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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작교와 무지개다리, 하늘에만 있는 게 아녀

[서평] <한국의 다리 풍경>

등록|2016.06.16 10:17 수정|2016.06.16 11:28

▲ 동양에서 제일 오래된 다리로 알려진 진천 농다리 ⓒ 임윤수


사람 사는 곳곳 개울이나 강 하나쯤 없는 곳 없고, 크고 작은 다리 하나 없는 곳 없습니다. 길이가 수 킬로미터나 되는 엄청난 다리도 있고, 서너 걸음이면 펄쩍 건널 수 있는 짧은 다리도 있습니다.

어떤 다리는 수 천 년 역사를 뒤 배경으로 갖고 있고, 어떤 다리는 아직도 시멘트 냄새가 풀풀 날리는 새내기다리입니다. 다리 중에는 철을 놓아 만든 다리도 있고, 시멘트 콘크리트로 된 다리도 있습니다. 돌을 놓아 만든 돌다리도 있고, 나무를 엮어 만들 나무다리도 있습니다.

다리 중에는 별다른 사연 없이 그저 그 자리에 있었던 것처럼 무덤덤하게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다리도 있지만 가슴 절절한 사랑, 애달픈 전설, 모골이 송연해질 만큼 무서운 이야기가 한여름 조롱박처럼 주렁주렁한 다리도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강 이쪽에서 강 저쪽으로, 강 저쪽에서 강 이쪽으로 짐과 몸뚱이만을 옮겨주는 그저 그런 다리도 있지만 추억을 이어주고, 사연을 건네주는 기억의 다리, 오가는 사람들을 통해 소식을 전하던 연통의 다리, 애경사가 있으면 함께 기뻐하고 슬퍼하던 희로애락의 다리도 있습니다.

노리개처럼 멋을 내기위해 만들어진 한량 같은 다리도 있고, 벽사의 의미를 담아 장승박이처럼 놓인 다리도 없지 않으니 다리는 길이 끝나고 마음이 시작되는 곳이기도 합니다.   

마음으로 걷고 추억으로 더듬어 가는 <한국의 다리 풍경>

▲ <한국의 다리 풍경> (지은이 이종근 / 펴낸곳 채륜 / 2016년 5월 20일 / 값 14,800원 ⓒ 채륜


<한국의 다리 풍경>(지은이 이종근, 펴낸곳 채륜) 속 다리가 그렇습니다. 세월의 더께 같은 유래, 구불구불한 전설, 산수화처럼 그려낸 풍경을 그리다 보면 어느새 다리 모습이 눈앞에 선하게 그려집니다.

전국에 산재해 있는 이런 다리 저런 다리가 광주리에 담긴 과일들처럼 제 나름의 유래와 제 나름의 전설을 담고 알록달록하게 소개되고 있습니다. 진천 농다리는 천년의 세월을 배경으로 두르고 있고, 청계천 다리는 청계수에 뜬 달을 낚을 수 있는 강태공의 마음입니다. 

'다리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이음과 맺음, 그리고 살 냄새, 땀 냄새 흥건히 나는 이야기를 보듬고 있습니다. 이웃 마음에 사는 처녀, 총각이 만나 사랑을 나누던 곳, 길 떠나는 자식을 눈물로 배웅하는 곳, 해질녘 장에 간 아버지가 고등어 한 손을 들고 건너는 곳이었습니다.' -18쪽

꽃가마 타고 들어왔다 상여 타고 나가는 무섬의 외나무다리는 구불구불한 모양새만큼이나 담겨있는 이야기 또한 구불구불합니다. 서울, 경기도, 강원도, 충청도, 전라도, 경상도… 남한 땅 방방곡곡에 놓인 다리는 발품을 덜어주기도 하지만, 인연을 맺어주는 중매쟁이 같은 다리입니다.  

칠월칠석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매년 칠월칠석이 되면 우리 형제는 제상을 차려놓고 50여 년 전 칠월칠석날 돌아가신 아버지, 어쩌면 오작교를 건넜을지도 모를 아버지를 추모합니다.

오작교는 칠월칠석날 은하수에만 놓이는 다리인 줄 알았는데 남원 광한루에도 놓여 있습니다. 무지개다리는 하늘에만 생기는 것인 줄 알았는데 사람 사는 곳곳, 절로 들어가는 산사 입구, 마을로 들어서는 계곡 어딘가도 무지갯빛 아름다움으로 휘영청 걸려있습니다.

'오작烏鵲'의 의미를 살펴보면 '달밝은 별이 빛나는 남쪽에서 날아온 보기 드문 까치'니, 한 마디로 먼 옛날 남쪽으로 날아간 남주작이라 말할 수 있습니다. 각성角星에서 서문端門을 열어 정성井星에서 동천우물의 물공사를 시작하며 주작이 날아오르면 오작교가 완성된다고 합니다. -102쪽

유랑객 같은 마음으로 거닐고, 한량 같은 마음으로 음미해보는 풍경 속 다리는 한양으로 가는 길에도 있고, 절집을 찾아가는 산길에도 있고, 으리으리한 궁궐과 정원과 맞닿은 수목 속에도 있으니 다리 없는 길이 없고, 다리 없는 풍광이 있을 수 없습니다.

▲ 비온 뒤 하늘에 놓인 무지개다리 ⓒ 임윤수


두 발로 건너는 다리 아래로는 계곡물과 강물이 흐르고 있지만, 마음으로 더듬으며 건너는 다리 아래로는 추억과 사연이 흐르니 다리는 하나인데 사연과 추억은 제각각 가지각색으로 수두룩합니다. 

무지개다리, 징검다리, 섶다리…, 이 다리 저 다리 마음 가는대로 서성이다 보면 책에서 거닐 수 있는 다리는 그저 건너기만 하면 되는 다리가 아니고 마음으로 새기고 가슴에 담아야 할 아름다운 풍경이며 서정시로 읊어야 할 서사가 아닐까 생각됩니다.

<한국의 다리 풍경>(지은이 이종근, 펴낸곳 채륜)에서 거닐게 되는 다리는 이쪽과 저쪽, 길과 길, 걸음과 걸음, 인연과 인연, 추억과 추억을 건너게 해주는 유구한 다리, 마음의 다리가 될 거라 기대됩니다.
덧붙이는 글 <한국의 다리 풍경> (지은이 이종근 / 펴낸곳 채륜 / 2016년 5월 20일 / 값 14,8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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