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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기문에 대한 조국의 주장은 자가당착"

[논쟁- 반기문 대권가도는 있다] 이코노미스트 혹평 따라한 언론... 외교관 출신 대통령의 장점

등록|2016.06.09 20:35 수정|2016.06.10 10:43
리더들의 행적은 동전의 양면처럼 공과(功過)가 있게 마련이다. 공(功)이 많은 리더일수록 과(過)도 부각된다. 최근 "대통령 후보"로 거론되고 있는 반기문의 경우도 예외가 아니다. 이코노미스트지가 반기문의 과만을 주도적으로 부각, 혹평했다. 국내 언론은 여과 없이 이를 '카피'하여 뿌렸다. 외국 유명 언론지라면 무조건 신뢰하는 우리 사회의 풍조가 아직은 미성숙하다. 이를 이용하는 정파적 논리도 우습다.

이코노미스트지의 비판은 이렇다.

"반 총장은 행정 능력이나 통치 능력 모두에서 실패한 총장으로 평가받고 있다" "코피 아난 등 전 총장들에 비해 강대국들에 맞서는 것을 싫어했다" "말을 잘 못하고 절차에만 집착하고 현안에 대한 빠른 대처 능력이나 업무 깊이도 부족하다. 임기 9년이 지났는데도 '점령' 같은 논란이 되는 용어를 쓰는 실수도 했다" "가장 활기 없는, 최악의 총장 중 한 명이다"

반기문과 비교된 전임 총장 코피 아난에 대한 그의 퇴임 무렵의 비판도 재미있다.

"아난 총장은 지난해(2005) 유엔 구매체제에 대한 부패 의혹과 유엔 평화유지군의 성추행, 이라크에 대한 '석유식량 계획'과 관련한 유엔 고위 관계자의 수뢰 의혹, 그리고 자신의 아들이 부친의 직위를 이용해 불법으로 세금감면을 받으려 했다는 의혹 등으로 임기 중 최대 시련을 겪었습니다. 아난 총장은 자신은 부정행위와 아무런 관련도 없다고 밝혔지만 이라크 석유식량 계획과 관련한 의혹을 조사하기 위해 그가 임명한 볼커 위원회는 아난 총장에게 일부 책임이 있다고 결론지었습니다."<VOA, 미국의소리 2006. 12. 15>

지도자의 과를 비판할 수 있다. 하지만 공도 함께 얘기하는 것이 맞다. 반기문은 부패로 얼룩진 복마전 같은 유엔의 업무를 코난으로부터 인수받았다. 당시 반기문은 아난과 정반대의 인물로 알려졌다. 교언영색으로 서방국가들의 입맛에 맞추어 인기에 영합한 전임 사무총장 코난과는 달랐다. "어눌한 언변"이지만 동양인의 심지를 가지고 유엔내부를 개혁함으로써 부패를 소리소문없이 청소해 정상화시켜 놓았다.

"반기문이 재선돼야 마땅한 이유"

▲ 반기문 유엔사무총장이 5월 30일 인천국제공항에서 국내일정을 마치고 출국하고있다. ⓒ 사진공동취재단


반 총장의 재임 4년 뒤, 유엔 및 국제문제 전문기자로 명성이 자자한 마크 레온 골드버그의 평가를 들어보자. "왜 반기문은 사무총장에 재선되어야 마땅한가(Why Ban Ki Moon Deserves a Second Term as Secretary General)"라는 칼럼을 통해 그는 반기문 사무총장을 자세히 얘기한다.

유엔사무총장이란 제약이 많은 자리임을 전제한다. 주요 국제현안에 대한 결정권이 없고, 분쟁 당사국에 유엔의 권유를 채택하도록 압력을 행사할 수도 없단다. 실질적인 파워는 유엔 창설멤버 강대국들에게 있다면서 "이러한 제약들 내에서 유엔 운영을 얼마나 잘했는가에 대한 잣대를 들이댄다면 반 총장의 실적(record)은 강하다(strong)"고 덧붙인다.

리비아와 아이보리코스트 문제를 예로 들었다. 반기문은 9천 유엔평화군을 파견, 유엔으로서는 거의 보기 드문 미사일 공격을 명령하는 등 아이보리코스트 독재자 로랑 그바그보를 체포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함으로써 아이보리코스트의 내전을 막았다. 반기문의 스타일이 아니었지만, 엄청난 위험을 무릅쓰고, 유엔군 업무를 성공시켰음을 그는 강조한다. 리비아 사태에서도 그는 카다피가 정통성(legitimacy)을 상실했다는 점을 아주 명료하게 기자들에게 얘기함으로써 2주 뒤에 유엔안전보장이사회가 국제 군사개입을 결정토록 분위기를 조성하는 데 결정적인 계기를 마련해 주었다고 한다.

유엔 사무총장이 휘두를 수 있는 실질적인 파워는 어떤 이슈를 '전 지구촌 차원(High Level Events)'으로 설정해 국제사회로부터 주목을 끌게 하는 것이라면서 "반 총장은 지난 5년 동안 지구촌의 선(善)을 위해 그러한 소집권(convening power)를 효과적으로 이용했다"고 덧붙인다.

예를 들면, 지구촌 기후문제를 다룰 코펜하겐기후변화회의 개최의 결정적 계기를 반 총장이 마련했다면서 "그는 미국 대통령, 중국 수상, EU나 G-77 미팅 방법의 결과에 연연하지 않고 세계 지도자들을 UN으로 데려와 기후변화 문제를 지구촌 톱 어젠다로 설정케 했다"고 강조한다.

또한 지구촌에서 가장 시급한 문제인 산모건강과 남녀평등 문제를 다루는 데 있어서 그는 국제사회에서 존경받아왔던 록스타이자 전 칠레 대통령 미첼 바첼레트를 임명함으로써 유엔 내 시니어 리더십 포지션을 떠맡는 여성들의 숫자를 40% 올려놓았다고 격찬한다. 또한 산모문제에 대해 반 총장은 자신의 파워를 이용하여 국제사회의 지원확약을 받아내 'Every Woman, Every Child(에브리 우먼 에브리 차일드)' 미팅을 통해 400억불의 후원금 약정을 기부국들로부터 받아냈다. 또, 본 자금의 수혜국인 아프가니스탄 같은 나라가 1인당 $10.92에서 $15를 공적으로 사용하고, 방글라데시는 조산보조원을 늘려 출산율을 배로 늘리겠다는 언약을 받아냈다는 것이다.

이런 찬사와 함께 여러 제약 속에서도 반 총장이 선택한 이슈들은 국제사회가 직면해 있는 가장 시급한 도전적인 문제들이었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가 유엔을 5년 더 이끌 자격이 있다고 결론을 내렸다.

이코노미스트지의 반기문 혹평에 대해 동지에 최근 기고한 스테판 두자릭 유엔 사무총장 대변인의 반박 글도 참고할 필요가 있다. 앞서 언급한 마크 레온 골드버그 기자의 호평과 비슷하다. 그의 평가는 대략 이렇다(관련기사: 반기문 측, '실패한 총장' 이코노미스트 혹평에 반론).

"독자들은 반 총장에 대한 제대로 된 평가를 알 필요가 있다"면서 "반 총장이 전 세계 인권 신장을 위해 노력했고, 결실을 이뤘다" "반 총장은 기후변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세계적 합의를 도출했을 뿐만 아니라 여성 인권 문제에도 앞장섰다" "여성을 고위직 임원으로 대거 등용하며 유엔의 유리천장을 없앴다" "유럽의 인종차별과 아프리카의 성적 소수자 박해, 이란의 대량학살 부인 등의 이슈에서 인권을 옹호했고, 유엔평화유지군의 조직을 강화해 유엔을 현대화하면서도 조직을 간소화하고 투명하게 재정을 지출하여 유엔을 효율적으로 운영했다" "그는 유엔이 원조한 전쟁 피해국인 한국에서 자란 사람으로서 진실 되게 말했고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전 세계 가장 고통 받는 사람들과 연결됐다."

시사저널의 김경민 기자의 보도도 흥미롭다(관련기사: 반기문 혹평한 이코노미스트를 직접 보니...).

"그는 예의 바르고 완강한 인물이었다. 새로운 개발 과제를 세우고 지난해 12월 파리 기후변화협약에 따른 감시자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고 있다. …(중략) 총평하자면 반 총장은 유엔이 지닌 내재적 한계를 온몸으로 보여줬다. 그는 최소한의 공통분모에 속하는 분쟁문제에만 개입했다. 그가 사무총장이 된 건 상임이사국인 미국 영국 중국 프랑스 러시아 중 누구도 반대할 만한 이유가 없는 인물이었기 때문이었다."

이코노미스트의 평가를 바탕으로 반 총장에 대한 평가를 조금 더 정확히 내리자면 '철저히 유엔이 가진 태생적 한계 속에서 원칙을 고수하며 일해 왔다' 정도일 것으로 정리할 수 있다. 반 총장의 방식은 전임이었던 코피 아난 전 총장의 업무 방식과 극명히 대조되는 것이었다.

반기문에 대한 이러한 긍정적인 평가에도 불구하고, 이코노미스트지만 유일하게 그를 폄훼하는 이유는 뭘까? 내가 갖고 있는 심증으로는 반기문은 이스라엘에게는 눈에 가시 같은 존재일 수 있다. 이스라엘의 가자지구에 대한 무자비한 공격을 두고 반기문이 격노한 바 있었다. 팔레스타인에 대한 비인도적인 처사라며 주위의 모든 협박(?)을 물리치고 이스라엘을 강력히 비난했던 것이다.

그의 그런 언행은 강단없는 지도자 같으면 어림도 없다. 민주당 대통령 후보 경선자 샌더스의 주장도 반기문의 주장을 뒷받침한다. 샌더스에 대한 젊은층 유권자들이 열광하는 하나의 이유이기도 하다. 이스라엘에 심정적 애정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이코노미스트지가 반기문의 영웅적 인도적 발언을 드러내 놓고 호평할 수는 없었을 거다.

국내 언론과 논객들의 주장은 이코노미스트지의 혹평을 여과 없이 전했다. 특히 언론사마다 내보낸 사설과 칼럼은 자기 진영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야권은 대체로 반(反)반기문 대통령이다. 조국 교수가 야권 진영의 시각을 대표적으로 드러냈다.

추측·예단보다는 반기문의 실적과 리더십 살펴봐야

▲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5월 25일 오후 제주공항을 통해 입국하고 있다. 지난해 5월 이후 약 1년 만에 방한한 반 총장은 이날 제주포럼 환영 만찬에 참석할 예정이다. ⓒ 사진공동취재단


여론조사에서 반 총장이 높은 인기를 얻고 있는 것에 대해 "여론조사상 인기는 허망한 숫자일 뿐"이라면서 "한국 외교사의 쾌거의 산물이었던 유엔 사무총장이라는 자리를 국내용 최고관운을 위한 발판으로 삼지 말길 바란다"고 주문한다. 민주주의자로 알려진 조 교수 주장은 자가당착이다. 민주주의에서 유권자들의 선택보다 더 중요한 게 뭔가. 반 총장이 사무총장 자리를 대통령되려는 발판으로 삼는다는 추론은 남이 하면 불륜이고 자기가 하면 사랑이라는 논리와 다를 바 없다.

<경향신문>의 이대근 논설주간은 정치지도자와 관료를 비교하면서 "그에겐 비전과 리더십이 없다"고 단언한다. 비전은 반 총장이 아직 꺼내지도 않았다. 그의 리더십은 우리가 국내에서 경험한 바도 없다. "반기문 문제는 반기문의 문제이기 전에 시민의 문제다. 공동체를 누가 대표하고 이끌지 시민이 숙의하는 가의 문제다"라는 그의 주장대로 반기문도 시민들이 판단하도록 하면 된다. 기자는 추측과 예단보다는 반기문의 실적과 리더십의 공과를 사실대로 밝히고, 그에 입각해 주장을 펴야 한다.

<한겨레> 이용훈 미국 특파원은 반기문이 "퇴임후 공직에 대한 미련을 버리고 기후변화 대응의 시급성을 설파하고, 한국과 세계의 다양성 수용도를 높이는 데 기여한다면 '실적 없다'는 비난의 화살은 무디어질 것"이라고 말하면서 "하지만 대선후보로 출마해 총장 시절 발언들을 보수적 지지층의 입맛에 맞게 '기름 바른 장어'처럼 물타기 한다면, 철학 없이 사무총장직을 수행한 반 총장 개인뿐 아니라, 한국 사회의 문화수준까지 도마 위에 오를 것"라고 단언한다. 이토록 자의적이고 일방적인 예단이 있을까. 그에게는 언론인으로서 지녀야 할 최소한의 균형감각 마저 없어 보인다.

그 밖의 논객들의 주장은 대부분 외교관과 정치가는 다르다며, 반기문 같은 외교관은 대통령의 자격에는 미달된다는 것이다. 일견 그럴듯한 주장이다. 하지만 캐나다 국민의 존경을 받았던 피어슨 전 캐나다 총리는 유엔 사무총장 출신이다. 그는 외교관 경험을 바탕으로 국제정세의 흐름을 파악, 존슨 대통령과 각을 세우면서까지 월남전 파병에 반대, 나라를 전쟁 속에 휩싸이는 것을 막았다. 토론토 국제공항을 피어슨 국제공항으로 바꿀 정도로 그는 정치적 리더십을 훌륭하게 발휘한 외교관이었다.

나는 한국에도 캐나다의 피어슨 총리와 같은 국제외교의 경험과 노하우를 쌓은 지도가 필요할 때라고 생각한다. 이제 어떤 국내문제도 세계적인 시각에서 생각하는 지도자가 요구되는 글로벌 시대다. 우리는 경제화, 민주화에 이어 세계화를 추진해야 할 문턱에 서 있다. 글로벌 코리아에서 어려운 현실을 풀어가야 한다. 청년실업, 경제성장 등의 문제는 더더욱 세계시장에서 해법을 찾을 수밖에 없다.

남북통일의 문제도 결국은 글로벌 차원의 정치력으로 실마리를 풀어가야 한다. 크게 보아 오늘의 시대정신이다. 현실적으로 반기문만한 세계적 경험, 인맥과 안목을 갖춘 지도자가 있나? 우리가 오대양 속에서 키운 고래를 용도폐기 하는 것은 너무도 애석한 일이 아닐까?

반기문이 복잡한 국내 문제해결사로는 전혀 아니라는 비판이 주를 이룬다. 일면 그렇게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요즈음 이원집정부제 같은 개헌 문제까지 들고 나오는 정치판을 보면, 현 대통령 중심제가 국방·외교 문제와 그밖에 국내문제를 한꺼번에 해결하기에는 버거운 제도임을 국내정치권 스스로가 보여주고 있는 셈이다. 이원집정부제는 개헌을 안 하고도 현 대통령제의 운영의 묘를 살리면 가능하다고 본다. 반기문 대통령이 국방·외교를 맡고, 국내문제를 가장 잘 해결할 적임자가 국무총리를 맡는 방식도 생각해 볼 수 있다.

새누리당 내 친박세력이 반기문을 업고 재집권을 꿈꾼다고 야권이 비판한다. 정권교체를 열망하는 세력들에게는 엄청난 도전이 될 수 있다. 하지만 누가 그를 업느냐는 큰 이슈가 아니다. 그가 나라를 위해서 큰일을 할 수 있다면 함께 밀어주는 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친박 세력만으로 반기문 대통령 만들기는 어려울지 모른다. 그렇다면 호남을 대표하고 있는 국민의당과 영남을 대표하는 친박, 그리고 충청 대망론 세력이 힘을 합하는 방법도 있을 것이다. DJP 정권의 완결판이면서, 영호남의 화해를 한꺼번에 이루는 1석3조의 국가적 쾌거일 수 있기 때문이다.

최근 반기문의 한국 방문은, 조국의 미래에 대한 자신의 역할을 전제로 국민들의 생각을 알아보는 차원에서 애드벌룬을 띄워본 것 같다. 나랏일을 좀 더 큰 차원에서 멀리 생각해 보면, 나라를 위해 애를 쓰는 모든 정치가들이 소중하다. 나라의 자산이다. 우리는 그 자산의 풀을 더 크게 늘려가야 한다.

이를 위해 언론과 시민사회의 올바른 판단과 지원이 그 무엇보다 필요하다. 반기문의 애드벌룬을 반기문 한 개인의 야망과 당리당략 차원에서 벗어나 보았으면 좋겠다. 대한민국과 우리 민족이 지구촌 속에서 존경받는 위대한 민족으로서 꿈을 펼쳐가는 데 있어서 반기문의 경륜과 지혜가 필요하다면, 그런 차원에서 생각해 보자는 것이다.
덧붙이는 글 글쓴이는 재미 자유기고가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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