동기가 무엇인지는 부차적인 문제일지 모른다. 이 사건이 왜 추모 열기와 여성혐오에 대한 비판 여론을 촉발시켰는지를 생각해봐야 한다. 그럴 만한 경향이 우리 사회에 내재해왔을 것이기 때문이다. 여성들은 단지 여성이라는 이유로 쉽사리 폭력에 노출되는 상황을 빈번하게 겪어왔다. 사물이나 수단에 가까워지는 경우도 경험했을 것이다.
그러면서도 여성이라는 이유로 불합리한 현실에 대해 지적하거나 개선하기 위해 나서지 못하도록 억압받는 조건에 놓여 있었다. 그랬기에 이번에는 가만히 있지 않겠다는 사람들에 의해 이 정도까지 여론이 들끓었던 것이다. 사건의 성격이 무엇인지를 규정하는 데에 매몰되는 것은 이런 전체적인 맥락을 전혀 환기시키지 못한다.
사람들은 흔히 남자와 여자라는 식으로 두 성을 나란히 놓으며 남녀가 대등한 지위에 있는 듯이 생각하곤 한다. 하지만 실제 상황은 그런 관념과 얼마나 일치하나? 현실은 타고난 성별에 의한 완력의 격차만으로도 쉽사리 폭력이 벌어져버리고 마는 불균형한 상태에 있다. "헤럴드경제가 경찰청 자료를 토대로 보도한 바에 따르면, 2015년 1월부터 8월까지 발생한 강력범죄는 총 1만5227건인데 이중 약 87%는 '여성'이 피해자였다."(<한국에서 유독 '강력범죄 여성 피해자'가 많은 이유는 뭘까?>, 허핑턴포스트) 이런 사실에 대한 인식이 없다면 공허한 성 대결 구도 속에서 소모적인 논쟁을 벌이는 것이 얼마나 무의미한지를 깨닫기란 요원한 일일 것이다.
수잔 브라이슨은 자신의 저서에서 트라우마 피해자로서 겪은 충격에 대해 설명한다. 자신이 겪은 피해를 가까운 사람들조차 쉽사리 없었던 일로 여기려 들더라는 것이다. 저자는 그것이 "무지나 무관심 때문만이 아니라" "트라우마에 대한 어떤 두려움 때문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한다. "우리가 끔찍한 운명에 처한 트라우마의 희생자와 공감하기 위해서는 우리 자신의 삶 또한 트라우마의 희생자들과 마찬가지로 스스로 통제할 수 없는 상황에 처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만 하는데, 이것은 우리가 받아들이기에는 무척 힘든 일이라는 것이다."(<이야기해 그리고 다시 살아나>)
어쩌면 사람들에게는 세상의 반씩을 차지하고 있다는 남녀가 실은 불평등한 상태에 있으며, 예상보다도 훨씬 폭력적인 구도에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가 어려울지도 모른다. 평화로운 일상이라는 환상을 깨뜨리고 마는 충격적 사고를 기억하고 관련된 논의를 이어나간다는 것이 때로 어떤 사람들에게는 그저 피로감을 자아내는 일에 지나지 않아진다는 것을 우리는 세월호를 통해 아프도록 경험하기도 했다.
왜 남성중심적인 사회와 가부장적 질서에 대한 비판을 그토록 많은 개별 남성들이 개인적 모욕에 가깝게 받아들이는지에 대해서도 생각해볼 일이다. '나'는 그렇지 않은데 왜 '나'까지 비난하느냐는 식으로 말이다. 남성 일반에 대한 비판에 대해 왜 남성들은 그토록 민감하게 반응하며 왜 남성이라는 추상 개념과 자신을 그토록 동일시하는가? 왜 성 대결 구도가 진부하다고 불평하면서도 일상적 남녀관계 속에서의 주도권 경쟁 수준의 진부한 대결 구도에서 벗어나지 못하는가?
타고난 성별로 인한 문제이다 보니 남녀 사의의 불균형한 구도를 자연 발생으로 인한 어찌할 수 없는 문제로 보는 시각도 있다. 남녀 사이의 완력 격차를 현실적으로 없애거나 바꿀 수는 없지 않느냐는 식이다. 일리는 있는 말이다. 여성이 여성이기를 택하지 않은 것과 마찬가지로, 남성도 남성이기를 골라 태어난 것은 아니다. 남녀 사이의 불균형은 어느 정도는 인간의 의도를 벗어나 있는 일이기는 하다.
하지만 인간 문명이라는 것은 그 자체가 비자연적인 것이다. 우리가 정의나 도덕이라 일컫는 것 가운데 야생의 적자생존이나 약자 도태에 들어맞는 것이 무엇이 있는가. 우리가 여성을 비롯한 약자의 권리를 얼마나 잘 지켜낼 수 있느냐는 곧 앞으로 인간사회의 문명화 정도를 가늠하는 척도가 될 것이다. 우리는 어느 때에도 이 같은 지향을 잃어서는 안 된다. 차별금지법과 같은 대안이 거론되고 있는 것은 다행한 일이다. 조속히 법안이 제정되기를 기대한다.
고인께 애도를 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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