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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리센터 직원의 90도 인사가 불편했던 이유

회사에서 전화가 오면 '서비스 만족'으로 답변해달라던 비정규직 노동자

등록|2016.05.31 17:02 수정|2016.05.31 17:52
어느 순간부터 누군가로부터 받는 지나친 호의와 친절이 불편해지기 시작했다. 더구나 친절을 베푸는 이가 비정규직 근로자라면 그런 불편함은 더 크게 느껴진다. 그 친절함 뒤에 숨어 있는 말 못할 고민과 사연들이 얼마나 많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다.

얼마 전 기자는 친구로부터 전화 한 통을 받았다. 통화 내용은 이랬다. 구입한 지 일 년쯤 된 이어폰이 말썽이란다. 친구는 "30만 원이나 주고 산 비싼 이어폰인데 벌써 몇 번째 고장인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그는 또 "이번에는 수리센터에 방문해서 수리도 맡기고 강력하게 항의도 할 생각"이라고 했다.

시간이 되면 수리센터에 함께 가자는 친구의 제안에 혹시나 기삿거리라도 있을까 싶어 동행을 하게 되었다. 수리센터에 도착해 접수를 마치고 얼마간 기다리자 고장 수리를 담당하는 직원이 친구를 호명했다.

자리에 앉을 때까지도 화가 누그러지지 않았던 친구는 담당 직원의 친절한 태도에 다소 화가 누그러지는 듯 보였다. 이 직원은 이어폰을 수리하는 동안에도 "고객님 불편하셨죠. 이 제품은 구조상에 문제가 있어서 고장이 잦은 편입니다"라며 연신 친구를 달랬다. 이런 직원의 태도에 잔뜩 화가 나 있던 친구도 점차 화를 풀기 시작했다.

90도 인사... 비정규직의 고충이 느껴졌다

그러나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수리를 마친 직원은 엘리베이터 앞까지 따라 나와 친구와 나에게 머리를 숙여 90도 각도로 인사를 했다. 친구와 나는 이 직원의 지나친 친절에 적잖이 놀랄 수밖에 없었다. 그러면서 그가 건넨 말은 "고객님 혹시라도 저희 회사에서 전화가 오면 서비스가 만족스러웠다고 꼭 말해 주세요. 그 전화는 회사를 평가하는 게 아니라 저를 평가하는 겁니다"라고 말했다.

이쯤 되자 이 직원의 친절이 고마우면서도 한편으로는 불편해지기 시작했다. 확인 결과 그도 비정규직 노동자였다. 그래서일까. 그가 친구와 나에게 베푼 친절함 뒤에서 겪고 있을 고충이 무엇일지 어렴풋이나마 알 것 같았다.

이른바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아웃소싱, 파견, 용역 다양한 이름으로 대기업과 중소기업 등에 '팔려' 나간다. 이들 파견업체들은 자신들이 파견한 노동자들이 벌어들인 임금의 일정 부분을 떼어 간다. 이들 업체들이 노동자들로부터 수수로 명목으로 떼어가는 금액은 임금의 10~30% 수준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웹툰을 원작으로 한 드라마 <송곳>(Jtbc 2015년 10월~11월 방송)에서는 이런 세태를 실랄하게 비판했다. 부진 노동 상담 소장 구고신(안내상 분)은 드라마에서 "돈은 깃발 든 놈들이 번다"고 쏘아 붙인다. 이는 일은 노동자들이 하고 돈은 파견업체가 벌어가는 세태를 꼬집은 것이다.

드라마에서 파견업체들은 깃발을 들고 호루라기를 불며 노동자들을 곳곳에 파견하는 것으로 묘사된다. 파견 업체들은 노동자들을 이리저리 옮기는 것뿐인데 그 대가치고는 꽤 짭짤한 수입을 얻어가는 것이다. 

참 쉽게 해고하는 세상, 뒤에서 피눈물 흘리는 노동자들

▲ 한 협력업체 직원이 고층 아파트에서 에어컨 실외기를 수리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파견업이 성행하는 이유는 '쉬운 해고와 쉬운 고용'이라는 기업과 파견업체 간의 이해 관계가 서로 잘 맞아 떨어지기 때문이다.

파견 형태로 고용된 노동자들은 매우 손쉽게 해고당하는 경우가 많다. 이들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이런 열악한 상황 속에서도 고객에게 친절함을 잃지 않아야 한다. 일부 콜센터와 수리센터 직원 등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겉으로는 밝게 웃고 있지만 속으로는 언제 잘릴지 걱정하며 피눈물을 흘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들의 친절함이 고맙지만 마음 한편으로는 불편한 이유도 바로 그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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