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보릿고개 세대, 보리밭은 그리움의 대상
적돌문학회 주최 백일장대회, 올해 주제는 4월과 5월
▲ ‘2충1효전국백일장대회’ 참가자들 5월 20일 오후 태안군체육관에서 열린 제7회 2충1효 전국백일장대회에 참가한 청소년들이 개막식 행사에 임하고 있다. ⓒ 지요하
충남 태안에 <적돌문학회>라는 문학단체가 있다. 전국에는 수많은 문학단체가 있는데, 대부분의 지역 문학단체들이 고장 지명이나 대표적 명물을 단체 이름, 또는 작품집 제호로 사용하고 있다. 적돌문학회도 그런 범주에 속한다.
충남 서산과 태안 사이에 가로놓여 있는 천수만 B지구 안에는 '적돌(積乭)'이라는 강이 있다. 천수만이 바다였을 때부터 존재했던 강이다. 바다 가운데를 가르는 큰 고랑인데다가 육지에서 밀물이 흘러 들어가는 고랑이기에 옛사람들은 그 갯고랑을 강이라고 불렀던 것 같다. '적돌'이라는 이름의 유래는 분명치 않다.
지금은 육지가 된 천수만 B지구 골프장 옆을 흘러서 부남호로 들어가는데, 골프장으로 변한 천수만 안에 지금도 적돌강이 남아 있으니, 그게 다행이라면 다행이다.
그 적돌강의 이름 적돌을 단체 이름으로 사용하고 있는 적돌문학회는 매우 특이한 문학단체다. 2009년부터 7년의 연륜을 쌓고 있는데, 아직 회원들 작품집이 없다. 회원들 작품을 모아 책을 내는 문학단체가 아니기 때문이다.
적돌문학회는 해마다 백일장대회를 열고 입상작들을 모아 책으로 펴내는 일을 한다. 백일장대회 입상 작품집이 적돌문학회의 존재를 알리는 책인데, 올해 제7집을 만들고 있다.
적돌문학회가 해마다 실시하는 백일장 명칭은 '2충1효전국백일장대회'다 '2충1효'란 충남 서산과 태안에 많이 살고 있는 소주가씨(蘇州賈氏) 문중의 중시조인 가유약(賈維鑰) 공과 아들 가상(賈祥)의 나라에 대한 충성과 손자 가침의 조부모에 대한 효성을 이르는 말이다.
가유약 공은 중국 명나라의 고관이었으나 1952년 조선에 임진왜란이 발생하자 명나라 관리였던 아들과 함께 조선을 구원코자 출정했다. 그는 1598년 9월 조명(朝明) 연합군의 장수로 아들 가상과 함께 왜군을 무찌르는 일에 혁혁한 공을 세우고 전사했다.
그리고 16세의 어린 손자 가침은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산소를 지키기 위하여 본국으로 가지 않고 한평생 일본 쪽으로는 앉지도 않고 보지도 않으며 조선 땅에서 살았다.
가유약 장군 3대의 충효를 기리는 사당이 충남 태안군 남면 당암리에 있다. 천수만이 한눈에 바라보이는 곳이다. 이곳 일대에는 소주 가씨 문중들이 많이 살면서 2충1효 사당을 잘 보존 관리하고 있다.
그러니까 적돌문학회는 2충1효 사당에서 한눈에 보이는 천수만 적돌강의 존재를 되살려내면서 아울러 '2충1효'도 세상에 널리 알리고 있는 셈인데, 적돌문학회의 회장은 소주 가씨 문중의 일원이며 언론인인 가금현(51)씨다.
▲ 교육장 축사정용주 태안군교육장이 제7회 ‘2충1효전국백일장대회’ 개막식에서 축사를 하고 있다. ⓒ 지요하
적돌문학회가 2009년부터 실시하고 있는 '2충1효전국백일장대회'는 2013년 제5회 대회까지는 태안군 남면 당암리의 2충1효 사당에서 열렸다. 참가자들이 많다 보니 자연 비좁은 자리가 불편해졌다. 또 먼 곳에서 관광버스를 대절하여 오는 참가자들도 있는데, 시골구석까지 찾아오는 일이 되우 불편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2014년 제6회 대회는 태안읍 동문리 청소년회관의 넓은 마당에서 열었다. 그러다가 태안군에서 제대로 지원을 하지 않아 2015년에는 실시하지 못했다. 그리고 올해 제7회 대회는 지난 5월 20일 태안읍 동문리 군민체육관 안에서 실시했다. 참가자들은 체육관의 마룻바닥에 앉거나 엎드려서 원고지에 육필로 글을 썼다.
2충1효 백일장대회는 전국적으로 유명한 행사가 됐다. 전국 각지에서 수백 명씩 참가한다. 도합 다섯 개의 교육감상이 걸려 있는데다가 상금도 많기 때문이다. 종합장원과 초등부 장원, 중등부 장원, 고등부 장원, 우수 지도교사에게는 교육감상이 수여된다.
자연 비용이 많이 들 수밖에 없다. 행사비용과 상금 뿐만 아니라 입상작들을 모아 책을 만들고 배포까지 하자니 적돌문학회와 소주 가씨 문중이 출혈을 하는 형편이다. 관계자들의 공력과 노고도 여간이 아니다.
전국적으로 널리 알려진 의미 있는 행사인데도 태안군에서는 지원에 인색하다. 2014년 제6회 대회 때는 오후에 같은 장소에서 '청소년 축제'가 열렸는데, 태안군은 일회성 소모 행사에는 기천만원을 지원하면서 청소년들의 마음을 키우는 문예 백일장 행사는 외면을 하고 말았다.
나는 제1회 대회 때부터 심사위원장으로 수고를 하고 있다. 매번 꼼꼼히 심사를 하고, 비교적 세밀하게 심사평을 쓰곤 한다. 내가 쓰는 심사평이 참가자들을 확대시키는 쪽으로 기여한다는 말도 듣고 있다.
올해는 서울과 인천, 천안, 빛고을 광주에서도 다수가 참가하여 초등부 115편, 중등부 77편, 고등부 101편, 일반부 10편, 사행시 부문 15편, 도합 318편이 접수되었다.
주제는 행사 당일에 펼침 막을 통해 제시되는데, 올해 초등부 주제는 '4월에 생각나는 것들', 중등부 주제는 '5월에 생각나는 것들', 고등부 주제는 '우리나라와 4월의 관계', 일반부 주제는 '우리나라와 5월의 관계'였고, 사행시 부문에는 '민주주의'가 제시되었다.
▲ 글짓기에 열중하고 있는 청소년들글짓기에 열중하고 있는 청소년들 / 5월 20일 오후 태안군체육관에서 열린 제7회 ‘2충1효전국백일장대회’에 참가한 청소년들이 체육관 마룻바닥에 앉거나 엎드려서 열심히 글을 짓고 있다. ⓒ 지요하 ⓒ 지요하
나는 이틀 동안 318편의 육필 원고들을 꼼꼼히 다 읽었다. 그리고 하루 동안 심사평 작업을 했다. 원고들을 읽으면서 청소년들의 4월과 5월에 대한 다양한 시각들을 접할 수 있었다.
2014년 4월 16일의 비극을 말하는 글들이 단연 많았고, 5․18광주민주화운동에 관한 얘기들도 많았다. 많지는 않았지만 '제주 4․3사건'에 대한 글들도 내용이 충실했다.
5월과 관련하여 '보릿고개'에 대한 언급은 없을까 기대를 가졌는데, 보릿고개를 언급한 글은 중등부의 단 두 편이었다.
나는 행사 당일 심사위원장으로서 참가자들에게 주제에 대한 설명을 하면서 보릿고개에 대한 얘기도 했다. 신록의 계절이며 가장 살기 좋은 계절인 5월이 옛날에는 가장 살기 힘든 '보릿고개'였다며 보릿고개에 대한 설명을 곁들였다.
그런데도 보릿고개에 대한 글이 거의 없는 것을 보니, 보릿고개란 말이 거의 들어보지 못한 생소한 말인 데다가 전혀 경험이 없어 그 말에서 어떤 '실감'을 얻지 못하는 탓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요즘 청소년들의 부모 세대들도 보릿고개를 모르기는 마찬가지일 터였다.
나는 보릿고개 경험 세대에 속한다. 청소년 시절에는 쌀밥보다 꽁보리밥을 더 많이 먹고 살았다. 흰 쌀밥은 명절 때와 큰댁 제사 때나 먹을 수 있었다. 1950년대 초등학생 시절에는 동네 리사무소에 가서 안남미를 배급 받기도 했고, 학교에서 주는 밀가루와 우유가루를 타다 먹기도 했다. 그리고 보릿고개라는 말을 자주 들었다.
그래서 지금도 오후에 걷기운동을 하다가 보리밭을 보면 절로 옛날 생각이 나곤 한다. 보리밭은 내게 그리움의 대상이다. 요즘은 농촌에서도 보리밭이 흔치 않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공연한 그리움 때문에 보리밭을 찾아 걷기운동을 하는 날도 있다.
오늘도 돌연 보리밭이 그립다. 보리밭이 있는 곳으로 걷기운동을 나갈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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