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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 부모님상 때 매번 오열하는 이유

생후 첫 돌 즈음 세상 떠난 어머니... 내겐 평생 트라우마

등록|2016.06.15 14:31 수정|2016.06.15 15:52

▲ 어머니, 엄마... 내겐 기억이 없다. ⓒ pexels


"그대는 오늘밤도 내게 올 순 없겠죠~ 목메어 애타게 불러도 대답 없는 그대여~ 못 다한 이야기는 눈물이 되겠지요~ 나만을 사랑했다는 말 바람결에 남았어요~."

가수 최진희가 히트시킨 '천상재회'라는 노래의 가사 초입이다.

얼마 전 절친한 친구가 모친상을 당했다. 상갓집에 갔는데 상주인 그 친구를 보는 순간 눈물이 장맛비처럼 쏟아졌다. 어찌나 오열했는지 그 친구마저 당혹해하는 분위기였으니 말 다했다. 이후 상을 치른 그 친구가 고맙다며 친구들을 불러 저녁을 샀다.

"그날 내가 푼수처럼 울어서 미안했다"라는 고백에 친구는 오히려 고마웠다며 술잔을 가득 채워주었다.

"아녀, 너처럼 마치 내 일인양 울어 주는 친구가 세상에 어디 있니? 그나저나 그날도 만취했던데 집엔 잘 갔니?"
"잘 갔으니 오늘도 자네를 이렇게 보는 것 아니겠나."

나는 상가(喪家)에 가면 곧잘 운다. 특히나 부모님을 여읜 친구의 경우라면 참을 수 없을 정도까지 감정 기복이 격하다. 아니 땐 굴뚝에선 연기가 나지 않듯 여기엔 다 까닭이 존재한다.

생후 첫 돌 즈음 생모를 잃었다. 따라서 어머니 얼굴을 전혀 기억할 수 없다. '무정한' 어머니는 사진 한 장조차 남기지 않고 떠나셨다. 그래서 홀아버지와 지독한 가난은 당연한 일이었으며 중학교 진학마저 사치로 치부됐다.

극빈(極貧)이 정점일 때 연탄마저 떨어져 냉방이 된 골방에선 문풍지 사이로 들어온 찬바람은 어머니에 대한 최소한의 모정(母情)마저 덩달아 날아가게 만들었다. 그처럼 가슴 시린 곡절이 있어 부모님을 여읜 친구와 지인을 보는 내 심정은 당연히 복잡다단(複雜多端)할 수밖엔 없는 노릇이다.

사람은 어떤 일이든 적응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너무도 일찍 여읜 어머니에 대한 감정은 평생 잊을 수 없는 일종의 트라우마로 작용한다.

초등학교 재학 시절엔 5월 8일이 지금과 같은 어버이날이 아니라 '어머니날'이었다. 그래서 급우들 어머니들께서 모두 교실까지 들어오셨는데 하나같이 '꽃 옷'으로 치장을 하셨다.

"와~ 여기가 우리 아들 공부하는 교실이여!"
"우리 딸 선생님이 저분이시구만, 안녕하셔유?"

그리곤 집에서 챙겨온 달걀꾸러미 등 정성이 가득한 선물을 교탁에 가득 싸놓곤 했다. 그렇지만 그런 모습을 보는 내 심기는 당연히 불편할 수밖에 없었다. 하여 슬그머니 교실을 빠져나와 학교 뒷산에 올라가 멍하니 흘러가는 구름이나 관조하는 게 습관으로 자리 잡았다.

근데 그놈의 시간은 왜 그렇게 더디 가는지 당최 모를 일이었다. 최진희의 노래는 이어진다.

"끊을 수 없는 그대와 나의 인연을 운명이라 생각 했죠~ 가슴에 묻은 추억의 작은 조각들 되돌아 회상하면서~ 천상에서 다시 만나면 그대를 다시 만나면~ 세상에서 못 다했던 그 사랑을 영원히 함께 할래요......"

2012년에 개봉된 영화 <범죄소년>에서 서영주는 자신을 버린 어머니 이정현을 만나서 이렇게 절규한다.

"왜 한 번도 날 찾지 않았어요?"

사람은 영원히 어머니를 그리워하는 존재이며 그런 감정을 지니다 저승으로 떠나는 나그네다. 면상(免喪)은 상중(喪中)을 지나면 상복(喪服)을 벗으면 된다. 그렇지만 어머니를 그리는 아들의 심상(心傷)은 평생을 가는 법이다.

'천상재회'가 아니라 또렷한 면상재회(面像再會)로 어머니를 꼭 보고픈 까닭이다. 비록 저승이 될지라도 반드시.
덧붙이는 글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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