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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게 샀는데, 왜 점점 가난해질까

[NO마트, GO시장] 오래된 미래, 골목상권에 눈을 돌려야 하는 이유

등록|2016.06.03 08:43 수정|2016.06.03 08:43
최근 <마트가 우리에게서 빼앗은 것들>(신승철 저)이란 책이 발간되었습니다. '편리한 마트 뒤에 숨은 자본주의의 은밀한 욕망'에 대해 이야기 하는 책인데요. 저자는 골목상권의 붕괴와 살수록 가난해지고 있는 현실 뒤에는 대형마트가 있음을 지적합니다. 관련하여 <오마이뉴스>는 'NO마트, GO시장'을 기획하고 그 두 번째로 <마트가 우리에게서 빼앗은 것들> 저자 신승철씨가 이 책을 내게 된 배경을 독자들과 나누고 우리에게 남겨진 과제에 대해 생각해보는 시간을 갖고자 합니다. [편집자말]
일요일마다 저는 아내와 마트에 갔습니다. 아내는 마트 매장 안으로 들어갈 때, 마치 아이에게 아이스크림 하나를 쥐여주듯 봉투며 짐 등을 저에게 맡깁니다. 계산대 밖에서 저는 잔뜩 골난 아이처럼 매장 안의 풍경을 쏘아보았죠. 저는 그저 마트의 곁, 가장자리, 주변, 사이에 있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런 저에게 어느 날 위즈덤 하우스 이지은 편집자가 <마트가 우리에게 빼앗은 것들>이라는 책을 써보지 않겠냐고 제안했습니다. 사실 안 될 것도 아니었지만, 약간 주저하고 뜸을 들이면서 저 자신의 마음을 관찰했습니다. 그러다 어디에선가 이런 말을 찾아냈습니다.

"사물의 본질이 아니라 곁이나 가장자리에서 서식하는 마음에 주목하라!"

저 자신에게 '책을 써라, 책을 써라' 하는 암시처럼 느껴졌지요. 다음날 출판사에 책을 쓰겠다고 연락을 했더니 시원하긴 했지만, 마치 숙제를 안고 집으로 향하는 아이 같은 느낌도 들었습니다. 

이 책을 쓰는 과정은 공부하며 탐색하고 미지의 곳으로 찾아가는 여행 같은 것이었습니다. 분명 설렜지만, 자료를 찾을수록 뭔가 이상한 것들이 많은 현실이었습니다. 마치 토끼굴을 통해서 이상한 나라로 들어간 앨리스와 같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처음에는 마치 실험실의 과학자처럼 중립적 태도를 취하면서 마트를 관찰하려고도 했습니다. 그러나 이런 태도는 금방 좌절되었습니다. 그 이유는 골목상권, 서민경제, 전통시장, 자영업, 노동현장 등 마트가 이미 우리 생활 속에 파괴한 것이 워낙 많았기 때문이었습니다.

마트, 널 만나고 알게 된 것들

어느날 저는 하나의 사건에 주목하게 되었습니다. 망원시장 상인들이 3년여간 벌였던 홈플러스 입점 투쟁이 그것이었습니다. 그때까지만 해도 마트의 해악성에 대해 무지했습니다. 망원시장 상인회의 서정래 회장님께 순전 자료조사와 인터뷰를 요청할 요량으로 약속을 잡았습니다.

예정보다 일찍 망원시장에 도착해서 시장을 돌며, 떡볶이도 먹고 칼국수도 먹고 구경도 하고 흥정도 해보고 상인들과 농담도 주고받으면서 시간을 보냈습니다. 마트에서는 잔뜩 골 나 있었던 제가 제법 그럴듯하게 흥정과 밀당도 하고, 상인들과 무척 친해졌습니다. 한 마디로 홀딱 반해버렸죠. 마트에서의 위생적이고 탈색된 관계가 아니라, 정이 있고 스토리가 있고 오가는 마음이 있었습니다.

서정래 회장님은 일면식도 없는 저에게 망원시장의 투쟁 과정을 친절하게 설명해 주었고 방대한 자료를 주었습니다. 저는 지역에 마트가 생기면 전통시장이 대부분 사라진다는 얘기를 듣고 충격을 받았습니다. 제가 마트에 가면 왜 잔뜩 골이 났는지가 비로소 해명되는 기분도 들었습니다. 정성도 인격도 사랑도 마음도 없는 물건을 사고 팔았던 마트를 단지 싸다는 알량한 이유로 갔던 것이 드러났기 때문이지요. 

▲ <응답하라 1988>의 한 장면. ⓒ tvN


얼마전 인기리에 방송된 드라마 <응답하라 1988>에 나오는 쌍문동 골목처럼 예로부터 골목은 아이, 동물, 슬리퍼를 신고 마실 나온 아저씨, 맥줏집에서 술 마시고 나온 청년들, 미장원에서 머리하고 나온 아줌마들이 지나치고 머무르던 공간이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과거형이죠. 지금의 골목은 완전히 기능정지 상태에 빠져 있습니다.

이제 골목은 주말에 마트로 가기 위해 자동차를 세워두거나 자동차가 위험하게 움직이는 공간이 되었습니다. 과거의 골목상권은 어떤 곳이었을까요? 미장원에서 머리를 하면, 미장원 사장님은 가게에 가고, 가게 주인은 철물점을 가고, 철물점 주인은 치킨집에 가고... 이처럼 자원-부-화폐가 순환하고 재생되었던 공동체경제였습니다.

지금은 어떨까요? 골목상권은 완전히 폐허가 되어 가고 있는 상황입니다. 모든 지역에서 돌아야 할 자원-부-화폐가 마트라는 블랙홀에 빨려 들어가고 있는 데다 유통대기업이 지역사회에 전혀 기여를 하지 않는 상황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왜 싸게 샀는데 우리는 더 가난해져 갈까요? 저 역시도 '싸다'는 이유로 한때 마트를 이용했습니다. 그런데 마트가 '싸다'는 것을 맞추기 위해 유통 대기업은 중소기업에게 가격 단가를 낮추라며 부당한 압력을 가하고, 비정규직 유연노동 등 질 나쁜 일자리를 통해 비용을 줄이려고 합니다. 그렇게 되면 중소기업이 가난해지고 노동자가 가난해집니다. 마트와 경쟁해야 하는 골목상권과 전통시장 등 서민경제도 힘들어집니다.

그런 점에서 마트는 서민경제의 대부분의 주인공들 즉, 자영업자, 중소기업, 노동자, 시장상인, 슈퍼아줌마 등에 대해서 해악적인 결과를 줍니다. 그래서 마트가 생기면 서민경제와 골목의 경제가 완전히 파탄나고 저희 주머니도 가벼워지는 것입니다. 싸다는 게 능사가 아닌 셈이지요.

밀당 없는 마트와 이별하기

▲ 서울시내 한 대형마트 계산대 모습. ⓒ 연합뉴스


우리나라 소비자들을 일컬어 호구고객(=호갱)이라고 부르는 것은 비단 어제 오늘의 일만은 아닙니다. 그러나 소비행위는 단지 물건을 싸게 사는 것에 머무르는 것만은 아닙니다. 파는 사람과의 관계를 성숙시키고, 공동체에 활력과 생명에너지를 주며, 윤리적 기업들을 독려하고 지지하는 행위로도 나타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도시에서 낯선 익명의 사람들 사이에 던져진 이들은 관계로 해결할 문제를 소비로 해결하는 데 익숙해져 있습니다. 문제는 소비가 정말로 필요해서인지, 아니면 브랜드나 광고 이미지에 현혹되어서 인지, 관계를 대체하기 위한 임시방편인지 모호하다는 것입니다. 상품구매를 '득템'처럼 생각하는 사람들의 욕망을 지배하는 주류 미디어와 자본주의가 숨어 있는 셈이지요.

마트에서는 생산지, 원료, 식품첨가물, 윤리적 생산, 제 3세계 민중과 노동자에 대한 착취 여부를 꼼꼼히 그리고 깐깐히 따지는 소비자들이 거의 없습니다. 단지 얄팍한 상술만이 통하지요. 예를 들어 소비의 동기가 '싸다'는 것, 포장지가 그럴 듯하다는 것, 브랜드에 익숙하다는 것, 한번 들어봤던 상품이라는 것 등이라면 어떤 생각이 드시나요? 결국 그런 소비행위를 하면 호갱으로 간주되어 유통대기업의 상술에 놀아나게 됩니다. 마트를 보면 유통대기업이 얼마나 편리하게 장사를 하고 있는지 드러납니다.

결사소비, 연대소비, 윤리적 소비, 착한 소비 등이 이제 관건입니다. 이제 모든 물건을 아이들에게 먹일 먹거리처럼 생각하고 생산지가 어딘지, 공정하게 생산되었는지, 식품첨가물은 무엇이 들어가 있는지, 친환경으로 만들어졌는지, 유전자조작농산물로 만들었는지를 꼼꼼히 확인해야 합니다. 특히 우리나라의 경우처럼 유전자조작표기가 의무화되지 않는 국가에서는 아이들이 먹는 대부분의 과자와 농산물들은 먹거리안전에서 무방비 상태로 있는 상황입니다.

이러한 문제점을 느낀다면 그것은 실천의 시작이 될 수 있습니다. 혹자는 소비는 선거와도 같다고 말합니다. 일단 선거에서 표를 찍으려면 그 후보가 누군지, 과거에 어떤 일을 했는지, 윤리적인지를 판단해야 합니다. 이렇듯 선거에서 한 표를 행사하듯이 소비의 결단은 연대와 공정성, 윤리의 출발점이며 소비자의 권리를 행사하는 유력한 방법이라는 것이지요. 

그리고 남은 이야기

저는 올해 초 <마트가 우리에게서 빼앗은 것들>이라는 책을 탈고하고, 가족회의를 했습니다. 물론 둘만의 회의지만, 우리 두 사람은 이제 마트를 끊고 생활협동조합과 골목슈퍼, 시장을 이용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저는 집으로 갈 때 습관적으로 장을 봐서 갑니다. 냉장고도 꽉 차지 않고 자동차를 운행할 필요도 없고, 해외 과일이나 해외 농산물이 아니라 국산 제철과일과 친환경농산물을 사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번거로운 일이라고 여겼지만, 익숙해지니까 금방 재미가 생겼습니다. 더불어 저는 아내와 함께 장을 보고 함께 대화하는 시간도 많아졌고, 갈수록 할 이야기도 많아졌습니다.

골목에서 단골도 몇 군데 만들어서 가게주인들을 만날 때마다 인사도 하게 되고 서로 소식도 묻게 되었습니다. 작은 변화는 돌이킬 수 없는 변화의 시작이라고 누군가 말하였다지요. 마트문명의 빛과 그림자를 벗어나니 공동체와 골목의 사람들이 재발견되었습니다.

저는 오래된 미래인 골목상권과 색다른 미래인 사회적 경제의 마주침이 만들 놀랄 만한 사건이 임박해 왔다고 생각합니다. 감히 통속적인 마트 문명을 넘어서야 미래 세대가 보이고, 공동체가 보이고, 사람 사는 향기가 느껴질 수 있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이제 '마트가 우리에게서 빼앗은 것들'을 발견하게 되었다면, '우리가 공동체로부터 찾아야 할 것'들을 창조해야 할 시기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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