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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예퇴직하는 선배... 보내는 사람은 슬프단다

[언젠가 너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 2편] 미래 위해 준비하는 삶

등록|2016.06.13 14:41 수정|2016.06.13 15:35

여의도의 마천루여의도의 수많은 건물에서 떠나간 사람들을 생각하며 여의도공원에서 ⓒ 허영진


유럽계에서 중국계로, 주주가 바뀌는 회사

오늘은 매우 슬픈 날이었어, 아빠가 좋아하는 선배가 명예퇴직을 신청했다는 소식을 들었거든. 그게 무슨 말이냐 하면, 한마디로 회사를 그만두었다는 이야기야. H차장님이라는 분이셨는데, 아빠보다 4살 많은 이 선배를 아빠는 무척 좋아했단다. 키도 크고, 얼굴도 잘 생긴데다가, 의리도 있고, 능력도 있었지.

그리고 무엇보다 아빠를 늘 좋아해주고, 지지해주던 분이었어. 하지만, 이제 며칠 후면, 언제 다시 보게 될지, 그리고 살면서 몇 번이나 더 보게 될지 모르는 관계가 되겠지. 그렇게 좋아하는 사람이면 자주 만나면 될 것 아니냐고 왠지 네가 아빠에게 물어볼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구나.

하지만, 한 공간에서 마주칠 수 있는 상황이 지나고 나면, 생각처럼 사람을 자주 본다는 것이 쉽지 않단다. 아빠는 아직 네가 어린이집 다니던 시절을 기억해. 그때 친구들하고는 재미있게 지내기도 했고, 졸업하고서 엄마 아빠들까지 함께 모여서 만나기도 했지.

하지만, 그 만남의 수는 네가 아는 바와 같이 점점 줄어들었고, 그 결과 지금은 서로 만나지 않은 지 몇 년이 금세 지나 버렸잖니? 그걸 슬퍼할 필요는 없단다. 사람의 관계는 250명 이상을 유지하기가 어렵다고 하더구나. 슬프긴 하지만, 그렇게 이별을 하게 되면 또 다른 사람을 만나서 다시 좋은 관계를 만들어 갈 거라고 희망하는 것이 더 나을것 같아.

하지만, 그 슬픔을 오래 간직할 틈도 없이 아빠는 사람만이 아니라, 또 다른 이별을 해야 한단다. 아빠 회사가 유럽 회사에서 중국 회사로 바뀔 것 같아. 새로 회사를 옮기는 건 아니지만, 주주(주인)이 바뀌게 되거든.

선배와의 이별만큼은 아니더라도, 좀 낯선 것은 사실이야. 아빠는 유럽회사에 다니는 게 좋았단다. 회사 본사는 유럽이지만, 전세계에서 경영하고 있는 글로벌 회사라는 점이 좋았거든. 그리고 그것이 아빠에게 더 많은 기회를 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

그 기회를 잡기 위해서 아빠는 너희가 2살쯤 되었을 때부터 많은 노력을 했단다. 영어도 네가 아는 것처럼 제법 잘하게 되었고, 가끔 유럽이나 아시아 쪽에 출장도 가게 되었지. 가능하다면 싱가포르나 홍콩 같은 데서 근무하면서, 사랑하는 우리 딸에게도 또 다른 세상의 모습들을 보여주고 싶었는데…. 결과적으로 마음처럼 쉽게 되지가 않는구나. 

마흔 살이 되면서부터 아빠는 나름대로 생각을 정리한 것이 있단다. 세상은 개인의 노력도 중요하지만, 시대의 흐름이 어디로 가는지 파악하고, 그 물결을 타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것 말이야.

네가 커서 이 글을 볼 때 즈음이면 너무나 당연한 말일지도 모르지만, 글로 보는 것보다 그 사실을 마음으로, 현실로 깨닫는 것은 훨씬 어려운 일이지. 예를 들면, 중국이 국력이 강해질 거라는 것은 아빠가 대학에 들어가던 1990년대 중반에도 있었던 이야기란다.

20년 시간 흘러... 서구는 여전, 중국은 성장, 앞으로는?

당시 아빠 친구들 중에는 원하는 국내 대학에 떨어지고, 미래를 보며 중국으로 대학을 간다는 친구들도 몇 명 있었지. 대학교 중어중문학과의 합격 커트라인은 점점 높아지기 시작했었고 말이야.

20년이 흐르고 나니, 서구의 힘은 여전히 남아 있지만, 예전 같지는 않고, 중국은 그때의 예상처럼 성장을 하면서 바짝 우리 곁에 다가와 있구나. 아빠네 회사가 중국회사로 바뀌게 되면 그 회사에 다니게 될 아빠의 딸인 너희들 인생에도 그 영향력이 이미 미치게 된 거라고 해석할 수 있지 않겠니? 

사실, 역사를 보면, 늘 이런 일의 반복이란다. 임진왜란이 끝난 후 서서히 현재의 중국의 동북삼성 지역에 해당하는 만주 일대에서 여진족이 세력을 확장하기 시작하지. 그 힘은 점점 커지고 있었고, 아마, 정묘호란, 병자호란이 일어나기 십여년 전부터 백성들 사이에서 요즘 북방 오랑캐의 힘이 더 커지고 있다며 하는 소문 이야기를 하지 않았을까?

그렇다면, 그들의 팽창은 여진과 국경을 접하고 있는 평안도 사람들, 그리고 그들이 수도인 한양을 공격하기 위해 거쳐야 하는 황해도와 경기도 지방까지 위협을 하게 될 거라는 생각까지 했을까?

아마, 설마 설마 하면서, 평안도 일대의 사람들은 눌러 살았을 거고, 전쟁은 우리가 아는 역사와 같이 일어나고 말았지. 그리고 역사의 길목에 있던 이름 모를 사람들은 죽음을 당하거나, 삶의 기반을 잃고 고난의 삶을 살아야 했겠지.

그 때나 지금이나 정보가 있는 사람들, 아니 정확하게는 정보가 있고, 결단을 내릴 줄 아는 사람들은 스스로의 삶을 더 나은 방향으로 이끌어 갔을지도 몰라. 아빠의 아빠, 그러니까 너의 할아버지께서는 아빠에게 기회가 된다면 늘 영어 외에 한 개의 언어를 더 배워두라고 권유하시곤 하셨단다.

아빠는 좋은 말씀이라고 생각했지만, 배우기 위해 노력하고 실천할 시간을 가지지 않았어. 그리고 시점이 바뀌고, 현실이 다가오니 이제야 그 말씀을 다시 생각하게 되네. 항상 아이는 부모의 바람대로 되지 않는 건가 봐.

그런 면에서 아빠도 너에게 권유는 하지만, 강요는 하지 않을게. 네 삶은 결국 네가 책임지고 감당하면서 살아가야 하는 거니까. 하지만, 분명한 건 아빠가 스무 살 때 이미 커질 것이 예측되었던 중국의 성장이 20년이 지나 현실로 눈 앞에 다가온 것처럼, 또 다른 변화의 물결도 네 앞에 보이는 순간이 있을 것 같아.

그때, 아빠도 네게 미래를 보고 무언가를 준비하라고 권유할지도 몰라. 그리고 너도 나처럼 너무 먼 미래의 이야기라며, 다른 무언가에 시간을 보내며 너의 순간들을 살아갈 거 같긴 하다. 그런 게 평범한 사람들의 삶이니까.

어쨌든 아빠는 좋게 생각하기로 했어. 그러면서 중국어 공부도 시작했단다. 시간은 걸리겠지만, 삶이 길다는 점에서 지금도 늦지 않았다고 생각해. 잘하는 모든 것은 투입하는 시간과 비례한단다. 네가 좋아하는 춤을 잘 추는 것이 연습한 시간과 비례하는 것과 같은 맥락이지. 시간을 내기가 쉽지 않지만, 열심히 해볼 거야.

아빠는 그 선배와 다시 만나기를 소망한다

삼각주 전시모형대영박물관의 삼각주 전시모형 물줄기가 갈라지고 합쳐지며 바다로 나아가는 모습을 표현 ⓒ 허영진


런던의 자연사박물관에 가면 전시물 중에 삼각주가 형성되는 과정을 표현해놓은 실험물이 있어. 물이 모래 위에 줄기를 만들며 내려가도록 구성되어 있지. 물은 한 점에서 흘러 내리지만, 최초에는 평평한 모래였을 곳에 물길을 만들며 합쳐지기도 하고, 갈라지기도 하면서 거대한 바다로 나가는 것이 보인단다.

그걸 보면서 '사람의 삶도 마찬가지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어. 태어나서 흐르는 물처럼 동네, 학교 같은 공간들 속에서 다른 물길(사람들)고 합쳐지고, 또다시 졸업, 이사 등으로 갈라지지.

그리고 그 갈라진 사람들은 어느 시점에서 다시 만나게 되기도 하고, 영영 다른 물길로 흘러가서 바다로 합쳐져서야 만나게 되지. 그리고 언젠가는 더 큰 강 물줄기에 합쳐질 것을 알지만, 지금은 자신의 길을 따로 따로 흐르는 물줄기들의 모습은 사람들의 오늘을 사는 모습같이 느껴졌어.

아빠는 그 선배와 언젠가 또 다른 물길에서 합쳐지기를 소망하지만, 흐르고 있는 물이 앞의 길을 볼 수 없듯이 바람처럼 될 지는 잘 모르겠구나. 지금은 슬프지만, 또 내일은 아빠의 길을 따라 가야겠지. 지금은 아빠와 함께 흐르고 있는 너희의 삶도 언젠가는 또 다른 길을 찾아 아빠보다 더 길고, 멋진 흐름을 찾아가기를 소망한단다.

기왕이면, 더 큰 물줄기를 만났을 때, 상처받지 않을 수 있게, 아니면 더 큰 기회가 될 수 있게 준비도 할 수 있다면 더 좋겠지.

이렇게 네게 이야기를 하고 있으니, 헤어짐의 슬픔이 좀 가라앉는구나. 언젠가 네가 누군가를 보내는 게 아쉬울 때는 아빠의 글을 읽으면서 너의 생각도 한 번 적어 봤으면 한다.

그때, 아빠가 연락할 수 있는 곳에 있다면 보여주지 않을래? 우리 딸의 '사람을 보내는 마음'은 아빠랑 어떻게 다를지 많이 궁금하거든. 그럼, 나의 아이야, 아빠랑 같이 떠나는 그 선배의 앞날을 축복해주자. 언제나 건승하기를 소망하며….

삼각주 설명대영박물관의 삼각주 전시 모형의 설명도 ⓒ 허영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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