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이 이슬과 꽃을 노래할 때
[시를 읽는 시선] 마종기 시인의 열한 번째 시집 <마흔두 개의 초록>
시집이다. 겁내지 말자. 술술 읽히는 시집이다. 책 날개에 적힌 "노년에 이른 마종기의 시는 우리 시의 희망을 심는 싹으로서의 청년시다"라는 말이 딱 맞는 시집이다. 1966년, 스물여덟에 한국을 떠나 2002년까지 미국에서 의사 생활을 하면서 10권의 시집을 낸 시인의 열한 번째 시집에는 고국에 대한 그리움과 외로움, 새로운 희망이 숨쉬고 있다.
시인의 힘겨웠던 삶은 그의 시 곳곳에서 드러난다. 시인은 '가끔은 어디 어느 방향인지도 잊은 채(「저녁 올레길」)'앞으로 향하기도 했고, '어두운 남의 나라에 와서/ 나는 이렇게 허술하게 살고(「이슬의 하루」)'있기도 하다.
미국에서 의사로 평생을 살았는데 무엇이 그렇게 힘들었냐고 반문할 수도 있을 것이다. 시인의 프로필을 봤을 때 나도 타향살이의 어려움에 대한 의문을 제기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의 시를 읽으면서 그는 의사로 일생을 보낸 것이 아니라, 의사라는 직업을 가진 시인으로 살아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가 느꼈을 어떤 그리움에 대해 공감하게 되었다.
시인이 고국을 그리워하면서도 한국을 떠난 이유는「국적 회복」에 잘 나타나 있다. '동기 군의관들이 힘들게 면회 와서/ 감방에서 나보다 먼저 울었다'라는 대목에서 보면 짐작할 수 있듯이, 그가 군의관 시절 어떤 사건에 연루되어 고초를 겪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어서 '계속 억울하고 서러웠다'라고 말하는 시인의 언어는 그 어떤 메타포로도 표현이 안 될 정도의 직설적인 날것의 감정이었다.
이 시들을 읽으며, 작년에 읽었던 장강명 작가의 소설 <한국이 싫어서>가 오버랩 되었다. '한국이 싫어서' 호주행을 택하는 소설의 주인공인 계나가 이 시집을 만났더라면 위로가 되었을까.
미워했던 고국을 떠나 타향살이를 하면서도 그는 계속해서 한국을 그리워했다. 하지만 그가 시에서 '이슬'을, '꽃'을 노래하는 것은 그가 그리움뿐만 아니라 희망을 품고 살았다는 것을 말해 준다. 시인은 '당당히 걸어서 사람의 마음속까지 들어갈 수 있는 것이 바로 희망(「희망에 대하여」)'이라며 여전히 희망을 노래하는데, 그가 품고 있는 희망은 '그래, 나는 부끄럽게도 모르는 게 너무(「저녁 올레길」)' 많다는 고백과, '빈 종이를 더 이상 두려워하지 않겠다(「서 있는 종이」)'는 다짐과 '내가 가진 작은 희망들 때문에 나는 누구라도 용서할 힘이 생겼다(「희망에 대하여」)'고 말하는 솔직한 고백으로 인해 더 힘을 갖게 된다.
시집 한 권을 읽고 시인의 삶이 어땠을 거라 짐작하는 게 가당치는 않은 일이지만, 마종기 시인의 열한 번째 시집은 나에게 큰 울림을 주었다. 이는 그가 자신의 외로움에 대해서만이 아니라 희망에 대해서도 노래했기 때문이다.
잘못 쓰면 촌스럽거나 어색할 법도 한 다짐과 어떤 정의에 대한 언어들이 그의 삶에 투영되어 나타났기 때문인 것 같다. 나도 계속해서 시를 읽고, 의미있는 삶을 이어나가려면 시인들처럼 삶에 대한 고민을 계속 해야만 할 거라는 생각이 든다. '마음먹고 떠난 여행자는 자주 뒤돌아보지 않는다(「어머니, 자유, 9월의 긴 여행,」)'는 시인의 말을 꼭 기억해야겠다.
이번 서평의 제목은 김주연 문학평론가의 '이슬과 꽃, 그리고 시인'이라는 제목의 해설에서 따 왔다. 시집의 해설을 읽을 때마다 시를 읽을 때 느꼈던 놀라움을 느끼곤 하는데, 이번 시집의 해설도 역시 그랬다. 게다가 이번 시집의 해설은 마종기 시인의 시 해설에 대한 '끝판왕'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였다. 시인이 1960년부터 지금까지 출간한 시집을 모두 훑고 있기 때문이다.
글을 읽을 때 같은 글이라도 매번 새로운 느낌을 주거나 새로운 감정을 느끼게 하는 글을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이번 시집도 해설을 포함해서 세 번 정도 읽었는데 읽을 때마다 나에게 새로운 감정과 깨달음과 다짐 비슷한 것들을 주었기 때문에 좋은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혹시 이 글을 읽는 분 중에서 시집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어본 적이 없다면 꼭 한 번 시도해 보길 바란다. 왜냐면 이것이 바로 제자리에 가만히 앉아서 새로움을 느낄 수 있는 가장 쉬운 방법일 테니.
▲ "노년에 이른 마종기의 시는 우리 시의 희망을 심는 싹으로서의 청년시다." ⓒ 문학과지성사
시인의 힘겨웠던 삶은 그의 시 곳곳에서 드러난다. 시인은 '가끔은 어디 어느 방향인지도 잊은 채(「저녁 올레길」)'앞으로 향하기도 했고, '어두운 남의 나라에 와서/ 나는 이렇게 허술하게 살고(「이슬의 하루」)'있기도 하다.
미국에서 의사로 평생을 살았는데 무엇이 그렇게 힘들었냐고 반문할 수도 있을 것이다. 시인의 프로필을 봤을 때 나도 타향살이의 어려움에 대한 의문을 제기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의 시를 읽으면서 그는 의사로 일생을 보낸 것이 아니라, 의사라는 직업을 가진 시인으로 살아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가 느꼈을 어떤 그리움에 대해 공감하게 되었다.
시인이 고국을 그리워하면서도 한국을 떠난 이유는「국적 회복」에 잘 나타나 있다. '동기 군의관들이 힘들게 면회 와서/ 감방에서 나보다 먼저 울었다'라는 대목에서 보면 짐작할 수 있듯이, 그가 군의관 시절 어떤 사건에 연루되어 고초를 겪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어서 '계속 억울하고 서러웠다'라고 말하는 시인의 언어는 그 어떤 메타포로도 표현이 안 될 정도의 직설적인 날것의 감정이었다.
이 시들을 읽으며, 작년에 읽었던 장강명 작가의 소설 <한국이 싫어서>가 오버랩 되었다. '한국이 싫어서' 호주행을 택하는 소설의 주인공인 계나가 이 시집을 만났더라면 위로가 되었을까.
미워했던 고국을 떠나 타향살이를 하면서도 그는 계속해서 한국을 그리워했다. 하지만 그가 시에서 '이슬'을, '꽃'을 노래하는 것은 그가 그리움뿐만 아니라 희망을 품고 살았다는 것을 말해 준다. 시인은 '당당히 걸어서 사람의 마음속까지 들어갈 수 있는 것이 바로 희망(「희망에 대하여」)'이라며 여전히 희망을 노래하는데, 그가 품고 있는 희망은 '그래, 나는 부끄럽게도 모르는 게 너무(「저녁 올레길」)' 많다는 고백과, '빈 종이를 더 이상 두려워하지 않겠다(「서 있는 종이」)'는 다짐과 '내가 가진 작은 희망들 때문에 나는 누구라도 용서할 힘이 생겼다(「희망에 대하여」)'고 말하는 솔직한 고백으로 인해 더 힘을 갖게 된다.
시집 한 권을 읽고 시인의 삶이 어땠을 거라 짐작하는 게 가당치는 않은 일이지만, 마종기 시인의 열한 번째 시집은 나에게 큰 울림을 주었다. 이는 그가 자신의 외로움에 대해서만이 아니라 희망에 대해서도 노래했기 때문이다.
잘못 쓰면 촌스럽거나 어색할 법도 한 다짐과 어떤 정의에 대한 언어들이 그의 삶에 투영되어 나타났기 때문인 것 같다. 나도 계속해서 시를 읽고, 의미있는 삶을 이어나가려면 시인들처럼 삶에 대한 고민을 계속 해야만 할 거라는 생각이 든다. '마음먹고 떠난 여행자는 자주 뒤돌아보지 않는다(「어머니, 자유, 9월의 긴 여행,」)'는 시인의 말을 꼭 기억해야겠다.
이번 서평의 제목은 김주연 문학평론가의 '이슬과 꽃, 그리고 시인'이라는 제목의 해설에서 따 왔다. 시집의 해설을 읽을 때마다 시를 읽을 때 느꼈던 놀라움을 느끼곤 하는데, 이번 시집의 해설도 역시 그랬다. 게다가 이번 시집의 해설은 마종기 시인의 시 해설에 대한 '끝판왕'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였다. 시인이 1960년부터 지금까지 출간한 시집을 모두 훑고 있기 때문이다.
글을 읽을 때 같은 글이라도 매번 새로운 느낌을 주거나 새로운 감정을 느끼게 하는 글을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이번 시집도 해설을 포함해서 세 번 정도 읽었는데 읽을 때마다 나에게 새로운 감정과 깨달음과 다짐 비슷한 것들을 주었기 때문에 좋은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혹시 이 글을 읽는 분 중에서 시집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어본 적이 없다면 꼭 한 번 시도해 보길 바란다. 왜냐면 이것이 바로 제자리에 가만히 앉아서 새로움을 느낄 수 있는 가장 쉬운 방법일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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