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순방은 '돈 자랑'이 아니다
아프리카 지원책 '코리아 에이드', 과자 던져주던 미군 떠올라
▲ 나이로비 케냐 국제컨벤션센터(KICC)에서 열린 코리아에이드 사업 시범운영 행사를 참관한 박근혜 대통령 ⓒ 청와대
한국인의 꼴불견 돈 자랑
오늘도 세계 일주를 하는 그날을 꿈꾸고, 저축은 못할지언정 휴가 때마다 해외여행을 떠나기로 약속했지만, 우리 가족이 반드시 지키는 불문율이 있다. 바로 흔히 '패키지여행'이라고 부르는 단체관광은 절대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패키지로 첫 해외여행을 떠났을 때부터, 이후 자유 여행 중 외국에서 이따금 우리나라 단체 여행객들과 만날 때마다 겪었던 '낯 뜨거운' 경험 때문이다.
특히 우리나라 사람들이 즐겨 찾는 동남아 나라들에선 흔한 풍경이었다. 어떤 관광지를 가든, 그들은 돈을 물 쓰듯 했다. 외마디 '팁'이라는 단어를 뽐내듯 외치며 지갑에서 돈을 꺼냈다. 호텔 벨 보이에게 건네는 건 그렇다 쳐도, 음식값에 이미 포함돼 있는 봉사료를 주문 받는 종업원들에게 따로 주는가 하면, 호텔 프론트 직원과 관광지 경비원에게조차 건네는 경우도 봤다. 마치 돈을 쓰기 위해 부러 외국으로 여행 온 사람들 같았다.
돈으로 더 나은 서비스를 바라는 거라고 보면 이해 못할 바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그들만을 위한 특별한 무언가가 제공되는 것도 아니다. 그저 현지인이 굽실거리며 받는 모습을 통해 잠깐의 우월감을 만끽하고 싶어 돈을 건네는 것 아닐까 싶다. 거칠게 말해서, 팁이라는 이름의 돈 몇 푼으로 우리나라에선 결코 누릴 수 없는 '갑질'의 쾌감을 해외에서 만끽하겠다는 것이라면 억측일까.
현지인들 앞에서 거들먹거리며 지갑에서 돈을 꺼낼 때의 모습을 보노라면, 솔직히 같은 일행이라는 것이, 나아가 같은 나라 사람이라는 게, 얼굴이 화끈거릴 만큼 창피했다. 아닌 게 아니라, 이러한 한국인 단체 관광객들의 행태를 두고 현지인들의 인식은 그다지 호의적인 것 같지 않다. 듣자니까, 보는 앞에서야 연신 감사를 표하지만, 뒤돌아서면 '졸부 근성'이라며 흉보기 일쑤라고 한다.
이태 전 베트남 여행 중 며칠간 함께 지낸 베트남인 친구는 "한국인 관광객들은 해외여행 중 지녀야 할 매너를 돈과 맞바꾸려는 것 같다"며 조롱하기도 했다. 가는 곳마다 우선 셀카봉부터 꺼내들며 다른 이들에게 피해를 주는 것도 그렇지만, 어디서든 돈으로 행세하려는 모습이 훨씬 더 꼴불견이라고 덧붙였다. 하긴 높은 산에 오를 것도 아니면서 하나같이 값비싼 브랜드의 등산복 차림인 것도 현지인들의 눈에는 어쩌면 '돈 자랑'으로 보일지도 모르겠다.
아프리카 돕는 방식이 천박하다
갑자기 해외에 나가 '돈 자랑'을 일삼는 우리나라 일부 단체 관광객들의 그릇된 행태가 떠오른 건, 박근혜 대통령이 아프리카 방문 기간 중에 발표한 '코리아 에이드(Korea Aid)' 때문이다. 이는 이동식 차량에 의료기기와 음식 등을 싣고 아프리카의 낙후한 마을을 돌아다니며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프로젝트다. 이를 두고 정부는 '새로운 한국형 개발협력(ODA) 모델'이라며 자화자찬했다.
경제 규모가 세계 10위권을 바라보는 대한민국이 가난한 아프리카의 나라들을 돕겠다는 거야 지극히 마땅한 일일 테지만, 그 방식이 경제 규모에 걸맞지 않게 천박하다는 게 문제다. 차로 이곳저곳 돌아다니며 진료해주고, 먹을 것 나눠주는 방식으로는 그들의 삶 개선에 아무런 도움이 되질 못한다. 장기적인 효과를 전혀 기대할 수 없는, 일회성 이벤트이자 생색내기에 불과하다.
모름지기 제대로 된 개발협력이라면, 학교나 병원을 세워 그들에게 의료기술을 전수하거나, 식량 부족에 맞서 풍토에 맞는 작물과 농법을 개발하는 등 자생력을 키워주는 식이어야 한다. 그것이 국제사회의 요구에 부응하고 대한민국의 국격에도 부합하는 방식이다. 그들의 자발적 역량을 키워내지 못하고 그저 그들을 수혜자로 머물게 하는 원조는 지속 가능하지 않다.
서비스를 차에 실어 제공하겠다니 그들이 굳이 마다하진 않겠지만, 그렇다고 흔쾌히 받지는 않을 것이다. 오지 군부대를 돌아다니며 군인들에게 주전부리를 파는 '황금마차'도 아니고, 차를 보고 모여든 현지인들에게 약과 음식을 던져주는 모습은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부끄럽다. 경제적으로 곤궁할 뿐, 그들에게 주권 국가로서의 자긍심과 문화적 자존심이 없는 건 아니다.
더욱 가관인 것은, 그들에게 제공하겠다는 음식도 비빔밥과 같은 한식(韓食)이라는 것이다. 그들이 찬 밥 더운 밥 가릴 처지가 아니라는 걸 활용해보자는 심산일까. 현지인들의 고유한 문화와 요구에는 눈 감고 귀 막은 채, 개발협력을 우리나라 음식 문화의 우수성을 홍보하는 수단 정도로 여기는 천박한 발상이다. 배고파하는 그들 앞에서 음식 가지고 우롱하는 '갑질' 아니고 뭔가.
그와 동시에 대표적인 한류 상품인 케이-팝 뮤직비디오와 평창 동계올림픽 홍보 영상을 상영하겠다는 것에서는 말문이 막힐 지경이다. 진찰 받고 밥을 얻어먹는 대신에, 영상을 보면서 대한민국을 향해 박수쳐달라는, 말하자면 '진료비'이자 '밥값'인 셈이다. 무언가 대가를 기대하고 제공하는 원조는 국제 개발협력의 참뜻을 훼손한다. 코흘리개 아이들의 불우이웃돕기도 그렇게 하지는 않는다.
박근혜 대통령은 태극기 꽂고 코리아(KOREA)라는 글자를 큼지막하게 붙인 차량이 광활한 아프리카의 여러 나라 곳곳을 활보하는 상상을 하고 있는 듯하다. 그렇게 하면 현지인들이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며 대한민국을 우러르게 될 것이라 믿는 것일까. 고작 우리의 경제적, 기술적 '우월함'을 그들 앞에서 뽐내는 것일 뿐인데, 이를 두고 거창하게 대한민국의 국격을 높이는 일로 착각하는 것 같다.
과자 던져두고 낄낄 대던 미군에 굴욕감 느낀 아버지
어릴 적 돌아가셔서 얼굴조차 흐릿하지만 아버지에 대한 아주 또렷한 기억 하나가 남아있다. 지지리도 가난했지만, 아버지는 아무리 배가 고파도 이 음식만큼은 절대 드시지 않았다. 바로 부대찌개다. 온갖 오해들이 뒤섞여 어원조차 확실하지 않지만, 아버지는 돌아가실 때까지 미군 부대에서 먹다 남긴 햄과 소시지 등을 얻어다 우리네 김치찌개에 넣고 끓인 '구걸 음식'이라 철석같이 믿었다.
1950년대 전쟁이 끝나고 폐허로 변한 땅에서 20대 시절을 견뎌내야 했던 당신은 미국의 원조를 탐탁지 않게 여기셨다고 한다. 당시 미국의 도움 아니었으면 굶어죽는 이들이 정말 많았을 거라면서도, 차마 그들이 준 밀가루를 배급받으려고 줄 서는 짓은 못하겠다며 이따금 줄행랑치시곤 했단다. 허기진 배를 움켜쥘지언정 자존심 하나로 가난한 젊은 시절을 보내신 거다.
전쟁 난리 통에 길거리 곳곳에서 '기브 미 초코렛'을 외치며 구걸하던 아이들의 모습을 평생 잊지 못하셨다. 돌아가시기 전 과거의 추억을 회상할 때면 어김없이 등장하는 레퍼토리였다. 그때 과자 등을 바닥에 던져주며 낄낄대던 미군들의 모습에 참기 힘든 모욕을 느끼셨다는데, 말하자면, 평생 부대찌개를 먹지 않는 것은 그들에 맞선 당신의 '소심한' 저항인 셈이다.
아버지께서 그때의 굴욕감을 이렇게 표현하시곤 했다.
"미군 걔네들은 우리를 '거지'로 취급한 거야. 자기들이 던져준 음식들을 서로 차지하려고 아귀다툼하는 우리들을 한낱 구경거리 삼는 저들을 먹을 것을 준다고 마냥 고마워할 수만은 없었어."
잠깐 생각해보자. 지금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코리아 에이드(Korea Aid)'가 과거 미국이 우리에게 원조한 방식과 얼마나 다른가. 또, 대통령의 순방이라는 이름만 빼면, 해외여행 가서 '돈 자랑'하고 다니는 일부 단체 관광객들의 행태와 다를 게 대체 뭔가. 대한민국 국민이라는 사실이 이번처럼 창피했던 적이 또 있었나 싶다.
아프리카 현지인들 중에는, 과거 우리가 미군 앞에서 그랬듯 밖으로 표현 못하고 속으로 삭일지언정, 내 아버지처럼 되묻고 싶어 하는 이가 틀림없이 있을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과 우리 정부는 그 질문에 뭐라고 답변할 것인가.
"대한민국의 박근혜 대통령님, 아프리카에 사는 우리가 '거지'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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