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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산군 네번째 불산 유출 "매뉴얼 지켜지지 않았다"

[현장] 마을 이장이 불산 유출 확인 후 신고... "대피하라" 방송도

등록|2016.06.07 09:41 수정|2016.06.07 09:43
"목이 칼칼하고 유리 칼로 얼굴을 찢는 것 같다. 밥상 차리다 내던지고 도망 나왔다. 심장이 떨리고 가슴이 막혀서 숨쉬기도 힘들다. 한두 번도 아니고 네 번째다."

▲ 극심한 불안 증세를 보이는 주민들이 사흘째 잠을 자지 못하고 뜬눈으로 밤을 지새우고 있다. ⓒ 김종술


막 병원에 다녀왔다는 유귀례 할머니가 덜덜 떨면서 말했다. 고령의 마을주민이 임시 대피소인 초등학교 입구에 모여서 웅성거렸다. 불안한 듯 연신 담뱃불을 붙인다.

6일 찾은 금산군 군북면 군북초등학교 체육관에는 주민 70~80여 명이 모여 있었다. 불산 사고가 난 공장 500m 인근에 사는 주민들이다. 금산군 보건소와 군북면 새마을 부녀회, 의용소방대 여성대원들이 주민들의 건강과 식사를 돕고 있다.

체육관은 할머니들이 차지했다. 이불 하나를 챙겨서 쪼그리고 눕는다. 자리에 눕지도 못하고 안절부절 하는 어르신은 구석진 모서리로 숨어든다. 

지난 4일 오후 6시 30분경 충남 금산군 군북면 조정리 반도체용 화학제품 제조업체인 램테크놀러지에서 불산이 누출됐다. 관계 당국에서 파악한 바에 따르면, 유출된 불산(순도 49~55%)은 100㎏에 달한다. 이날 주민 40여 명이 안면마비와 두통, 호흡기 통증, 불안증세를 보여 병원에서 치료를 받았다.

이 공장에서만 지난 2013년 7월 첫 사고 이후 3번째 불산이 유출됐으며, 2014년 질산과 불산이 함께 유출된 사고까지 포함하면 네 번째다.  <관련 기사 : 네 번째 불산유출..불안한 금산 군북 주민들>

네 차례 불산·질산 유출..."이번에도 공장에서는 알려주지 않았다."

주민들은 이날 오후 5시 30분 경, 불산이 유출됐고 회사 측이 사고 사실을 은폐하려 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 때문에  불산이 유출된 후 1시간 이상 주민들이 불산에 노출됐다는 것이다.

이 마을의 황규식 이장은 지난 4일 오후 5시 30분경 공장 건너편에 사는 주민으로 부터 공장에서 하얀 연기가 나온다는 연락을 받았다. 황 이장은 6시 20분경에 서둘러 공장을 찾았다. 공장 경비실에는 아무도 없었다. 공장으로 뛰어 올라갔더니 무소불산 하역장에서 직원들이 방독면을 쓰고 뭔가를 하고 있었다. 이미 불산이 누출돼 숨쉬기도 힘들 정도로 가슴이 답답했다.

황 이장이 "무슨 일 있냐"고 묻자 작업자는 "원인은 알 수 없지만, 안에 물이 고여서 처리하고 있다"고 답했다.  황 이장이 "무슨 사고 난 거 아니냐"고 재차 묻자 그때서야 "지금 보고 하고 있다"고 말했다.

직감적으로 '불산유출'로 판단하고 금산군 환경과 담당자에게 연락했으나 아무도 모르고 있었다. 그는 다시  6시 35분에 119에 신고했다. 그로부터 15분 후인  50분 경 119로 부터 주민 대피 연락이 왔다.  공장 측은 사고가 났는데도 황 이장이 신고할 때까지 행정당국에 신고하지 않았다는 얘기다.

황 이장은 "불산이 유출되었으니 대피하라"는 방송에 이어 집집을 돌며 미처 피하지 못한 주민들을 대피시켰다.

황 이장은 "이후 병원에서 폐사진을 찍었더니 불산을 흡입한 흔적이 하얗게 보인다"며 "큰 병원으로 가라는 소견을 받았다"고 밝혔다.

"사고가 난 줄 몰라 밭에서 고추 땄다"

▲ 사고 시 주민의 대피요령에 관한 매뉴얼이 회사 입구에 표기되어 있다. 그러나 이번에도 지켜지지 않았다. ⓒ 김종술


공장 인근에 사는  유귀례(71) 할머니는 "사고가 난 줄도 모르고 고추를 땄다"고 말했다.

"밭에서 일하는데 입이 바짝바짝 말랐다. 유리 칼로 얼굴을 막 찢는 것 같았다. 한참 뒤에 불자동차가 3대가 와서 앵앵거리는데, 사고 난 줄도 모르고 고추 따고 덥다고 세수만 했다. 숨이 차고 답답하면서 누구한테 쫓기는 사람처럼 두근거리면서 기운이 빠지면서 어질어질했다. 피신을 했는데 아들이 어떻게 소식을 들었는지 손자를 데리고 왔기에 빨리 가라고 소리쳤다." 

한순례(79) 할머니는 "놀라서 불면증으로 잠을 못 잔다. 우울증과 불안증세로 심장이 터질 것 같다. 머리가 띵하고 텅 빈 것 같다. 온몸이 다 풀려버렸다. 여기 어떻게 들어왔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이상학(80) 할아버지는 "재작년에 불산에 양쪽 다리가 노출돼 병원에 갔는데 병원에서도 뭔지도 모르고 '피부병'이라고 연고 하나 주더라"며 "이번에도 몸에 노출되었는지 영 몸이 안 좋다"고 걱정했다.

주민 김진호(66)씨는 "사고가 났으면 주민들에게 알려줘야 하는데 쉬쉬하고 덮기만 한다"며 "한 두번도 아니고 네 번 째 사고가 말이 되느냐"며 "환경부가 사고가 날때마다 대충 조사하고 끝내 일을 키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부도덕한 이런 기업은 반드시 퇴출시켜야 " 

▲ 안면마비와 두통, 호흡기 통증과 불안증세를 보이는 주민의 이송을 위해 금산군 보건소에서 차량을 지원하고 있다. ⓒ 김종술


직업환경 의학전문의 정우철 박사는 다음과 같이 지적했다.

"불산, 질산은 급성 독성물질로 화상, 호흡기 문제가 발생한다. 염산처럼 급 화상은 아니지만, 천천히 화상이 나타난다. 그래서 점막(위나 호흡기)을 녹이기도 한다. 뼈로 흡수되어서 칼슘대사를 방해한다.

염산, 질산처럼 산으로 화상을 입는다고 생각하면 된다. 그러므로 불산 유출이 있고 나면 특별관리가 되어야 한다는 매뉴얼이 있다. 네차례 유출이라고 한다면 증상이 구체적으로 눈에 확 띄는 것이 아니므로 화학물질에 대한 심적인 불안 증세로 정신적 충격이 클 것이다."  

이경호 대전환경운동연합 정책국장은 "이전에 불산 질산 등 3차례 유출로 환경부와 금산군에서 미리 방지할 수 있었음에도 솜방망이 처벌로 다시 영업할 수 있도록 한 것이 이번 사고를 불러온 것이다"라고 지적했다.

실제 관계당국은 세 번째 사고가 발생한 지난 2014년 8월 불산 누출과 관련 업무상과실치상 등의 혐의를 적용해 공장 대표와 4명을 기소했다. 대전고법은 지난해 벌금 500만 원과 1000만 원을 각각 선고했다. 공장도 유해화학물질 관리법 위반에 대해서는 벌금 300만 원을 선고했다.

▲ 불산, 질산 등 4번째 사고가 난 반도체용 화학제품 제조업체인 램테크놀러지. ⓒ 김종술


주민들은 "사고 이후 주민대피를 하지 않은 부도덕한 이런 기업은 반드시 퇴출시켜야 한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한편 불산 사고에 대한 대피령이 없어 사고 당시 공장에서 50m가량 떨어진 낚시터에는 57명이 낚시를 하고 있었다. 하지만 현재 이들에 대한 신원 파악은 되지 않고 있다. 회사 측의 답변을 듣기 위해 여러차례 통화를 시도했지만, 전화를 받지 않아 통화를 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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