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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대 아재의 짓궂은 질문, 아이 대답이 '사이다'

요새 유행하고 있는 '사이다'라는 말, 이런 거였군요

등록|2016.06.10 10:43 수정|2016.06.10 10:43
제가 초등학교 다닐 때 소풍 가방에 김밥과 함께 싸갔던 것이 있었습니다. 사이다였습니다. 소풍 때나 먹을 수 있었던 맛있는 김밥을 허겁지겁 먹다가 목이 메면 사이다로 해결할 수 있었습니다. 그 당시 초등학교 소풍 때 마셨던 사이다는 그렇게 시원하지는 않았습니다. 몇 시간 동안 가방 속에 들어있던 사이다는 그저 미지근한 탄산 함유 설탕물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요즘 '사이다'라는 말이 유행인가 봅니다. 인터넷을 검색하다 보면 '사이다 연기' '사이다 발언' 등등. 아무튼 시원하다 혹은 답답한 속을 확 뚫어준다는 의미로 사용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지난 주말에 아는 선배의 집을 방문했을 때의 일입니다. 날씨도 화창하니 오랜만에 얼굴도 보고 겸사겸사 한잔 하자는 선배의 초청에 그동안 무심했던 저와 또 다른 후배는 만사 작파하고 선배의 집을 찾았습니다. 선배는 서울에서 두 시간 정도의 거리에 있는 곳(어디인가는 중요하지 않으니, 경기도 용문쯤으로 하겠습니다)에 내려가 글을 짓고 텃밭도 가꾸면서 삽니다. 서울을 떠나 그곳에 정착한 지 벌써 10여 년이 됐습니다.

"엄마가 좋아, 아빠가 좋아"라는 질문... 성준이의 답변은

▲ 50대 후반 남성의 질문.. 우리는 모두 당황했다. ⓒ pixabay


용문역에 내려 하루 네 번밖에 다니지 않는 시골버스를 타고 30분 정도 지나면 마을이 있고, 그 마을에서 산길로 10분 정도 걸어 올라가면 그 선배의 집이 보입니다. 걸어 올라가는 길의 왼쪽에는 작은 개울이 있습니다. 5월 말, 오후 두 시의 햇볕은 생각보다 뜨거웠습니다. 개울 중간 중간에 벌써 개울물에 발을 담그고 있는 행락객들이 드문드문 보였습니다.

한 손에 삼겹살 담은 봉지를 든 저와 과일 봉지를 든 또 다른 후배 역시 연신 땀을 닦으며 산길을 올랐습니다. 또 다른 후배가 제게 물었습니다.

"성준이가 올해 열일곱 살이 된 거지?"
"그런가? 고등학교 2학년이면 열일곱인가?"


성준이는 선배의 외동아들입니다(이름이 무언지 중요하지 않으니 그냥 성준이로 했습니다). 성준이는 다운증후군을 가지고 태어났습니다. 선배가 서울을 떠나 이곳에 자리 잡은 이유 중 하나는 성준이 때문이기도 했습니다.

선배의 집에 거의 다다를 무렵, 마당 근처 길가에 혼자 쪼그리고 앉아 꽃을 만지고 있는 성준이가 보였습니다. 온통 꽃에 정신이 팔렸는지 저와 또 다른 후배가 제법 가까이 왔는데도 인기척도 느끼지 못했습니다. 어떻게 놀라게 할까 하고 저와 또 다른 후배는 성준이 뒤로 살금살금 다가갔습니다. 그리고 잠시 동안 성준이 뒤에 서서 지켜봤습니다.

성준이는 혼자 열심히 중얼중얼 하고 있었습니다. 꽃잎을 손끝으로 톡톡 건드리며 무언가 들꽃에게 조심스럽게 말하고 있는 것도 같았습니다. 저와 또 다른 후배는 놀라게 해줄 생각도 잊어버리고 성준이를 내려다보며 그냥 배시시 웃고만 있었습니다.

그런데 언제 어디서 나타났을까요. 선글라스를 낀, 50대 후반쯤 되는 아저씨가 저희 쪽으로 걸어왔습니다. 이 근처 개울가에 놀러 온 사람 같았습니다. 요즘 말로, 빙구 같이 웃고 있는 저희 얼굴을 쓱 훑어보던 50대 후반이 느닷없이 성준이에게 말을 걸었습니다.

"야 임마, 넌 엄마가 좋아 아빠가 좋아?"

그리고 50대 후반은 저와 또 다른 얼굴을 보며 씩 웃었습니다. 그 표정을 보니 선글라스 속의 한쪽 눈이 우리를 보고 찡긋하는 것 같았습니다. 저와 또 다른 후배는 너무나 황당한 상황에 어쩔 줄 몰라 했습니다.

그때였습니다. 성준이가 선글라스를 향해 고개를 돌리더니 환한 표정으로 이렇게 말했습니다.

"난 엄마가 좋아, 너는?"

50대 후반 남성은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습니다. 성준이가 다시 물었습니다.

"아이 참, 너는 누가 좋으냐고...?"

사이다, 이런 의미였군요

▲ 아! 시원하다! ⓒ pixabay


50대 후반 남성을 바라보는 성준이는 천진난만 그 자체였습니다. 왠지 두 눈망울이 더없이 초롱초롱하게 보일 정도였으니까요. 그 남성은 쉽게 말을 잇지 못했습니다. 몹시 당황한 그는 저와 또 다른 후배의 얼굴을 번갈아 쳐다보더니 엇험! 하고 헛기침을 하고는 산길을 내려갔습니다. 성준이를 데리고 집으로 갔습니다. 반갑게 맞아주며 선배가 물었습니다.

"덥지? 뭐 시원한 거 줄까?"

또 다른 후배가 기다렸다는 듯이 대답했습니다.

"사이다!"

사이다... 요즘 유행하고 있는 '사이다'라는 말의 느낌을 알 것 같았습니다. 그제서야 저는 사이다가 초등학교 시절 소풍 때 마시던 뜨뜻미지근한 설탕물이 아니라 더없이 시원한 청량음료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를 쓴 최낙영 씨는 인권연대 운영위원으로 현재 도서출판 밭 주간으로 재직 중입니다. 이 기사는 인권연대 주간 웹진 <사람소리>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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